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캄보디아여행 - 여행을 시작하며
 

국명은 통상적 명칭은 Kingdom of Cambodia. 간략하게 캄보디아(Cambodia)이며, 지방에서는 Preahreacheanachakr Kampuchea 이나 캄푸치아(Kampuchea)라고도 한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라오스, 태국,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토 중앙을 가로지르는 메콩강과, 메콩강의 지류로 이루어지는 광대한 중앙평원이 있고, 북쪽과 남서쪽에는 산맥이 형성되어 있다.
티벳의 히말라야 빙하로 부터 발원하여 메콩강으로 유입되어 비옥한 토양을 이루게 되는데, 국토의 75% 이상이 산림으로 덮여있다.

캄보디아의 가장 큰 자랑은 그 신비로움을 장엄하게 뿜어내는 고대 유적지 앙코르 유적군이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 불가사의한 고대 유적을 보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왔다.
 

  • 입 국 루 트

항공편
한국에서는 베트남 에어라인을 이용해 호치민을 경유하여 씨엠립(앙코르왓)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있으며 태국에서는 방콕과 프놈펜 사이를 타이항공과 로얄 에어 캄보디아가 운행한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항공과 로얄 에어 캄보디아가 호치민과 프놈펜 사이를 연결하며 요금은 왕복 110$(로얄에어캄보디아)-130$(베트남에어라인) 이다.

육로
베트남 호치민에서 프놈펜까지 가는 버스가 여행자 거리인 데탐거리의 각종 투어서비스에서 운행되고 있다. 요금이 싸지만 (요금 6$)국경을 넘으면 기다리고 있던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해로
베트남 호치민에서 버스-보트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프놈펜 시가지가 메콩 강과 연결되어 있어 메콩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 입국 서류와 비자

비 자 (Visa)
입국시 공항에서 유효기간 30일의 여행자 및 비즈니스 비자를 받을 수 있다(여권용 사진 필요) 비자 수수료는 여행자가 미화 20불이고, 비즈니스는 25불. 비즈니스 비자는 1달이 경과한 후 계속 연장이 가능하나, 여행자 비자는 취득 후 3개월까지만 연장 가능하다

출입국 심사
입국시 출입국 카드, 세관 신고서를 작성 제출하여야 하며, 입국 심사대에서 스탬프를 받은 후 가방을 찾아 세관 검사대를 통과한다

공항세
출국시 국제선 1인당 미화 20불, 국내선 10불이다.
 

  • 캄보디아 일반 정보

1. 국가명  캄보디아 왕국 The Kingdom of Cambodia

 2. 국가정체

입헌 군주제 (총리제) 현 국왕은 시아누크, 현 총리는 훈센
수도 : 프놈펜 Phnom Penh
집권당 : 캄보디아 인민당 (Cambodia People's Party)
60년부터 지속된 내전을 종식하고 93년부터 입헌군주제로 출범
한국과의 관계 : 크메르루즈 집권시 외교단절, 96년 외교관계 복원

3. 지형과 기후

남북으로 450㎞, 동서로 580㎞에 달해 타원형의 형태를 띠고 있고, 많은 강이 교차하는 저평원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음. 동부에 중앙평원인 메콩강 유역을 지배하는 톤레삽 호수(Tonle Sap Lake. 약3,000㎞로 서울의 약5배, 우기에는 약10배)가 있고, 남서부에는 Cardamones and Elephant 산맥이 있음.


열대몬순기후 (우기: 5~10월, 건기 : 11~4월)

- 11월 ~ 3월(건기) : 약간의 비를 동반, 춥고 건조한 북동몬순이 붐.
- 4월 ~ 10월(우기) : 고온 다습 다우, 남서 몬순이 붐.
- 가장 더운 달 : 4월 (최고기온 38℃), 가장 추운 달 : 1월 (최고기온 20℃)

 

 

4. 화폐단위

    화폐단위는 리엘 Riel 로서 1달러에 약 4000리엘. 소액권만 리엘을 쓰며 대부분 달러가 같이 통용된다. 특별한 절차없이 길가 환전소나 호텔을 이용하면 되고 소액권을 지불할 때 달러를 쓰면 잔돈은 리엘로 내 준다.  정확한 현재환율 보기.

5. 전기   대부분이 220V이며 플러그 모양은 이상하지만 한국의 전자제품이 사용가능하다.

6, 일반적인 시장 물가 (2003년 1월 현재)

    시장 물가는 베트남의 약 2배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비해서는 약 1/3 정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나 수작업으로 만든 것은 싸지만 과자,음료수 등 공산품식료들은 비싸다. 단 이 물가는 수도 프놈펜과 관광지 씨엠립 기준이며 외곽 도시로 나가면 이보다 약 30% 정도 싸다

    노점상의 국수(고기국수) : 2,000-3000 리엘 (대부분 2,000리엘이며 고기나 고명이 많이 든 것이 2,500-3,000리엘)
    과일쥬스나 셰이크 : 1,000리엘
    사탕수수 즙 (꼭 먹어 보기!) : 500리엘
    생수 : 1,500-2,000리엘 (유럽의 메이커 품이 비싸다)
    빵 : 1000리엘-3000리엘
    커피 : 1,000-2,000리엘 (레스토랑에서는 2,000리엘)
    육포 : 100g 에 3,200리엘 (맛있고 무척 싸지만 구제역 때문에 한국에는 가져올 수 없다)
    담배 : 2,000리엘 (담배는 확실한 가격을 모르겠네요. 사본게 한 가지라..)
    인터넷 : 시간당 2000리엘
    오토바이 렌트 : 1일 5$
    오토바이 택시 : 1Km 에 거의 500리엘
    각종 박물관 입장료 : 2$ (비싸!)
    중급 레스토랑의 한끼식사(두명 기준) : 밥 2000리엘, 요리 3$, 맥주 2$ 도합 5.5$
    드링크 요구르트 (850ml) : 1.5$ (칼텍스 주유소의 스타마트에 있는데 무척 맛있다)
    맥주 : 2,000-5,000리엘 (앙코르, 앵커, 333 등 지역맥주가 싸며 수입맥주, 흑맥주가 비싸다)
    숙박비 : 도미토리 2-3$, 선풍기방(찬물샤워) : 6-8$, 에어컨방(더운물샤워) :10-15$ 

     

  • 역  사

1. 찬란한 힌두문화를 꽃피운 앙코르 제국

앙코르 왕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 근거를 두고 790년에서 1432년까지 번영했다. 전성기 때는 지금의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그리고 인도양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대제국이었고 앙코르 일대에는 인구 100만의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가 이루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 와트'가 바로 이 시대에 만들어진 찬란한 힌두문화의 결정체.하지만, 앙코르 왕국은 자야바르만 7세의 과중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였고, 틈을 노리고 있던 태국의 야유타야족은 1431년 마침내 앙코르를 함락시켰다. 이에 앙코르 왕국은 앙코르지역을 포기하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겼다.


2. 제국의 쇠퇴,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

13∼14세기에 이르러 동쪽에 있는 베트남과 서쪽에 있는 태국이 강해지면서 그 압력에 눌려 캄보디아는 1431년 수도 앙코르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그 뒤 가까스로 존속하였으나, 19세기로 접어들자 유럽인이 진주하여 1863년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고, 1887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의 일원이 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3.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 시아누크 국왕이 주도하는 왕정 사회주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도 권력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에도 권력을 쉽게 이양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캄보디아는 시아누크공(Norodom Sihanouk Prince)을 주축으로 왕정사회주의와 대외중립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1963년 불교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건설을 국가정책으로 내세우고, 당시 남베트남-미국과 전쟁중이던 북베트남을 측면으로 지원하여 국지전에 돌입하여, 30년에 걸친 길고긴 내전이 시작된다.


4. 30년 전쟁 - 미국, 크메르루즈, 베트남이 물고 물린 끝없는 전쟁

가. 1970년 : 론놀의 친미 쿠데타 및 시아누크 실각

미국은 당시 수상이었던 론놀로 하여금 친미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게 하였으며, 론놀은 국명을 '크메르 공화국'으로 개칭함.
폴포트를 중심으로한 크메르 루즈는 미국과 론놀 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을 벌임.

나. 1975년 : 피의 유토피아. 크메르루즈 집권과 킬링필드

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한 후 론놀정권 붕괴하고, 내전에서 승리한 폴포트가 '민주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정부 수립.
폴포트 정권은 자급자족, 농업 현대화 및 산업에 있어서의 기술개발을 기치로 내걸고 국민들로 하여금 도시를 떠나 대규모 농업협동조합이나 산업체에 종사하도록 강요하였음.
이 기간 동안 정책에 동의하지 않은 약200만의 인구를 처형함.(당시 캄보디아 인구 약 800만명)
폴포트 정권은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았으며, 베트남과는 적대적인 정책을 취함.

다. 1979년 ~ 1989년 : 베트남군의 점령과 헹삼린파의 친베트남 정부 수립

19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침공하여 폴포트는 북서부로 피신하였으며, 1979년 1월 당시 크메르루즈의 분파였던 헹상린파가 친베트남계의 캄보디아 공산정부 수립. 1979년과 1989년 사이에 캄보디아는 베트남 군대가 주둔하며, 후에 캄보디아 인민당(Kampuchea People's Party = CCP)으로 개칭된 캄푸치아 인민혁명당(Kampuchea People's Revoluthionary Party = KPRP)에 의해 통치되었음.

라. 친베트남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캄푸치아 연합정부 구성, 내전 지속

1982년 개별적으로 헹삼린 정부에 대항하던 시아누크, 폴포트, 손산(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이 '민주캄푸치아 연합정부(Coalition Government of Democratic Kampuchia = CGDK)'를 구성하여 조직적인 반정부 게릴라전을 전개함. UN은 새로 결성된 민주캄푸치아 연합정부를 1982년 승인하였으며, 이에 따라 캄보디아가 UN회의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에 대한 외교적 차원의 국제적인 저항이 고조되었으며, 민주캄푸치아 혁명운동이 캄보디아 내에서 군사적, 정치적 활동을 계속하였음.

5. 내전 종식 및 UN 감독에 의한 총선거 실시, 입헌군주제의 새정부 구성

1987년 헹삼린 정부의 '국가화해정책'의 선언으로 헹삼린 정부와 반군단체들 사이에 정치협상이 시작되고, 198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함.

1990년 9월 : 자카르타 비공식회의에서 캄보디아 정부 및 분쟁 3개파의 과도정부로서의 국가 최고평의회(SNC:의장-사아누크) 구성 합의.

1991년 10월 : 베트남과 4개 분쟁 정당간에 포괄적인 협상을 거쳐, UN 감독하에 총선거를 실시하는 '파리협약' 체결.

1992년 3월 : UNTAC (UN Transitional Authority)가 공식 발족하고 2만여 명의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파견, 파리협약에 따라 정전체제를 감시하고 선거체제를 마련함. 하지만, 크메르루즈는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베트남군의 우선 철수 및 훈센정부의 해체를 요구하며 게릴라전에 나섬.

1993년 5월 파리협약에서 정한 1차 총선거 실시. 이에 따라 FUNCINPEC (120석 중 50석 획득), CPP (51석), Buddhist Liberal Democratic Party (10석)가 연합한 임시정부(National Provisional Government)가 발족. 크메르루즈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게릴라 활동을 지속하였음.

1993년 9월21일 : 국회는 캄보디아 왕국의 새로운 출발을 승인하였으며, 최고국민회의와 UNTAC하의 과도기간이 끝남. 시아누크왕자가 합법적인 군주가 되었으며, 제1수상으로 Ranariddh왕자(FUNCINPEC),
제2수상으로 Hun Sen (CPP)을 임명한 새로운 캄보디아 정부가 출범.

1998년7월 26일 : 국제 선거 감독기구 주관하에 2차 총선거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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