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화장실, 남편도 깨워 다녀왔다. 먼저 도시락면을 먹고 7시에 아침으로 빵. 바타가 카라코롬에 간다고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다. 어제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또 만나서 반갑다. 같이 차를 한잔 먹다가 식당이 분주해서 인사하고 방으로 왔다.
빨리 준비하여 간단사원으로 걸어간다. 7시 40분 아침이니까 인적이 드문 도심의 거리 풍경이다. 가을 추석 무렵처럼 서늘하고 춥다. 몽골의 여름부터 가을까지 다 경험하고 있다. 그늘은 꽤 춥다. 간단사원은 아침 산책과 절하는 사람들로 북적여서 조용하지 않다. 라마교의 절 양식은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습이다. 처마에 용과 흰 코끼리가 있다. 보다 원형에 가까운 불교가 아닐까. 비둘기도 많다. 잡상들 속에 내려앉으면 잡상처럼 보인다. 푸른 하늘 밑의 사원이 시원하게 보인다.
사원 밑으로 내려와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갔다. 복드한 가는 버스를 타고 싶은데 가는 노선이 없다. 정류장 부스의 조그만 가게 아저씨에게 물으니 32번과 정류장 이름을 적어 준다. 바로 앞을 가리켜서 교차로로 더 가서 내려가라는 줄 알았다. 혹시나 해서 지나가는 청년에게 종이를 보여줬더니 우리가 오던 바로 그 정류장 이름이라고 한다. 이걸 우리말로 대답해 준다. 그 때 32번이 지나가는 게 보여서 거꾸로 마구 달려가서 탔다. 요금은 1인 400. 그런데 복드한에 가지 않는 차라고 하면서 차장이 요금을 안 받는다. 다음 정류장에서 3번을 타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우릴 쳐다본다. 3번이 오지 않아 남편이 잡화점 가게에 물어 봤다. BM3 이라고 적힌 것을 타는 거란다. 그런데 실제 버스 번호는 23번이었다. 버스에 올라 돈을 내자 차장과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본다. 모두 우리에게 집중해 주고 대단히 친절하게 대한다.
복드한 부근에서 2명과 내렸다.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가 갈 길을 다 일러주고 다른 방향으로 떠나셨다. 이곳은 살아있는 부처처럼 여겨졌던 왕의 궁전이다. 입구의 기념품점은 매우 비쌌다. 예전에는 왕이 신는 것 같은 멋진 실내화를 싸게 샀는데. 남편은 맘에 드는 모자를 찾았다. 5만원이나 한다. 안 산다. 궁전 안은 왕의 의자, 침대, 물건들이 있다. 이번에는 몽골의 풍속화를 유심히 보았다. 재밌고 솔직한 그림들이 많다. 성적인 표현들이 많은 것은 인도 탄트라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탱화도 많다. 역시 인도 느낌이 강하다.
나와서 길 반대편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타고 서울 거리에 내렸다. ‘bull'까지 걸어갔다. 햇볕이 몹시 따갑다. 이번에는 육수 2개와 말고기 2접시, 국수만 시켰다. 생맥주는 다 떨어졌단다. 고기를 실컷 먹어서 다시 찾을 것 같지 않다. 더 이상 주문해서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주변을 검색하여 메르꾸리 시장을 찾는다. 우리 발음이 나쁜 건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첫 번째 대답해 준 언니가 그나마 비슷하게 방향을 알려준 듯하다. 놓칠 뻔 한것을 겨우 찾았다. 나는 두 번째 오고도 영 모르겠다. 시장 안은 예전과 똑같았다. 호두(12,000), 건토마토(3000), 큰 너트류(12,000), 캐슈넛(9000) 등을 왕창 샀다. 인심 좋은 언니는 다 맛보게 한다. 서비스로 바나나 2개도 주었다.
시내로 걸어와 대형 백화점의 슈퍼에 갔다. 먼저 우리 짐을 보관하고 들어간다. 꼭대기부터 천천히 구경한다. 가전제품, 기념품점, 남자 모자가게에 온다. 크고 멋진 카우보이 모자를 딱 구입하려는 순간, 눈에 들어 온 것은 ‘made in Korea'... 포기한다. 큰 숄 파는 상점도 모포 같아서 별로. 오히려 등산 배낭용품점에서 맘에 드는 갑빠 배낭을 발견했다. 몽골은 온통 공산품을 수입하는 나라라 선진국의 물품들도 들어온다. 독일제 배낭 시제품이 싸게 나온 편이다. 매면 위로 탁 붙는 큰 배낭이다. 언제 쓸지 확실치 않은 것을 살 필요가 있나 싶어서 포기.
슈퍼에서 치즈와 초콜릿 위주로 많이 샀다. 숙소에 짐을 다 풀어 놓고 남편이 큰 배낭에 차곡차곡 담았다. 주인에게 내일 공항에 갈 차비와 숙비도 다 지불했다. 나머지 잔돈은 쓸 거다. 다시 나가서 처음에 도착하여 갔던 조친식당에 있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 길가에 ’몽골 호쇼르‘라는 가게에 갔다. 네 종류의 호쇼르를 판다. 야채, 신장, 고기, 감자를 넣었다. 신장과 고기를 먹는다. 맛이 좋다. 내일 점심용으로 6개를 싸고 한 개 더 먹었다. 국물이 흘러 나와 터져 할 수 없이 1개 더 먹고.
이미 배고픈 상태는 벗어났다. 그래도 어쩌랴. 마지막으로 북한 식당에 가는 수밖에. 비빔냉면과 단고기를 시켰다. 내일 먹을 김밥을 주문해 쌀 수 있을까 물었더니 안 상할지 자신할 수 없단다. 화면에서는 김일성 수령에 대한 노래가 계속 나와서 좀 거북하다. 이어서 우리가 잘 아는 군밤타령 등이 나온다. ’생율밤 이로구나‘가 아니라 ’삶은 밤이로구나‘라고 부른다. 이게 맞는 듯하다. 말과 모든 것이 같은데도 다르게 살고 있으니 이해가 안 된다. 반찬도 여러 가지를 다 내 온다. 비빔냉면은 아주 맛이 좋았다(7,000). 단고기는 들깨를 왕창 뿌려서 내온다(7,000). 국물은 한 수저 먹었는데 맛이 좋은 편이다. 남편은 아주 좋다고 잘 먹는다. 배부른데도 남김없이 먹느라 고생했다.
배도 꺼트릴 겸 산책삼아 명품 샵이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사람도 없고 볼 게 없다. 톨강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퇴근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몽골사람들 무리에 끼어 같이 걷는 게 더 인상적이었다. 어지간하면 한국말을 몇 마디씩 하는 터라 우리말이나 영어로 허튼 소리를 하면 알아들을 수도 있다. 버스에서도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하려는 모습들이었다.
톨강은 여의도 샛강보다 시시하다. 아마도 중심 줄기가 아닌 듯. 다시 전차(200)를 타고 숙소를 지나 종점까지 가 보려다가 길이 너무 막혀서 간단사원 가는 길에 내려 거꾸로 걸었다. 백화점에서 남은 돈에 맞게 자두를 사고 잔돈은 모금함에 넣었다. 이제 돈을 다 썼다. 숙소에 와서 과일과 술, 음료 등을 마시며 짐을 챙긴다. 느긋하게 쉬기로 한다.
그런데 남편이 포르투갈에서 샀던 큰 배낭의 끈이 떨어지려고 한다. 참 황당하다. 싼 것을 사서 끈이 너무 약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도 대형몰에서 몇 만원은 준 배낭인데 말이다. 게다가 왜 그런지 좀이 슬 듯 몇 군데가 터지고 있다. 이렇게 된 김에 그냥 백화점에 가서 그 배낭들을 사기로 한다. 문을 닫았으면 포기하는 거고. 숙소에서 떠난 시간이 9시 20분인데 기껏해야 슈퍼나 열었겠지 싶었다. 밖은 어두워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에 영업 중이었다. 잘 뒤져서 적당한 크기의 독일제 타톤카 배낭을 2개 샀다(20만원 미만 정도). 허리를 꽉 잡아줘서 인체공학적으로도 대단히 훌륭하다.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는 상품이다. 사는 게 팔자였나 보다.
숙소까지 기분 좋게 와서 짐을 다시 꾸렸다. 큰 배낭은 사장에게 끈 만 고쳐서 게스트하우스 물품으로 쓰라고 했더니 아주 좋아하며 받는다. 자두를 먹고 10시에 잔다. 어제 산 싱가폴 땅콩이 맛있다고 내일 9시에 백화점 슈퍼로 사러 가자고 한다. 산책 겸 다녀와야겠다. /
다음날 아침 슈퍼에 가서 땅콩을 많이 샀다. 사장이 배웅해 주고 UB에서 일하는 여직원이 사장차로 우리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 베이징을 거쳐 무사히 우리나라로 귀환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몽골에서 색다른 재미와 정을 많이 느낀 남편은 또 몽골에 말 타러 가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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