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나톨리아 박물관 만으로 앙카라는 가치가 있다

처음 느낌은 당황

앙카라이와 메트로를 갈아 타고 울루스 역에 도착했다. 대강 방향을 잡고 밖으로 나오니, 이건 황량한 벌판이 아닌가? 관광지가 몰려 있는 울루스 지구라고 했지만 주변이 건물로 빽빽한 것이 아니라 벌판이다. 하지만 곧 이해했다. 이 역은 공원 옆에 있음을. 하지만 어쩐다? 어디서 호텔을 찾지? 대강 번화해 보이는 위쪽으로 가니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보인다. 길잡이가 되는 물건.  번화한 길을 따라 찬찬히 보니 호텔이 있긴 한데 너무 비싸보이는 곳 뿐. 헤메다 골목길로 들어섰지만 별 두개짜리는 모조리 90-100리라다. 허름해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방을 가진 호텔 조차도 75리라를 부른다. 관광객 별로 없는 도시라더니 왜 이래?

다 포기하고,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이나 보고 바로 떠나자 하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물어 물어 가다가 마지막으로 알아보자 하고 들어간 칼레 호텔에서 겨우 여장을 풀었다. 허름하지만 잘 관리된 호텔.

다들 잠을 자고 나는 어제 못 쓴 일기를 쓰는데 잠이 안올 것 같더니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졌다. 언제 잠이 온건지도 모른다.

너무나 바쁜 도시, 앙카라,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의 도시 앙카라.

저녁에 번화가라는 크즈라이에나 갔다 올까 하고 숙소를 나섰다. 길 가에 있는 피데 하우스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샐러드도 너무나(!) 푸짐하고 피데는 왜 이리도 두꺼운지. 맛은 있었지만 배가 불러져서 다른 로칸타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아직 크즈라이는 위치에 대한 감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흘러간 곳은 시내버스 정류장. 이건 지옥이다. 안그래도 어둡고 안개가 내려 매캐한 것이,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안가는데 가로등까지 거의 없는 데다 돌무시들은 왜 이리 많은가. 사람들은 그 복잡한 도로에서 잘 알아서 차를 비켜 길을 건너고. 이런 환경이라면 앙카라 사람들은 모두다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을까? 인도의 구석진 뒷골목을 지나는 느낌이다. 결국 크즈라이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숙소로 귀환했다.

하지만 이곳 앙카라. 매력 있다. 이런 아비규환 같은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치고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살갑고 친절하기 때문. 보통 대도시 시민들이라면 남의 일에 상관 않으면서 친절하다 해도 다분히 사무적인 것 아니겠나.

이곳, 앙카라에서 만난 이들? 전혀 아니다. 여유가 없을 만한 환경이지만 길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무척 살갑다. 무거운 짐을 들고 처음 앙카라이를 탄 우리들에게 몇 명의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했고, 난 경아씨와 해안이만 앉혔는데(사실 서서 가도 괜찮은 상태) 앉아 있던 왠 아저씨가 내게 거의 고압(^^)적으로 Sit Down! 하는 게 아닌가. 앉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앉아서 편히 왔다. 나중에 내릴 때 어김없이 웃음 섞인 눈인사. 파리건 서울이건 방콕이건 대도시 지하철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껴 본 건 처음이다.

길을 뭐 하나 물어 보면 잘 모른다. 영어를 모르므로 알아도 말을 못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길 가던 다른 이가 우리를 보고서는 대뜸 말에 끼어들며 내게 설명한다. 그 때, 처음 내가 물어 봤던 이는 그냥 가지 못하고 안절부절 옆에 서 있다. 처음 이를 대신해서 알려 주던 이가 잘 모르는 상황이 되자 길가던 다른 이에게 물어 본다. 그 때까지 처음 물어봤던 이가 옆에 머쓱한 듯 서 있길래 고맙다는 눈인사로 풀어(^^)줬다.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 이런 광경이 있을 수 있나?  매번 만나는 사람마다 매번 분위기는 같다.

앙카라는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다. 일정을 파악하다가 결국 둘쨋날에 샤프란볼루로 이동하긴 했지만, 단지 복잡하고 정신없다는 앙카라의 첫인상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좀 더 있어볼 만한 도시라는 최종 평가를 내린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최고다. 왜냐고? 다른 박물관에서 도통 보지 못했던 기이한 유물들로 가득하다. 인류 최초의 철기문명이라고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힛타이트의 온전한 철기 유적들. 기독교 문화(적어도 이슬람까지)에 길들인 사람들이 본다면 참으로 기괴할 것이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고대의 비너스(뚱뚱한 여자로 다산을 상징한다), 소와 사슴뿔을 형상화한 동상들, 뿔 자체를 테마로 하여 만든 동상들. 우리 옛 전설의 새 신앙을 연상시키는 모습의 유물들 (솟대 위에 올라 있는 새 모습이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쐐기문자들. 그 자세하고도 완벽한 유물들이란!

쓰임을 알 수 없는 익살스런 표정을 가진 도구들, 멍청한 오리.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보자면 이것은 대부분 악마의 상징들이다. 내가 왜 이런 기괴한 이미지를 받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니 어릴 적부터 받은 기독교의 영향,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점철된 역사들, 기독교에 의해 상징화된 뿔의 안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인 사고관을 주입받아 왔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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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벙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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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을 주제로 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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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상징, 아나톨리아의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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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극대화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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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골렘을 닮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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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런 모습의 상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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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뿔,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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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곡선의 소뿔

하지만 이 유적들은 기독교에 의해 악마라는 개념이 성립하기도 전의 문명 유물들이 아닌가. 여기서 떠올리는 음모의 흔적. 아마도 서양인들은 이들 힛타이트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거의 악마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리고 그 기억들을 모아 흔히 알고 있는 뿔달린 악마의 이미지를 창조했을 것이다. 사실 이 유적들은 고조선시대부터 뿔을 신성시했던 우리네 고대 모습과 닮아 있다. 신라의 우두머리 명칭 각간, 이는 뿔달린 지배자란 뜻이다. 고구려의 투구를 기억하는가? 양쪽으로 마치 소처럼 뿔이 달렸던. 유럽인들의 무기에는 이런 장비가 없다. 바이킹이 뿔달린 투구를 썼지만 그들은 엄밀히 말해 유럽의 변방, 주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기원도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훈족,고구려,몽골족 등등 고대 몽골로이드 정복자들은 모두 뿔달린 투구를 쓴다. 뿔을 신성시하는 문화가 먼저 성하고 나중에 뿔을 악마시하는 문화가 유럽에 퍼진다. 이 이유를 탐구하는 것이 잊혀진 고대 역사의 진면목이 무엇일지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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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형 아론이 섬기던 황금소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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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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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네 폐백상의 기러기와 같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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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스핑크스문의 부조. 현지엔 복사본이.

약간 경사진 0.5층으로 내려가니 그곳엔 보아즈칼레의 힛타이트 도읍지인 힛투자주에서 가져온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난 한 번 더 놀랐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우리와 아무 연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힛타이트의 석상들은 왜 이리 친근한가? 그리스 석상들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고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달랐던 점을 생각하면 이곳의 석상들은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 이곳의 석상들에서, 나는 쉽게도 경복궁에 수호신으로 놓여 있는 앙증맞은 신수들의 얼굴을 본다. 동글동글하고 푸근한 그 얼굴들. 관광객들에게 장난을 걸듯 어리숙한 표정들의 신수들이 이곳, 힛타이트에도 역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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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았던 거죠? 우리 민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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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표정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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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귀엽다

사람들의 모습? 역시나 마찬가지다. 제주의 하르방을 연상시키는 조금은 어리숙하고 푸근한 얼굴들. 이들이 과연 그 강대했던 족속들이 맞는가? 아니, 그런 해석은 옳지 않을 것이다. 진정 강대한 힘을 가진 종족이기에 이리도 두려움 없는 얼굴들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두려움을 가지는 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험상궂은 수호신을 조각하지만, 스스로  강대한 자는 그런 식의 수호신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또 하나 더 있다. 이곳에서 찾은 12지신상.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조각된 품과 포즈가 우리네 12지신상과 너무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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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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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십이지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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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한 품을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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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너무나도 빈약하게 배워 왔던 힛타이트에 대해 바로 옆 동네 가족들의 신상을 알지 못하고 지내온 것처럼 미안함이 앞선다. 지금까지 터키가 이 땅, 아나톨리아 고원을 차지한 것은 로마를 침략해서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같은 아시아 몽골로이드의 옛 땅을 회복한 것일 뿐. 로마가 1500년을 차지 했기에 남의 땅이라고 믿어 왔을 뿐이다. 유물로 보자면 힛타이트는 분명 우리나 터키와 같은 계열인 아시아 북방 민족이다.

도착 첫날, 잠에 취해서 힘들게 돌아다닌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이지만 머리를 때리는 멍하는 느낌은 그대로다. 너무나 유적이 많아 좁은 박물관 안에 빽빽히 놓은 것이 안스럽다. 더 폼나게 전시할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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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쐐기문. 이미 해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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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러운 복잡한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