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여름여행 - 여행 후기

 

여행을 마치며

생각해 보면 편한 여행은 아니다. 현지 물가는 싸지만 여행비용이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많이 든다. 물이 적은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적은 물로도 나름대로 깨끗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현지 음식을 계속 먹기는 쉽지 않았다. 빵과 버터, 고기와 유제품들로 이루어진 전통 식단. 야채와 과일이 없는 생활은 힘들다. 하루에 8시간에서 11시간 ?을 타고 7일간 사막과 초원을 달려야 하고 말 투어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나라이다.

 하트갈에서 만난 아가씨 슈리가 물었다. 왜 많은 나라를 여행하느냐고. 평범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참으로 근원적인 질문이다... 왜 혼자서라도 여행을 떠나려하는 것일까. 단순히 구경을 하려고? 나의 삶에서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을 찾으려고 가는 것인가.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답을 확인하기 위해 떠난다. 어디를 가든 사실 똑같다. 답을 알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 사람과 알면서도 떠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같다. 그러나 답을 알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집을 치울 때는 내가 죽게 되어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깨끗이 치운다. 떠나는 사람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 죽을 운명의 사람은 가만히 누워서도 죽을 수 있으니까. 죽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

  혼자 하는 여행에는 특별한 고독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만나는 이방인들과 하는 얘기는 어차피 한정이 될 거고 나머지는 고독과 사색, 명상 때로는 약간의 지루함 일거라고 생각했다. 책도 두 권이나 준비했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나에게 그런 여유를 주지 않았다. 책을 한 권도 다 못 읽을 만큼 혼자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다. 오히려 남편과 함께 여행하면 다른 사람이 접근할 기회가 별로 없다. 하지만 몽골 여자들은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돌봐주어야 자기 마음이 편한 것이다. 나로서는 많은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돕는 다는 개념 자체가 없이 모든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나도 신세진다는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사람이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런 인연들이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떠나기 전에 몽골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유목민의 삶, 칭기즈한, 그들의 민간신앙에 대한 것들이다. 상상했던 몽골은 웅대하고 넓으며 토속적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멋진 도시 울란바타르, 만달고비, 달란자드가드... 그러나 실제의 모습은 훨씬 예스럽고 시골이다. 마음 밑바닥에서는 이런 모습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원시 자연의 모습이 남아있는 그런 몽골 말이다. 발전이란 획일화를 의미하니까.  

  어디나 사람 사는 방식과 고민은 비슷하므로 몽골인의 많은 부분이 우리와 비슷했다. 적당한 갈등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몽골인의 행복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척박한 사막과 초원에서 욕심을 부린다는 것은 자멸을 의미한다. 그러한 진리를 알기에 수 천년 변함 없는 유목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물은 최소한의 삶을 이어나갈 생명수이다. 살기 위해 먹는 용도일 뿐, 씻고 낭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물이 흔한 호수 가 조차도 금 쪽같이 귀하게 쓰이는 것이다. 호수의 물을 우리처럼 이용한다면 지금과 같은 깨끗한 호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자연의 혜택인 풀과 최소한의 물로 가축을 기른다. 그것들을 통해 끼니를 유지하는 것말고는 특별한 소유를 기대할 수도 없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

  이러한 삶에 걸 맞는 주거형태가 '겔'이라는 천막이다. 겔의 효율성은 놀랍다. 1 시간이면 세우고 이동할 때는 빠르게 해체한다. 추위와 더위를 효과적으로 막고 천막 곳곳의 나무 살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수납한다. 원룸에 부엌, 거실, 침실을 적절히 변형시켜가면서 다양한 공간 활용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무 침대는 자고 나면 이불을 걷고 긴 의자로 사용한다. 거실이 되는 바닥은 밤에는 카펫을 덧깔아 침구를 펴는 공간이 되므로 하나의 겔에서 10명도 잘 수 있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가 방을 다용도로 썼던 것과 같은 개념이다. 아침이면 위쪽 천을 열어 천창으로 자연 채광을 하고, 밤에는 천을 덮어 온기가 나가지 못하게 한다. 겨울에는 겉에 펠트 천을 덧 쉬워 난방효율을 높인다. 사막에서는 가축의 똥을, 숲이 있는 곳에서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한다. 참으로 아늑한 공간이다. 겔 자체가 우주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겔은 건조기후에서 가능한 주거형태이므로 하나 짓고 싶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폭우가 내리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몽골인의 삶이 마치 인디언 같다고 한다. 최소한의 먹거리와 도구를 가지는 소박한 삶, 자연에 철저히 순응하는 삶이다.  티베트 사람들의 얼굴에서 보았던 소박한 미소와 평화가 있다. 인디안과 인디오들도 이들과 비슷할 것이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했다. 그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해가 뜨는 것, 하늘의 구름, 들판, 사막, 신기루, 해 지는 모습, 별이 돋는 것, 달뜨는 것 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배고프면 먹고 볼일 보기도 중요한 일과이다. 사막의 삶 자체가 명상이다.  

적은 물만으로도 불편함이 없다. 적은 소유만으로도 만족하게 웃을 수 있다. 30분이면 접어서 가축 뒤의 수레에 싣고 떠날 수 있는 집이 있다. 수 천년동안 또한 지금도 똑같이 산다. 초도 별로 없어서 해가 지면 잠을 자야 한다.

몽골의 초원과 사막, 호수에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만족을 모르고 또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낭비한다. 때로는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심지어  더 가지기 위해 전쟁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불행하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란 좀 더 나은 물건을 갖기 위해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으로 정신이 황폐하다. 우리는 가져야 한다고 권하는 사회의 세뇌된 노예이다.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발전인가. 더 많은 탐욕이 문명이다. 서로를 괴롭히고 어머니 지구를 파괴하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문명이었다.
몽골사람들은 자연환경 때문에 소유가 적은 삶을 살게 되었다. 짐이 가벼워야 하는 유목민과 자기의 짐을 늘려나가는 정착민의 삶은 극과 극이다. 우리처럼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받은 나라와 천형처럼 척박하여 자라는 것이 거의 없는 사막을 가진 그들 중에 누가 더 행복한가. 그곳에서 사라지고 잊었던 것들의 소중함, 태초의 근원이었던 자연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