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크레타섬

2007.1.8 (월)  아테네 - 크레타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정리한 후 8시 넘어 숙소를 나섰다. 짐은 맡기고 먹을 것만 챙겼다. 걸어서 오모니아 광장까지 가서 길 중앙에 놓인 작고 귀여운 성당에 들어갔다. 모스크나 절처럼 성당도 분위기가 편안하고 좋다. 가끔 이런 공간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전철로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 항구에 갔다. 대형 배들이 정박해 있다. 의외로 물은 깨끗한 편이다. 어떻게든 크레타에서 산토리니 가는 배도 알아보고 싶었는데 없다.

돌아다니다 보니 우연히 시장이 보인다. 소시지 가격이 아테네에 비해 무척 싸다. 베이컨 값이 우리나라 후지보다 싸니 이게 웬일인가. 반근 정도 사고 수퍼에서도 먹을 것을 샀다. 멋진 성당 앞에 앉아 먹었다. 큰 성당 안은 이콘들과 벽장식이 아름답다. 고요히 앉아 쉬기에 좋았는데 어두운 구석에서 노인이나 노숙자 같은 분들이 졸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시내를 걸어 올라가서 구경을 하다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와 섬에 들어 갈 것에 대비하여 닭 소시지와 베이컨을 왕창 산다. 전철로 올림픽 스타디움에 갔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지 황량한 벌판에 하얀 건물들만 남아 있어 마치 사막 같은 느낌이 든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가끔 휴지 정도를 줍고 있다. 야외 수영장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수인가 보다. 이렇게 햇살이 쨍한 날씨라면 우리도 들어가고 싶다. 실내 수영장은 물만 채워져 있고 역시 횡 했다.

전철로 신타그마에 내려 국립공원에 갔다. 나무가 울창하고 햇살이 따듯하니 평화롭다. 음식을 먹고 쉰다. 류T는 벤치에 누워 잠깐 낮잠을 잤다. 다시 전철로 ‘도카스’라는 대형 수퍼에 가서 섬에 들어가서 먹을 음식들을 산다. 캔부터 치즈, 음료, 과일까지 왕창 샀다. 분명 섬에는 수퍼가 드물고 물가가 비쌀 것이기 때문이다(크레타처럼 큰 섬을 이렇게 생각해 버리다니 실수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버스로 공항에 갔다. 표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류T가 자주 들리는 방송이 유로국가들은 술, 로션, 치약 등의 물건을 기내에 못 가지고 들어간단다. 이제 어쩌냐고 한다. 지금까지 짐을 붙이지 않고 잘 다녔었다. 미국 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이곳까지? 대충 버텨 볼까 하다가 결국 다시 밖으로 나왔다. 짐을 넣어 달라니까 표를 받을 때 부쳤어야지 시간이 지나서 안 된단다. 우리 물건의 상당 부분을 그냥 뺏기는가 생각하며 낙망하여 돌아서는데 직원이 다시 부른다. 딱지를 붙여 주며 다른 Gate로 찾아가서 직접 넣으라고 한다.

류T는 물병을 비우고 술을 페트병에 다 담아 가방에 넣었다. 겨우 무사하게 짐을 넣었다. 어려움을 잘 넘기고 비행기를 따서 다행이다. 들어오는데 짐 검사는 역시 철저했고 우리 앞의 여자는 핸드로션을 뺏겼다. 물건은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정말 세상이 어찌 되려고 하는지. 모든 액체는 물까지도 금지라니 이게 사람 사는 세상 이란 말인가? 물이나 로션, 치약으로 무슨 테러를 하느냐 말이다! 겨우 35분 비행에 사탕 쪼가리만 준다.

공항에서 짐 찾고 나와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고 시내에 왔다. 우리가 찾던 값싼 숙소는 아예 문을 닫았다. 무거운 짐을 진 채(왜 수퍼에서 그리 바리바리 사왔단 말이냐!) 숙소를 뒤지며 계속 돌아 다녔다. 다 비까번쩍한 것만 눈에 띈다. 좀 싼 숙소를 향해 항구 쪽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차를 타고 지나던 친절한 그리스 사람이 차를 세웠다. 뭐 하느냐고 묻더니 숙소가 많은 쪽은 위쪽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위로 올라 헤메기를 한 시간여. 역시 호텔도 별로 없고 큰 호텔들뿐이다. 12시 넘은 밤거리를 정말 무지하게 쏘다녔다. 방파제에 기대어 자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오밤중에 우리에게 베푼 친절이 오히려 고생을 하게 만든 셈이다.

결국 우리가 가려던 그곳으로 다시 방향을 잡아 한참 걸려 항구까지 와서 크노소스 호텔에 들어갔다. 둘인 줄 알고 45를 불렀다가 가방을 두 개진 내가 뒤늦게 나타나니 안 되었던지 셋을 45에 주기로 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냉장고에 드라이어까지 있다! 벌써 1시가 넘어서 먹을 것을 챙겨 먹고 쉰다.  

2007.1.9 (화) 크레타

아침 8시에 일어나 운동을 한 후 빵을 사고 숙소도 알아 볼 겸 길을 나섰다. 어제 류T가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던 허름한 숙소가 더블 40, 3인실은 없단다. 건너편의 큰 호텔은 내부는 그저 그런데 110, 베란다도 넓고 깨끗하며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우리 숙소가 훨씬 낫다. 빵과 과일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유스 호스텔에 갔다. 도미토리는 1인당 10, 엄해 보이는 할머니가 먹을 것 반입금지라고 한다. 다른 숙소에 또 갔다. 냉장고도 없고 우리 것 보다 시설이 떨어지는 게스트하우스 스타일의 숙소가 55나 한다. 또 한곳은 문을 닫았다. 결국 운 좋게도 어제 밤에 우리가 최고의 숙소를 잡았다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왔다.

아침 먹고 9시 넘어 길을 나선다. 어제 헤메고 다녔던 그 곳이 시장과 중심부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시장의 수퍼는 크고 저렴하다. 조리된 음식을 팔고 있어서(처음 보았다!) 왜 바리바리 싸와 고생을 했는지 영 후회스러웠다. 토마토와 피망 안에 밥을 넣은 음식을 샀는데 감자도 곁들여 준다(3.5). 나와서 공원에 앉아 먹었다. 맛도 괜찮다. 걸어서 주변을 구경한다. Info에 들렀다 고고학박물관에 가니 당분간 휴관이란다.

작은 공원의 그래피티 그림 구경도 하고 성벽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걸어 내려가 바닷가로 가서 포트 주변을 산책했다. 얕은 바다 속에 성게처럼 보이는 것이 많이 있어서 류T가 내려가 떼어 보려고 시도했다. 우리나라 것과는 다른 놈들인지 꼼짝도 하지 않아 포기했다. 뭔가 채취하여 먹어 보나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포기다. 물은 맑지만 이곳에는 잡을 것이 없어 좀 재미없는 바다이다. 풍경만은 엽서의 사진처럼 아름답다. 또한 바다에 정박해 있는 작은 고깃배들, 어구와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와 비슷하여 정겹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쵸코빵을 사고 장 봐서 돌아와 먹고 쉰다. 짐 검색 덕분에 이제 마음 놓고 포크, 수저와 칼을 사버렸다. 이걸 사용하니 문명인이 된 듯 편리하다. 한숨 푹 자고 나가서 수퍼에서 만들어 파는 통닭을 사왔다. 무척 부드럽고 맛이 좋다. 이곳의 닭은 가슴살의 크기가 엄청나서 갑빠만 크다고 웃었다. 도심 중앙의 거리에 한국인 관광객도 보인다. 오늘 밤에는 해안이와 둘이 나가서 1시간 동안 중심부를 쏘다니며 반지와 팔찌도 끼어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07.1.10 (수) 크레타

아침 7시에 일어나 느긋하게 9시 반까지 닭고기와 음식을 챙겨먹고 역사박물관에 갔다. 기대했던 것보다 볼 것이 많다. 아주 짜임새 있게 꾸며놓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크레타의 복식과 역사, 생활, 고고학 자료, 근현대사, 이곳 출신인 엘 그레코의 미술품들,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서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종합 박물관이다. 고고학 박물관을 가지 못한 것을 대신할 만하다. 게다가 미카엘이라는 직원이 말을 걸어오며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는데 워낙 영어를 잘 못하는 터라 알아듣기가 매우 어려웠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자연스럽게 따라와 말을 하는데 정작 물어 보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잘 못한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불교의 ‘만’자 문양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물으니 알아듣기 어렵지만 크레타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우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투르크와는 같은 뿌리의 형제라는 말을 했더니 웃으며 절대 아니란다. 터키에게 오랜 지배를 당해 저항도 길었고 아직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때 이곳은 사라진 아틀란티스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고대 미노스 문명까지 포함하여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것이다.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걸어서 수퍼에서 가지요리를 도시락으로 샀다.  2번 버스를 타고 크노소스 궁전에 갔다. 굉장히 넓은 터에 물론 부서진 곳이 대부분이지만 이 사람들이 대단한 문명을 가졌다는 것은 짐작할 만한 곳이다. 언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굽이굽이 미로처럼 얽힌 궁전을 만들었던 이들에게서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아래쪽이 좁아지는 이곳만의 특이한 기둥은 나무뿌리가 나와 자랄까 봐 거꾸로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벽화는 오리엔트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집트 사람들과 포즈가 같다. 주변의 전원 풍경도 종요하고 한가롭다.

사진 찍느라고 류T가 작은 돌무더기에 잠깐 올라갔는데 호루라기를 불고 내려오라고 멀리서 난리이다. 미케네에서처럼 이번엔 고양이가 우리를 졸졸 따라다녀 또 다른 안내자가 생겼다. 밖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맛있는 가지요리 무사카를 먹었다. 안에 다진 고기가 들은 부드러운 맛이 모두들 가지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감탄했다. 남은 국물은 고양이와 개가 다가와 다 핥아 먹었다.

버스 종점인 항구에서 내일 탈 시외버스 편을 확인하고 다른 버스로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를 향해 갔다. 좁은 길에 일방통행이 많아 교통이 막힌다. 내려서 성벽을 따라 걸으려다 할아버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모두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시던 중이다. 그리스 커피와 코코아를 시켜 마셨다. 커피의 잔이 작고 맛이 매우 진하다. 입에 조금 넣고 향을 음미한 후 물을 같이 마셔야 한다. 유리창 밖으로 성벽의 언덕에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흔들리고 있어 이곳이 정말 겨울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괭이밥이 노란 꽃을 환하게 터뜨리고 있고 이름 모를 단아한 야생화가 무더기 지어 피어 있다. 해안이와 함께 열심히 사진에 찍혔다.

사실 내가 크레타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크레타 문명도 중요했지만 니코스 카찬차키스 때문이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람이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이 여행에서 느껴보고 싶었던 인물. 그 사람이 살았던 크레타는 어떤 곳일까, 조르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상상 속에서 많이 생각해 보았었다. 그는 어쩌면 삶에 대한 인식이 나와 가장 근접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여행기를 쓰는 것을 봐도 참으로 담담하고 자유롭다. 그의 무덤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에 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전망이 좋다. 돌로 된 무덤에 간소한 나무 십자가 묘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숙연해 진다. 이곳에서 섬 아래를 굽어보며 그의 영혼은 참 흡족했을 것이다. 셋이 엎드려 우리 식으로 두 번 절을 올렸다. 그의 묘비에는 물론 그리스 말로 적혀 있어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걸어 내려와 동네를 구경하며 맛있는 빵집과 수퍼를 들러 숙소에 왔다. 청소가 아주 잘 되어 있다. 닭고기와 크림 크루아쌍, 과일을 먹고 쉰다. 해안이가 한숨 잔 뒤 다시 쵸코빵과 도넛을 먹고 내일 생일이니 나가서 선물을 골라보라고 했다. 어제 우리가 밤에 갔던 1.5 유로점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니 가자고 한다. 가게를 찾느라 좀 헤멨지만 결국 발견. 여러 가지를 골라보다가 아빠가 에스닉한 팔찌와 목걸이를 추천했는데 아주 예쁘다며 좋아 했다. 다른 집에 가서 나도 은빛 신쮸로 해안이와 비슷한 것을 하나 더 샀다. 내 것은 성당 분위기, 해안이 것은 집시 스타일의 악세서리이다. 류T는 가격은 싼데도 물건의 질이 좋고 디자인이 독특해서 참 놀랍다며 마음에 드는 것이 많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과거 복식에서도 그랬지만 인도만큼이나 악세서리를 좋아해서 그야말로 주렁주렁한 악세서리들이 많다.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왔다.

2007.1.11 (목) 크레타

아침 10시에 집을 나서서 우체국에 전화하러 갔다. 무슨 전화비 내는 사람만 많고 바깥 파란 전화에서 하라고 한다. 잘 안 된다. 버스터미널에 오니 막 레팀논으로 가는 차가 출발하려던 참이다. 차비는 타고 내도된다. 과일을 먹고 있자니 언니가 와서 차에서 먹지 말라고 한다. 풍경은 산지가 꽤 험하고 척박해 보인다. 기껏해야 올리브 나무, 아래쪽에는 약간의 오렌지뿐이고 거의 민둥산이다. 바다가 잔잔한 지중해는 호수 같아 꼭 바이칼의 느낌이고 풍경은 몽골이나 러시아에 온 듯하다.     

1시간 반 만에 레팀논에 도착했다. 내려서 성채 쪽을 향해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스노클링을 하고 싶을 만큼 맑고 아름다운 바다다. 해초도 없으며 이상하게도 잡을 것이 별로 없어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동 1개 보았다). 스노클링을 해도 재미가 없겠다. - 나중에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에게 해를 비롯한 지중해는 질산염, 인산염 등 바다의 생명체를 풍부하게 만드는 1차 물질이 부족하다. 그래서 척박한 바다에 속에 해초와 이것을 먹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지 못한다. 즉 생명체가 많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생선 값도 비싼 편이라고 한다. 이스탄불에서도 기껏해야 홍합 말고는 조개도 못 봤다. 맑고 푸르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바다라니. 비교하여 볼 때 우리나라의 바다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그런데도 그 풍요로운 갯벌을 메워버리려는 발상을 가질 수 있다니... 황금을 버리는 격이다. 이런 작태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뿐이다. - 햇살이 화사하고 꽃들도 많다. 성채 끝 바닷가에서 간식을 먹고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해안이는 무료다. 단층 건물의 간단한 박물관이다. 팔 없는 비너스가 좀 어설프고 덜 예쁘다. 아직도 다른 방에서는 작업 중이다. BC6000년경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많은 것으로 봐서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얘기인데 당시는 지금보다 덜 척박했을까?

바닷가는 썰렁하니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다. 숙소들도 그러해서 좀 횡 하다는 느낌이 든다. 중심부로 들어오니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을 예정인지 화환들이 즐비하다. 잠깐 안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건너편의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우리의 생긴 모습이 납작하고 얼굴도 크니 찬찬히 볼수록 신기할 것이다. 보통 노인들은 노골적으로 잘 쳐다보는 것이 어느 나라이든 공통점이다. 오늘이 해안이 생일이라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려했으나 역시 잘 안되어 포기했다.

참피온에서 쵸코 케? 과일, 음료를 사서 버스타고 돌아오는데 실내가 매우 더워 계속 졸게 된다. 이번에는 오빠가 차장인데 뒷자리의 언니가 뭘 먹어도 가만히 둔다. 오는 버스의 언니가 좀 까다롭게 굴었던 것이다. 버스는 꽤 좋다. 매우 가파르고 척박한 산에는 양, 염소만 약간 있다. 내려서 나는 숙소로 돌아오고 해안과 류T는 푸딩 등을 더 사왔다. 생일이라 먹고 싶은 것은 다 사라고 했다. 와서 캔, 배사과, 쵸코빵 등을 배부르게 먹었다. 해안이는 쵸코 떡인 생일 케잌?만족했다. 내일 가기로 했던 니콜라우스 항구는 안가기로 했다. 오늘 본 것으로 대충 지형 파악은 했다. 돌아다니면 교통비가 많이 든다. 어쩐지 피레우스와 비슷하면서 볼 것이 적고 피곤할 것 같다. 숙소가 좋으니 모든 빨래를 다 꺼내 했다.

2007.1.12 (금) 크레타

7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10시에 나섰다. 어젯밤에 좀 뒤척였지만 빨래를 100% 말릴 수 있어 좋았다. 스팀 나오는 곳이 말리기에 최고다. 덕분에 습한 방에서 잤다. 도시락 거리를 사고 오늘은 성벽 따라 걷기 투어이다. 우선 박물관 옆 Info에서 지도 구하고 엄마, 아버지, 승은, 작은 누나 집, 류T는 학교까지 전화했다. 4유로에 산 전화카드가 꽤 유용하다.

성벽을 따라 약간 마을로 빠졌다. 조그마한 집에 사는 모습을 구경한다. 다시 내벽과 외벽 사이에 해자를 공원으로 만들어놓은 곳을 길 따라 걸으며 쉰다. 야트막한 공연장은 사람의 흔적이 적어 풀이 무성해 졌다. 주로 괭이밥 꽃이 해를 따라 길게 뻗어 활짝 피어 노란 야생화 밭을 이룬다. 분홍색 란타나도 성벽 쪽으로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 우리 집에 있는 것은 붉은 색인데 요놈 참 예쁘다. 란타나는 인도에서 처음 보았다. 그때는 사방에 잡초처럼 흔하게 피어 귀한 줄 몰랐다. 어느 날 화원에서 이놈을 샀는데 앙증맞게 꽃다발 모양으로 끊임없이 꽃이 핀다. 노랗고 붉은 색을 가지는 꽃이다. - 성벽을 따라 하늘과 야생화를 보며 걷는 코스는 한적하고 정말 좋다.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운동도 하고 얘기도 나눈다. 마치 북구의 여름에 놓여 있는 듯 따듯하고 한가롭다. 일제히 해를 향해 목을 빼고 피어있는 괭이밥이 노란 밭을 이룬다. 아주 가끔 조깅하는 분이 지나간다. 햇살이 찬란하고 길다. 오롯이 우리들의 시간이다. 가다보니 철창문으로 길을 막아 버려서 결국 해안이가 발견한 길(사람들이 풀을 발로 밟아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벽을 타고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다시 버스터미널을 지나 바닷가 쪽으로 내려왔다. 숙소를 향해 걸어 2시 쯤 호텔에 도착. 해안이는 호텔로 올라가고 우리는 시장 1유로 점에서 신발 밑창, 모 양말 2개를 샀다. 언니네 수퍼에는 무사카와 토마토 밥이 없어서 생선, 미트볼, 돼지 갈비구이를 샀다. 싸게 파는 자투리 소시지, - 모든 소시지의 끝 부분을 모아서 파니까 온갖 소시지 맛을 다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딱 좋은 물건인데 파는 오빠는 이것을 달라니까 좀 황당한 표정이다. 보통 이 부분은 잘 사지 않나보다 - 애플망고, 오렌지를 사고 오다가 언니네 빵집에서 빵을 더 사고 와서 푸짐하게 먹었다. 돈이 안 들면서도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하루다.

한숨 자고 일어나 밤에 류T와 바닷가 성채 옆 방파제 길을 따라 2Km정도 왕복으로 다녀왔다. 산책과 운동하는 사람들이 좀 있고 무얼 잡으려는지 낚시질을 하려고 온 사람들이 방파제 위로 올라간다. 부산이라 생각하면 부산이고 어디든 우리나라와 같고 낯설지가 않다. 지중해는 밤에도 잔잔한 호수 같다. 봄밤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날을 만끽하며 돌아와 수퍼에서 술 등 필요한 물품을 사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