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테네, 미케네, 코린트

2007.1.5 (금)  테살로니키 - 아테네

아침 7시 35분 기차를 탄다. 4시 40분 기상하여 1시간 운동 후 빵과 어제 남긴 치즈샐러드를 찍어 먹었는데 매콤하면서 짜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새벽부터 가게 열린 곳이 많은데 이곳 사람들은 부지런한 듯하다. 기차 2량을 뒤에 붙이느라 시간이 걸려 약간 늦게 출발했다. 자리는 KTX와 비슷하고 생각보다 꽤 부드럽게 달린다. 해안이는 중앙의 마주보는 좌석에 따로 앉았다. 처음에는 춥더니 난방을 빵빵 틀어 뜨끈하게 왔다. 자리가 좁아 약간 불편하지만 워낙 새 차이고 조용하다. 기분 좋게 자다가 깨어 벌판과 이국적인 산을 보며 간다.

연착되어 40분 늦게 2시 50분에 도착. 아테네는 큰 도시이다. 전철로 신타그마 광장 와서 우선 에게 항공에서 비행기 표를 다시 확인했다. Info에 가서 지도 구한 후 John's place 라는 숙소를 책 보고 찾아 갔다. 좀 깎아 달랬더니 45유로를 40에 준단다. 숙소는 깔끔하고 화장실은 공용이다. 내일은 델피로 가볼까 생각 중이다. 7일 일요일은 무료라니까 박물관을 다 쓸고 다니면서 아테네를 섭렵할 것이다. 밤에 미케네 가서 자고 8일 코린트까지 간 후 아테네 와서 비행기로 크레타에 갈 생각도 하고 있는 중이다.

날씨는 테살로니키보다 덜 추우나 약간 쌀쌀하다. 우선 그리스 식 패스트 푸드점에서 샐러드와 고기, 치즈, 빵 음식, 케밥을 시켜 먹었으나 맛이 별로이다. 책에 나온 싼 식당은 찾아보았지만 없어졌다. 신타그마광장 주변은 명동과 같은 곳이다. 길 따라 내려가면 모나스트라키 광장, 멀리 그림 같은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아테네는 모든 것이 오밀 조밀 질서 있게 모여 있고 아름답다. 길도 걷기에 딱 좋고 풍선 파는 삐에로, 행위 예술가들 등 여러 모습에서 유럽 분위기가 많이 난다. 노점은 밤, 빵, 옥수수 등을 판다. 아시아처럼 종류가 다양하고 많지는 않다. 벼룩시장 입구에서 귤을 사 먹고 오모니아 광장 쪽으로 가다가 중앙시장에 들렸다. 과일, 소시지, 고기, 생선 등을 판다. 더 걸어가서 참피온수퍼에서 치즈, 음료, 과자 등 다양한 품목을 샀다. 시장 과일 가게에서는 오렌지, 포도, 토마토를 샀다. 써비스 좋게 소시지 잘라주는 언니에게 싼 값에 소시지도 사고(언니는 프레젠트라며 음료수도 한 병 주었다!) 열심히 걸어서 집에 왔다.

다리는 아프나 기분이 상쾌하다. 처음 온 곳이지만 마음에 드는 도시이고 저렴한 것들이 많아 아테네가 테살로니키보다 낫다. 저녁과 간식을 넉넉히 챙겨먹고 밤의 파르테논 구경에 나섰다. 멋진 조명을 켜 놓아 유적들이 더 아름답고 고풍스러워 보이며 오밀조밀한 거리 자체가 놀이동산 세트 같다. 무척 아기자기하고 기대한 것보다 아름답고 푸근한 곳이다. 언덕 아래 쪽 유적들은 철창 사이로 들여다봐도 충분하다. 빵 사고 들어와 잤다. 류T는 라키가 아주 좋단다.

2007.1.6 (토) 미케네, 코린트

아침 4시 50분에 일어나 6시 5분 전에 길을 나섰다. 전철타고 기차역에 갔지만 펠로폰네소스 역은 라리사 역에 통합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책에 나온 6시 35분 첫 열차도 없고 8시 코린트행이 있다. 결국 버스 터미널까지 택시로 갔다. 부산까지 배를 탔었다는 기사는 탄값에 비해 큰 잔돈을 팁으로 거저먹으려 해서 그냥 줬다.

7시 30분이 첫차라 빵을 사먹으며 기다리다가 버스로 1시간 45분 걸려 미케네에 도착했다. 오렌지 밭이 펼쳐진 광활한 들판과 멀리 보이는 멋진 산들을 보면서 계속 걸어가야 한다. 풍경이 얼핏 몽골 같은 느낌이 든다. 날은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마을을 지나서 언덕을 꾸준히 오른다. 너무나 적막하고 사람도 없다. 분명 유명한 관광지 일 텐데 신기할 뿐이다. 뮈 이런 곳이 다 있나 싶다. 오렌지와 간식을 먹으며 계속 걸어 올라가서 매표소에 이르렀는데 글쎄 오늘은 입장료가 없단다! 토요일도 공휴일이라 무료라니 혹시나 했지만 이런 횡재가 있나! 너무 기뻐서 그리스가 더욱 좋아진다. 유명한 사자의 문을 지나면 원형 무덤과 성벽이 보인다. 집터들을 지나고 궁전 터와 비밀 계단 등 우리만의 고즈넉한 장소에서 시간을 초월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한쪽으로는 들판과 산, 다른 쪽은 바다가 보이는 멋진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호연지기가 절로 생기는 언덕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위치에 놓여있다. 이들이 크레타의 문명을 끝냈고 아가멤논이 다스렸다는 전설의 바로 그들이다. 초입부터 개 한마리가 안내견 처럼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며 인도한다.

아래쪽에 위치한 박물관은 무척 현대적인 문양의 도자기와 목걸이, 인형들,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등 볼 것이 많은데 너무나 세련되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이 있어서 이것이 과연 기원전에 만들어진 것인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훌륭하다. 과연 인류는 진보한 것일까? 당장 써 먹어도 인기가 있을 디자인들이다. 게다가 밖을 볼 수 있는 창은 마치 그림처럼 차경을 이용했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 열심히 걸어서 아래로 내려온다. 이제서야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대형 관광차들이 나타난다. 날씨는 햇볕이 너무 쨍하다. 여름과 같이 약간 덥고 따가울 지경이라 옷을 벗어서 뒤집어썼다. 오렌지를 따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눈다(좀 거들어주고 오렌지를 얻고 싶다!). 소시지와 치즈를 먹다 길에 떨어져 있는 맛있는 오렌지까지 주워 먹었다(남편과 해안이가 줍는 행위를 꺼려하므로 안타깝지만 참기로 했다. 나는 공짜가 좋다!).

왕복 8km를 걸어 와서 버스표를 샀다. 45분 정도 버스를 기다렸는데 길에 서있으면 세워 준다. 무뚝뚝해 보이기만 했던 표 파는 아저씨는 우리가 잘 탈지 지켜보고 있었던가 보다. 건너편 가게에서 나와 버스가 온 것을 알려 주었다. 많은 책에서 그리스인들은 자존심이 세고 무뚝뚝하다고 하는데 사실 한번 말을 붙이면 대단히 친절했고 우리가 신경 쓰고 있지 않아도 조용히 계속 지켜보며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도 처음에는 꽤 무뚝뚝하게 보이지 않는가. 이들도 우리처럼 실제로는 정 많은 사람들이다.

카날에서 내려 다른 연결 교통편이 없어서 택시로 코린트 유적지에 갔다. 박물관은 역시 무료. 내부에는 대리석 상들이 많았다. 유적지는 꽤 넓고 옥타비아누스 신전, 아폴로 신전은 기둥만 남아 있다. 사도 바울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욕을 했고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 만 봐도 화려하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리스에서 가장 잘 남아 있다는 에피다우로스의 원형극장에서 공연이 있는지 박물관 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5시에 공연이 있단다. 지금은 3시. 사실 무척 가고 싶지만 시간이 빠듯할 수도 있다. 그리스는 교통편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들 지치고 힘든 기색이어서 아쉽지만 포기했다.

들어오는 택시가 없어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들과 끼어 타면서 황량한 곳에 위치한 코린트 역에 왔다. 기차 시간이 한 시간 남아 있어 마을 쪽으로 걸어 가보니 참피온을 비롯한 대형 마트들이 썰렁하게 문을 다 닫았다. 토요일이라 닫나 보다 생각하고 대합실로 돌아 왔다. 기다리다가 전철과 비슷하게 생긴 새 기차를 탔다.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다. 바깥의 경치는 한쪽으로 바다가 보여 매우 아름답다. 돌아오는데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 류T가 건너 편 여자에게 물으니 내일이 그리스의 구정과 같은 날이라 오늘은 가게들이 다 문을 닫는 거란다. 저녁도 못 먹고 내일도 굶는가보다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재빨리 전철로 오모니아 광장에 내렸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을 수도 있으니 눈에 보이는 데로 길가의 빵도 사면서 시장과 참피온에 가보니 역시 다 문을 닫았다. 다행히도 집 밑의 작은 수퍼가 문을 열고 있어 어찌나 기쁘던지... 각종 통조림과 소시지, 술, 우유, 쥬스 등을 사고 들어와서 잘 먹었다. 어제 산 포도도 너무나 맛있어 많이 먹었다. 오늘은 피곤해서 8시 반에 잠이 들었다.

2007.1.7 (일) 아테네

오늘은 대망의 일요일이니 3시에 박물관이 문 닫을 때까지 목표한 6군데를 돌기로 했다. 다시 아테네에 오지 못하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 7시 10분에 모두를 깨워 빵, 오렌지, 토마토 등 아침을 챙겨 먹고 8시에 출발. 걸어서 그리스 복장의 군인들이 지키는 국회를 지나 베냐키 박물관. 9시 개관이라고 적혀 있어 다시 걸어서 비잔틴 박물관에 갔다. 5분을 기다려 8시 반에 무료입장이다. 각종 석상들과 다양한 이콘들, 건너편은 현대 미술까지 전시하고 있어 꽤 볼 만한 곳이다. 다시 베냐키에 갔지만 사설박물관이라며 9유로를 내란다. 오늘은 바쁘므로 돈을 내고 볼 수는 없다.

건너뛰고 오모니아 광장 부근까지 걸어서 역사박물관. 군인들과 관련된 무기와 사진들은 그냥 그렇고 아름다운 복식들이 볼 만 했다. 다시 시립 박물관으로 갔다. 어른은 3, 아이는 2를 내라는데, 의미가 있는 곳이므로 들어가기로 했다. 휴일은 국립만 무료이다. 볼 것은 그리 많지 않으나 1800, 1900년대의 아테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그림들을 본다. 그때의 아테네는 참 작았다. 그리스의 집을 재현한 거실, 부엌 등이 2층에 있다. 3층에는 현재 화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영어 제목이 씌어진 종이를 나누어 준다. 샤갈 풍의 몽롱한 꿈같은 그림을 그리는데 마음에 들고 무척 아름다웠다. 잘 보고 나오니 아저씨가 두껍고 큰 화집을 건네  주길래 얼마냐고 물었다. 단 세권이 놓여 있었는데 무료라면서 선뜻 준다. 몇 만원은 족히 주어야 살 물건인데 대박이다! 운이 좋은 날이다. 종이 재질이 좋고 엽서처럼 잘라 쓸 수도 있다.

다음은 좀 걸어서 고고학 박물관. 역시 석상들이 대단히 많고 테살로니키의 마케도니아 유물, 미케네 유물 등 다양한 진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래도 현지에서 직접 봤던 것보다는 감동이 덜하고 그 수도 적다. 물론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얼굴과 핀, 에로스가 함께 있는 조각상은 살아 있는 듯 아름답고 유쾌했다. 시간을 초월하여 작품에서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점심으로 Goodys에서 샐러드바, 스파게티, 패티 스테이크(왜 하필 이 으악인 음식을 시켰을까!)를 먹었는데 거의 억지로 힘겹게 다 먹어서 후회를 많이 했다. 여기까지 와서 패스트푸드를 먹다니 말이다. 속이 거북하고 기분이 나빠져서 다시는 이런 곳에 안 오기로 결심했다. 트램을 타고 파르테논 신전 아래쪽에 내려서 길을 물어 걸어서 올라갔다. 원형극장과 신전 등 모든 것이 아직도 복원 중이다. 아테네 시가 다 내려다보이고 전망이 좋다. 햇살이 무척 뜨거우니 여름에는 올라오려면 얼마나 힘들까. 산책 온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몹시 붐비는 곳이다. 백색 그리스라는 표현답게 멀리 바다까지 잘 보이고 밝은 햇살 아래 집들이 하얗다. 걸어 내려와 아고라에 왔다. 박물관의 도편에는 테모클레이토스의 이름들로 가득한데 이름의 철자를 잘못 쓴 재밌는 조각도 있다. 우리는 그리스의 민주주의, 도편 추방법, 당시의 철학자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아고라와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을 거닐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피곤함이 다 사라지는 듯 힘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소크라테스가 살고 거닐었던 곳을 나도 걷고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바깥으로 나와 벼룩시장에 갔다. 사람들이 붐비는 이곳은 자잘한 물건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다. 노천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사람들로도 거리가 찬다. 안타깝게도 역시 작은 천을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 사람들이 많다. 경찰의 단속에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또 우리의 재래시장처럼 눈속임 카드판도 벌어진다. 경찰이 뜨면 슬쩍 판을 접고 흩어지는 수법을 쓴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똑 같다. 옛 물건들도 잘 구경하고 수퍼에서 장을 본 뒤 숙소에 와서 먹고 쉰다. 음식점 식사가 싫어서 통조림으로 된 생선, 포도잎 밥, 양배추잎 쌈 등을 주로 먹고 있다. 통조림마다 올리브기름이 가득 담겨 있어 좀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