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여름여행 - 13일째. 흡수굴 투어

 

8월 10일 (화). 흡수굴 투어

  • 오늘의 일정!
    장하이 (흡수굴 호수 주변 산)

아침 7시에 나가서 볼일을 보았다. 어제는 요구르트를 세 사발이나 먹었다. 좀 심하다고 생각된다. 모두 늦잠을 자니 다시 잔다. 9시가 되어서야 하나 둘 일어나 수태차와 빵을 먹는다. 나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수줍거나 내가 식당에 가서 먹는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길르츠측에게 나도 차 한잔 달라고 하고 내 빵과 잼을 꺼냈다. 그제서야 버터와 차를 준다. 칼을 빌려서 큰 빵을 조각으로 잘라 버터, 쨈을 발라 점심을 준비한다. 내일 점심 빵도 남겨두고 나머지를 먹었다. 역시 이 버터도 맛있다. 식구들이 일어나 잡담하는 모습을 보다가 내 쨈을 발라먹으라고 주니까 모두 한 쪽씩 잘 먹는다. 단 음식을 거의 안 먹으니 더 맛있을 것이다.

책을 보면서 언제 오나 마냥 기다리던 가이드는 11시에 나타났다. 와서 아침 빵과 차를 마신다. 지금 출발 하냐고 몸짓을 하니 길르츠측이 밀가루 반죽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거 먹고 출발한다는 이야기이다. 길르츠측에게 뭐하냐고 물으니 누들이란다. 칼국수 할 때처럼 넓게 반죽한 것을 화덕에 살짝 구워 두고 소고기는 잘게 썰어 버터에 볶다가 양파를 약간 넣고 소금을 뿌린다. 물을 부어 끓이는 동안 구워 놓은 밀가루 반죽을 3등분하여 가늘게 채쳐서 짧은 국수를 만든다. 끓는 남비에 물과 버터를 더 넣고 국수와 한꺼번에 끓여 낸다. 어제 내가 먹었던 요리와 같은 것(쵸우왕)인데 국수는 찰기가 없다. 우리 입맛에 잘 맞지는 않지만 어제 것보다 훨씬 맛있다. 점심 준비가 필요 없어졌다.

짐은 두고 카메라 가방만 들고 11시 반에 출발했다. 아저씨가 영어 하는 남자애를 데려와 산과 호수 중 어느 곳을 가겠느냐고 묻길래 꽃이 많은 곳에 가자고 했다. 호수를 따라 약간 가다가 바로 산으로 오른다. 습지와 산에는 나무들이 얽혀 자라므로 길 없는 곳은 만들면서 간다. 말이 아니면 사람도 갈 수 없는 푹푹 빠지는 길이다. 말의 몸이 지날 수 있는 정도의 폭을 가진 곳이면 말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니 짚을 타고는 이런 곳을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아저씨가 나뭇가지가 걸치는 곳마다 잘라주면서 내 말을 끌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앞말은 방귀쟁이로 방귀 끼는 것이 다 보인다(상상이 가나? 처음에는 웃겼지만 하도 자주 그러니 그 벌어지는 똥꼬를 보는 것이 생활이 되었다). 초식동물이지만 약간 냄새가 나므로 입으로 숨쉬어야 한다(엽기!).

0810.물이드는_잎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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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분홍바늘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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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누룩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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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야생화_핀_숲의_들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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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야생화_핀_숲의_언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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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야생화_핀_숲의_언덕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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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꽃이_진_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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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버드쟁이나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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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산구절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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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개회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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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산에서_본_풍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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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구름패랭이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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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먹보라서 틈만 나면 바닥의 풀이나 나뭇잎을 뜯는다. 갑자기 푹 숙이며 뜯는 이 놈 때문에 끈 잡은 손이 몇 군데 긁혔다. 내가 안 무섭고 만만하니 이러는 거다. 앞말은 절대 못하는 짓이다. 그러나 내 말이 더 똑똑해서 요령 있게 발을 디딘다. 얘들도 움푹 빠지거나 물이 질척한 곳을 싫어하는데 내 말이 더 잘 디디며 간다. 아저씨는 꽃이 많은 곳에 자주 내려준다. 내가 선생이라고 하니까 꽃 선생 인줄 안다. 말이 안 통하니 아니라고 고개만 저어 주었다. 꽃이 만발한 초원 같은 급경사의 산도 말은 잘 오른다. 그럴 때는 말 몸에서 땀이 난다. 춥고 손이 시려서 쓰다듬을 겸 말을 만져 주면 정말 따습다. 있는 옷을 죄다 껴입고 다닐 만큼 흐리고, 바람이 불어 더 춥다. 아무래도 오후에 수영하기는 글렀다.

산 위에서 쉬다가 다시 출발. 우거진 나무 사이를 지나는데 아저씨가 나를 위해 큰 가지 하나를 부러트리다가 휘청 중심을 잃었다. 그 틈에 말이 아저씨를 떨어뜨리고 달아나 버렸다. 나도 내렸다. 아저씨가 내 말을 끌고 살살 그 놈을 쫓아간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에게 뒤를 막으라는 몸짓을 하여 에워싸서 두 놈을 몰아 놓았는데, 눈치를 챈 아저씨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내 말까지 함께 튀어 버렸다. 그렇게 놓치면 잡기 어렵단다. 둘이서 말을 잡으려고 꽃이 핀 가파른 언덕을 뛰어다녀 보았지만 다가가면 도망쳐 버린다. 지쳐서 포기하고 슬슬 걷다 보니 아저씨까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나 혼자 걸어서 내려가야 할 판이다. 멀리 아래의 호수를 보고 내려가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참 후 아저씨가 위쪽에서 말을 좇는 모습이 보인다. 살금살금 뒤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말을 잡기에는 난감한 상태이다. 눈치가 무척 빨라 가까이 가면 슬쩍 뛰어 다른 곳으로 가서 풀을 뜯는다. 드디어 숲 속으로 몰아 위쪽에는 아저씨, 아래로는 내가 다가갔다. 내게 신경 쓰도록 소리를 내는 사이에 아저씨가 긴 나뭇가지로 슬쩍 바닥의 줄을 끌어다가 말을 잡았다.

매어두고서 이번에는 내 말 차례. 나에게 집중하도록 소리를 내는 동안 아저씨는 또 나뭇가지를 이용해 줄을 잡는데 성공하였으나 화들짝 뛰면서 끈을 놓쳤다. 다행히 말이 내 쪽으로 달려 와서 내가 얼른 끈을 잡았다. 잡힌 후에는 마구 힘을 쓴다. 큰 소리로 위협을 가하며 기를 쏙 빼 놓고 제압하려 했는데 놀란 아저씨가 그러지 말라면서 얼른 달려와 끈을 잡았다(한국여자 소리지르는 것 보면서 무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 마리를 다 잡은 강바트르가 너무 대단해 엄지 손가락을 추켜들며 최고라고 칭찬해 주었다. 둘 다 산으로 계속 내뺐으면 난감할 뻔했다. 두꺼운 델을 입어 땀도 많이 흘리고 꽤 놀라셨나 보다.

0810.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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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산위의_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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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산아래_자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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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민둥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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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큰금매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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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을 타고 한참 오르니 습지에 술패랭이같은 꽃이 보인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꽃이다. 꼭대기는 계속 능선으로 이어 지는데 야생화가 핀 침엽수림 사이의 예쁜 오솔길이다. 이 산의 건너편은 척박한 모습의 높은 산이다. 능선의 끝 지점에서 아래를 굽어  보니 정말 꽤 높이 올랐다. 다시 내려오는 길은 가끔 내려서 걷기도 했다.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다녀서 걸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말이 달릴 때 다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살짝 들기 때문에 더 그런 가보다. 이 자세 꽤나 힘들다. 그나마 오늘은 짐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걷다가 타다가 내려오니 바로 집이 나온다. 한 바퀴를 뺑 돈 셈이다.

0810.호수와_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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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꽃바지_비슷한_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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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도착해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늘도 5시간 말을 탔다. 아저씨는 다른 곳으로 가시고 나는 4시 반부터 6시 넘어서 까지 잤다. 잠깐 사바나 자세로 누워 있을 때는 명상상태였는데 깊이 잠들어 버렸다.

이천수 닮은 동네 꼬마가 나를 구경하면서 문 앞에 있었던 것, 발이 시려서 양말을 신고 다시 잤던 것만 기억난다. 일어나서 수영을 가려 했지만 구름도 많고 추워서 포기했다. 물가에서 앉아 있다가 손가락을 넣어 보니 어제보다 훨씬 차다. 다시 집을 지나쳐 숲 속 나무 부러진 곳에 앉았다. 해가 쨍 한데도 가는 줄기의 고운 비가 내리는 서쪽의 타이가 숲과 벌판을 바라본다. 꿈속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움직이지도 않고 한참 보고있는데 두 여자애가 뒤에서 다가온다. 내가 있는 집의 딸 5살 아노카와 이웃집 송고르이다. 본 척도 안하고 앞만 보니까 내 앞으로 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하고 말타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끌려 한다. 구경하다 보니 웃음이 나와 사진을 찍어 줬다. 아노카는 해안이 어릴 때나 나 어릴 때 모습 같은 귀여운 애다. 천진 난만하고 아무런 사심이 없다. 반면 송고르는 코가 쭐쭐 나와 말라 붙은 모습의 까불이 10살짜리 여자 애다. 우리 애들과 하는 짓이 똑같다. 내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면 그렇게 쇼를 하지 못하고 수줍어서 도망쳤을 거다. 마지막 날을 조용히 보내고 싶었는데 까불이들이 나타났다. 드디어는 나를 슬슬 만지더니 양쪽에 매달리고 팔에 뽀뽀를 해대고 난리이다. 그래서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0810.해속에서_비오는 타이가숲.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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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아노카와_홍고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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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아노카와_홍고르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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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르츠크에게 애들의 쇼 얘기를 했더니 놀란다. 다시 해보라니까 송고르는 수줍어서 못하고 아노카만 한다. 애들이 부르는 노래는 유명한 가수인 Kindergarden's Children의 노래란다. 이곳에서는 가장 세련된 테크노 풍의 댄스곡이다. 유행가는 한정이 된 몇 곡 뿐 인지 사막에서 내내 들었던 노래를 사람들은 모두 듣고 따라하고 한다. 나도 늘 머리 속에 느리고 웅장한 느낌의 몽골유행가가 맴돈다.

이 집은 라디오 한 대 뿐인데 사회주의 선전 방송 같은 투의 말이 나온다. 길르츠크가 소고기를 썰며 다른 국수요리를 한다. 빵도 한 덩어리 크게 구워 놓았다. 예전에 이모가 섬에서 굽던 그런 식의 빵이다. 길르츠크는 일하고 요리하며 하루 종일 쉴 틈이 없다. 여자의 운명이란 다 이런 것인가? 어제 밤까지도 사람이 없고 썰렁했던 걸 보면 나 때문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는 여름방학이라 아노카의 부모가 다 캠프에서 일하기 때문에 조카를 돌보러 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소고기를 넣은 누들 스프를 잔뜩 끓여 놓았다. 몽골 유제품에 서서히 질려가던 차에 입맛에 맞은 국수를 먹으니 참 좋다. 차도 두 잔 마셨다. 캠프 음식 보다 훨씬 맛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9시가 넘었다. 아노카에게 종이에 공주를 그려주고 미키 마우스 펜을 주었다. 좋아서 주머니에 꽂아 보기도 하고 열심히 자기 이름 쓰는 연습을 한다. 아노카의 오빠와 이천수가 들어 와서 내가 책을 펴놓고 열심히 몽골 말 연습을 했다. 늘 나를 살피던 이천수도 외국 여자가 몽골 말을 하니 신나서 거든다.
모두 젖 짜러 나가고 아노카와 나만 어둠 속에 남았다. 나는 이불을 펴고 눕고 아노카도 혼자 놀더니만 제 옷을 다 끌어 모아 건너편 침대에 가서 덮고 눕는다. 엄마, 아빠가 늦게 오니 대충 이웃집에서 생활하는 아노카. 천진한 모습이 어릴 적 우리 딸을 보는 듯 해서 측은했다. 가서 다독이며 재우는데 오빠가 우유 통을 들고 들어와 일어나 버렸다. 너무 어두워져 나도 자기로 한다.

이렇게 물이 흔한 호수가 에서도 이빨 닦을 물을 조금 얻어 써야 할 만큼 물을 귀하게 여긴다. 강에서 씻거나 빨래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몽골에서는 어디서나 빨래하는 것을 못 봤다. 어쩌면 이렇게 물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깨끗한 호수를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내가 떠먹을 생각이 드는 정도의 물이니까. 호수 안쪽을 보고 싶은데 오늘도 보트를 못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