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그리스 여행 - 터키 요약정보

1. Turkey의 역사 

  • 터키의 명칭

영어로 부르면 터키가 되지만 터키인들 스스로는 Türkiye 라고 부른다. 발음 그대로 튜르키예인데, 터키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면서 그들의 조상인 투르크족(돌궐족)을 뜻하는 말이니 터키를 여행할 때에는 그들을 튜르키에라고 불러 주어야 할 것이다.

  • 튀르크 민족의 간략한 역사

다들 터키와 우리나라가 형제 국가라고 말한다. 한민족의 뿌리 중 주류를 이루는 북방 기마민족과 마찬가지로 튀르크 족 또한 바이칼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터키에서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국을 단지 남의 나라로만은 보지 않는다.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언어에 있어서의 유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참조: 한글새소식 386호http://www.hangeul.or.kr/hnp/hs2004/hs386_05.htm) 음식에 있어서도 반찬으로 오이지나 백김치를 먹으며, 고춧가루를 음식에 다량 사용하는 등 주변의 이슬람국가나 유럽국가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 30일의 여행기간 중 14일은 그리스에서, 16일은 터키에서 보냈었는데 그리스에서 경험했던 음식 적응에 대한 어려움은 터키에서는 거의 없었다. 뭐, 딱히 맛이 너무 좋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음식이 별로 그리워지지 않았다는 것이 음식에 잘 적응했다는 근거가 아닐까.

민족이나 국가의 명칭으로서 투르크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돌궐제국(기원후 6세기)이었다.
투르크족은 인류학적으로 몽골로이드 계통으로 분류된다. 이슬람 종교의 구전에 따르면 투르크족은 중앙 아시아의 알타이-샤안 산맥의 남서지방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해오다가 일부가 중국 서북부로 이동하면서 흉노(훈)족(B.C.4세기)의 조상이 되어 실크로드를 장악, 한동안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기도 했다.
그 후 중국의 한나라에 의해 흉노(훈)가 멸망한 후 A.D.6세기 에 이르러 투르크족에 의해 세워진 돌궐 제국이 스텝 지역을 통일하고 내륙 아시아를 지배하면서, 이로부터 투르크족은 정식 종족 명으로, 또 국가 명으로 사용되었고, 이 후 오늘날까지 지구상의 다양한 투르크족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투르크족은 7세기 중엽 아랍.이슬람군의 동방 정복과 중앙아시아 진출로 처음 이슬람을 접한 이 후, 9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슬람 국가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대규모 이슬람화가 이루어졌다.
11세기에 이르러서는 비잔틴 제국의 쇠퇴를 틈타서 지금의 아나톨리아 반도(소아시아)에 장착하게 되었다.

(1) 민족의 대이동과 훈(흉노)제국

알타이-우랄 산맥 사이 카스피해의 북서쪽에서 시작된 투르크인들은 유목생활로 인해 지속적인 이동을 계속해 오다가 기원전 2000년경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것으로 본다. 그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터키인들의 대 이동이 시작되었다. 이 이동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1세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이들이 이동하게 된 주된 이유는 오랜 기근과 타민족의 침략, 인구증가 및 목초지 고갈 등으로 볼 수 있다. 터키 민족이 이동한 방법은 매우 흥미롭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정복하기도 하고, 관리, 군인, 노동자 등으로서 부족 전체가 대 규모로 잠입하기도 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중국땅의 북방 민족으로 흉노족이 있었다. 흉노족은 몽골족과 투르크족이 혼합된 민족이다. 터키인들은 이를 훈족이라고 불렀다. 흉노족은 그 용맹이 뛰어나서 중국의 진시황제도 흉노족을 두려워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한다. 기마와 궁술에 능했던 흉노족도 결국은 한무제에 의해서 정복됐다. 흉노족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일부는 유럽으로 이동하여 훈 제국을 세웠다. 나머지 대부분은 다시 유목 생활로 돌아감으로 중국의 통치하에 예속되었다.

(2) 돌궐제국

돌궐제국의 성립 역시 스텝(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제국의 전형적인 형태를 따라 지도력있는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돌궐제국은 부민(Bumin) 혹은 투멘(Tumen) 이라고 불리우는 고대 튀르크족 지도자에 의해 AD 545년경 건설되었는데, 그는 552년 서위(西魏)와 연합하여 연연을 멸망시킴으로 스텝지역의 지배자가 되었다. A.D 553년 부민이 사망한 후에 아들 무칸(Muqan)과 동생 이스테미(Istemi)가 동부 스텝과 서부 스텝을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다. 동돌궐의 지배자는 전체 돌궐제국을 대표하는데 그의 왕호는 카간(Kagan)이며, 서돌궐은 형식상 동돌궐에 부속되어 있었는데 서돌궐의 통치자 관직명은 제 2의 통치자의 뜻으로 야부그(Yabgu)였다.

한편, 돌궐은 초기에 중국 사회가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우며 침략을 통해 경제적인 부를 축척했다. 그러나 583년 통일된 수(髓)나라와의 충돌에서 패배하게 되고, 이미 내부분열로 인해 동서로 나뉘어져 있던 돌궐은 수나라에 의해 이용당하기 시작하였다. 612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다가 실패함으로써 멸망하게 되면서 이 시기를 이용하여 돌궐이 잠깐 부흥하였으나, 곧이어 등장한 당(唐)나라에 의해 반 세기 동안 지배를 받게 되었다.

683년에 이르러 쿠툴루그 일테리쉬(Kutlug Ilterish)에 의해 돌궐제국은 당나라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제 2의 돌궐제국, 즉 후돌궐을 세웠다. 돌궐비문에 나타난 빌게카간, 큘테킨 등은 바로 이 후돌궐의 집권자들이다. 일테리쉬는 독립 후 10년만에 동부 스텝을 장악하고 제국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스텝 지역의 반복되는 역사에서 보여지듯이 돌궐의 통치 영역은 얼마 되지 않아 각종 유목민족 부족들의 세력 쟁탈전의 전장으로 변하여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742년에 바스밀(Basmil)부족이 우이구르, 카를룩 부족과 세력을 합하여 어린 나이에 카간이 된 돌궐의 마지막 왕 텡그리(Tengri)를 제거함으로써 돌궐제국은 공식적으로 끝이났다. 그 후 바스밀과 카를룩, 그리고 위구르 사이의 세력 다툼에서 위구르의 일테베르가 정권을 장악하여 자신을 카간으로 선포함으로 위구르(Uygur)제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3) 위구르 Uygur 제국

터키인들은 돌궐제국의 멸망으로 흩어져 있던 민족들을 규합하여 새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위구르 제국이다. 위구르는 중국 문화권과 마지막으로 대결한 마지막 투르크 제국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인들의 위상을 위구르 제국도 13세기 몽골족이 중앙아시아의 새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4) 셀축 Selcuk 제국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투르크인들 중에 ‘오우족’이 있었다. 오우족은 소아시아(아나톨리아)에 정착한 터키 공화국 국민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간주된다. 기원후 1000년경에 오우족도 키메크족에 멸망을 당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주요 세력인 셀축가들이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게 되는데 이것이 셀축 제국이다.

셀축 제국은 기원후 11-14세기에 투르키스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다. 셀축 제국의 등장으로 이슬람 세계는 재통일되고 한 차원 높은 조직과 문화로 성장하였다.

셀축이란 이름은 오우족의 한 장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오우족의 한 장군 두카코가 오우족으로부터 독립하였고, 그의 아들 셀축이 용맹스럽게 싸워 셀축과 그의 추종자들이 추후에 셀축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셀축은 오랜 내분과 가혹한 세금 등으로 정치적 혼란에 빠진 비잔틴군을 말라즈기르트 성채에서 격퇴하고 아나톨리아 진출을 확보하였다(1071년)

터키 셀축은 1077년 처음에는 이즈닉(Iznik)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가 나중에는 콘야(Konya)로 수도를 옮겼다. 1081년 비잔틴 황제와 셀축이 평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통치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 터키 셀축은 십자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처음으로 아나톨리아가 투르크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투르기아(Turcia)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셀축 왕조는 예언자로 자칭한 바바일랴스가 반란과 이어서 몽골 군과의 ?세다흐 전투에서 패배함으로 멸망이 가속화 되었다. 몽골의 간섭 정책으로 셀축 왕조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다. 분열된 공국 중에서 오스만 베이에 의해서 수립된 오스만 공국이 나중에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5) 오스만 Osman 제국

오스만 공국은 부르사 (Bursa) 를 점령하여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세력을 확장시켰다. 오스만 공국은 전쟁을 이슬람의 성전과 연결을 시켰다. 그들은 이슬람전파라는 종교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전을 선포하였다. 1453년 술탄 마흐멧 2세가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킴으로서 오스만 공국은 오스만 제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오스만제국은 술탄 술레이만의 통치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지녔다가 군사,행정,재정면에서 문란이 가속화되면서 쇠퇴기를 맞이했다. 술탄에게 집중된 국가업무를 재상들에게 위임하고 술탄은 하렘에서 궁녀들과 쾌락과 휴식을 취하는 경향이 농후해 지고 술탄대신 공적인 업무를 절대적으로 행사하고 있던 재상들의 힘이 커지면서 이슬람의 칼리프였던 술탄이 더 이상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지 못했다. 이 후 정치적인 부패와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지면서 충성심의 분산과 중앙권력의 약화로 제국은 쇠퇴기를 맞이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오스만 제국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에 반발하여 독일.오스트리아에 가담하였다가 패배하였다. 연합국은 세이블조약으로 터키 분할을 꾀하고, 그리스는 잃은 땅을 되찾으려고 아나톨리아 서쪽으로 침입하였다. 그러나 1922년 아타튀르크 Attaturk 의 외교와 전략으로 이들을 타파하고 1923년 로잔조약에 의해서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게 되며 아타튀르크는 구 오스만 제국을 폐하고 터키 공화국을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