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즈미르

2007.1.24(수) 이즈미르

아침 8시에 일어나 짐을 싸고 식사하러 내려갔다. 잠을 잘 자서 몸이 좀 나아진 듯하다. 이곳은 아침을 각자 주문해 먹을 수 있다고 자랑했었다. 오믈렛, 스크램블드 에그, 터키식 아침을 시켰다. 모두 아주 만족스럽다. 정성스레 주문을 받아 만들어 주는 것도 고맙지만 잼도 직접 만든 것을 예쁜 종지에 담아 준다. 아주 맛이 좋다. 손님을 잘 먹이려는 이곳 분위기에 감동했다. 사실 성의가 없이 찍 뜯어먹게 만든 버터나 잼을 주면 기분이 별로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오토갈에 가서 표를 사고 나니 30분 정도가 남는다. 마지막으로 작은 시내를 둘러보았다. 이즈미르 까지는 45분 소요. 세르비스 버스로 중심부까지 데려다 준다. 기차역에 가서 기차표를 물어 보니 가격이 버스보다 훨씬 비싸고 시간은 두 배가 걸린다. 결국 많은 버스회사들 중 가격이 가장 싼 버스를 끊었다(메이저 28, Tempo20). 벌써 12시라 기차역 앞의 로칸타에서 가지요리, 닭다리를 시켜서 먹었는데 겨우 8. 싸고 맛있다(나중에 보니 책에 나온 집). 걸어서 해변 쪽으로 갔다. 이즈미르는 터키에서 3번째에 속하는 매우 큰 도시이다. 은근히 구걸하는 사람이나 값싼 물건을 사달라는 사람이 많다. 바다는 별로 깨끗하지 않고 그리스의 피레우스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그리스와 전쟁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비극의 장소이다.

시장은 아름다운 옛 건물을 이용하여 쓰는 아기자기한 곳이다. 이곳저곳 구경하였다. 비가 올 듯 찌뿌둥한 날씨에 사실 시간은 많지만 가고 싶은 곳이 별로 없다. 터키 커피를 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려고 시장 통의 전통 찻집에 앉았다. 터키 식으로 오밀조밀 작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거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꽤 유명한 곳인 듯 여기저기에 기사를 붙여 놓았다. 옆자리의 품위 있는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게 된 남편. 혼자 살고 계신다는데 아내는 프랑스에서 일하고 있는 프랑스 사람이라 떨어져 지낸다는 등의 간단한 이야기였다. 날마다 이곳에서 차를 드시는 것이 일과인 듯하다. 잔잔하면서 고독이 묻어나는 분이었다. 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섞여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커피는 잔에 곱게 간 원두 분말을 넣고 설탕과 함께 끓여서 가라앉힌 후 그대로 마시는 거다. 그때는 그걸 모르고 가루가 위에 떠올라 있을 때부터 그냥 먹었다. 너무 분말이 고와서 콩을 간 듯한 구수한 맛이 난다. 죽 같다. 너무 진해서 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 나가려고 계산을 하려는데 할아버지께서 벌써 하셨단다.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다니 고마웠다.

인사를 드리고 헤어져서 귀금속 시장에 갔다. 술탄 아흐멧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풍부하고 다양한 은제품을 구경하다가 터키석 반지와 목걸이를 깎아서 3만원 정도에 사고 류T도 특이한 목걸이 3개를 싼값에 샀다. 뒤에 고리가 없이 줄로 된 2리라짜리 목걸이는 목이 안 들어간다는 몸짓을 하니 특별히 무료로 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물건이 다양하고 관광지로 오는 곳이 아니라서 가격도 저렴하여 한참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3시 반이 되어 시내를 걸어 광장에 이르렀다. 터키에는 자기나라 국기가 많이 걸려있는데 이곳에는 반짝이로 만들어진 국기가 있다. 바람이 불면 무대의 여자 옷처럼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물결처럼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다. 여자애가 휴지를 사달라면서 빵 살 돈을 달라고 계속 조른다. 우리가 먹던 빵을 나누어주니 싫다고 계속 돈 달라고 한다. 결국 엄마가 나타나 한쪽에 데리고 가서 혼을 낸다.

백화점에도 들렀는데 물건 값이 매우 비싸다. 어느 나라나 잘 사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도시로 오니 빈부격차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언덕 위 성채에 가려고 33번 버스를 탔다. 남매인 터키 꼬마 둘이 유난히 예의바르게 우리를 챙긴다. 먹던 전통사탕까지 나누어준다. 완전히 설탕 맛이다. 잘 안되지만 해안이와  대충 서로 얘기도 나누었다. 남자애의 이름은 메흐멧이다. 언덕 위에 내려 성채 위로 올라가니 이즈미르 전체가 잘 보이고 아름다운 만의 풍경이 그림 같다. 구름이 많고 곧 해가 넘어갈 것 같다. 간식과 맥주를 먹고 시간도 많으니 역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올라오는 것은 버스로 한참이지만 내려가는 것은 골목으로 똑바로 가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산동네 사람들은 가난하고 아이들은 농담처럼 ‘Money money!' 해대지만 물으면 친절하게 길을 잘 안내해 준다.

불과 15분 만에 내려와서 작은 시장의 로칸타에 들어갔다. 피망 도르마와 간 요리를 시켰는데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푸딩과 쵸코 푸딩까지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겨우 7.5를 받는다. 어떻게 이 정도를 받는지 아무리 짜 맞추어도 계산이 안 나온다. 음식은 맛있고 가격은 싼 이즈미르에 감동이다. 걸어서 바닷가로 갔다. 공원의 둑에 앉아 바다를 발밑에 두고 지나가는 배와 철썩이는 파도를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검은 바다 위의 배들은 바다의 버스처럼 이쪽저쪽으로 사람을 빠르게 실어 나른다.

다시 공원으로 걸어가 이런저런 여행의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앉아 있다가 광장으로 왔다. 바람은 많이 불지만 밤에도 별로 춥지는 않다. 수퍼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 사고 버스 회사 사무실. 앉아서 일기를 쓰다가 세르비스 버스로 오토갈에 왔다. 0.75나 받는 화장실에 모두 가서 세수하고 이를 닦고 버스에서 잘 준비를 한다. 의외로 Tempo 버스는 좋았다. 물론 싼 탓에 사람들도 많다. 메이저 버스회사의 표에 비해 셋을 합치면 24리라나 절약한 셈이다. 처음에 삐끼 아저씨와 갔을 때는 22를 부르다 나중에 우리끼리 가니 20이 되었다. 곧 출발하니 잠을 자야겠다. 앙카라에서는 잠을 잘지 그냥 뜰지 결정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