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돌아오는 길

 

8월 20일-21일 다르 - 요하 - 홍콩 - 인천

잠자다가 한밤중에 비오는 소리에 깼다. 어찌나 퍼붓는지 ‘지구 종말의 날’ 같았다. 바깥 개울의 개구리 소리가 비 소리에 갑자기 잦아들었고 사람 말소리가 안 들릴 수준의 심한 폭우가 계속 내린다. 창에도 비가 들이쳐서 커튼을 치고 잤다. 심지어 개울이 불어나 숙소가 물에 잠기면 가방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비행기가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잠이 안 왔다. 한참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들으니 비가 잦아들며 개구리 소리가 다시 들린다.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말갛다. 창밖의 종려나무가 아름답게 흔들리고 닭과 까마귀 소리가 요란하다. 빵과 오렌지를 먹고 짐을 싸서 출발. 동네 길은 모래로 되어 있어 비가 왔었나 싶게 뽀송하다. 가끔 심한 물웅덩이가 있다. 엘리어스가 친구의 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택시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다. 게다가 우리를 공항까지 에스코트 해주겠다고 한다. 7시 반에 떠났는데 큰 길은 교통체증이 심했다. 비가 와서 모든 것이 깨끗하다. 마지막으로 보는 다르의 모습이라 아쉬워서 찬찬히 보았다. 8시 15분에 공항 도착. 엘리어스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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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작아 귀여운 환타병 ^^

남은 돈은 환전하고 잔돈으로 음료수를 사 먹었다. 공항 안에 들어왔는데 탄자니아 항공 데스크가 없다. 어디서 표를 받느냐고 하니까 안전요원이 저쪽 통로로 들어가란다. 안쪽에 들어가 다시 직원에게 물으니 우리 비행기 표를 보자고 한다. 아직 좌석표도 안 받았는데 출국카드를 쓰고 출국심사를 하라고 한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직원이 그렇게 하라는데 당연히 그곳을 지나면 좌석표를 줄 거라 생각했다. 셋이 출국도장을 받고 위 층으로 올라갔다. 면세점이 보이고 보안대가 있다. 보안대에 가니 왜 좌석표가 없냐고 한다. 이러 이러해서 여기 왔다고 했더니 우리를 데리고 아래로 가더니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가 표를 받아 오란다.

헉. 탄자니아에 다시 입국? 직원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뭐 이런 이상하고 황당한 나라가 있는지.

출국심사대를 나가서 밖으로 갔다. 자기네들도 엉터리로 통과시켰으니 할 말이 없을 거다.

밖에는 그새 탄자니아 항공 부스가 생겼다. 우리가 일찍 와서 아직 없었던 거다. 옆에는 우리나라 사람 둘이 표를 받고 있다. 어쩌다 듣게 되었는데 홍콩에서 짐을 찾아 서울로 다시 부치라고 한다. ‘domestic....' 어쩌구 하는데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들었다. 그냥 홍콩에서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 왜 한국까지 짐을 안 부쳐주나... 그럴 능력이 아직 없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여기는 아프리카니까 인천까지 짐을 부치는 기술이 좀 떨어지나 보다,... 그 정도로. 그 분들이 들어가고 우리가 옆의 직원에게 표를 받고 짐을 부치는데 역시나 홍콩까지 간다면서 홍콩까지 찍힌 짐표를 뽑아 붙인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황당하게도 홍콩부터는 국내선(domestic)이니 짐을 찾아 인천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국내선이라고? 어라! 이럴 수가 있나... 옆 직원이나 이 사람이나 홍콩과 인천이 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공항 직원이 이럴 수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아나키 : 공항 직원이 홍콩까지만 써진 짐표를 주길래 왜 홍콩까지냐고 물었더니 국내선 아니냐고 한다 (Domestic이랜다...-_-). 그래서 홍콩과 한국은 다른 나라이며 국내선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한번에 이해가 안되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그런다. 이 인간들이!!!  결국 기존의 짐표를 폐기하고 새로이 짐표를 만들어 준다.  짐표에 INCHEON 이 아니라 SEOUL이라고 쓰인 게 좀 꺼림직 했지만 우리 비행기표에도 SEOUL 이라고 쓰여 있던 걸 기억하고 그러려니 하긴 했다.

게바라 : 우리가 홍콩와 인천은 서로 다른 나라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그러냐고 하면서 요하, 홍콩, 인천까지 다 찍힌 짐표를 뽑아 새로 붙이는 거다.... 여태까지 이 사람들이 한국인을 얼마나 골탕 먹였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게다가 앞의 한국 분들도 벌써 짐을 부쳤는데.

일사천리로 출국대를 통과하고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서 면세점에 있는 두 분을 찾았다. 설명을 드리고 가서 짐표를 다시 뽑아야 한다고 알려 드렸다. 황급히 나가신다. 그 분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직원이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단다. 참 여러 가지로 별일을 다 겪는다.

공항 면세점은 신기하게도 비싸지 않다. 물건의 질도 좋다. 해안이는 받은 용돈으로 할머니 스카프를 샀다(10달러). 사파리의 나라답게 멋진 갈색의 얼룩말 무늬다. 해안이 선생님을 위해서는 갈은 커피를 샀다. 나는 생나무를 그대로 깎은 앉은뱅이 원목의자가 탐이 났다. 목욕탕 의자 같이 생겼는데 통 원목을 깎은 것이다. 평생 쓸 수 있을 것처럼 튼실하다. 베란다에 놓고 앉으면 근사할 것 같았다. 남편이 말리다가 마침내 사라고 한다. 18달러 짜리를 하나만 사라는 걸 우겨서 2개 샀다. 그런데 싸달라고 하니까 황당하게 봉투에도 안 들어가니 포장이 안 된단다. 그냥 손에 들고 가라고 한다. 허걱스럽게도 남편과 내가 하나씩 손에 들었다. 웬 난리냐 이게.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직원들이 유심히 의자를 살펴 본다. 뒤에 붙은 가격표도 보고 이리 저리 본다. 나는 속으로 ‘물건이 좋으니 살펴보는군...’ 하며 흐뭇해했다. 잘 샀다고... 그 다음에 좌석표와 여권을 들고 외국인들이 보안요원 옆을 쓱쓱 지나가는데 이 사람이 우릴 잡더니만 좌석표 뿐 아니라 원래의 비행기 표, 여권 낱장까지 다 넘겨 가며 살펴보는 거다. 마치 심심한 사람이 장난치듯이 말이다. 사진도 유심히 본다. 원목의자를 살펴보더니 이게 흉기로 쓰일 수 있단다. 공항에서 산 물건을 이렇게 말하다니. 통과가 안 된다면 팔았겠는가? 나는 전혀 문제없다는 투로 ‘OK!'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빨리 안 보내주고 우리에게만 그러니 기분이 나빴다. 앉아 있는데 그 사람이 온다. 그 물건은 안 된다고 한다. 결국 다시 나가서 돌려주고 환불받았다.

처음에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남편과 얘기를 나누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생각해 보면 결국 우겨서 통과가 되더라도 홍콩에서 뺏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대로 포장을 안 해주는 것도 황당하고 파는 것 따로 공항 관리도 따로인 게 신기하다.

탄자니아 항공은 비행기에서 냄새가 좀 났다. 식사는 좋은 편이다. 요하네스버그는 올 때보다 바깥기온이 높아서 덜 추웠다. 공항에서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탄자니아 오는 비행기와 잔지바르에서도 만났던 한국인 대학생을 이 공항에서 또 만났다. 우리나라에 돌아간단다. 대단한 인연이다. 그런데 어제 요하에서 백주대낮 복잡한 도심에서 6명의 강도들이 다가와 목을 졸라 기절 시키고 전대와 카메라를 가져갔다고.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도와 주지 않더란다. 전대에 돈은 별로 없었지만 카드를 분실했다. 다행히 여권은 숙소에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과 교민의 도움으로 돈을 좀 받았고 교민이 공항에도 태워다 주셨단다. 여행 일정을 10일이나 당겨서 돌아가는 거다. 요하가 무섭다는 얘기는 책에서 읽었지만 이런 수준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실제로 듣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다르에서 당한 사람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첫날부터 밤에도 돌아 다녔는데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인지... 요하 같은 뭐 그런 곳이 다 있나 싶다. 그렇게 심하면 사람이 어떻게 사나.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잘 나가는 나라인데 이런 수준이라면 정말 심각한 곳이다. 케이프타운은 좋다고 들었다.

아나키 : 돌아와서 남아공의 흑백차별 시절 (1994년 이전)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니 뭐 그런 곳이 있나 부아가 치민다. 94년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거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취급을 하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흑인들의 인권운동에 대해 미국의 KKK단 버금가는 사병조직이 백색 테러를 감행하고 있었고. 흑인들이 아무리 함께 살아가자고 손을 내밀어도 백인들은 뿌리치고 오히려 분리독립까지 하려고 한다. 게다가 선량해 보이는 백인 아줌마조차도 "노예로 느껴지던 생각을 바꾸려니 힘이 든다" 고 천연덕 스럽게 말하고 있으니...흑인들이 이렇게 핍박을 받으며 살아 왔으니, 요하네스 버그에서 백인으로 보이는(황인도 백인처럼 생각되므로) 여행자가 대낮에 털려도 아무 제지가 없었던 사람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케이프타운은 아직도 백인들의 입김이 센 곳으로서 치안은 좋겠으나 결코 좋은 곳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곳이 아닐까?

게바라 : 요하 공항은 물건 값이 비싸다. 이곳의 대표 생산물인 루이보스티와 허니부시티를 유기농으로 샀다. 남편은 요하 공항에서 인터넷으로 남아공 기내에서 파는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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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항공기 안에서

다시 남아공 항공. 의논하여 그 카메라를 샀다. 예스런 디자인의 라이카 디지털 카메라(미녹스 라이카 M3) 이다. 모양이 깜찍하다. 아버지 드릴 면도기도 샀다. 기내식 생선요리는 감탄할 만큼 맛이 훌륭했다. 프랑스 영화도 보고 얘기도 나누며 좀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해안은 앞에 앉았는데 친절한 홍콩 아저씨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신다. 네 좌석 중 가운데 두 자리라 많이 불편했다. 밤에는 힘겹게 잠을 청해서 잤다. 남편은 거의 못 잤단다. 아침 식사로 남편은 돼지고기와 국수, 나는 달걀과 소시지를 먹었다. 맛이 좋다. 와인을 시키면 작은 병을 주는데 맛있다. 특히 white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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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의 예쁘지만 이상한 구획의 초지들

홍콩은 경유시간이 짧아 서둘러야 한다. 급히 담배를 사고 기내에 들어왔다. 아시아나에서 맛있는 비빔밥을 준다. 외국인들 빼고는 다 비빔밥을 시킨다. 고소한 참기름 내가 진동한다. 제법 그럴싸한 북어 국에 김치, 큰 튜브 고추장을 준다. 모두 열심히 짜대며 흐뭇하게 먹는다. 감동의 물결이다. 나물이 많고 맛있는 우리 음식 때문에 외국에서 살기가 힘들 것이다. 아시아나 카드를 신청했다. 아깝게도 이 비행기부터 마일리지가 시작된단다. 터키 갈 때부터 진즉 안한 것이 후회된다.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138분짜리 고전 영화 한편 보고 밥 먹으니 거의 도착이다. 그 대학생이 내 옆자리라 같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6시경 인천에 도착. 무료전화를 발견하여 양쪽 집에 다 전화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짐이 안 나온다. 남편을 찾는 방송이 나와서 가보니 탄자니아에서 출발한 한국인 5명의 짐을 홍콩에서 경유시간이 짧아 제대로 못 부쳤다고 한다. 그 다음 비행기로 온다고,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찾으란다.

게다가 우리 짐 하나는 나중에 발견되어 밤 9시 반 비행기로 온다나... 마지막까지 짐 때문에 난리이다. 항상 한 개씩 못 찾으니 말이다. 늦게 오는 짐은 내일 택배로 보내준다고 한다. 아줌마하고 얘기 나누며 기다렸다. 킬리만자로 등산을 하셨는데 고산증 보다는 얼어 죽는 줄 알았단다. 영하 13도 정도였다고.

짐을 찾고 공항문 밖으로 나서니 세상에! 이렇게 더울 수가 있나. 밤인데 29도 30도 라니... 공기가 확 하면서 숨이 막히는 것이 태국에 도착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내내 더웠단다. 이건 완벽한 열대지방의 냄새이다.

공항버스에서 청소년 축구를 보면서 범계에 왔다. 시간이 늦어 푸드 코트에서 메밀국수, 오징어 덮밥, 초밥, 칼국수 등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대충 장도 보았다. 탄자니아에서 오니 과일값이 비싸서 손이 안 간다. 전철로 집에 오니 10시다. 집은 무사했다!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닦고 청소. 샤워까지 다 끝낸 시간이 12시. 잠이 안와서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다큐를 흥미진진하게 다 보고도 말짱하다. 벌써 2시 35분이다. 자야 한다.

여행이 짧게 느껴져 뭔가 아직 더 돌았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든다.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 이리도 짧은 것이냐... 남편은 탄자니아가 시원하고 풍요로우며 살기 좋아서 앞으로 거기에서 살고 싶단다. 내일부터 해안과 나는 수업이 시작된다. 이 더위에 바로 수업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왜 이리 방학이 짧은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