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16일(화)

20.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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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중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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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중앙역

아침에 일찍 일어나 7시까지 식사를 마치고 전차를 타러 갔다. 사실 강 하나만 건너면 역이고 걸어가도 될 만큼 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역의 전광판이나 모든 것이 편리하게 되어있다. 플랫폼을 지나 열차를 타러 갔는데 우리 칸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분명 멀쩡한 표인데 말이다. 사람들에게 표를 보여주고 물으니 자꾸 뒤쪽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열차가 와서 한량을 붙였다. 운이 좋게 임시열차를 탄 것이다. 그런데 이 열차도 거의 전부 찼고 우리 자리는 맨 앞자리의 문 앞이었다. 0816.열차안1.jpg4인실 보다 한량 전체가 개방된 6인실은 트인 곳이라 더 낫다. 복도 창가에는 러시아 아저씨 두 분(한분은 우리 큰외삼촌을 닮았고 다른 분은 푸틴과 비슷하다)이 오셨는데 세로 방향으로 침대가 있다.

처음에는 앉아 있던 사람들이 시트를 구입한 후에는 모두 자리를 만들어 눕는 분위기이다. 자주 누워서 자는 것이 장거리 열차를 타는 요령일 것이다. 올 때는 풍경을 감상하고 돌아갈 때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4인실, 6인실을 다 타는 것이 좋다. 4인실은 사실 편하기는 하나 답답해서 별로였다.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먹을 것을 많이 싸가지고 다닌다. 한번 차려 먹으면 닭, 빵, 감자 등을 펼쳐놓고 먹고 큰 병에 스메타나(유지방이 높은 요구르트로 요리에 쓰이거나 소스로 발라먹는다)를 가득 담아온다. 대화를 나눌 때는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다. 대놓고 보지는 못하지만 슬쩍슬쩍 먹는 것을 쳐다보는 것도 이 열차의 재미이다.

 우리 자리는 문 앞이어서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 문소리가 꽤 시끄럽다. 유난히 쾅쾅거리며 닫는 나이 드신 아저씨가 계셔서 이분을 '쾅쾅맨'이라고 불렀다. 꼭 스트레스 해소를 문에다 하는 사람처럼 닫는 거다.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어서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그러고 나니 그 기세가 아주 약간 수그러들었음) 그런데 나중에 보니 몇 사람이 더 그러는 거다. 남편과 얘기하면서 예전에는 세게 닫아야만 문이 닫히는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습관이 나이든 사람에게 아직도 남은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보았다. 쾅쾅맨이라는 의성어는 아저씨에게도 느낌이 오는 단어이니까 'ㅋ'맨으로 불렀다. 나중에는 우리 만 보면 밝게 인사하시고 눈웃음을 지으셨다. 심성이 거친 분은 아니신 듯하다.

우리 쪽의 하나 남은 윗자리에 뚱뚱한 아주머니와 8살짜리 남자애가 왔다. 좌석을 하나 밖에 못 구한 모양이다. 0816.열차안에서.jpg애는 엄마가 물 부어 준 인스턴트 죽을 2개나 먹는다. 밤에는 면을 부순 도시락 면을 수저로 떠먹었다. 처음에는 우리를 보고 몹시 굳은 표정을 짓더니 잘해주니까 금방 부드러워졌다. 잘 웃고 씩씩해져서 해안이와 러시아어 공부도 한다. 자리가 하나라서 먼저 엄마가 올라가서 자고 나중에 꼬마가 잤다. 열차에서는 12시가 되면 불이 다 꺼지므로 모두 잠을 잔다. 나는 2층에서 먼저 잠자느라 몰랐는데, 이들은 밤 1시가 넘어서 내렸단다. 아줌마가 남편 자리에 계속 같이 앉아 있어서 해안이와 남편은 이들이 내릴 때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단다. 그들의 자리는 윗칸 하나니까 어쨌든 남을 불편하게 한 셈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참 미안해 할 상황인데도 한쪽에 앉아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내렸다고 한다. 이런 점이 좀 이해가 안 된다. 러시아 인들은 장거리를 여행할 때 적당히 불편한 것쯤은 서로 이해해주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우리는 외국인인데 별 생각 없이 대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아줌마의 유난히 무뚝뚝한 성격도 원인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인들은 무뚝뚝하다는 평을 받는다. 일단 표정들이 없고 고맙다는 인사가 적은 편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처럼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데 노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앉는다. 외국인인 우리에게도 양보할 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그들 내면의 순수한 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러시아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실 가식적인 태도보다는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나은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도 전에는 얼마나 무뚝뚝했던가. 그런데 좀 더 부드러운 얼굴과 눈웃음, 미소를 가진다면 러시아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도 더 좋아질 것이다. 창틈으로 바람이 많이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한다. 오늘 마지막으로 바이칼 호수를 보며 지나갈 때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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