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곤야

2007.1.17(수)  곤야

7시에 일어났다. 숙소가 밝고 따듯했으며 침구가 좋다. 아침이면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같은 기도소리가 기분 좋게 잠을 깨워 준다. 8시 넘어서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치즈 2종류, 차, 오이, 토마토, 잼 등을 준다. 치즈가 짜지 않고 맛이 좋아서 많이 먹었다. 우리 셋이 삶은 달걀 6개를 먹었다. 건너편 아저씨 세 분이 제공되는 빵과는 다른 것을 먹고 계셨는데 우리에게 긴 덩어리를 가져와서 이게 맛있는 빵이니 먹으라고 한다. 자기들이 따로 산 것을 주는 것이다. 이 사람들 정 많은 건 인정해 줘야 한다. 약간 독특하고 퍽퍽한 빵이지만 그럭저럭 맛은 괜찮다(나는 에크메크가 제일 좋다). 어쨌든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주었다. 그분들이 떠난 후에야 빵을 들고 방으로 왔다.

9시 넘어 나가서 Info에 들렀다. 메블라나 댄스를 볼 수 있는지 물어 보니 지금은 카파도키아에서 볼 수 있고 이스탄불에 가면 알아보라고 주소를 적어 준다. 3시간 반이나 되는 수피 댄스를 모두 보겠다고 동의했는데 진즉 관심이 있었더라면 가파도키아에서 알아보고 볼 걸 그랬다. 그곳은 신성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장소이니 수피댄스와 잘 어울리는 곳이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수피 레미의 묘, 술탄과 왕족들의 묘(석관 형태로 머리 쪽에 모자와 탑 형식이 있다), 손으로 쓴 코란, 마흐멧의 수염이 든 상자, 바깥 쪽 실에는 수피 댄스 추는 인형들까지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손으로 쓴 코란과 세밀하게 그린 그림들이 아름답다. 곤야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 만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사와스를 만났는데 병원에서 일한단다. 박물관에 근무하는 친구 슐레이만을 만나러 왔단다. 정말 못하는 영어 실력으로(심하다!) 너무나 열정적으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저녁 때 우리와 만나서 차나 마시자고 한다. 7시에서 8시 사이에 숙소로 찾아오겠다고 해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환전소를 찾아 돈을 바꾼 후 싼 곳에서 아다나, 타북 쉬쉬 케밥, 아이란을 점심으로 먹었다. 나는 고기보다는 주로 두 사람이 먹기 힘들어 하는 빵과 싸온 치즈를 먹어 주니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싸고도 푸짐한 식사를 하니 물가가 싸고 인정 많은 이 도시가 더 마음에 든다. 알라딘 언덕에 올라 공원에서 과일을 먹고 알라딘 자미에 갔다. 시리아 풍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식의 모스크로 특이하고 간단한 건물 형태이다.

걸어서 어제 밤에 올 때 언뜻 궁전이었던가 하고 착각했던 건물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모스크였다. 곤야는 셀축의 수도였기 때문에 뭔가 궁전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알라딘 자미 옆에 건물의 일부가 약간 있을 뿐이다. 새로 지은 이 모스크는 내부가 상당히 크고 아름다워 앉아서 쉬며 감상하기에 좋았다. 숙소 근처까지 걸어와서 규모가 큰 시장에 갔다. 아이란과 케밥을 합쳐 1리라에 파는 곳들이 있었다. 고기를 그램 단위로 재어 끼워 판다. 수퍼에 들렀다가 어제 과일 샀던 친절한 아저씨 집에서 석류를 사왔다. 모두 한숨 잔 후 밖에 나가 케밥 2개를 사와 해안이와 남편이 먹었는데 양은 많지만 잘 못 만드는 집인지 무척 짰다.

8시가 거의 다 되어 호텔 프론트에서 전화로 사와스가 연락을 해서 준비하고 내려갔다. 같이 걸어서 간호사로 있는 부인의 병원에 잠시 들렀다. 9시 퇴근 후 유치원의 아이를 데리고 오면 함께 만나기로 했다. 단아하고 참한 부인이다. 사와스는 남자 간호사이자 간호사들을 가르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투잡스족이다. 대학을 두 군데 다녔단다. 어두운 거리를 한참 걸어서 가는데 해안이는 드디어 터키인 집에 초대를 받아 갈 수 있겠다고 많이 기뻐한다. 차만 마시고 헤어질지 집에 갈지는 알 수 없다. 딸이 5살이라니까 해안이는 귀여운 터키 꼬마와 드디어 놀 수 있게 되어 기쁜 모양이다.

신시가지의 대형백화점 지하의 수퍼에 갔다. 터키에서 처음 보는 커다란 수퍼였다. 9시 10분까지 부인을 기다리자고 하며 슬슬 물건 구경을 했다. 치즈, 과일도 싸고 잘 포장된 공산품들도 많다. 물가는 우리나라의 1/2 수준이다. 터키인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니 다들 다정하고 호기심 많은 얼굴로 친근하게 대한다. 사와스도 자랑스러워하며 우리에 대해 설명해주는 눈치이다. 시식 코너에서 꼭 양념덩어리 뭉쳐 놓은 듯한 이상한 쾨프테를 한 덩어리씩 달라고 하더니만 우리에게 먹어 보란다. 사실 어제 수퍼에서 약간 먹어보고 라면 스프 덩어리 맛이라고 모두 으악했던 터라 먹기 싫었지만 해안이는 그냥 꿀떡 삼켜 버리고 나는 조금씩 먹다가 남편에게 얼른 줘 버렸다. 이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다. 야채 가게에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벌써 10시가 다 된 상태. 인형 가게에서 딸에게 선물로 줄 바비 인형을 고르려고 나이를 물으니 눈치 빠른 사와스는 자기 딸은 인형이 너무나 많고 바비도 엄청 많단다. - 바비는 없고 천 인형은 많았다. 터키의 전통에 자부심이 많은 이슬람교도인 사와스는 바비 인형을 안 사주는 듯하다. 코카콜라 대신 콜라투르카를 먹고 반미적인 성향이 있다. 추측해보면 보수적인 그가 서양여자 바비인형을 사 줄리 없다 - 수퍼를 나와 푸드 코트 의자에서 부인을 기다리는데 안 오니 무척 초조해 한다. 워낙 운전을 잘 못해서 늦는다고 한다(실제로는 잘함).

10시가 넘어 드디어 부인이 너무 귀여운 꼬마 제이낙과 같이 왔다. 차를 마시는 동안 부끄러워 우리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얼굴을 돌려 딴 곳 만 본다. 사와스가 해안에게 H이니셜이 새겨진 열쇠고리와 전통 사탕을 선물로 주었다. 짐작했던 대로 집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하지고 한다. 류T는 좀 피곤해 한다. 그러나 거절할 수가 없어 가기로 했다. 푸조 차를 타고 사와스의 아파트에 갔다. 도시가 온통 칙칙한 스모그에 휩싸여 있어 냄새도 매캐하고 약간 음산하다. 특이하게도 아파트 문 밖에 신발을 다 벗고 들어가서 이웃집의 신발도 구경할 수 있었다. 넓고 실내가 아기자기하다. 무척 깔끔하게 잘 꾸며진 새집이다. 검소한 사와스는 집, 소파, 가구 등에는 아낌없이 돈을 쓴 듯하다. 정말 좋은 집에 살고 있고 부인의 살림 솜씨가 대단했다. 직장여성이 이렇게 집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다니다니... 우리 집과 비교가 많이 된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잘 사는 집처럼 엄청 꾸며 놓았다.

해안이는 금방 제이낙과 친해져서 인형을 다 쏟아 놓고 아이 방에서 놀고 우리는 거실에서 사와스와 이야기를 나눈다. 부인이 팝콘과 각종 넛트류와 과일을 왕창왕창 개인용 접시에 담아왔다. 과일도 모두 개인 칼을 따로 준다. 예전의 우리나라처럼 부인이 앨범을 가져와서 다 봤다. 스파게티를 만들어 준다는데 일단 저녁은 먹었다고 했다. 정말 단어도 잘 안 되는  사와스의 영어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띵할 정도로 핑핑 돌려가며 많은 추측을 해야 한다.  적극적이고 밝은 사와스는 남북한 얘기부터 종교 얘기까지 열심히 말을 한다. 특히 자기가 준 이슬람에 대한 책을 꼭 읽어 보라고 당부한다(해안이는 어린이용 영어책). 부인도 사와스  처럼 정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다. 시간이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이러다 스파게티까지 만들면 우리는 숙소에 언제 가겠는가. 안 그래도 이 사람들의 초대 습관대로 새벽까지 갈까 걱정을 했었다.

류T가 내일 일찍 안탈랴로 떠나기 때문에 이제 가야겠다고 하니 자기네 방이 있으니 자고 가란다! 호텔 숙비를 이미 지불해서 가야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니 몇 번 자고 가라는 말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차로 데려다 준다고 한다. 그새 부인은 해안이에게 줄 선물이라며 자신이 만든 물건들을 포함하여 큰 비닐 백에 가득 물건을 담은 것을 가져온다. 가면서 먹으라고 팝콘까지 싸준다. 그리고는 자기 집을 방문해 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완전히 옛날 우리 어머니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집을 잘 꾸며 놓은 것, 앨범 보여 주는 것, 이것저것 끊임없이 먹이려는 것, 갈 때 무엇이든 주어서 보내는 풍습 등 말이다. 다정한 부인과 인사하며 헤어지는데 제이낙이 또 오라고 한다. 우리도 나중에 한국에 놀려오라고 했다. 사와스와는 이메일로 연락하기로 했는데 서울에 공부하러 간 친구 연락처를 알려주며 우리와 엮어 놓았다.

호텔로 돌아와 프론트의 직원과 사와스가 얘길 나누는데 알고 보니 둘이 친구란다. 직원은 사와스와 친구이니 자기도 우리의 친구란다. 숙소에 와서 해안이가 받은 선물을 보니 양말, 귀걸이, 덧버선, 스카프, 손수건, 작은 뜨개질 소품 등 많고도 다양했다. 해안이는 아저씨 집에 가서 제이낙과 논 것도 좋았는데 선물까지 받아 몹시 기뻐한다. 자기 가방 밑에 바리바리 챙겼다. 해안이도 대박 나서 좋아했지만 남편과 나도 감격했다. 사와스는 자기가 준 책을 꼭 3번 읽어 보라면서 나중에 메일로 확인까지 하겠다고 했다. 이슬람 전파의 의지를 보였다 해도 그의 열정과 생각을 존중한다. 우리는 비록 불교를 좋아해도 이슬람을 훌륭한 종교로 인정하고 관심이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 가족의 친절함과 다정함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곤야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