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콘야에서 만난 터키인 사와스

터키 사람과 만나다

터키에서 배낭 여행을 하다 보면 한번 쯤은 터키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갈 일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터키의 접대 방식은 밤 11시 쯤 간단한 다과로 시작해서, 식사, 과일, 술까지 종종 새벽을 넘겨서까지 이루어지며 말하기를 좋아해 그 동안 계속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라기에 성미급한 우리 한국사람이 초대받아 가면 참 힘들기도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경아씨와 나는, 그러니까 되도록 눈 맞추지 않도록 주의하자며 농담을 하기도 했고. ^^ 하지만 해안이는 뭔가 기대하는 눈치이긴 했다.

곤야의 메블라나 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필사본 코란이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아랍어를 읽을 수 없는 우리로서는 단지 화려한 그림처럼 보일 뿐이어서 안타까웠는데 우리처럼 여행을 오신 한 터키 할아버지가 전시된 큰 코란책 앞에서 아랍어로 코란을 읽으시는 게 아닌가. 옆에서 듣고 있노라니 내용은 몰라도 구절 구절 발음이 무척 아름답다. 게다가 발음 중간 중간 --훔, 하는 소리가 들려서 마치 불교 경전 읽는 것 같길래 관심을 보이니까 따라 읽어 보랜다. 발음이 참 신기하다.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한 면을 읽고 나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다른 전시물을 구경했다.

박물관의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데 순하게 생긴 사람 한 명이 반갑게 맞는다. 왜 이럴까? 그는 박물관에서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중등 교사다)를 만나러 박물관에 왔다 한다. 우리를 향해 어디서 왔는지, 곤야의 인상이 어떤지 질문을 해 온다. 나 역시, 메블라나 교단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는 사와스 알페르(Savas Alper. v는 우 로 발음한다)라 하며 메블라나 교단 스승 중 한명인 베두쟈만 사이드누르시 (Bediuzzaman SAID NURSI)를 흠모하는 무슬림이었다. 옆에는 아까 내게 아랍어 코란을 가르쳐 주던 할아버지께서 계셨고.

아마도 둘이 같은 교파에 속한 사람들인데 내가 아까 코란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할아버지께서 그 이야기를 사와스에게 해 주어서 아까 우리를 그렇게 반갑게 맞았나 보다. 코란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인이란 참으로 드문 일이니. 사와스와 이야기 도중 우리나라의 무슬림은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우리나라는 대부분 불교와 기독교도들이고 무슬림은 거의 없다고 말했었다.

할아버지는 반 호수 근처에 사신다고. 버스로 16시간 걸려 어제 도착하셨다고 하셨다. 겨울이라 아예 터키 동부는 생각도 안했었는데 마침 가고 싶었던 반 호수 지방에서 오신 분이라 버스 다니는 길은 괜찮냐고 물으니 문제 없다 하신다. 너무 우리가 터키 동부를 걱정했었나?

사와스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남 간호사면서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투잡스족이다. 저녁에 커피 한잔 하자는 말에 우리가 좋다고 하니, 근무시간이 다 되었다며 박물관을 나가면서 우리에게 묵는 호텔을 물어 온다. 호텔 알려 주고 사와스의 근무가 끝나는 저녁 8시로 약속을 잡았다. 해안이는 기대 만빵. 우리는 사실 조금 걱정도 됐다. 정중하긴 하지만 알고보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 우리들로서는 커피한잔 하다 초대받게 되면 어쩌지? 하고.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내 성격.

사와스는 정확히 7시50분에 호텔에 와서 우리를 부른다.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호텔에서 가까웠다)에 가서 아내에게 우리를 소개시키고 나서 찻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9시에 근무를 마치고 어머니댁에 맡겨놓은 아이를 찾아서 합류할 거라나. 9시 15분 쯤엔 올 거라 한다.

찻집이 afra 쇼핑센터 옆에 있다고 했는데 난 내가 알고 있는 메블라나 거리의 afra인줄 알았건만 한 없이 가고 또 간다. 걸어서 약 30여분이 걸렸는데도 멀지 않다고 하니, 여기 사람들의 멀다는 인식은 모두들 차타고 다니는 한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걸어 가면서 사와스는 우리에게 책을 선물했다. 베두자만 사이드 누르시 스승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이 책을 세번씩은 읽어 주길 바란다고. 해안이에게도 간단한 책을 줬는데 A GUIDE FOR YOUTH 라는 메블라나 교단 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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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스네 가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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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스의 6살 난 딸 제이나크

쇼핑센터에서 우리는 한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처와 딸의 도착이 예상 외로 늦어져 사와스는 안절부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처음보는 외국인 친구를 앉혀 놓고 한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사와스는 쇼핑 센터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준다면서 우리를 데리고 돌아다녔다. 쇼핑 센터 안의 판매원들 모두 우리를 힐끔거린다. 외국인이 올리 없는 이런 도심 쇼핑센터에 터키인이 외국인을 데리고 다니니 신기했나 보다.

사와스의 집에 간 것은 너무 많이 우리를 기다리게 해서 사와스가 너무나 미안해 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시간이 벌써 10시40분. 사와스 처가 몰고온 자동차로 도시를 가로질러 메블라나 센터 부근의 사와스의 아파트로 갔다. 특이한 점은 집에 들어갈 때 모두들 신발을 밖에다 그냥 둔다는 건데, 다른집들도 그랬다.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가는 풍습은 확실히 좋은 거다. 서양인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집을 청결히 할까.

사와스네 집은 멋졌다. 집은 40평 쯤 되어 보였고 사치스럽진 않지만 짜임새 있고 화려하게 꾸몄다. 제이낙과 해안이는 놀이방에서 게임을 하며 놀고 우리는 거실에서 차를 마셨다. 차와 함께 푸짐하게 차려온 너트류. 사와스는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고 일본인과 한국인들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기술은 수준급이라며 칭찬해주었다. 반면 중국 제품은 값은 싸지만 품질이 조악하다고 한다. 어딜 가나 중국산은 저가 이미지다. 하물며 태국 같은 나라에서도 그러니 중국은 도대체 뭐 하자는 걸까?

차를 마시고 나자 과일 바구니. 특이한 점은 각각 과일 바구니를 따로 내 온다는 점이다. 한 바구니에 다 담아 주인이 깎아주는대로 먹는 게 아니라 자기 바구니의 과일을 까 먹는다. 사와스와 아내는 매일 이렇게 늦는다고 하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집안 정리를 했을까. 게다가 오늘 우리는 갑자기 온 손님인데도 치밀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며 감탄이 나올 밖에. 아직 터키 여인들의 삶은 고달파 보인다. 그래도 그런 일들을 당연히 생각하며 일과 가사를 다 완벽하게 해내는 데는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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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스네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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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낙

스파게티를 하겠으니 먹고 가라는 말에 숙소에 가야 한다 하니 아예 자고 가랜다. 집 놔두고 왜 밖에서 자냐고. 우린 다음날 아침 차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그때는 새벽 1시 50분쯤. 사와스네 처는 해안이에게 줄 선물을 한 봉지 가득 넣었다. 직접 짠 덧버선과 각종 악세사리 등등. 우리네 정서와 꼭 같다. 온 손님을 집에다 서슴없이 재우는 우리민족의 습성, 뭐 하나라도 쥐어 주고 보내려는 시골 아주머니들의 인심 그대로.  이래서, 터키에 오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한국인들이 받나 보다. 사와스가 호텔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알고보니 호텔 카운터와 친구다. 카운터는 친구의 친구는 역시 친구라며 내게 악수를 건넸다. 나도 반갑게 악수했고.  무척 인상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