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중국여행 - 길림성,집안

길림성,집안 / 2003년 8월 10일 (일)

집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로 환인에서 천도하였다. 이곳에는 내성인 국내성과 외성인 환도산성, 우리가 아는 유명한 고구려 무덤떼들을 비롯해 이 주변지역에는 2만개 이상의 무덤이 있다. 화려한 무덤의 도시이다. 내세를 믿었던 고구려인들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무덤을 준비할 뿐 아니라 죽어서도 무덤지기를 두어 잘 보살폈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내부의 벽화는 일상생활의 모습과 사후세계를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환인에서 보다 물자가 풍부한 이곳으로 오고 다시 무덤이 너무 많아져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는 설도 있다. 집안은 지류인 통구강이 압록강과 만나 그 사이에 벌등도라는 작은 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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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4시 50분에 일어나 엄마, 언니와 아침 산책을 했다. 주변 산지와 물이 어우러져 평화롭고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슬슬 걸으며 밭을 가로질러 통구강가로 갔다. 강은 맑고 푸르다. 그 추운 물 속에서 이 새벽에 수영하는 노인도 있다. 강변이 새로 잘 꾸며져 공원같고 산책하는 이들도 많다. 거슬러 올라 환도산성 쪽으로 간다.

마을을 지나며 통구떼무덤이라는 표지를 발견했는데 과연 이것이 무덤인지 싶게 위와 옆에 꽃을 심고 밭을 만들어 동네 마당처럼 쓰고 있다. 이것이 원래 그대로 스러져 가는 고구려 무덤의 모습이다. 그저 남은 돌무더기들을 보며 무덤이라고 느낄 뿐이다. 많은 무덤 돌이 동네 담장용으로, 무덤이 밭으로 쓰였던 것이 고구려 무덤의 운명이었다. 요즘에서야 난리가 나고 있을 뿐이다.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마을 구경을 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빵집에서 팥빵, 월병을 사고 길에서 조선족 아줌마에게 만두(3개 1원)도 샀다. 숙소 앞의 맛있는 천도복숭아를 또 샀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조선족이어서 우리에게 오토바이 택시(20원)를 섭외해 줬다. 동북지역의 조선족이 200만 이라는데 우리는 도움이 필요할 때면 곳곳에서 이들을 만났다.

8시에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무덤떼 구경에 나섰는데 자리가 마주보고 앉게 되어있어 의외로 편했다. 유명한 다섯무덤(얼마전 까지만 해도 내부를 볼 수 있었던 무덤), 네무덤 등을 눈도장을 찍으며 스쳐 지난다. 차를 세운 채 멀리 서서 유명한 장군총을 아쉬운 마음으로 구경한 뒤 슬슬 달리면서 광개토호태왕비와 무덤을 구경했다. 잠시라도 세울라치면 바로 공안이 와서 가라고 한다. 만약 카메라로 찍는다면 바로 끌려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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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면서 보니 복원과정이 그야말로 막무가내이다. 인부들이 삽으로 마구 무덤을 파내고 있다. 입이 떡 벌어진다. 이런 식이니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에 알려지면 어찌되겠는가. 여기까지 와서 무덤과 박물관을 못 보는 것은 정말 억울했지만 할 수 없었다(당시 우리는 9월 이후에는 볼 수 있는 줄 알고 운이 없다고 더 아쉬워했으나 지금도 볼 수 없다).

더 이상의 무덤구경은 불가능하므로 압록강가로 갔다. 가는 시골길에는 과수원과 밭이 계속 이어져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 배를 타고 건너편 만포시 구경이나 하려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노 젓는 보트를 너무 비싸게 받으려 해서 포기하고 건너편 시를 그냥 바라보았다. 우리는 적정가 30원 예상으로 처음에 10원부터 불렀으나 80원을 내란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터미널에 들려 역시 매점 조선족 아줌마의 도움으로 표를 끊고(쉽게 만나게 되고 늘 먼저 알아서 도와주려 하신다. 모든 것이 자동이다. 차표는 네 명이 총 80원으로 우리가 옆에 서 있었으므로 외국인 요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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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국내성터를 보게 되어 부리나케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원래 남아있던 돌담도 진짜는 아닌데 옆에서 복원하고 있는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대충 쪼개 온 돌을 쌓고 위에 흙물 비슷한 것을 바르고 있다. 옛스럽게 보이기 위한 것 같다.

먹거리가 풍성한 시장에 들러 우리의 김치부터(어느 시장이나 조선족들이 김치를 판다) 각종 고기, 만두, 튀김, 옥수수 등의 먹을 것을 많이 사서 10시 반경 숙소에 돌아와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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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를 가나 고민하다가 결국 되든 안되든 환도산성 근처에 가서 산길 샛길로라도 한번 가보자고 했다. 산성에 못 가면 주위 산에서 꽃이라도 찍고 물이 깨끗하니 들어가서 놀기로 하고 물놀이 준비도 했다.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어 주변 산쪽으로 올라가 웬 교회에 도착했다. 다시 내려오다가 무지막지한 소나기를 만나게 되어 작은 골목의 대문 처마 밑으로 뛰어가 서 있었다.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소나기이다.

인기척에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셨는데 또 조선족이다. 어서 들어오라고 하셔서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아버지인 남편과 손녀딸이 있었다. 한 채의 집을 이웃인 한족과 둘로 나누어 쓰는데 가운데가 주방이다. 방은 작은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고 무릎 위 정도의 높이로 올라서게 되어있다. 두 방이 통로를 두고 마주보는 트인 구조이다. 소나기 덕분에 특이한 구조의 집을 구경하게 되었다. 옥수수도 주시며(찰옥수수로 무척 크고 맛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무덤 내부의 모습과 요즘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이곳 사정 등을 말씀해 주셨다. 보통 이분들은 고려 무덤이라 부른다. 밖은 이제 커다란 우박이 쏟아지고 있다. 해안이는 신기해서 바가지에 받아 본다.

비가 지나간 후 인사를 하고 나와서 다시 길을 걷는데 그 잠깐 사이에 도로에 물이 불어 흙을 트느라고 삽질을 하기도 한다.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환도산성 쪽으로 출발했다. 운전사가 뭐라 뭐라 하는 품이 못 탄다고 말하는 듯한데 모른 체 하고 그냥 탔다. 다시 열심히 설명해도 모른 척(특히 곤란할 때 이 방법은 유용하다. 어쨌든 중국말은 모르니까), 아마 외국인은 접근금지라는 얘기를 하는 것일 거다. 카메라를 꺼내면 안 되었는데 마을 버스 안을 찍었던 것이 이들을 긴장하게 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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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문제의마을버스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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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리에 도착, 입구에서 내리란다. 그러나 갈데 까지 한번 모른 척하고 가보자 싶어 그냥 있었다. 다시 출발하여 겨우 다리 하나를 건넜는데 검문소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운전사가 공안에게 우리가 내리지도 않았고 카메라로 뭔가를 찍었다고 이르는 듯하다. 공안이 올라와서 어서 내리란다. 이때부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내려서 모른척하고 뒤돌아서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 경황 중에도 잠깐 본 건너편의 화려한 환도산성의 무덤떼는 장관이고 멋졌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도시, 무덤의 도시인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정말 대단히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뒤에서 큰소리로 공안이 부르며 쫓아온다. 달려와 옷소매를 잡는 것을 몇 번을 뿌리치며 마구 걸었다. 잡혀가면 여권을 뺏길지 돈을 뜯길지 무슨 곤욕을 치를지, 혹 감옥에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걸었다. 따라 오던 공안도 포기하는 듯했다. 5분 쯤 걸었을까 다시 쫓아올지도 모르니 마을 옆길로 들어가 강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길가에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공사 중이어서 우리의 동태는 쉽게 알려질 것 같았다. 오히려 숨는게 더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열심히 걷는데 결국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3명이 나타났다. 우리를 쫓던 공안은 뒤에 타고 험악한 공안이 앞에 탔다. 앞에 탄 공안이 다짜고짜 성질을 내며 큰소리로 나무라는데 영 끌고 갈 기세로 난리여서 난감했다. 다행히 옆에서 뛰어오던 공안은 조선족. 아마 처음에 쫓아오던 공안이 안되니까 사람들을 불러온 모양인데 한국인이니 조선족 공안을 데려온 듯하다. 공안 한 명이 조선족인 것을 안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거짓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곳을 온 여행자인데 깨끗한 강물에서 애, 어머니와 물놀이를 하려고 상류로 가고 있던 중이다. 갑자기 내리라 하더니 끌고 가려 해서 무지 놀라 다급하게 되돌아가던 길이다. 도대체 왜 이리 무섭게 대하느냐. 물놀이를 하러 온 우리가 뭔 잘못을 한 거냐. 가방의 물놀이 도구를 보여주랴(가방에는 집안의 고구려 무덤떼를 자세히 설명한 책과 자료 카메라가 들어 있으니 뒤지면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하며 하소연 하듯 따졌다. 조선족 공안은 우리가 순진한 여행객이라고 판단했는지 한족 공안에게 잘 설명을 해준다. 우리에게는 위에서 지침이 내려와 이 지역에는 외국인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아까 다리 부근에서 낚시질도 하고 물놀이하는 사람을 봤는데 왜 안되냐고 했다. 모든 이 지역 강에서 외국인은 물놀이 금지란다. 이유는 상수도 보호원이기 때문이라나. 자기네는 들어가서 놀고 빨래도 마구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순순히 우리를 가라고 했다. 어느 정도 여유를 찾고서는 한 수 더 떠서 도대체 건너편에 무엇이 있길래 못 가게 하느냐고 했더니 절대 비밀이란다. 조선족을 만나 너무 반갑고 기뻤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돌아서서 걷는데 놀란 가슴이 한동안 진정이 안되고 다시 쫓아올 까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 상황을 벗어낫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와 해안이 덕분에 적당한 핑계거리가 되어 무사했던 것이다. 모두 십년감수한 얼굴로 얼이 빠져서 하류까지 왔다. 길가에는 무덤으로 추정되는 흔적들이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강가에 내려가 잠시 쉬기로 했다. 한가로이 빨래를 하는 부부의 모습(거의 남자들이 아침부터 빨래를 한다), 노니는 모습도 구경하고 강을 따라 통구강에서 압록강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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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 중에는 건너편에서 홀라당 벗고 서서 당당히 몸을 닦는 남자 어른의 모습도 있어 해안이와 모두들 재미있게 구경했다. 노출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문화여서 아이에게는 그것도 교육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것이 우리나라는 불가능하니까. 우리가 걷는 통구강변 안쪽으로는 부지런히 국내성을 쌓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꽤 쌓았고 규모도 방대하지만 급조되는 것이어서 날림이다. 해 저무는 압록강가에 도착하여 합류지점에 있는 벌등도는 예전에 이 강을 오가던 벌목꾼들이 잠시 올라 쉬어가던 작은 섬이다. 압록강가를 걸으며 보는 주변은 유원지의 풍경이다.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보트 타는 사람들도 있다. 강가는 한적하고 단정하게 잘 꾸며져 있다.

강가로 내려가 흙 묻은 신을 씻는데 옆에서 빨래하던 분이 또 조선족이다. 이 분이 보트를 교섭해 주어 외국인 요금보다는 좀 싼 요금으로(25원 씩 100원, 원래는 1인 40원) 모터보트를 타게 되었다. 낮에 보려던 만포시 까지 가는 배이다. 해저물 때 타게 되어 만포까지  갔을 때에는 어두워졌다. 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오리들의 속도와 배의 속도가 거의 비슷하여 그들의 모습도 찬찬히 보았다. 배는 거의 물에 뛰어들면 몇 번에 헤엄쳐 닿을 듯 불과 몇 미터의 가까운 거리까지 북한 땅에 근접한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아는 까닭이다. 내가 실향민이었다면 물에 뛰어들고 싶었을 것이다. 밥짓는 연기,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만포시의 저녁 풍경으로 마음이 좀 착찹하고 이상했다. 밤이어서 북한에 근접하는 것이 좀 무서웠던 엄마는 춥기도 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불안한 마음이 드셨나 보다. 돌아가자고 재촉하셔서 아저씨께 그만 가자고 했다. 해안이가 추워 할까봐 신경도 많이 써주신 아저씨였다.

내려서 만월이 비치는 압록강을 보며 걷다가(불빛이 별로 없어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시내로 오는 번화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주로 먹는 곳이 많다. 강을 넘어 술 마시고 놀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구려 식당이라고 간판을 붙인 곳에 들어갔는데 새로 젊은 부부가 개업을 했다.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앞으로 남한 사람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싶다며 음식 평을 해달라고 몇 가지를 만들어 가져왔다. 덕분에 잘 먹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돌아와 늦은 밤이지만 아저씨께 인사를 올리고 정리한 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