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중국여행 - 백두산등반,이도백하

백두산등반, 이도백하 / 2003년 8월 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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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지지 않는 눈으로 3시에 일어났다. 밖이 컴컴한데 식당에 모여 밥을 먹으란다. 도중에 불도 나가 촛불을 켜고 어수선하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으니 졸립고 괴로운 상태이다. 거의 4시 40분이 되어서야 지프차(3000원 씩)를 타고 천지의 천문봉 정상에 올랐다(2740m). 한여름에 그런 살을 에이는 강추위를 만날 줄은 정말 짐작도 못했다. 옷을 있는 대로 잔뜩 껴입고 아주 허접스러운 얇은 비옷을 2개나 사서 껴입었다. 이 비옷은 나중에 저절로 갈기 갈기 찢어진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차고 습한 구름이 몸을 휘감싼다. 바람은 왜 그리 사람 날려버릴 듯 부는지 그저 정신 없이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얇은 신 하나 신고 부들부들 떨며 이끄는 대로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뵈지도 않는 길을 내려가는 거다. 가파르고 미끄러워 무척 조심해야 하고 추우니 정신도 못 차리겠고 습해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는다. 게다가 등산 동호회 패키지팀을 만난 터라 일사천리로 모두들 빨리도 간다. 엄마를 해안이를 감싸고 벌써 앞질러 가는데 나는 내 몸 추스르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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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황 중에도 지천으로 핀 자그마한 들꽃들은 어찌나 예쁜지 감탄 연발,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다. 바람이 세고 추우니 일년 중 6월에 얼음이 녹으면 7, 8월 두 달 동안 꽃을 다 피워내야 하므로 모두들 납작하다. 언니는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하다. 이걸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다. 우리가 요금은 바가지를 썼어도 등산 전문팀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일상적인 패키지 팀과는 다른 어려운 코스로 남들이 가지 않는 쪽을 가고 있었다.

안개 사이로 처음 보는 기기묘묘한 장관의 풍경들을 보며 열심히 내려가니 드디어 천지. 내려오다가 우는 토끼 소리도 들었다. 쥐처럼 작은 토끼란다. 천지에서 조금씩 안개비가 잦아들고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전체의 풍광을 볼 수 없었는데 술 먹어서(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뒤에 만나게 될 이도백하 박용길 아저씨 집에서 먹은 팀이다) 늦게 출발한 팀은 운 좋게 맑은 천지를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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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바다처럼 약하게 파도가 치고 있었다. 천지의 물을 퍼서 먹어 보았는데 정말 물맛이 기가 막히다. 얼마 전에 천지 괴물이 나타났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놈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천지 주변에도 간단한 기념 손수건을 파는 곳이 있어 엄마는 해안이 아빠를 준다고 사셨다.

그곳에서 다시 등산 팀들은 다른 봉우리를 오른다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지쳐서 젊은 가이드와 먼저 내려가 온천을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비옷도 다 찢어지고 차림이 너무 부실했던 데다가 잠을 못 자고 무리한 산행을 한 것이 결정적으로 막판에 진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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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장백폭포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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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평지를 걸어 장백폭포의 위쪽을 구경했다. 안타깝게도 환경오염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듯 색색의 비옷이며 온갖 쓰레기들이 산 중턱과 흐르는 물위에 쫙 흩어져 널려있었다. 60여 미터의 장백폭포를 옆으로 구경하며 내려오는 계단은 턱이 높아 내려오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배에서의 에어컨 바람부터 시작된 감기 기운은 두통과 체력감퇴, 졸음이 되어 사람을 몽롱하게 했다. 거의 비몽사몽의 상태로 힘들게 걸어 내려오느라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추위에 시달리다 햇볕이 들고 따듯해지니 더 몸이 풀렸다. 패키지팀들은 보통 장백폭포를 오르는 이 코스로 가는데 입장료도 비싸고 거의 죽음의 코스다. 벼랑을 가파른 계단으로 오른다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겨우 내려와 9시 30분 경에 온천에 도착했다. 장백폭포가 지척에 보이는 곳이다. 유황온천에서 삶아 낸 달걀도 사먹고 드디어 온천에 들어갔다(1인 9000원). 시설은 우리나라 깡 시골의 대중 목욕탕도 그보다는 낫다 생각하면 될 정도로 작고 온탕, 열탕 두 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막바지 상태에 도달한 나는 여기서 감기를 이겨야 나머지 여행을 잘 한다는 일념으로 졸아가면서 12시까지 무작정 탕에서 버텼다. 거의 온천을 만난 것이구세주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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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에 팀과 합류해 버스로 하산하면서 그간의 비용을 계산했는데 1인당 10만원 정도로 해안이와 내가 20만원 넘게 냈다. 정말 바가지를 옴팡 썼다(호텔비 280, 차비 500, 기차예매 550:백하-단둥?, 관광비 800, 식사 1번 100, 숙소 440 - 총26700원, 한화 40만원 이상). 우리가 깍두기로 묻어 탔으니 자기네는 거의 공짜로 돈을 번 셈인데 돈 있는 나라에서 온 동포라고 우려먹는 거다. 한국인 가이드 박상현씨가 항의를 하고 도와주려 했지만 이곳은 중국인 현지 여행사의 권한이 막강한 곳이므로 소용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가까운 통화까지 끊어달라고 한 기차표를 엄청 비싼 가격에 머나먼 단둥까지 끊어 오고도 우리에게 바꿀 수 없으니 그냥 타라고 한다.

이도백하에서 차에 내려 가이드가 예약했다는 호텔에 데려다 주었는데 역시 그저 괜찮은 정도다 싶은 시설의 호텔 방을 2개나 잡아 놓았다(공행빈관 - 방 1개 220(33,000)을 냈으나 써있기는 380원(5만7천원), 3인실 420원). 숙비를 다 주었으니 물를 수도 없다하며 계속 뒷통수를 쳤다. 고마운 박상현씨가 전체 비용을 깎아주려고 애를 썼으나 약간 깎았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조선족인 그들과 헤어지고 우리끼리 남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영어도 전혀 안 되는 프론트의 아가씨에게 통하지도 않는 한자와 몸짓을 해가며 과일가게를 알아내었다. 찾아다니다가 시장에 가게 되고 골목에서 한글로 써있는 소박한 조선족 식당을 발견했다. 작은 시골집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니 반가워 인사를 하다가 우연히 억울한 기차표를 산 사연을 하소연하게 되었다. 이 분이 고마운 박용길 아저씨이다. 비로소 사기를 치지 않는 순수한 동포가 얼마나 좋은지를 느끼기 시작한 순간이다.

아저씨는 이런 일을 겪은 것을 어이없어 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표를 반환하러 역에 가자고 하셔서 언니가 가고 우리는 식당에서 기다렸다. 언니 말에 의하면 반환이 안되어 역무원과 싸우다시피 하다가(이곳은 이런 사람들이 무지 도도하게 군다) 아저씨가 단둥 갈 사람을 직접 찾아다니며 어렵게 한참 이야기하여 표를 팔아 오셨단다. 갑자기 표 판돈 420원이 생겼다. 조선족 여행사는 우리에게 엉터리 표를 끊어주고 수수료를 130원(2만원)이나 챙겼던 거다. 통화는 출발역이므로 늘 자리가 있어서 미리 끊을 필요도 없단다. 실제로 다음날 아침 아저씨가 소개해 준 택시기사가 직접 표를 끊어 줬는데(약간의 팁을 줬을 뿐) 요금은 물론 현지인 가격으로 어른21, 아이11.5로 총액이 74.5원 불과, 우리 돈 만원이었다. 그것을 550원을 받았던 것이다. 너무 고맙고도 안심이 되어 우리가 얼마나 속았던 가도 새삼 다시 느꼈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저씨 음식이나 많이 먹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아는 사람도 많아 택시 기사를 한 명 불러 가격까지 흥정해 주시며 가볼 곳을 말씀해 주셨다. 즐거운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장백 자연박물관에 갔다(어른 20원). 이곳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는데 장백산의 동식물을 소개해 놓은 곳이다. 천지의 괴물모형은 좀 유치했으나 재미있었고 밖에 화단에 심어 놓은 다알리아나 다른 꽃들이 아름다웠다. 중국인 기사아저씨는 우리말은 못하지만 친절하게 따라 다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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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인송원(어른 6원)으로 갔다. 매끈한 미인의 피부와 같다는 아름드리 미인송이 많이 심어진 공원인데 온통 키 큰 나무들 속에서 공기가 상쾌하다. 쉬엄쉬엄 거닐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저녁 식사를 하러 아저씨 가게에 왔다(택시 대절 20원). 아저씨 자녀들은 연길에서 공부하고 있다는데 집에 온 것처럼 풋풋하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잘 먹었다. 언니는 소고기를 끓인 국 맛이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라며 참 좋아했다(50원). 아무리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어서 만두는 싸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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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 이도백하의 날씨는 북구의 서늘한 날 같은 청명한 기운이 느껴졌다. 건물 앞 공터에서 나란히 열을 지어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온천으로 겨우 기사회생하여 몸이 풀린 나에 비해 해안이는 어찌나 팔팔한지 말도 안 통하는 호텔언니와 붙임성 좋게 잘 사귀어 한참을 놀고 늘 혈기왕성하여 잘 먹고 잘 잔다. 사교적이고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해안이 일기에서 윤동주가 해지옥, 피지옥에서 죽었다고 일본 사람들은 나뿐 사람이라고 쓴 것을 보고 한참 웃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고 했던 나의 말을 자기 나름대로는 벳부온천이 있던 후쿠오카를 연상할 때 부글부글 끓던 온천에서 죽였다고 알아 들었던가보다. 씩씩하고 귀여운 딸이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갈 곳을 정리하고 아침에는 또 아저씨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오히려 엄청난 수입이 생긴 날이다. 420원이니 우리 돈으로 6만 3천원의 거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