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숨겨진 보물, 안탈랴

숨겨진 보물 안탈랴

안탈랴! 이름부터 낭만적이다. 이곳으로 가는 버스 탈랴? 안탈랴? 당근 타야 된다.^^

구시가지 칼레이치에서 바다 넘어 멀리 보이는 절경에 매료되고, 지중해 풍의 예쁜 항구에 매료되고, 풍성한 식탁과 맛있는 음식에 매료되는 도시. 그 뿐 아니다. 안탈랴-마나브갓 사이의 주 도로 근방에 줄지어 위치한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유적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명제, "로마 유적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라는 서유럽 위주의 편협한 사고를 일거에 깨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왜 이리 멋진 유적이 그리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을까? 이와 같은 엄청난 유적지를 전 국토 곳곳에 가지고 있는 터키는 왜 관광자원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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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이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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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랴 비치

터키의 실상

이런 질문들은 겨우 세명을 데리고 조촐하게 1일 투어를 해야 했던 가이드 훼리크의 말을 듣고서는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이분은 역사에 무척 관심이 많은 분인데 제법 큰 사업을 하시다가 망하고 이혼당했으며 지금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다고. 시간이 날 땐 책을 볼 수 있고, 역사 유적 타방을 할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신다 하는 멋진 분이다.

이분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으니, 터키 전국토에 이런 야외 유적만 3500여곳이 있으며 카파도키아 데린쿠유 같은 지하 동굴이 500여개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입장료 수입은 관리 직원들 월급으로만 겨우 충당되는 수준이고 발굴 하려고 해도 정부가 가난해 여력이 없다고. 일본이나 한국, 프랑스 같은 나라가 지원을 해 주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하신다. 역시... 가난함이 일단 문제인가. 하기사, 유적 하나 발굴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 그래서 그런지 이런 유적들엔 그 유적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에 훨씬 못미치는 관리가 이루어진다. 그리스 크레타에서는 우연히 밟고 올라선 돌이 유적이라 황급히 내려오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어는데, 이곳은 뭐를 하든 제지하는 이가 없다. 심지어는 아고라의 주 도로 양 옆으로 기념품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즐비했으랴. 뭐, 옛날과 같은 장소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전통(?)을 잇는 것이긴 한데, 문화재에 대한 허술한 관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로마 유산을 차지한 터키인, 고구려 유산을 차지한 중국인

훼리크는 유적 하나하나마다 오리지널과 복제품을 설명했는데, 1세기 경 만들어진 기둥이 부러진 자리에 보이는 철근과 동제 고리를 가리키며 연신 원더풀, 판타스틱을 외쳐 대셨다. 이런 완벽한 설계와 시공을 2천년전에 했던 로마인들의 기술에 대해 진정 경의를 표하시는 거다. 이분의 태도와 요즘 중국 정부가 고구려 유적을 자기네 거라고 주장하고 있는 파렴치한 모습이 오버랩된다. 로마인 것은 로마인에게 경의를 보내야 하듯, 고구려 것은 고구려의 후손들에게 경의를 보내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만약 터키가 이곳을 점령했다고, 과거 이곳을 지배하던 로마가 터키 역사의 일부분 이라고 하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게 아닌가. 중국 정부는 심지어는 징기스칸 까지 "중국의 황제" 였다고 하니 말이다.

페르게 도시 유적

10여년 전 로마에 갔다가 도저히 설명이 없이는 이곳에서 경기가 치루어졌다는 상상을 하기 힘들정도로 부서진 유적과 원형경기장을 보고서는 많이 실망했었는데. 그리고 이번에 그리스 코린토스 유적에 가서는 그나마 제대로 남아 있는 도시 유적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었는데, 이곳 페르게에 와서는 모든 생각이 하얗게 된다.

완벽할 정도로 남아 있는 로마 목욕탕은 바닥이 허물어져 지하 내부의 구조가 그대로 보여진다. 냉탕, 온탕, 열탕이 차례로 이어져 있고 그 사이를 물이 흐를 수 있게 연결하던 파이프 구조도 온전하다. 아고라 역시 옛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고 일단 그 남아 있는 스케일에 매료되게 된다. 이런 유적지를 설명할 가이드가 없었다면 얼마나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을 것인가? 그저 엄청 큰 돌무더기라고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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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대던 파이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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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 회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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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용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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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에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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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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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바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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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 사이를 잇던 동제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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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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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탕 지하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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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들어가기 전 기다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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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남아 있는 고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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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에 녹인 철물을 박기 위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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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줏간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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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에서 장사하는 장사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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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바퀴 흔적

또한 유적 외곽의 원형경기장은 일부 바스러졌을 뿐 약간의 보수를 거치면 옛날과 꼭 같이 경기를 치룰 수도 있을 정도다. 이곳은 유적 바깥쪽이라 입장료도 없다. 이만한 유적이 만약 이탈리아에 있다면 대우가 달라졌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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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고 다닌 차, 시트로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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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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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라진 유적에 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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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경기장에서

완벽한 원형 극장, 아스펜도스

가이드북에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원형극장이라는 글을 보았다. 투르크 제국 시절 술탄의 궁전으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건축자재로 돌을 빼 가지 못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한다. 실제 연주가 가능하며 매년 연주를 하고 있다는 곳. 그리스 에피타우로스 원형극장 역시 그랬다는데 그곳을 보고 오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곳을 꼭 보고 싶었다.

원형 극장에 도착하자 난 가이드 훼리크 처럼 원더풀!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판타스틱이다! 이것이 진정 2세기에 세워진 건물이란 말인가. 물론 후대에 보수도 했겠지만 말이다. 이런 곳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극장 안에서는 독일인 관광객으로구성된 간이 연주팀이 합주를 하고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조금 있다 보니 가이드인 듯한 분이 노래를 부르시는데 육성으로도 구석구석 똑똑히 들리는 것이 설계의 과학성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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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아스펜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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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주단이 시범적으로 연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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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에 있던 석상들은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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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고 있는 분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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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도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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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우리

아, 터키는 행복한 나라다. 이런 알토란 같은 땅에 정착하여 엄청난 문화유산들을 거저 가지게 되었으니. 유럽 국가들이 그들의 문화적 근원인 로마를 점령한, 아시아에서 기원한 유목민족인 터키에 대해 역사적인 앙심을 품고 있는 것이 이해될 정도. 하지만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인 나는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