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중국여행 - 하얼빈,연길

하얼빈,연길 / 2003년 8월 17일 (일)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까지 짐을 챙기고 숙소에 맡긴 후 시내버스를 타고 731 부대에 갔다(15원). 이곳은 중국인에게도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 있는 장소라 잘 보존해 놓았다. 당시에는 규모가 컸지만 일본 사람들이 패전 후 모두 부수고 흔적을 없앤 뒤 떠났다. 지금은 한 동만 덩그러니 남아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주변은 넓은 공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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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731 부대가 저질렀던 만행의 내용들,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보여주는 모형과 사진, 비디오실, 일본인 관계자들의 증언실(소수), 죽은 이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 등이 있다. 여기 와서 실제로 보니 더욱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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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수괴_이시_시로_박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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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처음에는 일본군의 동상을 막기 위한 연구로 시작했었다. 동상실험을 하기 위해 사람을 추운 벌판에 세워두어 보고, 그렇게 얼린 사람을 뜨거운 물에 담가보고(살점이 떨어져 나간단다), 멀쩡한 사람을 진공상태에 넣어 보고, 정맥 동맥혈관을 바꿔 보고, 원심 분리기에 돌려보고, 각종 생체실험, 세균 투입 실험을 하고,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균이 묻은 사탕을 나누어주며 마을 전체에 균이 얼마 만에 퍼지는 지도 실험해 보았다. 사람의 몸을 나누어 다른 사람과 바꾸어 붙여 보기도 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짓은 다 해본 곳이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믿기 어려운 악몽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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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태우고_도망간_잔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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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밀히 기록된 자료들은(이런 일들의 과정이 이성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패전 후 미군에게 제공되었다. 그 대가로 이들은 면죄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일본에서 녹십자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존경받는 인물로 모두들 잘 살았다고 한다. 연구했던 자료들로 일본은 전후에 약을 만들어 돈을 많이 벌었다. 미국은 이 자료들을 활용해 이후 한국전 등의 전쟁에서 세균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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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세균실험_장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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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세균실험_중심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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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나쁜 짓을 하려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나치와 똑같다. 일본영화 '간장선생'이 생각난다. 마지막에 아들이 731 부대에 갔던 것 같다. 모두가 간이 부었다고 처방을 내리던 의사의 이야기다. 일본 사람들은 당시에 확실히 간이 부었다. 731 부대의 피해자는 주로 중국, 한국 사람들이었는데 한국사람들의 피해는 안타깝게도 별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드는 끔찍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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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조선족 식당에서 어제 먹던 탕수육과 음식을 먹고 도시락을 부탁했다. 기차 타기 전 남은 시간에 태양도 공원에 가볼까 했는데 아주머니가 왕복 거리도 좀 걸리고 하루 종일 놀아야 하는 곳이란다. 가보라고 권하시는 '도리 시장'에 가기로 했다. 종업원 아가씨가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시장은 매우 컸고 현대적이다. 위층은 백화점처럼 되어 있고 옷을 판다. 가격도 싸지는 않다. 엄마에게 옷을 사드렸다(81원). 아래층은 상가 시장이다. 과일부터 온갖 중국의 먹거리들을 다 판다. 깨끗하게 진열되어 있고 볼거리도 많다. 빵을 만드는 곳의 직공들 손놀림이 빨랐다. 옥수수를 종이처럼 편 과자, 과일도 사고 질 좋은 쟈스민 차(100원)도 많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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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도리시장_만두가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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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빵가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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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성당_앞.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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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꿀맛자두와_용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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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려고 택시를 잡으려다 우연히 건너편의 성소피아 성당을 보게 되었다. 하얼빈의 명소이다. 가서 사진만 찍고 택시를 잡아탔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도시락도 찾은 후 기차를 타러 갔다.

하얼빈 역은 큰 역인데도 화장실 시설은 끝내줬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멀리서 냄새가 진동한다. 모두 타일로 되어 있는데 위쪽으로 올라앉으면 아래가 죽 이어져 뚫려 있다. 오물이 강을 이루어 슬슬 흘러내려 간다. 따로 물을 내리는 곳은 없다. 이런 상태이니 마지막 끝에 앉은 사람은 앞사람들의 오물을 순서대로 구경할 것이다. 시설은 좋은 큰 역에서 이게 웬일인가. 화장실 문화는 입을 다물 수 없을 지경이다. 냄새를 참느라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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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올라 엄마 자리에 놀러가니 연와 침대차는 과연 좋았다. 4인이 쓸 수 있는 침대 중간에는 탁자가 있다. 4인실 씩 칸칸이 되어 있고 문을 열고 나가면 바깥에 좁은 복도가 있다. 이곳은 엄마와 해안이가 한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승무원은 애가 너무 크다며 같이 자면 안된다고 한다. 해안이는 좌석 자리만 끊었었다. 나는 딱 140cm 라고 한번 재러 가자고 했더니 결국 아무 말도 안 한다(기차에는 키를 재는 선이 있다, 140이상은 성인 요금). 같이 있게 된 아저씨들이 좋은 분들이셔서 떨어져 있어도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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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연와침대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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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해저무는_풍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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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와 침대차는 마주 보는 6개의 침대가 있다. 우리 자리는 맨 꼭대기로 잘 때나 올라가야 할 높은 곳이다. 보통 기차보다도 꽤 높아 올라가기도 힘들다. 이 칸에는 놀러 가는 조선족아저씨 아줌마들(우리나라 분들을 보는 듯 끊임없이 펼쳐놓고 드신다), 백두산 구경가는 한국 유학생 등 우리나라 사람이 많았다.

우리 침대 아래쪽으로는 자기들 짐만 욕심껏 올리고 우리 짐은 놓을 곳을 안 주려는 한족 아줌씨들이 있었다. 짐을 세워서 같이 놓으면 되는데 부탁을 해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모른 척한다. 짐칸에 놓을 자리가 없으니 바닥에 내려놓으라는 시늉을 한다. 좀 기분이 나빴다. 40대 정도들 되려나... 참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사람에게 잘해주려고 하는데, 웬만큼 사는 듯 보이는 이 한족들은 어림없었다. 한족 서민들은 이렇지 않은데 돈이 사람을 무례하게 만들었다고 이해 해야할까. 성격이라 해야할까. 이 사람들의 묘한 속성이라 해야할까. 통로에는 테이블과 작은 의자가 있다. 언니와 나는 이 작은 의자에 앉아 곡식이 가득 심어진 만주 벌판과 해 저물어 가는 풍경을 오랫동안 구경했다. 밥을 먹고 놀다가 밤 10시 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