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 :: 2013 발칸/동유럽

1.30(수) 베를린,포츠담

포츠담

(공식 관광 사이트 : http://www.potsdamtourismus.de/ )

[포츠담 트램,버스 노선도, 원본사이즈 보기]

아침 8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남편은 정신없이 잔다. 깨워서 밥과 반찬을 먹고 갈 곳의 정보를 구한다. 이른 아침부터 앞에서 공사를 하느라 시끄럽다. TV BBC 뉴스를 크게 켜 놓았다. 나로호 발사가 성공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오늘 오전에는 포츠담에 간다.

아나키 :

"베를린 옆에 포츠담이 있는데 거기에 한 번 가 봐야 되지 않을까?"

2차대전 일본의 처리에 대한 선언이 있었던 도시, 포츠담. 들어 본 건 있어서 마침 베를린 옆이라 가 볼까 했다.

"포츠담 선언 했다고 거기 갈 거면, 얄타도 가야 되는 거니?"

경아가 놀렸다. 물론 포츠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할 말은 없었지만.

대중교통지도에 보니 포츠담이 C권역이라 우리가 가진 티켓으로 무료다. 게다가 포츠담 내 대중교통 역시 무료라고 한다. 한번 안 가볼 수 있나.

게바라 : 9시에 나가서 S반을 타고 교외로 나간다. 베를린의 화려함과는 달리 기찻길 옆의 집들은 매우 작다. 동독 쪽이라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포츠담까지는 25분이 걸린다. 우리가 산 베를린 티켓은 C선 까지 다 포함되고 포츠담 내의 교통수단도 무료이다.

아나키 : 중앙역에서 포츠담은 S7 전철 한번에 가는 도시다. 종점이기도 하고. 중앙역에서 대략 25분 정도 걸렸다. 사람이 많이 탔다가 도시외곽으로 빠지는 Zoologischer 역부터는 한산해지더니 점점 사람이 없어지고 주변 풍경은 영락없는 시골 마을 풍경이 계속되다가 포츠담에 가까워지자 다시 사람이 많아진다. 포츠담 역에 내려 인포메이션에 갔더니 지도를 0.5유로에 판다. 안 사고 대신 질문을 했다.

"웨어 두 유 서제스트 투 고?"

"브란덴부르그 문, 시티 센터, 올드시티 구역..." 지도를 짚어 가며 이런 저런 말을 해 주는 데 반을 알아듣고 반은 넘어간다. 일단 정보 없이, 지도 없이 움직이기로 했다.

게바라 : 역 구내는 다양한 물품들을 파는 가게로 베를린 중앙역과 비슷한 구조이다. 가격이 베를린보다 약간 싸졌다. 역 앞에서 트램을 타고 일단 나가 본다. 도시가 좀 더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럽다. 적당히 내려서 언니에게 벨베데르 언덕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버스와 트램이 모두 교차되는 지역에 내려 603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아나키 : 전철 타는 곳으로 나가다 보니 포츠담 파노라마라는 전시물이 역 안 한 편을 차지하고 있다. 포츠담의 모습을 대략 짐작하게 해 주는 유용한 정보였다. 바깥으로 나와 일단 다가오는 트램91번을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트램 타며 시내를 살피다가 적당히 내려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해 봤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Belvedere 에 가 볼까?'

경아가 주변의 처자에게 물었다.

"트램 타고 두 정거장 간 뒤 603번 버스 타고... 어디어디 내리세요"

"아, 거기서 걸어 올라가는 거죠?"

지도를 보니 언덕이더라.

"그렇습니다"

이곳은 베를린과 달리 트램 속에서 영어 안내가 나왔다. 갈아타는 정류장을 지날 땐 매우 자세히 안내해 준다. 두 정거장 지나 603번 타는 곳에 오니 15분 뒤에 온다고 표시되어 있길래 건너편에 보이는 큰 성당 앞으로 잠시 걸어 봤다.

게바라 : 트램으로 두 정거장을 거꾸로 가서 내렸다. 날씨는 별로 춥지 않다. 15분 후에 차가 온다고 해서 주변을 산책했다. 가로수를 자르는 아저씨,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주변의 공원. 이곳이 2차 대전 후 일본의 문제를 처리했던 그 유명한 포츠담 선언이 이루어진 곳일까 싶게 근교 도시의 분위기가 난다. 일본은 결정된 내용을 수락하지 않아 원자폭탄을 맞게 된다.

Belvedere

603번은 언덕 쪽으로 올라간다. 역시 언덕에는 잘사는 사람들의 집들이 보인다. 근처에 내려 한적한 언덕으로 간다. 언덕 위에는 아주 잘사는 사람들의 집이 있다. 잔디 정원과 손님을 맞는 별채까지 따로 있다. 산쪽 길로 접어드니 오른쪽으로는 작은 텃밭을 가진 미니 별장들이 있다. 앙증맞은 집들이다. 언덕 위에는 광장 위에 옛 건물이 있다. 정원에 엄청 큰 나무를 아치 모양으로 잡아 주어 동그랗게 만들어 준 것이 신기하다. 햇볕을 향해 자라려고 애쓰는 놈을 인간은 억지로 둥글게 만들려고 하니 사투를 벌이는 것 같다. 정원사들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개방을 안하는지 잠겨 있다.

아나키 : 아무 계획 없이 온 포츠담. 준비 없이 순수 여행자 느낌으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램을 타고 다녀보는 것도 여유롭다. 어딘 줄 알면 정류장이나 지도 확인하느라 분주할텐데 정처가 없었으니 차분히 시내를 바라 볼 여유가 생긴 거다. 603번은 주택가를 구불구불 올라 간다. 우리 목적지는 603번의 종점. 언덕 위로 올라 와 있는 집들은 거의 번듯하고 마당도 넓다. 말 그대로 업 타운. 꽤 사시는 분들인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한가롭고 조용하게 Belvedere 까지 산책을 겸해 다녔다.

Belvedere 앞 마당에는 정원수를 길 가에 일정하게 심은 후 사람 키 정도로 잘라 철근을 박아 아치형으로 터널을 만든 정원이 신기하다. 기둥역할을 하는 나무들은 죽었으려니. 기둥 사이에 자라는 나무는 아치에 맞도록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듯, 꽤 두꺼운 가지까지 아치에 맞게 구부러져 있다. 가지치기를 하는 작업에 엄청나게 손이 많이 들 모양새다. 제 마음대로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이 안쓰럽지만 만들어진 결과물은 예술적이다. 여름에 왔더라면 비를 피할 정도로 빽빽한 나무의 터널이 만들어져 있었겠지. 마침 가지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작업을 하다 잠시 쉬고 계셨다.

오늘은 개관을 하지 않는 날. 하지만 개관한다 해도 유물 약간을 보는 것 더하기 계단을 올라 건물 위에서 포츠담시 전망을 하는 것이 전부일테니 오히려 개관하지 않는 날이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건축물의 존재를 느껴보는 데 더 좋다고 생각한다.

게바라 : 다시 걸어 내려 와서 오는 버스를 겨우 탔다. 역으로 가는 트램을 기다리다가 동네 빵집에서 체리 치즈케익과 빵을 샀다. 역 안의 아시아 음식점에서 남편은 크리스피 치킨과 국수를 시켜 먹고 나는 케익을 먹었다. 음식이 짠 편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가고 앉아서 맛있게 먹는다. 양도 많다. 이런 것이 아시아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그렇다. 어쨌든 방과 후 집에 가는 아이들까지 사서 먹는다.

포츠담 역

아나키 : 역사 안에 ASIA GOURMET 라는 패스트푸드점 체인이 있어 크리스피 치킨에 면이 곁들여진 음식을 시켰다. 10대들이 엄청 와서 줄 설 정도로 잘 되는 집이고 지역 주민들도 꽤 와서 먹는 집인데, 음식이 지나치게 짜다. 향을 느껴보기보다 짠 맛이 우선 느껴진다. 아시아 음식이 이렇지만은 않은데..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생길라. 여행 말미에 중국식당에 가는 일이 잦아졌는데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음식을 짜게 해 아쉬웠다.

역 안에 대형 할인점이 있고 저가의 물건도 무척 많다. 베를린 중앙역에 있는 수퍼마켓이 중산층 용이라면 이곳은 저소득층 용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비교적 저렴한 오렌지(1.5유로/kg)들도 많고 야채도 무척 풍성하다. 특히 술 코너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스피릿들, 크림들, 보드카, 맥주, 저 알콜 음료 등 술 코너만 작은 수퍼마켓 크기다. 이 많은 술을 다 먹고 사나 몰라.

게바라 : 이 역에는 대형 수퍼가 있었다. 비싸지 않다. 다들 이렇게 사는 방법이 있는 것을 어제 수퍼 물가에 놀랐었다. 남편은 맥주 3종과 술을 나는 오렌지와 포도를 샀다. S반을 타고 돌아와 밖으로 나오니 소나기가 세차게 퍼붓는다. 돌풍까지 불어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우산을 쓰고 숙소에 왔다. 우산이 망가질까 걱정이 될 정도로 바람이 세다.

2시에 와서 숙소에서 쉬며 오후 일정을 잡는다. 아줌마가 방을 정리하고 문을 열어 놓았다. 냄새가 나서 그랬을 것이다. 청소를 해 놓을 줄 몰랐는데 미안하다. 사온 과일과 맥주를 먹는다.

이스트 월 갤러리

3시에 나와서 전철로 이스트 월 갤러리에 갔다. 분단의 벽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역에서 그림 몇 개를 볼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포기하고 열차를 타고 돌아온다. 그런데 하늘이 서서히 개면서 잠깐 해도 보인다. 다시 돌아가서 벽을 따라 걸으며 그림을 다 보았다. 자유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많다. 되돌아 강변을 따라 걸어온다. 배를 숙소로 쓰는 호스텔이 신기하다. 방이 불편할 것 같다.

DDR박물관 (6유로, 9-20시)

아나키 : DDR은 도이치 민주 공화국(동독)의 약자다. 이제는 사라진 나라 동독. 그의 추억을 유물과 소품들로 살려보는 곳이다. 베를린 장벽이 단순한 벽이 아니라 동베를린 동독 가정의 응접실에도 앉아 보고, 화장실 구경도 하고 취조실에 앉아 보기도 하고 외교관용 볼보 승용차에 타 보기도 한다. 주로 체험위주로 짜여진 박물관이라 흥미롭지만 박물관 내부가 고작 두 개의 방에 불과하여 조금은 만족스럽지 않은 곳이다.

게바라 : 전철로 동독의 생활을 보여주는 박물관에 갔다. 역시 사람이 많다. 생활용품들, 주방, 거실, 감옥, 자동차 등 다양한 것들을 직접 만져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흥미롭게 살펴 볼 수 있어서 재밌는 곳이다. 동독의 나체 해수욕장이 특이했다. 당시 사람들은 나체가 인간의 평등을 의미하므로 80% 이상이 동의했다고 한다. 나와서 강을 건너 훔볼트 건물에 갔는데 문을 닫았다.

2층 버스를 타고 갤러리아 백화점에 갔다. 혹시 특이한 물건이 있으면 살까 했는데 전혀 없다. 남편에게 가방을 고르라고 해도 마땅한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낫다. 수퍼에서 5유로가 넘는 후추 뿌린 소고기와 버터를 샀다. 어제 갔던 역 수퍼에서 물과 딸기케익(1.7을 1유로에 할인해 팔아서 2개를 샀다), 빵을 사고 왔다. 숙소에서 남편이 구워주었다. 푹 익혀도 부드럽고 맛이 좋다. 기름기가 없는데도 두브로브니크나 베를린 다 훌륭했다. 인스턴트 데리야끼면도 소고기 국물이 들어가서 인지 맛있다. 딸기케익도 달지 않고 맛있다. 참 훌륭한 수퍼다. TV를 보다 잔다.

아나키 : 분단과 나치, 유대박물관등을 들러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 여러 학살의 가해자는 많지만 사과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나치 치하 세르비아인을 학살했던 크로아티아 나치집단, 코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코소보인을 학살한 세르비아 정치집단, 르완다에서 투치족을 학살했던 후투족, 남경대학살을 저질렀던 일본 군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했던 미국 정부, 4.3 때 제주도민을 학살하고 5.18때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대한민국 정부 등. 아무도 구체적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아니, 사과는 커녕 피해자는 아직도 가해자에게 떳떳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해자가 콧날 세우고 다니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사과하며 그 사과하는 태도를 수도 베를린 심장부에 구조물로, 기념관으로 명시한다. 이 사과로 인해 독일이 다른 족속에 비해 더욱 양심적일 것인가.

혹시 그 사과의 배후에 힘의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구상 학살의 피해자 중 현재 사회 권력의 주류는 있는가? 없다. 유일하게 유대인들은 피해자였으며 현재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힘의 주류다. 중국조차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권력의 주류가 아니지만,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유대인들은 분명 권력의 주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독일 사과의 근저에 깔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