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불친절한 그리스인? 아니올시다

 

불친절한 그리스인이라...

터키와 그리스를 동시에 여행했던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 친절한 터키인, 불친절한 그리스인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를 여행하다 보면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나라 사람들이 과거 유럽 문명의 시원지였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콧대가 높고 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왜들 이렇게나 그리스인들에 대한 험담만을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랬다. 여행자가 여행 중 만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문외한인 여행자의 행동에 대해 그 나라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나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객관적으로 외국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약간 버릇이 없고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인은 정이 많고 알고 보면 남을 잘 배려하려고 하는 민족 아니던가. 이렇게 입장을 뒤집어 보면 그리스인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를 여행했다.

테살로니키의 사람들

첫 날,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한 테살로니키. 과연 이곳에 머물 것인지, 바로 아테네로 출발할 것인지 고민하는 도중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도와줄 것 있냐고 묻는다. 처음이라 나도 약간 당황했는지 웃으면서 없다고는 했지만, 초행길인 도시에서 왜 도움을 받을 일이 없었겠나? 일단 하루를 머물기로 하고 역을 나서면서 그사람이 영어 잘했는데 길이나 좀 물어 볼껄 하고 후회했다. 일단 나서면서 좌우를 살펴보니 막막하다. 역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는 지도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막막했던 것.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시는 노인네가 계시길래 물어보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신다. 그래서 중요한 건물인 소피아 성당(하기아 소피아?)을 물으니 알겠다는 투로 뭐라뭐라 말씀하시는데, 온통 그리스어. 우리가 잘 못알아 듣자 손짓을 섞어서 방향을 알려주시고 얼마 멀지 않다고, 걸어서 갈 수 있다고 최대한 알아듣도록 말씀하셨다. 그 분이 말씀한 위치를 따라 걷다가 자신이 없어서 두명 정도에게 더 물어 보았는데 역시나 영어는 못하지만 꿋꿋하게 그리스어로 최대한 알려주려는 몸짓. 사실 길을 물어 본 그 위치가 실상은 바로 내가 가려고 하는 Egnatia 거리.

한 호텔(AGORA H)에 들어가 방을 알아보니 비싼 방값(40유로)에 비해 상당히 허름했다. 다른 호텔을 알아보려고 나오면서 우리에게 아주 편안한 말투로 응대하시던 쥔 양반에게 혹시 지도 구할 데가 없냐니까 서럽을 뒤적뒤적 하시더니 테살로니키 지도를 꺼내 주신다. 우린 그 지도 덕분에 문제없이 하루종일 테살로니키 관광을 할 수 있었는데 , 막상 그 호텔 앞에 있는 AUGUST 호텔에 묵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었지만.

여행 하면서 느낀 사람들의 모습

아테네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다. 지하철 안에는 분명히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탔을 것이건만 기회만 되면 서로 뭐라뭐라 이야기를 선뜻 나누는 모습이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왠지 이런 사람들이라면 다른 이방인에게도 친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 이런 광경은 그리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코린트 가는 버스를 타고 갈 때다. 해안이랑 경아씨가 앞 자리에 같이 앉고 내 옆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았다. 힐끔거리면서 눈치를 보니 아주머니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 한참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자리의 아저씨가 전화를 받다 말고 내게 뭐라뭐라 한다. 뭔지 몰라 어벙하게 있는데, 역시나 아주머니께서 영어를 좀 하시는지 그분이 내게 펜을 빌리려고 하는 거라 말씀해 주었다. 내가 펜이 없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펜을 꺼내 아저씨에게 빌려 주는 거다. 외국인이든 아니든 아무에게나 스스럼없이 뭔가를 빌리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나? 또한 알게 모르게 나를 신경쓰고 있던 아주머니의 태도도 그렇고.

버스는 약 1시간 반을 달렸다. 그러다 할머니 한 분이 타시는데 실내는 자리가 없는 상태. 할머니께서 앞에 서자 젊은이들 몇몇이 뒤를 힐끔거린다. 자리가 없는지? 양보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그러다가 안되겠던지 한 아가씨가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고 하차하는 계단에 덜컥 걸터 앉는다. 다들 안도하는 분위기. 역시나 어른 공경하는 건 그리스나 우리나 마찬가지로구나. 이런 점은 러시아나 터키에서도 역시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러시아는 좀 더한데 노인 앞에서 앉아 있으면 뭔가 혼날 분위기였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가는 미케네는 간선도로에서 내려 5km를 걸어들어가야 하기에 내리는 지점을 몰라서 버스기사에게 알려달라고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막상 버스가 도착했는데도 우리가 내릴 준비를 안하자 운전사를 비롯해 네다섯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면서 여기니까 내리라고 해 준다. 관심 없는 듯 한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사실은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던 것. 게다가 미케네에서 카날까지 오는 버스표를 팔았던 아저씨는 무척 무뚝뚝하긴 했지만 막상 버스 시간이 다가 오자 우리가 버스를 놓칠까봐 매표소 밖에 나와서 버스가 올 때 까지 지켜보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표를 팔 때, 사람이 없으면 버스가 그냥 지나가기 때문에 꼭 정류장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 주었던 분이다.

코린트역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는 기차는 네명이 마주보도록 되어 있는 칸이 있었다. 이곳에 우리 셋이 앉아서 가는데 다른 데 자리가 있었음에도 예쁜 여자 아이가 와서 털썩 앉는다. 6살 정도로 보였지만 참으로 조신한 자세를 보이는 아이. 해안이가 초컬릿을 건네자 예의바르게 "에프하리스토(감사합니다)" 하고 받고 차분히 앉아 있다. 이방인 세명이 앉은 자리에 어린이가 과감하게 앉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스스럼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기본 습관이로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편해졌다.

결론일까요?

그 외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이 사람들, 외국인에게 무뚝뚝하게 보이고는 있지만 실상은 계속 뭐 도와 줄 것 없나 하고 준비하고 있는 상태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역시나 뭐 한가지 물어보면 기다렸다는 듯 대뜸 자세하게 대답을 해 주는 모습이다. 어쩌다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치면 나는 싱긋 웃어서 눈인사를 했고 역시나 돌아오는 웃음 섞인 눈인사. 또, 어딜 가나 우리가 탄 버스 운전기사는 우리가 잘 못 내리지는 않나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최대한 배려해 주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데도 어딜 봐서 그리스인들이 불친절하다고 할 것인가. 일단 이런 믿음이 들자 여행하는 것이 마치 내 나라 여행하듯 마음이 편했다. 뭐 걱정 할 게 있나, 도와주려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물론, 터키인들의 친절함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 중에도 충분히 이해가 됐었다. 여행 중 대부분의 경우인데, 일단 길 가다가 아무나 잡고 뭘 물어 보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내 물음에 대해 그 자신이 잘 모를 경우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아 세운 뒤 내가 물은 내용을 또 물어 본다. 그 사람 역시 흔쾌하게 질문에 대해 생각해 주고.
어떤 경우엔 상점 문을 두드려 일하는 사람을 끌어 낸 뒤에 또 물어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 주위에는 몇몇이 둘러 싸서 내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나 여행자에 대해 친절한 사람들을 인도 여행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 내 나라 다니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 터키여행 중 느낀 점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특히 불친절하다는 생각은 일종의 편견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터키인들이 동양인들에게 특별한 친근감을 느끼고 친절을 베푸는 반면, 그리스인들은 이방인에 대해 거부감이 없이 편안하게 대해 준다는 정도일까.

교원 해외여행 신고서에 이런 항목이 있다. "어느 곳에서든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입장으로 한국의 명예를 깎아 내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그렇다. 여행자는 그 나라의 얼굴이다. 내가 먼저 최대한 상대 나라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뭐 하나 물어볼 때라도 먼저 인사하고 웃음으로 대하면 거기에 대고 불친절할 사람이 지구상에 어디 있겠나.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라는 속담은 이방의 문화를 여행 할 때 여행자가 알아야 할 만고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