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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종교

 

  • 힌두교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다.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이기도 하고 힌두(Hindu) 라는 말 자체가 인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니, 힌두교는 인도의 민족종교, 곧 '인도교' 인 것이다. 하지만 힌두교를 단지 인도의 민족종교로 볼 순은 없다. 일단 불교, 자이나교가 그 기원을 힌두에 두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여러 고대종교, 곧 마니교, 조로아스터 교가 역시 그 기원을 힌두에 두고 있다.

인도 한나라뿐이지만 신도 수로는 이슬람과 함께 세계 1, 2위를 다툴 힌두교는 아마도 무속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다신교일 것이다. 여기에는 성경이나 불경, 코란 같은 경전이 없다. 신화가 있을 뿐이다.

신화가 있는 세상,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신화가 살아 있는 세상, 그것이 인도다.
신화란 무엇인가? 단군신화 같은 것이다.

샤머니즘과 종교의 중간 정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종교보다 오래 되었고 종교보다 인간적인 것이다. 구약성경, 이집트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힌두 신화, 이런 신화 속의 신들은 인간들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끼리 어울려 사는데 별다른 상관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도둑직 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라' 등 기독교의 10계명이나 불교의 5계 같은 것은 신화에는 없다. 신화 속의 신들은 걸핏하면 거짓말하고 화내고 간음한다.

인간의 도덕과 신들의 도덕은 완전히 달라서 인간의 잣대로 신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을 주고 악한 짓을 하면 하늘이 벌을 주는 것은 훗날 일어난 종교에서 있는 일이다. 신화는 그런 것을 관여하지 않는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천벌(벼락)을 받는다. 오디세우스 같은 사기꾼도 제우스로부터 상을 받는다. 그것이 신화다.

천벌을 주느냐 상을 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기에 인간은 부지런히 신의 기분을 맞춰 주어야 하고 신에게 빌어야 한다. 내게 복을 주고 벌을 주지 말라고.

인도 사람들은 일생 동안 그렇게 빈다. 그러고도 내게 복이 오지 않는 것은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절대로 인간이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헤라클레스 등의 신화에서 잘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제우스 신 마저도 운명 앞에서는 무력하지 않았는가?

힌두의 신화 역시 운명의 신화다.

이렇게 종교로 발전하기 전 상태의 원시종교가 신화일진데, 인도인들은 이 신화와 함께 산다. 내가 노예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고 릭샤를 모는 것도 운명이다. 다음 생에서 더 나은 계급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지 현생에서의 자기 도약은 바라지도 않는다.

바로 이 운명론 때문에 아마도 지구상에 몇 안 남은 노예제도라고 할 카스트제도가 인도에 여전히 남아 작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성단장의 세계읽기4] 인도라는 나라 ( 한국 관광신문 2001/12/07 )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이런 글귀를 보게 된다.

"알라, 이슬람의 신, 여호와, 기독교의 신, 힌두의 신은 모두가 하나이다"

힌두는 신을 합일적인 절대적 존재의 여러 표현으로 본다. 힌두에도 신은 많다. 하지만 그 신들은 모두 합일성의 각각 다른 "표현"일 뿐이지 엄밀히 말하면 상대적으로 대립되는 그런 개별 신은 아니다. 창조신 브라흐마와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는 삼위일체의 합일체이며 시바의 아내 우마는 파괴의 상징과 자애로운 어머니의 두가지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 곧, 기독교적인 개별신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다차원적 존재인 신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힌두의 신관이라 하겠다.


 시바 (Shiva / Har ) - 파괴의신 (파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게 된다!)

호랑이 가죽위에 올라앉아 코브라를 감고 명상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히말라야의 카이라사 산에 살고 있고 이마에는 제 3의 눈이 있으며 삼지창을 들고 있다.

시바의 사원에는 링가(남근석)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생산/생식력을 상징하는 시바의 상징이다.시바신이 타고다니는 동물이 성스러운 소인 난디(Nandi) 인데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소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 죽이거나 먹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지방도시로 갈수록 두드러져 거리와 골목 어디서나 소를 볼 수 있으나  대도시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소로 수레를 끌게 하는 등  잘 지켜지지 않는다.

시바 사원 앞에는 이 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비슈누 (Vishunu / Hari) -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신

비슈누(Visnu) 신은 우주의 유지자, 보존자이다. 항상 자애로우며, 진리를 수호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자이다.  시바는 성격이 복잡한 반면, 비슈누는 언제나 쾌활하고 자애로운 단순한 성격이다. 비슈누는 하늘에 살면서 지상을 내려보다가  이의 질서가 흔들리게 되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여 바로 잡는다. 비슈누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푸나라에 무궁무진하고 흥미 롭게 전개되어 있다.

비슈누의 형상은 대개 검푸른색 얼굴에 네 개의 팔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두 손에는 당당한 힘을 상징하는 철퇴(곤봉)와 원반을 각각 들고 있고 나머지 두 손에는 주술의 힘과 티없는 청정성을 상징하는 나팔 및 연꽃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높다란 왕관을 쓰고 있다. 발은 푸른색이며, 황금색 옷을 입고 있다.

비슈누의 황홀하고 그윽한 눈은 수많은 인도인의 숭경심을 자아낸다. 휴식을 취할 때면 우주적인 뱀 셰샤(Sesa), 또는 아난타 (Ananta)에게 기댄다. 비슈누는 가루다(Garuda)라는 새(神鳥)를 타고 다니며, 물고기를 자신의 상징으로 한다. 인도의 신화 베다에서 비슈누는 태양의 신(수리야 Surya)으로 등장한다.
비슈누는 세상의 상황에 따라 10가지의 변화된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오는데 이를 비슈누의 화신이라 한다.

비슈누 신의 화신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는 전통적으로 열 가지가 꼽힌다. 그 열 가지 화신 가운데 아홉가지는 이미 있었던 것이지만, 한 가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열 가지를 차례로 알아보겠다.  

 1)마트스야(Matsya : 큰 물고기) :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인 물고기의 기원은 브라흐마나의 홍 수 신화이다. 인류의 시조(Manu)가 물고기로부터 조만간 발생하게 될 대홍수에 대한 이랴기를 듣는다. 그 말대로 큰 홍수가 났다. 마누는 미리 준비한 배를 타고 큰 물고기의도움을 받아 히말라야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착하였다. 세상을 삼켰던 물이 빠진 뒤에 마누는 산에서 내려와 제사를 지내고 다시 인류를 창조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물고기가 마누를 구제한다는 이 홍수 신화는 서사시나 푸라나에 전수되어 결국 비슈누의 화신이 되었다.

 2)쿠르마(Kurma: 거북이) :  

거북이의 화신도 그 기원은 프라자파티(생물의 主)가 거북이의 모습으로 세계 창조를 하였다는 브라흐마나의 신화이다. 푸라나에 의하면 세계가 파멸할 때, 큰 홍수가 나서 신들은 많은 보물을 잃어 버렸다. 이 때 비슈누는 거북이가 되어 바다 밑으로 잠수하여 그의 등에 만다라(Mandara) 산을 짊어지고 대지를 지탱하였다. 그리고 악마의 신들로 하여금 바다를 휘젓도록 하였다. 이처럼 비슈누는 거북이로 변신하여 신들이 우유의 바다로부터 만들어낸 아므리타(Amrta:불사약)등의 여러 귀한 물건을 휘젓는 일에 일조 했다.  

 3)바라하(Varaha: 멧돼지) :  

악마 히란나약사(Hiranayaksa: 황금의 눈이란 뜻)가 대지를 바다 밑으로 침몰시겼을 때 1000년 동안의 끈질긴 싸움 끝에 대지를 그의이빨로 물고 다시 끌어 올렸다. 이처럼 대지를 지탱하여 인류를 구제했다고 한다. 이 멧돼지의 전설은 브라흐마나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원주민의 동물 숭배를 통하여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머리가 멧돼지로서 왼쪽 겨드랑이에 대지를 나타내는 여성을 끼고 있고, 양발로 용과 거북이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4)느리싱하(Nrsimha; 半人半獅子):

절반은 인간, 절반은 사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악마 히란니야카시푸(Hiranyakasipu ; 히란나약사의 쌍둥이 동생)를 퇴치하는 비슈누를 나타낸다. 브라흐마의 은총에의해 신, 인간, 야생동물의 어느 것에도 살해되지 않는 힘을 부여받은 이 악마는 그의 아들 프라홀라다(Prahlada)가 비슈누를 신앙한다 하여 아들을 살해하려고 한다. 이 때 비슈누 신이 절반은 사람 절반은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 악마를 가볍게 퇴치해 버렸다. 이 악마는 라바나(Ravana)로 재생했다고 한다.
10가지 화신 가운데 이들 네 동물의 화신은 소멸기(kali-yuga)인 우주가 파괴되는 시기에 나타나 다음에 오는 생성기(krta-yuga,  sata-yuga)를 맞게 된다고 한다.

 5)바마나(Vamana: 난장이) :  

이것도 앞의 네 화신과 같이 우주의 창조와 관련이 있다. 우주의 창조와 관련이 있다. 우주의 제 2기 유지기(treta-yuga)에 악마 발리(Bali)가 삼계(三界)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때 비슈누는 난장이가 되어 나타나서 발리에게 세 걸음만큼의 땅을 달라고 요구 하였다. 자신의 힘을 과신한 발리는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자마자 왜소한 난장이는 거대한 모습으로 변하여 세 걸음(trivikrama)을 걸었다는 것은 이미 [리그베다]에 언급되어 있다. 그의 세 걸음으로 인해 우주의 삼계가 창조되었다. 이것이 브라흐마니를 거쳐 서사시와 푸라나에 이르러 그가 비슈누의 다섯 번째 화신이 된 것이다.   

6)파라슈라마(Parasrama: 勇士) :  

파라슈라마는 도끼를 가진 라마라는 뜻이다. 그는 도끼를 휘둘러서 교만한 왕족을 넘어뜨리고 브라만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우주의 제2기 유지기(treta-yuga)에 비슈누는 브라만인 자마드아그니(Jamadagni)의 아들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크샤트리아의 카르타비르야(Karttavirya)에게 아버지가 살해되자 그는 도끼를 휘둘러 아버지의 원스를 갚았다. 크샤트리아족을 완전히 멸한 파라슈라마는 마헨드라(Mahendra) 산의 숲으로 고행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는 아슈바메다(馬祀祭; 말의 공희제)를  거행하고 모든 땅을 카시야파(Kasyapa)에게 돌려준다. 이것은 아마도 인도 역사의 초기 단계에 있었던 종족간의 정치적, 경제적  다툼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7)라마(Rama ; 라마 왕자) :  

라마는 2대 서사시의 하나인 [라마야나](Ramayana)의 주인공으로서 마왕 라바나(Ravana)를 죽인 영웅이다. 이 서사시에서는 라마의 출생 이야기를 통해 라마가 비슈누의 화신임을 분명히 나타낸다. 이에 따르면 아요디야(Ayodhya) 왕국의 다샤라타(dasaratha) 왕게게는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마땅치 않아서 자식의 탄생을 기원하는 말의 희생제를 지냈다. 이 때 천계(天界)에서는 온갖 나쁜 짓을 일삼고 있는 악마왕 라바나를 퇴치하는 일이 문제였다. 그래서 브라흐마 신의은총으로써 불사신이 된 라바나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비슈누는 다샤라타 왕의 아들 라마의 모습으로 이 지상에 나타난다.  

라마는 인도 민중에게 예로부터 친숙한 영웅이란 점을 감안할 때 라마가 비슈누의 화신이 된 것은 일반 민중이 비슈누 신앙을  널리 수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라마야나]에서의 라마는 고난을 잘 이겨내고, 전쟁에서는 용맹스럽고,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성스러운 의무(옴금)에 충실함으로써 비슈누 신의 한 화신으로 간주되게 되엇다.그리하여 그의 이름은 때대로 신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모든 힌두교도의 모범이 되고 있다.
라마의 부인 시타도 그와 함께 힌두교도들에게 숭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라마에게 정절을 다하고 성스러운 의무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그녀는 힌두교도 아내의 귀감이 되었다. 라마가 비슈누 신의 화신이듯이, 그녀도 비슈누 신의 부인 락슈미의 화신인 것이다.

현재 전 인도에는 [라마야나]의 각종 이본(異本)들이 혼재함으로써 라마에 대한 신봉도 각양 각생이다. 단순한 구원의 영웅 라마로서가 아니라 최고의 신으로 받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와 같이 라마 신앙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비슈누의 화신인 한 영웅으로서의라망 대한 숭경이며, 또 하나는 라마를 최고의 신으로 받들고 라마에게만 봉헌하는 예배이다.

 8)크리슈나(Krsn) :  

힌두의 신들 중에서 가장 인도 대중에게 인기가 있고 친숙한 신이 바로 크리슈나(검다는 말에서 유래함) 신이다. 그리고 비슈누의 화신 중에서 크리슈나는 가장 중요하다. 라마도 널리 숭배되고 있지만,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화신으로서 혹은 개별의 신으로서 라마 이상으로 널리 숭배된다.

근원을 달리하는 갖가지 토착 신앙이 크리슈나에 포함되어 크리슈나 신화는 더욱 더 풍요롭게 되었다. 그리고 갖가지 전설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크리슈나 신화가 완성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어린아이로서의 크리슈나, 소치는 여인과 즐기는 크리슈나,인드라 신과 싸워서 소를 지키는 목동 크리슈나,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영웅으로서의 크리슈나,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라다 (Radha)와의 사랑의 유희(LiLa)를 즐기는 쿠리슈나 등은 모두 그 근원을 달리하는 독립된 전승이며 민간신앙이었던 것이다.

[마하바라타]에서 크리슈나는 진지하고 용맹스런 전쟁영웅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화신인 자기에게 진정 한 박티(희생)를 무조건 바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

한편 방대한 민담에서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크리슈나는 쾌활한 아이이다. 인도인들은 어린 시절 창고에 드나들면서 버터를 훔쳐먹곤 하는 푸른색의 몸을 가진 통통하고 장난기스런 어린 크리슈나의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긴다. 많은 인도 여성들이 토실토실한 아기 크리슈나상을 보며 예배를 올린다. 그러나 크리슈나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매력적인 목가의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이다. 대부분의 민담에서 크리슈나는 활달하고 호색적인 목동으로 묘사된다. 크리슈나가 소 떼사이를 거닐면서 아름다운 피리 소리로 황홀한 곡조를 실어 보내면 고피(Gopi)들은 사랑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그는 피리를 불어 여성을 매료시킨 것이다. 그러면 크리슈나는 이 처녀들과 열렬한 사랑의 놀이를 한다. 그 많은 처녀들 가운데에서도 크리슈나는 라다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가장 좋아한다. 12세기 이후에는 박티(bhakti) 신앙의 기반 위에서 크리슈나의 이러한 에로틱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는 사랑 이야기 묘사에 치중하고 있지만, 샥티즘(Shaktism)과 약간의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

 9)부다(Buddha):  

아홉 번째 화신으로서 불교의 개조(開祖) 부다를 드는 것은 불교와 힌두교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앞에서 본 대로 힌두교의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에 대한 푸라나의 설명은 모두 힌두교의 입장에 의한 것이다.  이는 불교의 사상적인 면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또한 비슈누가 부다가 되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악마와 악인을 파멸시켰다는 주장은 인도 정통파 측에서 보는 불교관이라고 생각된다. 부다가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흡수된 것은 힌두교 속에 투영된 불교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부다가 비슈누의 화신으로 간주되고 만 것은 불교가 힌두 세계에서 더 이상 특색 있는 종교로서의 근거를 상실하는 계기가 된다. 현재 힌두교도들은 부다를 비슈누 신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 믿고 있어, 그들에게 있어 부다는 힌두교의 주신(主神) 비슈누 그 자체인 것이다.

 10)칼키(Kalki) :

칼키는 암흑의 시대인 파괴기(kail-yuga)가 끝날 무렵에 손에는 빛나는 불칼을 든 채 백마를 타고 나타나는 미래의 화신이다. 그는 사악함을 물리치고 정의를 재건하여 생성기(krta-yuga)의 법(옴금)에 따르는 자를 구원한다고 한다.  결국 칼키는 현상태로서의 우주의 파괴기에 나타나 자신 속에 모든 선(善)을 거두어들인 후 다음 단계의 우주 생성기가 될 때 다시 선과 질서를 우주에 펼쳐 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칼키는 일반 민중으로부터 미래의 구세주로 추앙 받고 있다

참고: http://home.hanmir.com/~deskball/agama/hidu.htm

 브라흐마 (Brahma) - 우주의 창조신

브라흐마(Brahma)는 창조의 신이며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고 체계적이며 질서를 창출 한다. 브라흐마는 비슈누 신의 배꼽에서 탄생되었다. 연꽃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연꽃의 질서적인 창조와 확장을 뜻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가 있는데 브라흐마가 창조를 하려하는데 창조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의 스승인 나라야나(Narayana : 비슈누 신의 화신)에게 가서 창조가 되질 않는다고 하였다. 그의 스승은 명상을 하라고 하였다. 모든 창조는 고요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는 수많은 시간동안 명상을 하였지만 창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스승은 더욱 깊이 몰입하라고 하였다. 더욱 고요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 순간 창조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창조의 빅뱅(Big Bang)은 거대한 기쁨과 희열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난 결과이다.

  인도에는 브라흐마 신의 사원은 많지 않다. 비슈누 신의 사원안에 포함시켜 버렸는지도 모른다. 브라흐마 신은 인도의 최고 경전인 4개의 베다(Veda)인 <리그(Rig)>, <사마(Sama)>, <야주르(Yajur)>, <아타르바(Atharva)> 베다를 상징한다. 그래서 네 머리와 몸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사라스와티(Saraswati) 여신이다.

  창조주인 브라흐마는 어둠(타마스tamas), 기(라자스rajas), 선(사트바satva)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몸을 가지고 있다. 브라흐마는 세상을 창조하고 아주 여러 차례에 걸쳐 세상을 재창조했다. 현재의 세상 이전에 얼마나 많은 세상이 있었는지, 또 이후로 얼마나 많은 세상이 도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네 시대 (유가yuga)가 모여 하나의 겁(칼파kalpa)를 이룬다. 각 칼파가 끝날 때는 창조물이 파괴되어, 과도 상태인 물의 심연으로 돌아간다.

 브라흐마가 명상에 잠겨 있는 동안 그의 생각으로부터 생명이 태어났다. 브라흐마는 어둠으로 이루어진 몸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직장(直腸)에서 바람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악령들이 태어났다. 그러자 브라흐마는 이 어둠의 몸을 버렸고, 이 버림받은 몸은 밤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브라흐마는 새로운 몸을 취했다. 이 새로운 몸은 거의가 선과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입에서 빛을 발하는 신들(데바deva)이 나왔다. 그가 이 몸을 벗어 버리자 이 몸은 낮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낮시간에 사원을 찾아가 신들에게 예배드린다.

  브라흐마는 온통 사트바로만 이루어진 세번재 몸을 취했다. 브라흐마는 우연히 제멋대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선조 영령들'이 태어났다. 이 영령들은 낮과 밤이 만나는 동틀녘과 해질녘에 나타난다.

  그 다음 브라흐마는 세번째 몸을 벗어 던지고 네번째 몸을 취했다. 네번째 몸은 그의 마음에서 발산되는 기(氣)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마음에서 발산되는 생각들과 함께 사유하는 피조물,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때 브라흐마는 이 몸을 버렸고, 이 몸은 달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달빛 아래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브라흐마는 기와 어둠으로 이루어진 다섯번째 몸을 취하고는 몹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이상한 생각이 그로 하여금 혼돈의 바다를 꿀꺽 삼키고 싶어하는 끔찍한 피조물들을 토해 내게 했다. 끔찍한 피조물이란 다름아닌 귀신들이었다. 브라흐마는 이 마지막 피조물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 나 있는 머리칼이 모두 빠져 버렸다. 그의 머리칼들은 모두 뱀이나 다른 파충류들처럼 배로 기어다니는 생물이 되었다. 이 파충류들은 늪이나 덤불 더미 속, 바위 밑 등 어두침치만 곳에 몸을 숨김으로써 자신들의 유래를 떠올린다. 브라흐마는 귀신들을 만들어 낸 것 때문에 여전히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음울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무서운 간다르바, 즉 시체를 먹는 악귀들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브라흐마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유쾌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이렇게 행복한 상태에서 새들이 창조되었다. 이번에는 새들뿐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브라흐마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포유 동물, 식물, 그리도 또 다른 행태의 생명체들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성질은 그것들이 태어날 때 브라흐마가 했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들은 현재의 세상이 지속되는 동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흐마 신은 현재의 이익에 도움이 적은 때문인지 현재의 인도인에게서 멀어진 것 같다. 그래서 널리 보편적으로 숭배되지 못했고, 브라흐마 신을 모신 사원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5~6개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라자스탄(Rajasthan) 주(州)의 아즈메르(Ajmer) 근처에 있는 푸슈카르(Puskar) 사원은 유명한 브라흐마 사원으로, 푸슈카르 멜라(Puskar Mela)라고도 부른다.

파르바티 두르가 (Durga) - 시바의 아내

칼리여러 이름을 갖고 있으며 두르가(Durga), 칼리(Kali), 파르바티(Parvati), 우마(Uma) 등은 으로 불린다. 파르바티나 우마로 불릴 때, 그녀는 사랑이 풍부한 어머니상의 여신이 되지만, 두르가나 칼리가 되면, 파괴의 두려운 여신이 된다. 특히 칼리의 사원에는 제물로서 동물이 바쳐지기 때문에 피냄새가 진동하게 된다.

두르가는 파르바티의 화신이다. 두르가는 힌두 여성 신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르가는 여덟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 손에 들고 있는 게 다르다. 그러나 삼지창, 칼, 방패, 뱀, 방울, 북, 컵,활, 화살, 바퀴, 소라, 곤봉 , 물 주전자 중에서 골라 들고 있다. 두르가는 요가를 하는 자세로 두 겹으로 된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호랑이나 사자 등에 앉 아 있다.

두르가는 파르바티와 달리 쉬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인도인들은 현세에서는 물질적인 이익을 얻 고, 내세에서는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르가를 숭배한다. 두르가는 아홉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모두가 숭배의 대상이다.

파르바티는 쉬바의 아내로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대표한다. 파르바티는 별 다른 능력이 없지만 그녀가 다른 모습, 즉 두르 가나 칼리로 나타날 때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게 된다. 파르바티만 따로 숭배를 하지 않으나 쉬바 사원에서만큼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파르바티가 팔이 둘일 때는 양 손에 창과 거울을 가지고 있지만, 넷일 때는 양 손은 축복과 보호의 자세를 취하고 나머지 양 손 에는 창과 끌을 들고 있다.

 락쉬미 (Durga) - 비슈누의 아내

힌두 신화의 연꽃의 여신이다. 비슈누의 아내이고 그의 창조 에너지의 상징이다. 그녀는 농업의 여신이며 그녀가 밟고 있는 식물을 상징하는 연과 왼손에 들고있는 연꽃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락쉬미(Lakshmi), 곧 "행운"은 삶을 증진하는 자비로운 모습으로 있을때는 삶의 우주적 어머니인 한편, 지혜를 주는 광대한 작용을 할 때는 초월적인 삶의로의 입구이기도 하다. 그녀는 밝은 금빛 피부를 지닌 젊은 여성으로 연꽃에 앉아 나타난다. 그녀는 브리구와 크야티 사이의 딸이라고도 혹은 산과 악마들이 불사의감로수를 얻기 위해 우유의 바다를 휘저었을때 거기서 나왔다고도 말해진다. 우주가 갱신될때는 언제나 처음에 우주해가 천개의 꽃잎이 달린 순금의 연꽃을 피우며, 그 연꽃이 창조신 브라흐마를 탄생시킨다고 쓰여있는 신화도 있다.
락쉬미는 그 우주 모태와 결부될때 로카-마타(Loka-Mata),곧 "세계의 어머니"가 되며 잘라디-자(Jaladhi-ja), 곧 "바다에서 태어난 존재"가 된다. 연꽃의 눈을 가지고 연꽃의 색깔을 띠며 연꽃의 옷을 걸친 락쉬미는 모성적 자애로움의 상징이며, 그 풍만한 가슴은 구원과 환희의 변함없는 원천이다. 그녀는 또한 락쉬미라는 이름과 위에서 언급된 이름들 외에도 하리(비슈누)의 연인(Haripriya), 연꽃(Padma), 연꽃위에 앉아 있는 여인(Padmalaya), 변덕스러운 여인(Chanchala) 등의 이름을 가진다.

그녀는 비슈누가 환생할 때 마다 그에따라 그녀도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환생한다.비슈누가 난장이로 환생 했을때 그녀는 카마라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또한 비슈누가 파라슈마라였을 때 그녀는 드하라니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라마였을 때는 그녀는 시타로,그리고 크리쉬나였을때는 룩미니라는 이름으로 각각 태어나기도 하였다. 그녀는 언제나 비슈뉴의 화신의 형태에 맞추어 그가 신일때는 그녀 또한 신으로, 그가 인간일 때는 그녀 또한 인간으로 태어난다.

  가네샤 (Ganesha) -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

가네쉬는 사람의 몸에 코끼리 머리를 달고 있다. 넷에서 열개까지의 팔을 가지고 있으며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가네쉬 는 대개 붉은 색이나 노란 색으로 묘사되며, 탈 것은 생쥐이다. 가네쉬는 손에 밧줄과 도끼와 사탕 그릇과 뾰족한 막대기 등을 들고 있다.

쉬바의 아들인 가네쉬는 장애물의 제거자로 불린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제사의 시작이나 여행 출발 때 가네쉬에게 기도를 한다. 또한 가네쉬는 지혜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또한 쉬바 사원에는 꼭 등장한다.

 

 

  하누만 (Hanuman) -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

원숭이 신 하누만은 가네쉬만큼 대중적인 신이다. 인도 전역에 걸쳐 숭배되고 있으며, 특히 농촌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하누만 의 여러 모습으로 보여지지만 대체적으로 원숭이 머리와 잘 다져진 몸과 두 팔과 머리 위까지 꼬부러진 긴 꼬리를 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팔을 열 개까지 가진 모습도 있으며, 머리가 다섯개인 모습도 있다. 다섯개의 머리가 달릴 때는 각각의 머리는 원숭이 , 독수리, 멧돼지, 말,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비쉬누의 대표적인 화신의 형상을 뜻한다.

라마를 도와 마왕 라바나를 물리치고 시타를 구하는데 일조를 한 하누만은 모든 악을 물리친다고 여겨지고 있다. 라마 사원이나 비쉬누 사원에는 하누만이 빠지지 않는다. 또한 인도인들은 서유기의 손오공을 하누만이라 부른다.

 

  • 시크교

약 1300만 정도의 추종자를 가진 인도의 소수종교로서 주로 북인도의 펀잡지방 주민들에 의해 신봉되는 시크교(Sikhism)는 16세기경 구루(Guru,지도자) 나낙(Nanak, 1469-1538)에 의해 창시되었다. 오늘날 시크교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 인정받고 있지만 본래는 힌두교에 있어서의 하나의 개혁운동으로 볼 수 있으며, 자이나교나 불교와 달리 이슬람교로부터 중요한 요소를 병합한 일종의 힌두-이슬람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펀잡 지방의 암릿차르에 가면 이들의 대표적 사원인 하리 만디르를 볼 수 있는데 지붕에 400KG 가량의 순금을 쒸워 골든템플이라고도 부른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으며 예배시 머리카락을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계율에 따라 머리에 터번을 둘러 다른 사람들과 쉽게 구분되는 이들은 주로 상업, 교통, 군 관계의 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소수이면서 신도간의 결속력이 강하며 학식도 풍부해 인도사회의 중,상류를 차지하는데, 아리안의 피가 짙고 육식을 하기 때문에 체격이 작은 힌두교도들과 구분되어 위압적으로 강한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여행중엔 이런 시크교도에게 길이나 다른 사정들을 물어본다든가 하면 대개 정확한 대답이 나올 것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 자이나교

인도의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도 삶을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끝없는 윤회와 속박으로 보며, 그 원인은 개개인이 지은 행동(카르마)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윤회에서 해방되려면 카르마를 소멸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카르마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자이나교에 있어서 구원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개인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만 달성되므로 신은 자이나교에서 중요시되지 않는다.

 A.D. 8세기에 자이나교는 북인도를 중심으로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여 여성의 출가나 구원을 인정하는 보다 대중적인 Svetambara파(백의파 : 나체를 거부하고 흰옷 착용을 인정한데서 오는 명칭)와 남인도를 중심으로 보다 보수적이고 수도승은 옷을 입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Digambara파(공의파)로 나뉘어 졌다. 그러나 순수한 형태의 자이나교도는 현재 약 200만명 정도에 불과하고 주로 봄베이와 구자라트주에 거주하고 있다.
자이나교도는 종교적 실천방식에 따라 (1) 출가하여 엄격한 고행을 하는 소수의 수도승, (2) 가정을 유지하는 승려 등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자이나교의 경전은 아가마(가르침) 혹은 싯단타라고 불리우며, 자이나교도들은 이를 제자에게 베푼 마하비라의 직접적인 교시라고 믿고 있다. 자이나의 아힘사(불살생)와 고행에 대한 강조는 힌두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마하트마 간디의 아힘사 사상에도 반영되었다.

 철저한 불살생 교리때문에 자이나교도에게는 생명을 살해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직업, 즉 군인, 도살업, 피혁공, 심지어는 농업까지도 금지되어, 이들은 상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정직성과 도덕성에 대한 신용으로 대개는 뛰어난 상인이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고행과 자발적 가난을 중시한 자이나교도들은 생명에 대한 존중 교리로 지금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되었다.

  • 이슬람교

(http://www.tajmahal.co.kr/indo/indo-5_3.htm에서 발췌함)

인도 최고의 소수종교라는 말은 바로 이슬람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2차대전 종전후 파키스탄과 인도 가 나뉘게 된 것이 바로 종교적 이유, 즉 이슬람교의 국가와 힌두의 국가를 위해서였듯이, 그리고 요즘의 상황을 봐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이가 안좋듯이 인도내의 무슬림들은 인도내에서 좀 색 다른 존재이다.

기원후 569년 메카에서 태어난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교는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한손엔 칼, 한손엔 코란'이라는 말로 유명한 종교이다.  
물론 이런 한손엔 칼...류 의 말은 이슬람교 발생후 100년 사이에 엄청나게 확대되는 그들의 세력을 두려워한 기독교국가들이 붙여준 명칭이기는 하지만 이슬람교(정확히 말하자면 셈족이 만든 종교)가 인도내의 다른 종교들에 비해 확실히 관용적이지는 않은 종교인 것은 사실이다.
무슬림들이 만든 무굴제국은 200여년간 인도를 다스렸는데, 집권자가 200년 동안 끈질긴 포교정책(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인두세를 걷지 않는등 세제 특혜도 있었다.)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인구가 소수인 것 또한 인도만의 경우라 할 것이다. 무굴이 망하고 영국이 인도로 들어오게 된 후부터 식민정책 특유의 분리정책(분할하여 통치하라!)이 시 행되는데, 결국 이런 분리,이간 정책으로 인해 독립후 인도는 두 개의 나라로 분열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문제가 많은 카시미르지역의 분쟁의 불씨를 남겨두게 되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으로 나뉘게 되는 기준이 해당 지역의 인구당 종교비례였는데, 카쉬미르 지역은 주민의 대다 수가 당시에도 이슬람교신자였다. 기준에 따르면 카쉬미르는 파키스탄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상황 이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카쉬미르는 영국령이 아닌 당시 독립된 왕국이었는데, 카쉬미르의 마하라자(왕)은 힌두, 결국 그는 대다수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인도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종교갈등이 복합적으로 터지게 된 것이 요즘에도 시끌시끌한 카쉬미르지역의 분쟁이다. 실제로 카쉬미르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 처음에는 조심스럽지만, 결국 말문을 여는 것은 그들은 인도보다는 파키스탄에 가깝다이다.

인도가 누릴려는 남아시아의 패권에 죽어 나는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일뿐이다. (99년 7월 26일자 한겨레21에 의하면 카슈미르 사태가 계속 되는 지금 인도에서는 힌두교도들 의 무슬림을 향한 테러행위가 수없이 자행된다고 한다.) 이슬람교는 알다시피 일부다처제이고 (그래서 수많은 남자들이 부러워한다.) 돼지고기는 부정하다 하여 먹을 수 없으나 그 외의 고기는 쉽게 섭취할 수 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고기를 먹고 싶은 때 가장 접하기 쉬운곳이 바로 무슬림구역이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5번씩 성지인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데 인도를 여행하면서 이런 광경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힌두교가 힌두 인으로 태어나야만 하는 것에 비하여 이슬람교는 예수교와 마찬가지로 개종을 할 수 있다.(이슬람교는 전도도 한다.)

  • 인도의 종교 - 불교

(http://www.tajmahal.co.kr/indo/indo-5_3.htm에서 발췌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하면 가장먼저 떠올 리는 것이 불교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이다. 한국이나 주변 동아시아 국가에서 불교가 그동안 차지했던 위상에 비하면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 인도에서는 불교신자가 600~700만 사이이다. 10억 인구에 비하면 1퍼센 트도 되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도에서도 불교가 번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가 잘아는 마우리아 왕조는 불교가 국교였던 국가였고, 우리 한국인이 여행하면서 그나마 이질적이지 않게 접하는 대부분의 인도유적은 불교유적지이다. 북인도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불교유적지가 여기저기 박혀있다. 그런데 현재의 인도에서는 외국인이 아닌 인도인이 운영하는 절은 커녕 불교신자 구경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수많은 설을 제시하는데,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불교가 힌두교와 차이가 없어지면서 힌두교에 흡수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불교의 창시자 인 붓다가 힌두교의 신으로 편입된 것을 꼽고 있다.

사실 무신론에 가까운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시작한 불교가 북방불교(대승불교)로 변하면서 등장하는 수많은 신의 개념(많은 수의 신은 힌두 교에서 차용)이 힌두교의 그것과 차이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불교는 자신의 독자성을 잃어가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로 많은 학자들은 불교가 인도에서 '자연사'했음을 얘기한다. 인도 건국후 초기 법무부 장관은 지낸 천민 출신의 암베드카르 박사가 수십만의 천민을 데리고 불교로 개종을 하면서 현대에 들어 불교는 그전의 것보다는 조금더 많은 신도수를 거느리게 된다. 자신 역시 불가촉 천민 출신이면서 계급타파 운동을 벌이던 암베드카르로써는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는 힌두교안에서의 계급타파에 한계를 느끼고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로 개종을 하게 된 것이다. 암베드카르를 따라 불교로 개종한 천민들은 그래도 그중에 엘리트들이 많았는지는 모르지만 인도 공직자들 중에는 불교신자가 10퍼센트나 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불교신자들이 파워 엘리트로 행세함은 또다른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