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케네, 코린트 1일 뚜벅이 투어

 

미케네 유적으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정보와 교통편이 조금 달라 아침엔 우왕좌왕했다. 새벽에 라리사 역 옆의 펠로폰네소스 역에 가 보니 그곳은 이미 폐쇄된 역. 테살로니키 방면과 펠로폰네소스 방면 모두 라리사 역에서 취급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케네까지 가는 열차는 없음. 코린토스 가는 열차 시간은 한시간 반이나 남았길래 택시를 잡아 타고 미케네 가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3.8유로쯤 나왔는데 5유로를 받자 나머지는 팁으로 꿀꺽. 뭐 그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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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 마을 가는 길

7시 30분 첫차를 타고 1시간 45분 만에 미케네 입구에 도착했다. 내려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5km를 걸어가야 하는데 아침이라 한적한 데다 공기까지 맑고 주변에 펼쳐진 풍경이 볼만해서 걸을 만 한 길이다. 길 가의 오렌지 나무엔 오렌지가 예쁘게 담뿍 열렸다. 역시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라 12월에 열매를 맺는 오렌지. 지나다 조그만 간이역인 미키네역을 보았는데 협궤 선로를 파헤쳐 무슨 공사를 하는 중이다.  이러니 열차가 안 다니지.  세명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도 길은 참 멀다. 한 참 걸려 미키네 마을에 도착했지만 이제부턴 오르막길로 2km랜다. 완만한 오르막이긴 하지만 3km를 걸어온 뒤라 조금 힘들긴 하다. 마을은 비수기여서 그런지 무척 한적했고 다른 관광객도 보이지 않아 적막함까지 느껴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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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 요새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이윽고 미케네 유적이 보인다. 유적지 뒤엔 높은 벌거숭이 산이 유적을 받치고 있어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다.  왜 이리 척박하고 높은 곳에 도시를 세웠을까 하는 궁금증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 홀본의 오녀산성 역시 산꼭대기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니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무엇보다도 군사적인 이유가 우선이겠지. 특히 유적지에 올라서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니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을 만치 탁 트인 경치. 저절로 호연지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여기서 보니 까마득히 먼 데서 적들이 쳐들어 오더라도 속속들이 보이지 않겠나 생각을 했다


미키네 유적지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클릭하세요) 멀리 에게해가 보입니다

우리가 토요일에 이곳을 찾았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입장료는 무료다. 그리스 관광청의 정책이 휴일엔 무료로 입장시킨다는 것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설마 토요일에도 그럴라구? 하고 기대를 접었다가 막상 무료로 입장하니까 먼 길 걸어 온 보람이 몇배다. ^^ 유적지엔 부부인 듯 한 커플 한 쌍만이 있어서 더욱 과거의 유적지 탐방에 분위기를 더해 준다.

미케네 문명이라는 이름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였다. 여기세 나오는 악당헬 박사는 미케네 유적을 발굴하다가 초 고대의 과학기술을 발견하게 되고 그 기술을 이용해 기계괴수들을 만들어 세계 정복을 꾀한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었다. 이 미케네 유적이 얼마나 신비로우면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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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적지는 4천여년 전의 문명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정교하며 유적지 언덕 아래 있는 박물관에서 나온 유물들의 디자인 감각은 현대의 그것을 앞선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유명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도 볼 만 했지만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각종 목걸이와 토우(흙을 구워 만든 인형)의 디자인 감각이다. 이리도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일 수 있을까.

유적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이드북이 필수인데 우리에게 마침 Dorling & Kindersley (서울문화사)의 Greece 라는 책에 있는 미케네 유적 복원도와 설명도를 복사한 것이 있어서 복원도와 유적을 하나하나 일치시켜 가며 마치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한 군데 한 군데 짚어 나가니 좀 더 실감나게 유적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이런 가이드북이 없다면 어떤 유적지에 가든지 그것 보며, 제법 잘 보존된 돌무더기로구나 라는 생각 밖에는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유적 탐방을 마치고 박물관에 들어설 즈음 몇 무리의 단체관광객이 대형 버스로 도착한다. 비수기라 한적한 것이 아니라 워낙 일찍 온 탓에 단체관광객들의 움직임보다 조금 빨랐던 것이 호젓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해 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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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나오니 햇살이 반짝 비친다. 아침에는 약간 쌀쌀하기까지 했는데 이젠 약간 더울 지경.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는 우리는 삽시간에 계절을 잘 못 짚은 이방인이 되었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오리탈 파카를 뒤집어 쓰고 내려오다가 서로를 보면서 킬킬 웃었다. 점점 다리가 풀리려고 하는데, 간식으로 싸온 고다치즈를 한점씩 베어물면서 내려오니까 갑자기 힘이 불쑥불쑥 난다. 워낙 고단백음식이라서 이런 강행군에는 즉효를 발휘하는 것 같군.

 조금 내려오다 미케네 마을에서 잠시 쉬며 점심식사. 뭐, 식사라기에 별 것 있나. 아테네 중앙시장에서 사온 소시지와 빵, 버터, 슈퍼마켓에서 산 고다 치즈를 끼워 먹는 초간편식. 그래도 든든한 식사가 되는 걸. 단체관광객이 지나갔다 해도 미케네 마을은 여전히 한가롭다. 숙소라든가 가게는 개점휴업 상태.

코린트로 이동

한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오니 매표하는 아저씨가 코린트시로 바로 가는 버스는 2:30분에 한대 있지만 코린트 인근 카날(그 땐 이게 뭔가 했는데 아마도 코린트 지협을 말하는 듯)로 가는 버스는 30분마다 있기 때문에 일단 그 버스를 타고 카날로 간 뒤에 거기서 코린토스 유적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아저씨의 조언대로 버스를 잡아타고 한 숨 자니 카날이다. 분명 이곳은 미케네로 올 때 버스가 들렀던 휴게소였다.

카날에 내려 옛 코린트(꼭 Ancient Korinthos라고 해야 한다. 안그러면 신도시로 가기 때문)가는 차편을 물으니 오로지 택시뿐이랜다. 일단 방향을 물어 본뒤 정류장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의외로 쉽게 잡히는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자 오케이 하고 타랜다. 택시는 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한참을 쌩쌩 달린다. 제법 멀리 왔을까? ancient Korinthos 의 팻말이 보이고 택시는 마을을 가로질러 코린트 유적 매표소 앞에 딱 내려 주었다. 8.5유로. 10유로를 받아 든 기사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꺼내다 싱긋 웃으며 (정말 귀엽게) 내가 가질까? 한다.  길도 오랜 길이었고 오다 보니 역시 비수기인 탓에 나가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아 팁으로 드렸다.

코린토스 유적지 역시 무료.... 작은 환성이 나온다. 세명이라 한번 들어갈 때마다 24유로씩 하는 입장료가 두번째로 무료인지라 아낀 돈이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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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후 100년 경에 로마에 의해 재건된 이 도시는 향락과 사치로 유명하여 52년에 사도 바울이 이곳을 방문해 이들의 삶을 비난했다는데 이 도시의 사람들은 오히려 사도 바울을 신성 모독죄로 고발했던 연단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도시의 수원지였던 피레네 샘인데 현재에도 이 마을 사람들의 수원지로 쓰인다는 게 놀랍다. 도시는 대체적으로 작은 규모의 중심 거리가 남아 있을 뿐이며 대부분 폐허다. 그런데도 그리스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 유적 중 가장 큰 유적에 속한다니... 가장 인상적인 유물이라는 아폴론 신전 역시 기둥 몇 개만 남아 있는 정도. 유적지 외곽의 대형 원형 극장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 주듯 사그라져 있었다. 박물관에는 도시에서 발굴된 석상들과 그리스 특유의 문양과 그림을 새긴 도자기들이 볼만하다. 역사책에서 익히 보았던 그 도자기들. 또한 바닥 장식으로 쓰였던 모자이크는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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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카이온 길
과 시지프스 신화가 깃들어 있는 산 (오른쪽)

원래는 도시와 항구를 연결했다는 레카이온 길이 정식 출구인데 하도 관광객이  없어서 우리는 그쪽에 출구가 없는 줄 알고 들어온 입구로 다시 나왔는데 실상은 그쪽이 출구다. 출구라서 다시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는데 사진을 찍으러 잠깐 들어가는 건 오케이. 잠깐 들어가서 레카이온 길의 모습을 찍고 경아씨를 모델로 해서 사진을 하나 찍었는데,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다가 코린토스 유적지에 시지프스의 신화가 담긴 바로 그 산이 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놓친 부분이라서 사진을 뒤지다 보니 우연히 찍힌 그 산의 모습. 험악한 지형으로 인해 시지프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다.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는 곳에선 다른 관광객 두 명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택시가 도통 안오는 것 같다. 유적지 부근의 식당들도 아마 일찍 문을 닫은 듯 반응이 없고. 한적함은 이런 불편함을 동반하는 것이로구나. 한참을 기다리다가 택시 한대가 오는데 그분들이 타고 나서 택시 기사가 우릴 부른다. 어딜 가냐고. 마침 앞에 탄 분들 역시 코린토 역으로 가신다길래 끼어 탔다. 5인승 택시에 여섯명이서. 코린토 역까지 택시비는 8유로가 나왔지만 5유로씩 받네. 아마 합승이라 알아서 깎아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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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 역은 전철 교외선이다. 아마 미케네 역 앞 철로를 파헤치던 일도 전철화 철도를 연결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코린토 역에서 아테네로 가는 것은 물론 바로 아테네 공항까지 가는 열차도 있다. 물론 두시간에 한대 꼴로 드물기는 했다. 오는 열차 안에서 생각하니 아침에 기차 시간 때문에 미케네를 먼저 돌아보기로 한 것인데 오늘 돌아 본 일정을 생각해 보니 우리가 돈 일정이 하루 코스로는 제대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수기인 겨울의 코린토스 유적 분위기로 보아 미케네로 가기 위해 카날까지 가는 택시는 구하기 힘들것 같기 때문.

코린토스 역 에서 10여분 걸어간 지점에는 대형 쇼핑센터인 참피온과 또 하나의 대형 쇼핑센터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문을 닫고 있다. 왜일까...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우리 옆자리에 앉으신 아주머니 (영어를 잘했다!) 에게 물어 보니 오늘은 그리스의 설날과 같은 명절 이브랜다. 오늘, 내일 대부분의 쇼핑 센터가 문을 닫는다고. 어쩌지? 저녁 꺼리가 없는데. 끼니를 슈퍼에서 해결하는 우리로서는 돌아가는 길에 아테네 거리의 참피온에서 저녁꺼리를 준비하려 했던 터라 큰일이다 싶었지만, 다행히 숙소 아래쪽 거리의 성당 옆 작은 편의점이 문을 열고 있어 이틀치 식량해결은 성공. 이 집은 일요일에도 잘 문을 닫지 않고 저녁 늦게까지도 문을 열어 놓고 있는 품이 아마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곳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