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앙카라 - 샤프란볼루 |
2007.1.25(목) 이즈미르 - 앙카라 간밤에 역시 허리도 아프고 영 불편한 것이 거의 자지 못해 정신이 없다. 아침 7시에 도착하여 전철로 울루스에 왔다. 도시가 어찌나 큰지. 이곳은 너무 광활한 공원과 멀찍이 떨어진 큰 건물들뿐이다. 어디서 숙소를 찾을지 당혹스러웠다. 열심히 걸어 호텔이 많은 곳에 와서 여러 군데를 물어 보았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냄새나고 지저분한 숙소가 최저 50이다. 그냥 박물관만 들렸다 뜨자고 얘기하며 물어물어 박물관으로 향한다. 계속 성채 쪽으로 오르는 길이니 짐은 무겁고 잠은 못 잤고 정신이 몽롱하다. 앞쪽에 보이는 칼레 호텔 한군데만 더 물어보고 박물관 가자면서 들어갔다. 1인 25란다. 해안이가 아이인 것을 가만하여 50에 해준다고 한다. 화장실은 많이 낡았지만 침구도 깨끗하고 괜찮은 숙소이다. 모두 바로 잠이 들었다. 침대 속이 얼마나 포근하던지 다 눕자마나 잠들었다. 11시에 일어나 박물관에 가는데 오르막길이 굉장히 힘들다. 짐을 지고 갔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언덕 꼭대기 성채 바로 밑에 있었다.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특히 내가 보고 싶었던 히타이트 유물까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양이 엄청나서 보기가 벅찰 정도이다. 믿기지 않는 훌륭한 유물들이 많았다. 한 나라의 수도니까 앙카라에 꼭 와야 된다고 주장했던 해안이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소머리와 사슴형상의 의식을 거행하는 도구들, 몸이 뚱뚱한 지모신들, 수 천년 전의 나무 가구들, 항아리까지 다양하다. 유적지에서 가져온 히타이트 유물들은 얼굴이 부드럽고 동물들의 형상도 우리의 것처럼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이 얼마나 자신 있고 뿌리 깊은 문명을 가졌던지 짐작할 수 있었다. 참 마음에 든다. 그런데 몸이 아직도 너무 피곤하고 유물은 많아 꼼꼼하게 보지 못했다. 그곳에서 박물관에 근무하시는 가이드 할아버지를 만났다. 입구에서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거셨다. 반가워라 하시며 자신은 한국전에 참전했었단다. 옛이야기를 하시며 추억에 잠기시는 듯했다. 수원, 영등포, 아리랑 노래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까지 말씀하신다. 특히 수원에서는 전우들이 많이 죽었단다. 다 보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정말 훌륭한 곳이라고 했다. 이 박물관이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곳으로 뽑힌 적도 있다며 벽에 걸린 상을 보여주신다. 그러고도 남는다. 정말 최고다. 인사드리고 밖으로 나와 성채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스의 유물을 잘라 기둥을 옆으로 박아버리고 곳곳에 대리석 토막들을 이용하여 쌓은 흔적이 좀 안타까웠다(재활용을 잘 했다고 해야 하나?). 성 안은 이미 사람들이 장악하여 살고 있었다. 미로와 같은 골목을 빠져 나와 내려 왔다. 숙소 앞의 맛있는 케밥 집에서 닭, 양을 시켜 푸짐하게 먹고(점심에만 문을 연다. 할아버지 두 분이 운영하는데 포크 등이 약간 지저분했다. 아이란 포함 5) 숙소에 잠시 들르자 한 것이 모두 힘이 들어서 또 잤다. 깨어보니 벌써 늦은 오후. 아타튀르크 묘는 포기하고 중심부나 가보자면서 4시 반에 나갔다. 배가 고파 피데나 하나 먹고 로칸타에 가자고 피데 집에 갔다. 그런데 피데도 크지만(곤야식으로 얇고 고기를 많이 얹으며 양쪽을 접지 않는다) 공짜 샐러드와 아다나 케밥의 양이 너무 많다. 맛이 매우 좋지만 먹느라 힘들었다. 배가 많이 불러서 로칸타는 포기이다. 재래 시장통과 버스가 다니는 길 주변을 따라 걷다가 좀 헤멨다. 어둡고 매연이 심해 앞이 잘 안보일 지경이다. 복잡한 길을 걷는 것도 힘이 들지만 오염된 공기에서 숨 쉬는 것도 어렵다. 어둡고 뿌연 대기 사이로 보이는 정육점의 붉은 불빛. 거기에 걸린 내장들도 기괴해 보인다. 가로등까지 꺼져 있어 분위기는 더욱 음산하다. 우리 모두 정신이 나가고 멍해져서 중심지고 뭐고 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결정했다. 꼭 인도에 온 것 같다. 이런 엄청난 아수라장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어찌 사나 싶다. 수퍼에 들렀다가 숙소로 오는 길에 밝고 분위기가 좋은 시장을 만났다. 약간 정신이 들어 생동감이 넘치는 시장이 잘 느껴지고 모든 것이 다시 또렷이 보였다. 그나마 숨을 돌리고 견딜 만해서 땅콩과 석류를 사고 숙소에 왔다. 앙카라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건지 신기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류T는 매우 친절한 이 사람들이 신기하단다. 박물관도 최고 수준이다. 다만 우리는 꽤 지쳤고 나는 감기가 들어 힘든 상태이다. 2007.1.26(금) 앙카라 - 사프란볼루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이곳 숙소에서는 정말 푹 잘 잤다. 감기가 떨어진 듯 몸이 가벼워졌다. 9시에 밥 먹으로 내려갔는데 최악의 식사가 제공되었다. 잼, 스프레드 치즈, 버터에 삶은 달걀, 차, 빵 뿐 과일이나 야채 한쪽이 없다. 사실 류T는 하루 더 있자 하고 해안이와 나는 공해에 찌든 도시보다는 밤거리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사프란볼루로 뜨는 게 좋다는 의견이었다. 아침 먹으며 생각해 보자고 했었는데 성의 없는 식사를 보고는 앙카라 구경 후 뜨기로 했다. 안탈랴나 셀축의 성의 있는 아침이 그리웠다. 짐을 맡긴 후 무작정 2층 시내버스를 탔다. 그냥 앉아서 외곽 지역의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한다. 깔끔하고 한적한 주택가는 어제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내려서 주위를 둘러본 후 다시 2층 버스를 타고 크즈라이. 좀 걷고 구경을 해봐도 특별한 것이 없다. 터키식 즉석음식점 들어갔는데 가격은 싸지만 끝까지 먹기가 힘든 퍽퍽한 음식이었다. 전철로 아타튀르크 묘에 갔다. 입구에서 짐도 맡아주고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된다. 태도도 정중하지만 장소가 깔끔한 곳이다. 넓은 공간에 놓인 박물관은 터키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알 수 있게 잘 꾸며 놓았다. 모두 무료다. 석관도 보고 군인들의 교대의식도 운 좋게 보았다. 국회 앞의 그리스의 군인들이 떠오르면서 두 나라 다 참 좋은 사람들인데 전쟁을 하고 죽게 된 역사적 과정이 안타까웠다. 지금도 서로 껄끄러운 관계로 지내고 있지 않는가. 전쟁이란 이득을 보는 소수자를 위한 것일 뿐 모두가 피해자이다. 그냥 걸어 내려오려다 중간에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쉽게 왔다. 아타튀르크는 영웅이 될 만한 사람이다. 전쟁에 이겨 나라를 지키고 대통령이 되어 개혁을 단행했으니 모두들 존경하고 그의 사진이나 그림이 곳곳에 있다.. 전철로 울루스에 내려 숙소까지 빠르게 걸어 올라가 짐을 가지고 다시 전철역. 오토갈까지 갔다. 3시 차를 타길 바랬다. 기대했던 대로 ‘사프란볼루!’를 외치니 누군가가 몇 번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사프란볼루 투어 버스를 산 시간이 3시. 출발은 다행히 3시 5분에 하였다. 사람이 꽉 차서 땀 냄새가 진동한다. 승무원이 셋이었는데 친절하고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편했다. 우리에게 바스톤쥬 호텔을 추천해 준다. 300년 이상 된 전통가옥으로 책에 나와 있어 한번 가보려던 곳이었다. 오빠들이 해안이에게 장난도 치고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해주었다. 3시간 반 정도 걸려서 사프란볼루 오토갈에 도착했다. 시간도 늦었고 길이 어두워 택시를 탔다. 바스톤쥬 호텔은 퍽 마음에 드는 멋진 곳이었다. 매니저 언니는 75를 불렀지만 결국 60에 머물기로 했다. 남편은 의외로 싸다며 좋아한다. 구식 의자가 응접실처럼 놓인 커다란 방이다. 다음날도 하루 종일 뜨끈하게 난방을 틀어줬다. 매우 시설이 좋고 깨끗하며 이불도 크고 푹신하여 집처럼 포근한 곳이었다. 밤에 동네를 돌아보았는데 밤이라 식당도 거의 문을 닫았다. 수퍼에서 과일만 사고 왔다. 숙소에서 만티 2개(양고기 넣은 콩알 만한 만두)와 닭 스프, 야채 달걀볶음을 시켜 먹었다. 맛은 뭐라 말하기 힘들다. 요구르트를 섞어 주는 만티는 새콤하고 특이하다. 이 집 아들이 기타 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고 싶어 하는데 잘 몰라서 남편이 도와주었다. 차까지 마시고 왔다. 남편과 해안이는 저녁식사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한다. 나는 별로다. 그러나 가족적이고 남의 집에 온 듯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좋았다. 앙카라를 떠나서 이곳에 온 것이 만족스럽다. 옛날 집에 쏙 들어온 느낌의 무척 예쁜 이 숙소는 장롱 문 같은 곳을 열면 화장실이 나타나 신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