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경아씨가 오토바이를 가져왔다고 깨웠다. 렌트사
직원과 계약서를 썼는데 5$로 싸다. 오토바이는 250cc 짜리
혼다 제품으로 상당히 낡았지만 쓸 만했다. 숙소앞 길에서
오토바이를 시운전해 보는데 대략 6년만에 타 보는 것이라
불안하다.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내기를...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숙소에서 내일 아침 출발하는 호치민행 버스를 예약하고
나왔다.
프놈펜-호치민 버스 4$ (어린이
2$)
지도를 보며 킬링필드(Cheoung Ek)까지 가는 길을 확인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나섰다. 도중에 칼텍스 주유소에서
4리터 정도의 기름을 넣는데 기름값이 2.5 달러로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하지만 캄보디아 경제 수준으로
볼 땐 상당히 비싼 값인데 씨엠립과 프놈펜 거리에 넘쳐나는
오토바이(대부분 대림제품)를 보니 이곳도 빈부의 차가
극심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킬링필드를 가려고 시내에서 잠깐 헤메다 길을 물어
시 외곽으로 나가자 당장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길의 파임이
심해 앞에서 여행객들을 태우고 가는 오토바이의 궤적을
따라 졸졸 쫓아갔다. 잠시 가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해안이와
내가 오토바이 머플러에 살짝 데어서 약도 살 겸 아침도
먹을 겸 마을에 섰다. 화상이기 때문에 열을 뽑으려 멘솔
제품(태국산)을 사서 발라주는데, 시원한 것이 일단 통증은
멎는다. 약이 상당히 센데? 아침을 먹으려고 현지인들이
많이 먹고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고기를 얹은 밥이 1500리엘
정도로 싸고 맛있다. 사람들은 외국인이 이런데 왜 왔나..
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고.
밥을 먹고 나오는데 오토바이가 시동이 안걸린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여들다가 길 건너편의
오토바이 센터를 가리킨다. 오토바이를 질질 끌고 가서
안되는 것 설명을 하려고 시동을 걸어보니 이런, 부르릉
하고 걸리는 것이 아닌가. 아, 충분히 고생해야 시동이
걸리는구나... 오토바이 센터 주인에게 멋적게 웃고
마을을 출발했다.
킬링필드 ( Cheoung Ek )
프놈펜 근교와 뚜얼 슬렝의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한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어 있는 것이
이곳에서 1980년에 발견되었다. 총탄의 값을 아끼려고 쇠막대기, 팜 나무
줄기 등을 이용해 처형을 했다고 한다. 사실 킬링필드에는
큰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보여지는 집단
학살 장소들이 숙연하게 만드는 곳이다.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위령탑은 폴폿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훈센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여m의 탑을 만들어 해골을 전시한 곳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도들인 캄보디아인들은 훈센의 이러한 행위를 좋지 않게 여기는데, 불교도들은 화장하지 않고 그렇게 두면 그 영혼이 극락으로 가지 모하고 구천을
멤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트래블게릴라) 위치 : 프놈펜에서
남서방향으로 15킬로 거리, 오토바이 또는 투어 버스로
방문 가능 입장료 : 2$. 나린 투어 요금 4$(차량,
가이드 제공)
이곳은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약 2만여개의 집단학살지
중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잔잔히 흐르는 개울물을 끼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평온한 곳인데 이곳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니.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캄보디아
인에게 물어도 잘 대답이 안나온다. 아무리 사회개조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2백만이나 되는 자국국민을 학살한
폴 포트와 크메르 루즈는 히틀러 이상의 집단광기라고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벌판 곳곳에 있는 집단학살 무덤에는 당시 목없는 시신이
적게는 100여구에서 많게는 500여구까지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킬링필드 위령탑 앞에 헌화한 뒤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접어든 뒤 어디로 갈까..하다가 대학교에 가
보기로 했다. 시내로 진입한 뒤 271번 도로를 따라 20여분.
대학 정문 경비원은 오토바이를 탄 우리 외국인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역시나 대학 안엔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가
서 있는 주차장이 있었고, 군데군데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건물을 돌아들어가자 넓은 공터와 나무그늘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윽고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우루루 나오고 오토바이를 집어타고 하나 둘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중 두 사람에 물었다.
"시간이 12시인데 벌써 끝난 거예요?"
"예. 오전 3시간만 수업합니다." (우와~) "무엇을
전공합니까?" "전 컴퓨터 공학부이고요,
이 옆 친구는 소프트웨어 공학을 전공합니다" 이곳
프놈펜에서 가볼 만한 곳이 어디가 있나요?" "왕궁이
볼 만하구요, 박물관과 킬링필드, 뚜얼슬랭박물관에 가
보세요.그리고 러시안 마켓도 가 볼만합니다." "당신은
크메르 루즈 당시 폴포트가 왜 그렇게 많은 자국민을 살해했다고
생각합니까?" "저희들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외세의 개입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이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의외였다. 역사적으로는 폴 포트 정권이 베트남침공으로
베트남군에 패주해 북부 산악지역으로 쫓겨난 뒤 친 베트남정부가
들어선 뒤 내전을 겪고 지금의 안정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오늘날에 걸쳐 인도차이나의 강대국 베트남에게
당한 피해의식을 보여주는 듯 했다.(베트남은 근세 75년과
78년 2차례에 걸쳐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대학을 나와 정문 왼쪽으로 돌아가는데 앞쪽 로타리
간판에 '김일성거리' 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이곳 프놈펜의
거리 이름엔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많다. 네루 거리도
있고 마오쩌뚱 거리, 시아누크 거리 등등. 고 김일성 북한
주석이 이곳에 거리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마오쩌뚱 거리를 통해 내려가다가 163번 도로에
있는 프사 뚜얼똠뽕 (러시안 마켓)으로 향했다. 163번 도로로
드어서서 오토바이 주차장이 보여 주차를 하는데, 바로
옆에 세워둔(아마도 방금 세운 듯하다) 오토바이의 머프러에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데었다. 다리를 움켜잡고 경아씨와
해안이가 앉아있는 바나나구이 노점으로 가서 아침에 사둔
멘솔크림을 발랐더니 조금 통증이 가신다. 이 상처는 여행
끝날 때까지 아물지 않았다.
러시안 마켓은 지나가던 사람들 누구에게 물어도 알지
못한다. 분명히 163번 도로로 왔고 시장 하나를 보고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모른다. 오히려 우리가 물어보는 것을 들은 외국인이
바로 여기, 프사 뚜얼똠뽕이 러시안 마켓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 왜 러시안 마켓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시장안에 있는 물품 중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오토바이
부품점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자동차 부품점이 있듯 이곳에는
오토바이 부품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보통 오토바이 부품을
오토바이 센터에서 구입하는데, 이곳은 시장에서 각종 엔진부품까지
갖추고 있다.특히 오토바이 악세사리에 붙어있는 이름중
대림이 압도적이었는데, 한국제는 아닌 듯 하고 스티커만
그렇게 붙인 것 같다.
시장을 대강 구경하고 뚜얼슬랭 박물관으로 향했다.
뚜얼 슬랭 ( Toul Sleng Museum )
이곳은 원래
뚜얼슬렝 쁘레아 고등학교 였던 것을 크메르루즈가 제 21 보안대 본부 건물로 바꾸어 사용한 곳으로, 전
정권의 관리들에 대한 심문장소와 고문장소,
그리고 나중에는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크메르루즈 통치 기간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2000만명이
들어가서 불과 6명이 살아 나온 악명높은 장소였다. 이곳에서 75년 4월 - 79년 1월 사이에 있었던 폴 폿
Pol Pot의 만행과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다.
(출처: 트래블게릴라) 위치
: 113번가와 350번가 코너 개방시간 : 8:00 - 17:00
입장료
: 2$
옆의
표지판이 이 뚜올슬랭 수용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아무 대꾸도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했던 사람들. 큰
방에 발목이 일렬로 묶여 죽음만 기다리던 사람들의 그
느낌여 몸서리쳐진다. 게다가 학살자들은 자신의 학살,고문
광경을 화가출신 수용자에게 시켜 그림으로 남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것을 '반역분자를 처벌하는 자랑스러운
모습' 이라고 선전하였지만 역사에 남은 그림들은 학살자들이
얼마나 인간이기를 거부한 괴물들이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뚜올슬랭은 크메르 루즈의 만행을 역사에 고발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설을 원래 있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우리는 뚜올슬랭을 나와 왕궁쪽으로 향했다.
왕궁 ( Royal Palace ) 과 실버 파고다 (Silver Pagoda)
황금색으로 빛나는 건물이 멀리서도 바라다 보이는
왕궁은 1866년에 건설됐으며, 노로돔 Norodom 왕이 거주하던
곳이다. 현재는 왕궁과
실버파고다 Royal Palace, Silver Pagoda 모두 개방하는데, 98년까지는 실버파고다만 개방을 했다. 99년부터 왕궁의 일부
지역을 개방하고 있으며, 왕궁의 입구는 정문에서 약간 남쪽(왕궁과 실버 파고다
중간)에 있다. 왕궁으로 들어가 실버파고다를 통해
나오도록 되어 있다.
왕궁 중앙의 건물은 왕이
대관식을 하던 곳으로 한때 프랑스와 신탁통치를 서명하던
곳이기도 하다.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중앙의
탑에는 바욘을 본딴 얼굴조각이 사방에 있다. 찬차야 궁은 똔레쌉강을 마주보고 있으며, 이 곳에서 왕이 군대의 사열식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시아누크 국왕은 대단한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감독과 주연을 맡아서 만든 영화도 있었다. 그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왕궁에 들어가 화살표를 따라가다 처음 만나는 홀이다.
왕궁 안의 프랑스식 건물은 식민지의
잔재로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캄보디아 왕실에 기증한 조립식 건물이라고 한다. 모든 자재를 프랑스에서 실어와 조립했다고 한다.
실버파고다는 그 안에
있는 중앙 사원의 실내 바닥에 1.1kg의 은으로 된 타일이 5천개나 깔려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 은 타일은 1903년에 깔았는데,
크메르 루즈군 점령 직전에 뜯어서 피난 시켰다고 한다. 또 90kg짜리 순금 불상이 9,584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으며, 제일 큰
다이아몬드는 25캐럿이라고 한다. 사원의 외부 안쪽 벽의 프레스코 풍 채색 벽화는 폴란드의 화가가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실버
파고다 내벽을 감싸고 있는 600미터 길이의 벽화는
부처의 생애와 앙코르 왓에도 있는 라마야나 전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버파고다를
나오면 출구 방향에 캄보디아 전통 의상과 생활상 전시관도
있다.
(출처: 트래블게릴라)
위치 : Sothearos
Blvd, 240번가와 184번가 사이. 개방시간 : 07:30
- 11:00, 14:30 - 17:00 입장료 : 2$. 카메라와
비디오를 촬영할 경우 추가요금을 내야한다. 카메라 3$,
비디오 5$. 아깝게도 우리는 왕궁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도착한 시간이 늦어 왕궁이 이미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대신 똔레삽 강이 보이는 왕궁앞의 광장에서 한가롭게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더 늦기 전에 왓 프놈 정도는 가보자고
재촉하여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점점 어둑해진다.
오토바이 라이트를 켜보니 하이빔밖에 나오지 않아 어둡다.
아무래도 오래간만에 타보는 오토바이라 자신이 없고 왓
프놈 역시 사람들이 별로 없고 어둑해져서 결국 잠깐 시장에
들러 꼬치 5개를 사고 숙소로 왔다.
오토바이를 성공적으로(!) 반납하고 잠깐
숙소에서 쉰뒤 다시 별마트에 갔다. 아무래도 캄보디아
일정 내내 별마트에 가나 보다. 시장 슈퍼에서 치즈와 술,육포를
사고 별마트에서 할인판매하는 쥬스 한병을 산 뒤
다시 숙소로 와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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