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여름여행 - 11일째. 흡수굴 투어

 

8월 8일 (일). 흡수굴 투어

  • 오늘의 일정!
    울란바타르 - 무릉 - 하트갈

아침 7시에 일어나 ATM에서 80,000을 더 찾았다. 식당에서 빵과 포도차를 먹으면서 흡수굴을 다녀 온 프랑스 여자애와 독일애를 만났다. 수영하기에는 물이 차고 24시간을 내리 차로 가야 한단다. 여기 빵은 크고 둥글며 딱딱하지만 잘라서 잼 종류를 발라먹는다. 이곳에서는 쵸코 스프레드가 가장 인기다. UB 주인이 나중에 하트갈의 숙소를 소개해 주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늦잠을 자는지 11시에도 남편은 전화를 안 받는다. 투멘이 11시에 남자친구와 같이 와서 공항으로 갔다. 짐 부치는 곳에서 표를 끊어 줬는데 94달러나 한다. 오는 표는 무릉에 내려 끊어야 한다니 참 번거롭다. 마치 지방에서 시외 버스표 끊는 것 같다. 같이 기다린다는 것을 먼저 보냈다.

12시 40분이 되었다. 비행기 탈 사람들을 살펴보니 일본인들이 단체 관광 중이고 나이든 유럽 남자 네 명 빼고는 몽골인 들이다. 혹시나 끼어갈까 짱을 보며 물으니 오늘은 모두 무릉까지 만  간단다. 처음으로 완전한 혼자가 되어 연착되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배가 몹시 고프다. 1시 30분이 넘어서야 공항버스가 오고 작은 비행기를 타러 갔다. 총 44석의 미니 비행기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 하트갈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갈 것인가. 전적으로 나의 운에 달려있다. 생각보다 비행기 값이 비싸서 타기 전에 공항 ATM에서 10만을 또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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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이 3D라고 하였건만 모두들 아무데나 앉는다. 자리를 찾아다니니까 몽골여자가 옆에 앉으라고 한다. 이 사람이 '제 2의 투멘' 37세의 로다이다. 공항에서 얼핏 봤을 때는 투멘처럼 '저 아줌마 참 화려하고 과감하게 입었다' 싶은 여자였다.

영어를 서툴게 하지만 대화는 가능한 정도이다. 전직 의사(부인과)이고 지금은 번역가가 되려는 대학 4학년 영어과 학생이다. 의사는 일도 힘들고 겨우 60, 70달러를 번다고 한다. UB에서 일하는 직원도 4만원을 받는다더니 정말 인건비가 싼 나라이다. 외국인 투어비만 비싸다.

울란바타르 병원에서 간 수술을 받고 1달 간 입원한 후 형제 집에 머물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시다 돌아가신 것, 간이 안 좋아 고생한 상황, 남편이 술 좋아하는 것 등이 비슷해서 얘기가 잘 풀려 나갔다. 아파 본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각별히 조심하고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살아라, 화내지 말아라 하는 얘기를 하게 된다. 나하고 죽이 잘 맞는다고 느끼는지 이 아줌마, 같이 ?스굴에 가고 싶어한다. 몇 번 이 얘기를 하길래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데 두 아들도 돌봐야 하고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 수긍을 한다. 아줌마 마음이 그렇더라도 당연히 가족과 있어야 하고 나도 이제 좀 혼자이고 싶다! 돌아오는 표를 무릉에서 끊고 하트갈 가는 차를 알아봐야 한다니까 도와주겠다고 한다.

한때는 모델이 꿈이었단다. 지금도 키가 크고 멋있는데 수술 전에는 더 날씬했다고 한다. 계속 내가 몽골여자랑 똑같다고 하며 친근해 한다(한국여자들은 키가 작다고 생각한다). 3시에 도착할 때까지 나눠주는 사탕 2개를 집어먹고(겨우!) 음료수 한잔 먹었다. 작은 비행기라 기류를 몹시 탄다. 무척 낡고 버스같은 이 소형 비행기는 몽골인에게는 가격이 무척 싸다고 한다.

도착하여 로다의 아들과 마중 나온 기사를 만났다. 일요일이라 표 파는 직원도 없어(물론 표를 못 사면 투멘이 전화하라고 했다) 윗층 사무실로 갔다. '오르길'이라는 직원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억지로 표를 샀는데 영주라는 한국애가 취소한 표로 날짜도 안 적혀 있다. 로다가 사도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가는 표는 82달러로 가격과 세금(울란바타르는 94달러, 1000원, 무릉 500)이 다르다. 울란바타르나 여기나 공항이 모두 시골 간이역 같다. 로다가 표의 이름이 다르니 자기가 도와 준다고 돌아와서도 꼭 연락하란다.

공항식당으로 나를 데려가서는 점심을 사 주었다. 고기, 칩, 면, 밥과 소스가 어우러져서 정말 맛이 좋았다. 가족들은 마냥 기다리는데 수태차 까지 먹고 일어났다. 밖에는 하트갈이라 써 붙인 차가 있었지만 내일 아침 떠난단다. 로다의 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아니라 푸르공 5인승 짚인데 1시간 후 5시에 출발하고 10,000원 이란다. 로다가 8,000원으로 깎았다. 기다리는 동안 자기 집으로 가자한다.

얼결에 2개월만에 상봉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 남편, 조카들, 남동생과 처가 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나도 그저 자연스럽게 맞는다. 서로 양 볼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좀 허름한 목조가옥, 넓은 마당에는 장작이 잔뜩 쌓여 있고 재래식 화장실이 한쪽에 있다. 내부는 안방과 부엌, 작은 방이 있다. 처음으로 컬러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많은 집을 보게되었다. 안방에서 보츠국, 과일, 아룰, 수태차 등을 대접한다. 2개월 동안 아들을 돌보며 살림한 남편이 보츠국(만두국)을 끓여 놓았는데 도착이 늦어지니 미지근해져 있었다. 방금 점심을 먹은 우리는 또 씩씩하게 먹어야 했다.

어머니가 쵸콜렛 파이까지 사오셔서 온갖 것을 먹고도 또 먹는다. 엄마는 77세로 마당 끝의 별채에 사시는데 로다는 9남매 중 8번째이다. 꼭 우리나라 할머니처럼 생겼고 키가 작다. 내 얼굴 친숙한지 자꾸 보면서 좋아하신다.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어디든 아주 좋다. 조용한 무릉 마을의 전형적인 중산층집(로다의 말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이다). 무슨 운명인지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갑자기 연속해서 2끼니를 먹게 된다. 신기한 인연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가족이었다.

시간이 다 되어 다시 택시로 버스 정류장에 왔다. 기사는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로다와 영어선생님이라는 올케와 인사 나누고 출발했다. 기사는 온 마을을 돌며 여러 명을 태웠는데 아기1명, 어린이 1명을 포함 총 9명이 탔다. 뒤에 여섯이 앉아 몸을 앞뒤로 빼가며 불편하게 갔다.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거친 길을 3시간 달린다. 지형이 많이 달라져 산, 침엽수림, 물이 보이고 넓게 펼쳐진 들에는 야생화도 만발해 있다. 길이 꽤 험한데도 빨리 달린다.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 날짜 수대로 입장료를 받는 것으로 아는데 몽골 원주민들과 끼어 탄 나는 그냥 통과되었다. 운전사 아저씨는 알면서도 씩 웃으며 가만히 있었고 나도 모르는 척 딴청을 했다. 태운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겔까지 태워다 주는 이색적 광경을 본다. 여기가 이 사람 집이구나 일일이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완전히 몽골인이 된 느낌이다.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긴 옷을 여러 개 꺼내어 입었다.

기사아저씨가 마지막 남은 아줌마와 나에게 자꾸 차를 마시자고 해서 사달라는 건가 했더니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보츠와 차를 대접한다. 알고 보니 이 아줌마와는 친척인 듯하고 아줌마의 딸이 이 집에 있었는데 영어를 하는 가이드다. 나를 소개시켜 주려고 데려온 거다. 말 투어도 하고 GH도 있단다. 사람이 좀 닳은 느낌인데다가 나에게 한국말도 배우려 하는 것이 영 피곤하겠다 싶다. 또 영어하는 사람과는 같이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나는 그저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홀로 하는 여행이라고 와서는 혼자인 적이 없었다.

원래대로 소개를 받았던 Sunway GH에 가자고 했다. 아저씨가 태워다 주었다. 이곳은 사람도 뵈지 않는 스산하고 작은 마을이다. 계속 비가 내리고 춥다. 손님이 나 혼자 뿐인 이 숙소는 한적하고 깨끗하다. 주인은 말 투어를 갔고 누나와 딸, 남편 만 있었다. 33, 35세의 두 부부는 무척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인상이 좋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둘째딸은 11살로 아주 귀엽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여신이 그려진 만화 펜을 주었더니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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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투어를 떠나 내일 오후에 온다고 하니 손님도 한 명 없고 나는 이곳에서 뭘 할까 싶다. 평화로운 고민을 한다. 아저씨가 버섯을 따다 놓았는데 산에 저걸 따러 같이 갈까 혼자 호숫가를 거닐까 수영을 할까. 그러나 가만히 있기만 해도 좋은 곳이다. 아줌마는 약간 영어가 되고 남편은 못한다. 할 일이 없더라도 비 오는 북부 마을의 이 조용함과 평화로움이 좋았다. 저녁을 먹을거냐고 묻길래 사양하고 차만 마셨다.

몰아서 세 번을 먹은 터다. 혼자 써야 하는 겔에다 딸이 찜질방 수준의 불을 피워 놓았다. 나무를 땐다. 무척 깨끗하고 넓은데도 2000원이다. 겔의 지붕에 비가 내리는 소리도 듣기 좋다.

씻고 일기를 쓰는데 10시 반경에 이탈리아 애들이 우르르 도착했다. 불칸에서 13시간 동안 ?을 타고 왔단다. 그 피로 정도가 짐작이 간다. 결국 6명이 자게 되었다. 침구가 없는 나만 두껍고 따듯한 이불을 받았다. 흡수굴 아래까지 오는 과정이 재미있는 하루였다. 드디어 평화롭게 며칠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바라던 바이다. 남편과 통화를 못하고 온 것이 좀 찜찜하고 마음에 걸린다. 이탈리아 애들이 조용히 말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 혼자 있는 듯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