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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6 테를지 투어 4일. 테를지 남부 하이킹  [Photo's Here]

 

아침에는 몹시 추웠다. 천장을 안 덮어 줬다. 이제 가을 느낌이 난다. 밤새 춥고 발이 시려 뒤척이다가 뒤집어쓰고 잤다. 숙소 안의 봉지에서 뭔가를 뒤지려는지 쥐가 머리 옆으로 지나간다. 늑대가 게르 주변을 돌며 그르릉 거리기도 한다. 그러면 개가 짖고 난리다. 여러 가지 이유로 깊은 잠을 못 잤다.

7시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고 앉아서 얘기하다가 산책을 갔다. 추워서 가만히 못 있겠다. 해가 올라와 등이 따뜻하다. 산으로 가면 이슬에 젖으니 아래로 내려간다. 주인집 개들이 우르르 따라 온다. 늑대에게는 험하게 굴어도 사람들에게는 살갑기 그지없다. 참 충직한 놈들이다. 개들이라면 몽골의 개들 같아야 한다. 물론 말도 그렇다. 언덕 위에 올라갔다. 주변 경치가 훤히 보이고 멀리 거북바위가 확 들어온다. 마땅히 쉴 곳이 없어 그냥 내려왔다. 낙타가 있다. 발 사이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묶어서 조금씩 걸어야 하는 데도 이 녀석 잘 걸어간다. 몸이 좋아 보인다. 사람도 외면하고 꿋꿋하게 맛난 풀을 찾아 걸어간다.

아침은 간단하게 잼과 버터를 곁들이 빵이다. 남은 밥은 끓여 먹었다. 다시 쌀을 불린다. 나중을 위해 밥을 많이 했다. 10시 반에 말 탈 준비를 하라고 연락이 왔다. 오늘은 호수에 가자고 했다. 아르메니아 커플은 자흐가와 거북바위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주인 아들인 남바와 다른 쪽을 돌 것이다.

UB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내고 사람들이 다양한 요구를 해대서 주인은 화가 좀 났다. 화를 풀어 드리려고 미안하다면서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이 분도 한국에 다녀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이 아저씨 욱하고 마는 성격인지 어깨가 매우 부드럽다. 뒤끝 없는 분인 듯.

적당히 가다가 양쪽으로 갈린다. 그들은 평지를 따라 가고 우리는 거대한 산을 넘어 내려간다. 왼쪽 방향으로 평지와 습지를 따라 걷는다. 야크와 어린 소, 말들이 많다. 비어있는 여름 캠프들도 지난다. 쓸쓸한 여름의 끝자락 모습이다. 구름이 끼었다 쨍하고 해가 났다 하기를 반복한다. 가끔 말이 꽤 달려 준다. 좋은 말이다. 언제 호수가 나오나 기다려도 끝없이 넓은 평지만 보인다.

남바가 마트에 가겠냐고 한다. 쥬스, 맥주, 물을 샀다. 남바가 들어 준단다. 다시 벌판을 달린다. 결국 호수라는 건 없었던 거다. 영국 애 나티아가 호수에 갔다 왔다고 말한 것은 톨강을 얘기한 듯하다. 주인아저씨에게 자꾸 호수에 데려다 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나 싶다. 결국 크게 테를지를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격이 된 거다. 숙소에 다다를 즈음에 골프장을 보았다. 여러 곳에서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물이 귀한 이곳에서 뭐하는 건지. 3시간을 쉬지 않고 말을 탔다. 돌아오는 길에 언덕에서 작은 새끼 짐승이 물려 죽은 걸 봤는데 혹시 늑대가 한 짓이 아닐까.

숙소에 돌아와 밥을 곁들인 점심을 먹었다. 요리는 매일 잘 해주는 편이다. 오후에 나티아와 말을 더 타려고 했는데 진하게 3시간을 타서 다리가 아프다. 톨강으로 걸어 가보기로 한다. 웨하스와 남은 초코렛, 음료를 챙긴다. 산지 쪽의 언덕을 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어 별로 힘들지 않다. 언덕에 올라 나무 밑에서 쉬며 웨하스를 먹는데 비가 내린다. 침엽수 밖에 없는데 어쩌라고. 그러더니 우박이 쏟아진다. 얼음을 주워 먹어봤다. 사각하고 맛있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비가 그어 다시 가보기로 한다.

내리막길은 걷기 쉽다. 팍팍한 길보다는 길을 벗어난 언덕에 작은 트레일이 있어 그곳을 따라가면 된다. 내가 말에서 떨어졌던 장소인 건초 모으는 막사를 지난다. 아저씨들이 어깨가 괜찮은지 몸짓을 한다. 한눈에 알아보고 기억을 해 주시니 고맙다. 막 오라고 손짓을 한다. 잠시 쉬는 시간인 듯하다. 아주머니도 계신데 뭔가를 끓이고 있다. 일단 자리를 만들어 우리를 앉힌 후 수테차를 커다란 대접으로 한가득 주셨다. 튀김빵에 치즈, 버터, 설탕을 섞은 일종의 달달한 버터를 발라 먹으라고 주신다. 큰 스푼으로 하나 떠서 얹어 준다. 심지어 남편에게는 큰 스푼으로 떠서 입에 퍽 넣어 준다. 얼결에 기꺼이 먹어야 했다.

자꾸 빵을 권하셔서 배가 부르다고 둥글게 손으로 그렸더니 강에 갔다 오면 배가 쏙 꺼진다는 제스쳐를 취하신다. 말도 안 통하는데 참 대단한 정이다. 남편은 결국 왕창 버터를 얹은 빵을 2개나 먹어야 했다. 말똥 말린 연료로 끓이고 있는 칼국수도 먹고 가라고 한다. 결국 몽골김치(파 종류를 소금 뿌려 절인 것)를 듬뿍 넣어 시원하고 시큼한 맛의 칼국수도 먹었다. 배가 불러 그렇지 맛이 좋다. 따뜻한 정에 마음이 푸근하다. 인사를 나누고 가겠다고 했더니 돌아올 때 또 들르란다.

톨강으로 걸어간다. 물에 한번 들어가고 싶었는데 바람이 불고 쌀쌀하다. 팔, 다리와 발만 씻었다. 습지를 지나 위로 걸어간다. 물을 지나 건너갈 곳이 보인다. 자갈길은 또 다른 작은 강줄기로 이어진다. 아까 음식을 주셨던 아저씨와 만들던 아주머니가 말 타고 물을 뜨러 오셨다. 우리가 물에 들어가 씻었더라면 남이 먹는 물에서 민망한 모습을 보일 뻔 했다. 얼마나 생각 없고 무례해 보였을까. 추워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

다시 걸어 되돌아간다. 그 막사를 피해갈 방법이 없는데 어쩌나 했더니만 여지없이 막사에서 우리를 부른다. 이번에는 차를 끓이고 계셨다. 또 그 튀김 빵을 준다. 남편은 배가 부른데도 또다시 2개를 버터 발라서 먹어야 했다. 차에다가도 그 버터를 퍽 넣어주셔서 버터차가 되었다. 흐흑!

옆에서 담배를 말아 피우는 품이 완전 50년대 풍경이다. 아줌마는 밥해주고 가셨고 이분들은 여기서 숙식을 하며 계속 건초를 모으신단다.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풍경을 보고 계셔서 우리도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다. 그냥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인다. 남편이 긴 낫으로 한번 풀을 베보자고 하니 좋아라 하신다. 드릴 것도 없고 카메라의 배터리도 나가서 사진 한 장 남길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선생이라고 몸짓을 하니 “박쉬?”하신다. 맞다. 그 단어가 박쉬였다. 가려고 일어난다. 빵 4개와 버터를 비닐을 찢어 싸주신다. 이분들을 어쩌란 말이냐... 심지어는 여기서 자고 내일 가라고 한다. 몸짓으로 내일 울란바타르, 2일 후 한국 간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언덕으로 걸어 올라가 넘어가면 힘들어 다시 배가 쏙 들어간다고 또 싸 주신 거다. 가다가 먹으라고.

열심히 다시 언덕을 오른다. 막판 고갯길에서 남편과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오해가 있었다. 저리로 넘으면 지름길이 나올까 하고 말했던 것을 남편은 가자고 받아들인 거다. 가급적 내 얘기를 들어 주려는 남편의 태도가 반영된 것인데, 나는 남편이 그리로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따라갔다. 주도로를 벗어나 인적 없는 오른쪽 언덕을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보기와 다르게 오를수록 언덕이 높아지는 거다. 아래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핀 언덕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다 올라가서도 바위가 또 나타난다. 내리막길의 끝자락은 푹 꺼지고 아래에 나무가 자란다. 접근이 어렵다. 날은 곧 저물 테고 어쩐다... 다행히 왼쪽 바위 사이로 작은 트레일이 보인다. 해가 넘어가서 점점 어두워지는 중이다. 늑대가 나올까 걱정되기도 한다. 아주 좁은 샛길을 따라 넘으니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막막한 상황이 전개된다. 벼랑처럼 되어있는 아득한 곳 아래에 울창한 숲이 있다. 암담한 상황이다.

왼쪽의 나무들 사이로 작은 트레일을 발견했다. 사람 한명이 가는 수준의 발자국길이라고 해야 할까. 그 길을 따라 걸어 산을 끼고 돌아서 드디어 탁 트인 지형을 만났다. 숙소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결국 첫날 샘들과 오른 그 큰 바위에 도착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거의 정상 부분만을 따라 더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온 셈이다. 서로 말이 잘 안 맞아서 선택한 이상한 길이었지만 다리 아픈 것도 다 잊어버리고 신기해했다. 그런 오지체험을 하다니...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는데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정말 막막한 순간에는 이렇게 되려고 아저씨가 잘 먹이고 빵을 챙겨주었는가 싶었다. 그걸 먹고 버텨야 하니까.

멀리 샘들이 전파시키고 가신 살인배구를 하는 외국인들이 보여서 안심이 되어 앉아 쉬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래서 내려오는 길은 행복했다. 내일은 위로 올라가서 분지의 아래쪽을 탐사할 예정이다. 그러면 이 주변의 지형 파악이 다 끝날 거다.

저녁은 감자 칩과 야채 많고 짜장 같은 스파게티이다. 맛있다. 밥을 덜어 놓고 누룽지를 끓여서 많이 먹었다. 가지고 온 버터는 맛보라고 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아르메니아 커플에게 나머지를 주었다. 역시 러시아 계열 사람들이 이 맛을 안다. 저녁 때 다들 불 피워 논다. 우린 피곤해서 난로에 불 피워달라고 하고 따뜻하게 잤다. 독일 애가 남은 침대에 들었다. 대충 씻었다. 포근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