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안탈랴

2007.1.18(목) 곤야 - 안탈랴

짐을 챙기고 7시에 식사를 하였다. 7시 반에 나서서 8시 5분에 오토갈에 도착하여 보니 9시 차만 있는 게 아니라 8시 30분차가 있다고 빨리 타라 한다. SET 회사 차인데 작은 회사이다. 생각보다 빨리 출발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곤야는 석탄을 때는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온 도시가 매캐한 것이 스모그가 대단하다. 도시를 벗어나니 맑고 청명한 하늘에 눈 덮인 산야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터키 사람들은 멀리 동쪽에서 이곳까지 와서 좋은 땅을 차지하고 구석기,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 로마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역사적 유물을 가지고 장사를 잘하고 있으니 참 짭짤할 것이다. 점점 고지대로 갈수록 눈 덮인 벌판은 햇볕에 다이아몬드를 뿌린 듯 반짝인다. 먼 산의 신령스런 풍경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시베리아의 눈 쌓인 풍경이나 몽골 벌판 같다. 잠시 자다 보니 눈 지역을 지나 침엽수림 지대로 내려와 있었다.

계속 낮은 지대로 내려가서 드디어 지중해가 보이기 시작. 마나브갓이란 도시의 오토갈에 들어섰다. 느닷없이 영어도 못하는 직원이 우리에게 차를 갈아타라고 한다. 안 그래도 오다가 휴게소에서 보니 차 앞에 아란야에 간다고 쓰여 있어 걱정이 되었다. 영어가 되는 승객에게 물어 보니 안탈야에 들렸다 간다고 한다. 지도에 보니 아란야는 안탈랴와 반대에 놓여 있었다. 갈아타라는 것은 몇 명 때문에 안탈랴에 갔다가 돌아가기 싫다는 의미이다. 황당하게 우리에게 완행버스를 타란다. 원래 표 살 때는 안탈랴에 내려 세르비스 버스까지 탄다고 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따지려고 해도 이 사람들은 영어도 못한다. 우리 뿐 아니라 현지인 한명도 우리 같은 꼴을 당해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완행버스에 옮겨 타긴 했는데 정말 괘씸했다. 30분 빨리 간다고 좋아라 하며 마이너 버스회사를 택한 것이 실수였다.

도착이 1시 반이어야 하는데 느릿하게 기어가는 완행버스는 온갖 사람, 온갖 정류장에 다 서며 간다. 마음이 더욱 답답했다. 게다가 화장실에 들렀어야 했는데 얼결에 완행버스를 타버려 안탈랴에 도착할 때까지 고생을 좀 했다. 1시간 늦어 2시 반에 도착하여 화장실에 갔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이것도 빨리 출발을 안 하는 거다. 겨우 구시가지에 내려 예쁜 하드리아누스 문을 거쳐 옛스런 동네에 들어갔다. 숙소 몇 개를 보다가 사바호텔의 전망 좋고 예쁜 4인실, 45짜리를 아저씨가  36에 깎아줘서 들어갔다.

바닷가로 산책을 가보니 물도 아주 깨끗하고 누군가 스노클링을 한다. 아름다운 만도 좋디만 멀리 보이는 산은 높아서 위에는 눈이 쌓여 있다. 장엄하고 아기자기한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아름다운 동네를 구석구석 걸어가서 Info에 갔다. 수페에 들어가 보았다가 먹을 곳을 찾아 헤맸다. 일단 맛있는 치즈빵을 사먹고 로칸타에서 국물 있는 고기, 야채 음식과 닭 스프를 시켰다. 샐러드가 공짜로 나오고 우리나라처럼 고추장아찌를 맘대로 먹을  수 있다. 맵지만 개운하고 짭짤한 맛이 속을 풀어준다. 새콤매콤하여 그리운 김치맛과 매운맛을 동시에 해결해주니 참 좋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수퍼를 찾아 헤메다가 꽤 멀리까지 갔다. 길을 잃었다.

결국 4시에 나가서 7시에 들어오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비용과 시간을 계산해 보니 개인적으로 유적을 찾아가는 것보다 투어가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고생하면서 이틀은 족히 걸릴 시간이 투어라면 하루에 다 해결된다. 그래서 주인에게 내일 투어를 예약하고 돈을 지불했다. 숙소에서 쉬다가 밤에 다시 나가 수퍼 갔다 오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레스토랑에서 통닭 한 마리 사왔는데 샐러드를 서비스로 넣어준다. 이곳은 먹을 것이 풍족하다.

2007.1.19(금) 안탈랴 (아스펜도스, 페르게, 시데)

아침 7시에 일어나 창밖을 본다. 우리 방이 아래층보다 골목 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풍경을 보기에 좋다. 창이 4개나 되어 아주 밝다. 침대에 앉아서 골목에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을 다 할 수 있다. 건너편 집 정원의 꽃이나 부겐빌리아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앞창 두 개는 동향이라 해가 뜨고 양 옆 창 2개는 골목이 보인다. 화장실 창밖으로는 오래된 건물의 잔해가 보여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더러워진 오리털 파카 2개를 빨아 놓고 아침식사를 하러갔다. 어제 주인이 자기네 아침식사가 Big이라고 자랑하더니만 세 가지 종류의 치즈에 토마토와 만다린, 오이, 달걀을 먹고 싶은 대로 맘껏 먹을 수 있다.

풍성한 아침을 잘 먹고 9시가 넘어서 투어사 사장이 귀여운 시트로엥 차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투어하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뿐이란다. 조금 가서 사무실 앞에 서더니 가이드가 운전대에 앉는다. 이 차로 투어를 한단다. 이렇게 예쁜 컨버터블 차로 편하게 단독 투어를 하게 되었으니 행운이다. 가이드는 나이가 지긋하고 영어가 유창한 훼리크라는 분이다. 말을 하시는 품이 책도 많이 읽으셨고 4개 국어를 하신단다. 대단히 지적이고 생각이 멋진 분이어서 하는 말마다 다 공감이 된다. 남쪽의 안티오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독교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자랐단다. 종교에 관계없이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며 겉모습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처음 간 곳은 페르게. 그리스, 헬레니즘 타워, 로마시대의 문이 다 있다. 거대한 벨로드롬, 아고라, 목욕탕, 아프로디테 신전의 잔해가 멋지게 남아있다. 가이드분이 지식이 너무 해박하고 설명이 훌륭해서 이분 없이 이곳에 왔더라면 ‘그리스 보다 더 큰 돌무더기’를 본 것에 불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목욕탕은 잘 남아 있어서 옷 벗는 라운지, 찬물, 따듯한 곳, 뜨거운 사우나, 수영장으로 나뉘어 지하시설까지 파이프로 잘 연결된 흔적이 남아있다. 천장이 지금은 없지만 나무였단다. 사우나 김이 나오는 구멍은 아래 뜨거운 물을 보내는 곳과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돌을 쌓았다. 돌과 돌은 철로 연결하고 위에 붙이는 대리석 판은 청동으로 연결한다. 과학적이고 놀라운 시스템이다. 요즘의 호화 사우나 목욕탕과 똑같다.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어쩌면 이렇게 같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안이가 여자는 어디서 목욕을 하냐고 물으니 시간대가 달라 밤에 했단다.

다음은 아고라이다. 넓은 대리석 도로에는 전차가 다녔던 바퀴자국이 심하게 파여 남아 있다. 시장의 기능 뿐 아니라 철학, 토론, 사교의 장소였던 이곳은 가게가 즐비한데 이웃집과의 입구가 반대쪽으로 교차하면서 놓여있다. 지나친 경쟁을 피하고 한 집 손님이 너무 많으면 입구가 혼잡하니까 뒤쪽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구조란다. 돌 판에 갈고리와 칼 그림이 있는 곳은 고기 가게. 요즘과 쓰인 것이 똑같다. 곳곳에는 무너진 기둥이나 건물의 잔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아름답고 정교한 문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스에서와는 달리 앉던지 만지던지 뭐라 하는 감시 직원이 없다. 안타깝게도 예산이 없어서 비싼 입장료는 직원 월급으로 쓰일 뿐이고 돈 많은 나라의 지원 없이는 발굴과 복원이 힘든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어제 시내에서 본 것처럼 비잔틴 교회가 상점으로 쓰이는 희한한 풍경이 생겨났다. 터키에는 3,500 여개의 유적이 있지만 발굴을 못 하고 있고 지하 동굴도 500개가 넘는데 마찬가지 처지이다. 로마나 그리스도 가 보았지만 유적, 유물에 있어서 터키는 정말 최고로 대단한 곳이다. 마차 경기를 하던 거대한 타원형의 벨로드롬의 바깥 부분도 역시 상점으로 되어있다. 안쪽은 멋진 형태로 남아있고 일부가 무너져 가고 있다. 곳곳에 예쁜 야생화들이 피어 보기에 좋았다. 쇠락한 유적과 꽃은 참 잘 어울린다. 워낙 멋져서 안 가보면 후회가 될 만한 곳이다.  

다시 차를 타고 한참 달려서 시데. 가는 길에는 목화, 오렌지, 사탕수수 등 풍족한 농산물들이 재배되는 드넓은 땅이다. 그래서 농부들이 돈을 많이 벌고 농촌여성들은 돈을 금으로 바꿔 간직했다가 헤어지게 되면 챙겨 간단다. 현명한 여성들이다. 물자가 풍부하니 모든 야채, 고기, 과일, 생선 등이 많고 싱싱하며 싸다.

가이드 분도 한때는 잘 나가는 대기업 무역회사의 비서로 외국을 돌아다녔단다. 예전에는  부자였다는데 현재 부인과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철학적으로 더 깊고 성숙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행복한 모양이다. 가이드 직업에도 만족해 하셨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터키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와 사정들, 키프로스 이야기, 한국과의 관계와 인연 등 모든 질문에 만족스런 답을 주셨다. 그 말씀이 대단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다. 시데는 바닷가에 있었던 로마도시. 안타깝게도 예전에는 아름다웠을 항구 주변의 유적 위로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서서 점령해 버린 상태. 남아 있는 유적들은 어느 곳보다도 많이 쇠락한 상태여서 오랜 시간 복원이 필요하다. 멀리 원형경기장이 보인다. 앞으로 복원한다는 건물은 꽤 멋이 있을 것 같다. 바닷가에는 멋진 아폴론 신전이 기둥 몇 개만 남아있다.

다시 차를 타고 아스펜도스로 가는 길에 아저씨가 맛있다고 추천하는 안탈랴 오렌지를 길가에서 샀다. 1kg에 0.6이니 우리 돈으로 450원 정도이다. 어제 뉴스에는 오늘 비가 온다고 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이 흐린데도 아슬아슬하게 오지 않고 있다. 한번 비가 오면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단다. 원래는 점심시간인데 류T가 비가 올 듯하니 유적지를 먼저 들른 다음 먹자고 제안했다. 식당에 얘기를 해두고 아스펜도스에 갔다. 반원 형태의 공연장은 거의 완벽한 형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상태로 남아 있다는 유명한 곳이다. 왕의 궁전으로도 이용이 되어 함부로 돌을 빼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잘 보존되었다. 아래에서 봐도 웅장하고 멋있지만 꼭대기에 오르면 사람을 압도한다. 감탄이 절로 나는 곳이다. 마침 독일에서 온 노인들이 단체로 혼 연주를 하고 있어서 소리가 얼마나 잘 울려 퍼지는지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절로 노래가 하고 싶어진다. 여성 가이드 분이 자기 손님들을 위해 노래를 한곡 했다. 언덕 안쪽을 파고 들어간 형태의 공연장은 그리스 양식이 섞인 것이란다. 너무 멋이 있어 음악도 듣고 위쪽의 회랑도 거닐어 보고 가이드의 설명도 들었다. 벽에는 유명한 제논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곳은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 황제 때에도 쓰였단다. 반 지하의 작은 방은 사자를 넣어 둔 곳이고 무대 뒤쪽은 배우들이 준비하고 나오던 곳, 황제가 등장하는 문도 있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식당은 물이 흐르는 습지 위에 세워져 있는 근사한 곳이다. 식탁에는 오렌지를 맘껏 먹도록 가득 쌓아두었다. 올리브유와 석류식초를 뿌려 먹는 토마토 샐러드, 전채요리로 가지, 치즈말이 튀김, 치즈 소스, 야채전 튀김, 양배추 볶음이 나온다. 너무나 맛이 좋고 이것만 먹어도 벌써 배가 부르다. 본 요리로 생선, 닭, 아다나 케밥 중 선택이다. 우리는 생선과 아다나를 주문했다. 아주 담백한 생선구이가 나온다. 송어라는데 아닌 것 같다. 소금을 뿌려 먹으면 싱싱해서 맛이 무척 좋다. 실컷 배부르게 먹고 나니 가이드분이 우리에게 터키 커피를 사주셨다. 원래 우리가 사드리는 것이 옳지 않나? 대접해 주신다는 의미인 것 같다. 페퍼민트 술이 곁들여 나온다. 이걸 쭉 마시고 커피는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신다.

식사 후 로마의 수도교를 보러 갔다. 시골 마을에 있는데 정말 너무나 거대하여 사람을 압도한다. 물 하나 끌어 쓰기 위해 노예에게 저토록 어마어마하고 정교한 건축물을 쌓게 했을까. 참 무지막지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보석점에 들렀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그냥 왔다. 어두워진 시간에 돌아와 숙소에 도착. 팁을 드리는 게 예의일지 아닐지 고민을 하다가 류T가 정중하게 작은 팁이라도 드릴 기회를 주시겠냐고 여쭙고 드렸다. 너무 감사해 하며 헤어졌다. 이 회사는 1명의 손님이라도 취소하지 않고 투어를 하며 점심을 잘 먹여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어제 따져 보았지만 별로 이문이 안 남는 가격이어서 점심은 케밥 하나 정도 먹는 줄 알았다. 대 만족인 투어였다(9시-5시 40분, 입장료 포함 1인 35유로).

숙소에서 씻고 쉬면서 어제 산 빵과 닭고기, 소시지를 먹고 사두었던 수퍼마켓 오렌지와 오늘 산 오렌지의 맛을 비교해 보았다. 단연 물 많고 향기가 좋으며 달콤한 안탈랴 오렌지가 승리. 감동적인 맛이다. 즐거운 하루였다. 점심을 잘 먹어서 나가지도 않고 수다를 떨다가 10시 넘어서 잤다.

2007.1.20(토) 안탈랴 시내

어젯밤에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침에는 길이 젖었다. 가이드 아저씨 덕분이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풍성한 안탈랴가 좋다. 하루 더 있기로 했다. 오후에는 추천해 주신 라라비치에 가볼까 한다. 아침 먹으러 내려가니 마당에 한 가득 우리나라 사람들이 왔다. 아침에 도착해 방이 나기를 기다린단다. 음식을 푸짐하게 먹었다. 무엇보다 오이 토마토와 만다린을 먹을 수 있어 좋다. 따끈한 차도 맛있다. 하늘이 더욱 흐려지고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서 주인에게 우산 2개를 빌렸다. 맞으면 꽤 많이 젖을 비가 내린다. 비는 오지만 우산을 쓰고 고고학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준비하는 시간 동안 우산을 거의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비가 그쳐 간다.

트램 정류장 앞에서 한국에 전화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바람에 오렌지들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아무도 줍지 않아 아까웠다. 트램 시간은 30분 간격이라 꽤 드문 편이다. 아주 옛스러운 트램은 구도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종점까지 가는 바닷가의 풍경은 아름답다. 박물관은 10리라. 15를 받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쌌다. 페르게 유적의 유물이 대단하다. 아름다운 동상들 뿐 만 아니라 원형극장 벽면위의 부조는 특히 정교하고 놀라웠다. 뱀 다리 족이 신들과의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이다. 사자, 소, 말, 그리펀 등에게 물리는 장면들이 아주 생동감 있다.

특히 석관이 많았는데 벽면의 다양한 문양과 정교함이 놀라웠다. 물론 단순한 문양들도 있다. 석관 뚜껑에 주인 부부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관은 벽면에 디오니소스와 함께 술잔치를 벌이는 다양한 남녀 나신의 모습들을 참 아름답고 생생하게 부조로 만들었다. 이분들이 살아생전에 술과 파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랫배들이 다들 술 배로 볼록 나와 있는 것이 더욱 인간적이다. 우리도 고구려 벽화에 보면 주인장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하도록 그리지 않던가. 또 앞면과 오른쪽의 옆면보다 왼쪽 옆면이 소홀하게 조각되어 있다. 뒷면은 매우 소홀하게 대충 조각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면은 굳이 잘할 필요가 없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유적의 사진을 보니 석관이 놓여 있는 위치의 오른쪽 측면에 들어오는 문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장을 만들 때 뒷면은 벽에 붙이는 곳이니 제대로 색을 칠하거나 하지 않았다. 몇몇 석관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도굴되어 흘러 나갔다가 돌아온 것도 있다. 심지어 상반신 위는 미국 박물관에 있고 하반신만 있는 석상도 있다. 반환되기를 바란다는 기사가 붙어 있어서 우리의 빼앗긴 유물들이 떠올랐다. 동전도 로마왕의 시기별로 다 있고 유물이 흔하고도 방대했다. 터키의 타일, 복식, 물건 등을 보면 끝이 난다.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찬란하게 밝으나 바람이 무척 심하다. 안탈랴 해변으로 내려가니 아래쪽이라 그런지 바람이 잦아들고 물도 잔잔하여 좋았다. 무척 깨끗한 바닷물과 닳아서 거의 동글동글해진 작은 돌들의 향연.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 돌들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모두 아주 귀한 보석들보다 더 특별했다. 거대한 덩어리가 쪼개져서 콩보다 작은 둥근 돌이 되기까지 어떤 시간의 과정을 견디어 이곳에 왔을까. 한 개의 돌도 너무나 위대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들, 모이고 흩어지는 형태, 작은 점처럼 또는 담배처럼 지나가는 비행기, 따듯한 햇살 모든 것이 평화롭다. 해안이는 하늘이 비행기 탈 때 내려다보는 섬과 바다 같단다. 수영복만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날이다. 몇 사람은 들어갔다.

전철 시간에 맞춰 올라왔다. 전철 안은 무척 따듯하다. 종점까지 타고 갔다. 벌써 2시가 넘은 시간이라 모퉁이의 멋진 식당에 들어갔다. 피데도 훌륭하고 곁들여 구워준 피자 껍질 같은 얇은 빵, 토마토 샐러드, 각종 고기를 구운 스페셜 요리가 양도 많고 너무나 맛있다. 모두 배 터질 지경으로 먹었다. 모든 요리는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려 순박하고 담백하다. 치즈 고기 피데의 재료는 풍부하고 진했다. 대만족이다. 바람도 심하고 라라비치까지 가려면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안탈랴 해변에 가봤으니 그냥 숙소로 가자고 한다. 라라비치에 가고 싶은 사람은 나뿐이니 포기할 수밖에. 라라비치라...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진 이름인가...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숙소까지 오는데 바람이 무척 심하다.

숙소의 구 도시 입구 건물 위에 젊은 여자가 내려다보며 난간에 한 발을 올리고 있었다. 아래에 사람들도 많고 앰뷸런스까지 와 있었다. 여자가 워낙 산뜻해 보여서 무슨 방송 촬영하는 줄 알았다. 사람들과 함께 뭐하는 건가 쳐다보려니까 앞의 아저씨가 나에게 ‘ She will be dead! ' 하는 거다. 여자 앞에는 아저씨 둘이 약간 떨어져서 뭔가 얘기를 한다. 여자는 더 동적인 몸짓으로 손을 써 가며 말을 한다. 두 사람이 설득하고 있는가 보다. 너무 찜찜해서 빠르게 길을 건너 구 도시로 들어왔다.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날, 살기 좋은 안탈랴에서 죽는다고 하는 저 여자. 삶에서 무슨 집착과 불만이 그리 많은 걸까? 어떤 고통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것 중에 행복을 찾지 못하는 저 모습에 약간 화가 난다. 사막에서도 사람들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정말 죽고 싶다면 조용히 죽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이 꼭 저런 행동을 한다. 한참 걸어 들어오다 뒤를 돌아 건물을 보니 여자가 없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안 들렸던 것으로 봐서 잘 설득되어 내려간 모양이다.

숙소에 와서 누우니 창 4개 밖으로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푸른 하늘이 보인다. 안방에 누워 낮잠을 자던 옛 생각이 난다.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다 잠이 들었다. 5시 반에 바닷가에 가서 저녁노을을 보고 시내에 나갔다. 남편의 뒷꿈치가 계속 낫지 않아 밴드 사러 약국에 들르고 바나나도 샀다. 파묵칼레 투어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닭 케밥, 양내장 케밥, 홍합밥, 사과, 콜라, 맥주 사서 돌아왔다. 배부르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