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가는 길" 에서 저자 개산스님이 너무 겁을 주어서 그랬을까요? 왜 아직 다니기에도 불편한 미얀마를 가려고 하는지 투덜거렸습니다. 비자 받는 것만 해도 여행사에서 대행하면 나흘 기다리고 1000밧이나 내야 되고, 비행기 예약하는 것도 만만찮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미얀마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구요.
작년 라오스 갈 때도 이랬습니다. 한 번 가본 곳은 가기 싫어하는 경아씨였기에, 계속 정신없이 새로운 곳만 돌아다니게 되는 여행코스가 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라오스 도착한 뒤에는 제가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시인했답니다. 불편함 만큼이나 더욱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방콕에서 일주일동안을 박혀 있고 보니까 여행 같지가 않습니다. 그냥 일상인 듯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미얀마 출발할 때는 이제 여행을 떠나는구나하고 실감이 날 정도더군요.
밍글라돈 공항은 버스터미널 같았습니다. 하지만 책과는 달리 전산화가 되어 있고 공항직원들이 무척 친절합니다. 아시아 한류가 이곳까지 침투하여 코리안이라고 하면 무척 좋아해서 뿌듯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주인공 이름을 막 꿰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가을동화란 걸 알았답니다. 여행가는 곳곳에서 안녕하세요! 오빠, 예뻐요 등등 한국어가 난무 합니다. ^^;; 이런 좋은 인상을 계속 남길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관광지에서 한국인들이 여행을 많이 오고 나서는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이 남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착잡합니다.
양곤의 첫인상은 뭐랄까.. 아직 개발이 안된 여행지를 걷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마치 영화에서 외국인들이 아시아를 여행할 때 느끼는 것 같달까요? 여행지마다 우글우글했던 배낭여행자의 모습은 거리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여행이고나하고 생각했죠.
같은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라오스에서 보던 것 처럼 시장에서까지 정해진 외국인요금은 없었습니다. 다만 외국인 전용 상대 관광지나 교통수단 이용시에는 엄연한 외국인 요금이 있더군요.
우리말과 어순이 같습니다. 인근의 태국, 라오스, 베트남, 중국어는 우리와 어순이 다르지만 이곳은 어순이 같습니다. 힌디어도 같은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략 우리말과 비슷합니다. 참, 인도 남부 드라비다어와 우리말도 비슷하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 무엇입니까? 는 바래? 입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는 나매가 바래?입니다. 나매(Name)는 이름, 가 는 조사 '이' 바래? 는 무엇입니까? (뭐래?) 이런 식이지요. 뭔가 사투리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지시어로서 뙈바 와 꽤바 가 있습니다. 뙈바는 곧장 가세요 이고 꾸에바는 도세요입니다. 우리말 비슷하게 바꿔 볼까요? 뙈바→똑바로가바(^^), 꾸에바 → 꼬아바(돌린다는 거니까 꼰다라고도 하지요?) 내가 간다는 뜻의 똑바로 갑니다는 뙤매 (함경도사투리에서는 내가 뭐 한다고 하면 -함메라고 하지요?) 돌아갑니다는 꾀매 (꾐매) 이런 식인데요, 마치 강한 우리말 사투리같은 분위기가 미얀마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미얀마글자는 난독입니다. 모조리 동글동글한 것이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제법 오래 살지 않고서는 알아볼 도리가 없겠더군요.
숫자의 경우엔 그나마 낫습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읽을 수 있지요.
이 숫자... 발음이 포복절도입니다. 또웅야,띳,흐닛,똥,레,응아,차웃,쿠닛,씻,꼬,떠새...
전화번호 3989 : 똥꼬씻꼬입니다. ^^;; 30? 똥새입니다. 500? 응아야입니다.
남의나라 글자갖고 장난치는 건 좀 그렇지만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미얀마어를 무시해서가 아님을 이해해 주세요.
한정식이 있듯, 미얀마 정식이 있더군요. 이것까지 비슷할 줄이야. 인근 국가에서는 음식시키면 그것만 주는데, 이곳 정식집은 메인디시를 시키면 기본 반찬과 국이 따라옵니다. 메인디시는 대부분 커리라고 부르던데 인도식 커리는 절대 아니고, 우리나라 졸임같은 분위깁니다. 물론 좀 더 기름지기는 합니다만 우리도 생선이나 닭을 기름에 졸이는 것이 있지요? 맛이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게다가 기본으로 나오는 국맛은 시래기국이나 된장국 분위기의 맛이며(음식점 마다 다 다릅니다), 칠리소스는 영락없는 고추장, 게다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장이 하나 나오는데, 영락없는 춘장(짜장면 장)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끔씩 보이는 새우칠리소스(장)은 밥에 비벼보면 새우비빔밥이 되더라구요.
더욱더 재미있던 것은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자장면인데요, 생김새는 자장면이 아닙니다. 시장이나 길가 어디서나 쉽게 보는 것으로 미리 조리해 놓은 붉은 면에 여러 소스를 버무려 주는데 맛을 보곤 놀랐습니다. 짜장면 맛 아니겠습니까? 짜장면은 중국식이지만 정작 우리나라밖에 없는 음식이지요? 야웅마켓 짜장면집은 더욱 더 짜장면스러웠습니다. 이럴 수가. 춘장을 가지고 볶아서 짜장면을 만드는 식까지 같다니요. 덕분에 여행 내내 음식 걱정은 없었습니다. 길거리의 짜장면이 한그릇 겨우 100짯이니 두 그릇을 먹어도 200짯 (240원). 환상이겠지요?
음식은 잘 찾아보면 정말 다양하던데요. 모힝가만 해도 만드는 아줌마에 따라 천차만별이었구요, 까욱세 (국수)도 곳에 따라 크게 짜장면맛과 카레면 맛, 맹숭맹숭한 맛 등등 재미만빵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재미는 노점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수 있는 노점파 배낭족의 특권이겠지요. 외국인 많이 가는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재미를 못봅니다. 맛이 평준화되어 있고, 비쌉니다. (대개 노점 100-200짯, 식당 600-900짯)
양곤의 음식은 대부분 짜고 매웠으며 인레는 샨족이 거주하는 샨주라서 그런지 싱거운 편이더군요. 인레음식은 대부분 생선간장을 첨가해서 먹었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이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마치 울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일어할 줄 모르는 것처럼요. 대신 나이 지긋한 분은 영어를 오히려 좀 더 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며 지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시내버스에라도 타면 계속 신경을 씁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더욱 정이 많은 것처럼. 우리 나라 어려웠을 때 인정이 살아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엔 방콕에서도 사람들 얼굴에 미소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방콕사람들은 얼굴이 많이 굳었더군요. 간혹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애교 수준이었구요, 항의를 하면 선선히 따라오더군요.
양곤에서 인상적이었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분은 시내버스에서 만난 나이 지긋하고 허름한 할아버지였는데, 버스에서 계속 우리들이 창 밖을 보며 지리를 확인하자 유창한 영어로 어딜 찾느냐고 물어오시고, 이후 말씀하시는 데 자신감이 묻어났습니다. 마지막 헤어질 때 웰컴 투 골든 미얀마! 라고 멋지게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멋진 분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거리에서 환전하는 암달러상이었는데, 제가 필요없어서 계속 미안하지만 그냥 가게 내 버려 달라고 하니까 좀 있다 정색을 하고는 "미안하다고 하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필요없으면 필요없다고 하고 그냥 가라" 하길래 황급히 인사하고 그냥 갔던 기억이 납니다. 맞는 말이지요. 비즈니스 관계에서 필요없으면 필요없다고 확실히 말하는 것이 옳은 방식이겠지요. 혹시라도 그분의 자존심을 건든게 아닐까 하고 후회도 됩니다.
보기와는 달리 제가 깔끔을 좀 떠는 녀석이더군요. 미얀마 사람들은 흙먼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한 것 같았습니다. 찻집이나 시장에서 저녁쯤 되니까 바닥을 쓰는데 먼지가 장난 아니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쓸더군요.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거나 물건을 팔고 있는데도 과감합니다. 그리고 저는 매캐한 느낌이 들었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안 씁니다. 버스에서도 중간중간 짐들이 들어오는데 먼지가 폭탄 수준입니다. 버스타고 가다보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데 이 또한 아무도 신경을 안 씁니다. 저는 버스여행에서 이렇게 먼지를 많이 뒤집어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거든요. 바간-인레간은 로컬버스였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양곤-만달레이, 인레-양곤 간 장시간의 에어컨 버스도 상황은 비슷했답니다. 먼지에 알러지 있으신 분은 버스여행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짧은 기간동안 주요 여행지를 포인트 찍듯 다녀왔기 때문에 조금 피곤했습니다. 도시간 이동 시간이 10시간을 훌쩍 넘기 때문에이기도 했지요. 양곤-만달레이 14시간, 만달레이-바간 11시간(배였기 때문에 편하긴 했습니다), 바간-인레 10시간, 특히 인레-양곤구간은 압권이었는데 무려 18시간이 걸렸습니다. 더 늙으면 이짓은 못하겠더군요. 인도여행에 이어 두 번째로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힘든 여행이었지만 다시 가 봐야할 것 같은 미얀마였습니다. 안다만해의 푸른 비치를 가지고 있는 짜웅따나 응아빨리를 다시 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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