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카파도키아 괴레메마을

2007.1.15(월) 이스탄불 - 괴레메

자리를 뒤척이다 결국 뒤의 빈자리로 가서 자는데 어떤 자세든 불편하기만 하다. 휴게소나 정류장에 멈추면 꽤 오래 선다. 잠결에 깨어보니 2,000m 이상의 고원지대를 지나가는데 눈이 많이 덮인 광활한 풍경이 아름답다. 귀가 먹먹하고 물이 빵빵해 진다. 4시에 휴게소를 들렀는데 내리니 꽤 추웠다. 밖은 영하이지만 실내는 덥다.

7시가 되니 주변의 풍광들도 보이고 기암괴석에 뚫어 놓은 신기한 집들과 마을이 보인다. 7시 20분에 괴레메에 내려 동굴 숙소에 들었다. 앞마당이 있는 꽤 좋고 깔끔한 집이다. 아침 햇살이 들어 방이 밝고 예뻤다. 이런 곳을 깎아서 만들다니 몹시 신기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다는데 아직 난방을 안 넣어서 약간 쌀쌀하다. 나가서 동네를 둘러본 후 수퍼에서 맛있는 낱개 빵을 사서 돌아왔다. 햇살이 비치는 창의 온기에 의존해서 모두 한숨 잤다. 어제는 아테네, 오늘은 동쪽의 괴레메라니 이렇게 빨리 움직인 것이 믿기지 않는다.

12시에 모두 일어나 야외 박물관으로 간다. 계속 오르막길이고 좀 걸어야 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여러 곳에 동굴교회가 흩어져 있다. 하나씩 들어가 본다. 많은 그림들이 현지인들이 되는대로 그렸기 때문에 아이들 그림 같고 조악하다. 이탈리아 화가가 와서 그렸다는 그림들은 좋다. 동굴을 둘러보는 것도 다리가 아프다. 이곳 관광객의 8할은 한국인이다. 마을로 걸어와 현지인에게 값싼 로컬 레스토랑을 물으니 가파도키아 피데 하우스를 알려 준다. 빵을 화덕에 직접 구워주는 곳이다. 요리는 비싼 편이다. 채식 궤베츠, 스페셜 피데, 작은 불 위에 올려져 나오는 야채 고기 요리, 렌탈 스프를 시켰는데 맛있게 먹었다. 스프에 레몬과 고춧가루를 넣으니 김치찌개 국물 맛이 되었다. 피데는 바삭, 고소, 부드러운 것이 환상적인 맛이다.

위치사르 가는 버스시간에 맞춰 서두르다가 식당에 카메라를 놓고 온 채 버스를 타 버렸다. 내려서 마을을 거쳐 요새로 올라갔다. 너무 가파른 곳이라 오르기도 쉽지 않다. 아래의 동굴집들이 다 보이고 색깔 별로 다양한 암석들이 쫙 펼쳐져 연결되어 멀리까지 380도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보이는 풍경이 끝없이 광활하고 웅대하다. 남편은 다리가 저릿하고 좀 무섭다고 한다. 내려가서 지름길로 괴레메에 가려는데 한 아저씨가 굳이 안내를 해준다며 앞장을 선다. 잠깐 갈 줄 알았더니 괜찮다 해도 계속 앞장 서 가는 거다. 결국 뻔히 보이는 길을 두고 이상한 길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자기가 좋은 풍경을 보여주면서 괴레메까지 가겠다는 뜻이다. 여러 번 사양하며 그냥 간다고 하니 돈을 달란다. 잔돈이 없어 남은 담배 반 갑을 주었다.

우리끼리 길 따라 내려오며 경치도 보고 30분 만에 왔다. 식당에 카메라를 찾으러 가니 오빠가 자기가 한 장 찍었다고 한다. 흐리게 찍혀 있어 다시 찍어 주었다. 저녁은 길가의 레스토랑에서 항아리 케밥 등을 시켜 먹었는데 비싸기만 했지 맛이 없어서 정말 후회했다. 이곳은 매우 척박한 곳으로 수퍼를 가 보아도 과일, 야채 한쪽이 없다. 그냥 물과 소시지만 사고 숙소에 왔다. 밤이 되니 굴집은 조명도 어둡고 추운 것이 영락없는 동굴 분위기이다. 그 불빛에서 일기도 쓰고 난방이 제대로 안되어 모두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잠자리에 든다.

2007.1.16(화) 괴레메 - 곤야

간밤에는 어찌나 춥던지 옷을 입고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아침에 운동을 하려니 불도 어둡고 동굴이라 약간 음산한 것이 분위기가 껄적지근 했지만 꿋꿋이 했다. 짐을 싸고 차비를 내고 나서려는데 주인아저씨가 영 안 나타난다. 옆의 두 개 방에 묵었던 한국인들도 다 대기 상태. 모두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8시 10분전에 나타나셔서 8시 차를 탄다는 손님들에게 밥 먹고 가도 늦지 않는다고 버스회사에 전화까지 해서 차가 늦게 출발하게 해 두셨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분들이 먹을 정신이 있을 리가 없다. 아저씨가 부랴부랴 빵들을 챙겨 담아 주고 그분 차로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신다. 우리만 남아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사실 주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가 먹으니 비록 오이, 토마토, 치즈, 야채 한쪽에 따듯한 차이지만  고맙게 잘 먹었다(알고 보니 터키는 아침 식사가 늘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자면서 숙소가 추웠던 걸 생각하면 당장 떠나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정 많은 아저씨의 태도를 보니 꼭 우리네 인심과 같아 보기가 좋았고 아침 식사도 고마웠다. 짐을 맡기고 네브세히르까지 가서 데린구유 가는 차로 갈아탔다. 네브세히르는 좀 삭막한 도시이다. 데린구유가는 길은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데린구유 굴은 평지에서 아래로 들어가는 곳인데 8층 깊이이다. 가다가 몹시 좁아지기도 하고 걷기 힘든 곳도 있다. 미로 같은 형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고 신기한 곳이다. 특히 해안이가 좋아했다. 지하에 교회며 생활했던 근거지들이 남아있다. 사방에 한국인 관광객  뿐이다. 다시 네브세히르를 거쳐 돌아오는 길에 류T는 위치사르에서 사진 찍는다고 내리고 해안이와 나는 괴레메의 식당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괴레메 마을을 약간 구경하다가 바람도 많고 추워서 해안이가 빨리 식당에 가서 기다리자고 한다. 사실 남의 식당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미안해서 괜히 돌고 있었던 것인데 꽤 춥기는 했다. 가파도키아 피데 식당에 들어가 사정을 말한 뒤 일단 주문을 미루어 두고 빵 굽는 것을 구경했다. 해안이는 한국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굽는 모습 구경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1시간이 넘으니 슬슬 걱정이 된다. 안 시키는 것도 미안해서 피데 하나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점점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 오면 먹을 수 있도록 미리 항아리 케밥을 주문했다. 한참 만에 나왔지만 오질 않아 난로 위에 두었다. 오래 기다리다 이제 2시간이 지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대충 케밥을 먹고 숙소 주인아저씨께 부탁해서 차로 찾으러 가자고 할 참이었는데 그때 류T가 나타났다. 한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딸과 나를 걱정시키며 기다리게 한 것에 화가 났다. 위치사르에서도 오래 있었지만 버스 기다리는데 기념품 만드는 가게에서 추운데 들어오라고 했단다. 뿌리칠 수 없어 들어 갔다가 차를 놓쳤다고 한다. 시계가 없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줄을 몰랐단다.

어제 우리가 같이 구경하고 걸어 내려온 시간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런데 2시간이나 기다렸으니 걱정이 많이 되고 너무 답답했다. 한적한 곳이라 누가 해꼬지를 하고 털린 채 쓰러져 있는지, 인신 매매범에게 잡혀 갔는지, 리라를 잃어버려 돈이 없어 빨리 못 오는 건지, 심지어 어지러워 발을 헛디뎌 쓰러져 있는지... 걱정과 함께 어서 구하러 가야겠다는 온갖 상념들로 애가 타서 5분마다 시계 만 보았다. 미안하다고 얘기는 하는데 둘이 걱정하며 초조해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빨리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미지근해진 항아리 케밥과 스프, 피데를 더 시켜 먹고 바로 버스표를 사러간 뒤 숙소에서 짐 찾아왔다. 빨리 와서 산책까지 다녀오자던 사람이 겨우 떠날 시간에 맞춰 나타나다니 너무했다. 자기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가서 권하는 빵까지 먹게 되고 결국 팔찌 기념품도 사게 되는 상황이 되었단다.

곤야에 가는 켄트 차는 사람이 적고 편했다. 잠이 들다 깨어 보니 광활한 고원지대의 끊임없이 넓은 평원이다. 해 지는 모습이 멋이 있어 계속 지켜보았다. 하늘이 점차 무지개 빛으로 변한다. 차와 커피를 두 번이나 주었다. 6시 반에 내려 안탈야 가는 차편을 알아보고 트램으로 알라딘 중심부에 왔다. 곤야는 생각보다 꽤 큰 대도시이다. 책의 숙소들은 매우 비쌌다. 여러 곳을 돌다가 체쉬메 호텔에 묵기로 했는데 따듯하고 좋다. 괴레메에서 야채, 과일을 제대로 못 먹은 탓에 오렌지와 사과를 사자마자 오렌지 3개를 길에서 까먹었다. 식당에서 케밥, 샐러드와 아이란을 시켜 먹고 수퍼 들러 숙소에 왔다. 남편이 늦게 왔던 문제로 다시 얘기가 시작되었다. 남편도 나의 반응이 섭섭했던 가보다. 서로 마음에 두었던 말을 하니 해안이가 가운데서 긴장했다. 각자 생각들을 이야기 하다가 결국 잘 풀고 끝냈다. 남편이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화가 풀린 후에야 남편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그런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화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는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