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가을 수리산 종주

지난주 도봉산에 갔다 와서 내 몸도, 마음도 뭔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엔 주말마다 산에 가시던 장현옥 선생님을 보고서는 참 신기하고 이해가 안간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주 토요일의 내가 딱 그런 모습이다. 산에 올라가고 싶어서 이번 주말 토요일에 약속되었던 사진반 모임도 뒤로 미룰 정도니까. 예전 같으면, 산에 가는 것 보다 사무실에 앉아서 사진을 골라 내는 일을 더 좋아할 내가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내 마음의 흐름이야, 나도 잘 모르는 거고, 그냥 내 몸의 흐름에 맡길 뿐인데, 아무래도 요즘 내 몸이 산을 강력히 원하는 가 보다. 이렇게 화들짝하고 바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일 터. 술과 담배 때문에 망가진 내 몸이 SOS요청을 보내는지도 몰라.

수리산은 군포,안산,안양등지를 감싸는 자그맣지만 풍요로운 산이다. 물이 많아 음기를 상징한다고도 하고, 기슭 곳곳에 약수터가 있어 우리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 완공된 외곽순환도로가 수리산을 관통하는 바람에 수리산 기숡 많은 계곡들의 물이 말라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던 곳.

수리산 종주는 대야미에서 시작하면 조금 더 쉽다. 대야미가 산본분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기본 등산로까지 올라가는 분량이 적은 것 때문이다. 일단 대야미 아이파크 뒷 언덕에서부터 종주하는 일정을 짰다. 대략 4시간을 잡고 짠 경로다.

아이파크 언덕(갈치가는 길) - 산본등산로 - 레이더기지옆 봉우리 - 슬기봉 - 칼바위능선 - 태을봉 - 산본IC로 나옴

아이파크 언덕은 살짝 경사진 그냥 언덕이다. 이길을 통하면 갈치 저수지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산 기슭 곳곳에 위치한 마을들을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인 셈이다. 하지만 이곳 언덕 마루는 사유지인지 흉물스런 통행금지 팻말이 사방에 놓여져 있다.

산을 소유하는 건 그곳이 땅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능할 지 몰라도 자연의 입장에서는 웃기는 이야기다. 언제, 누가 소유자에게 산의 자연을 소유할 권리를 주었나. 산의 식물과 동물은 소유자의 의지와는 별개로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자연의 아이들인데 어떤 권리로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지... 내 생각으로는 정리된 논밭을 소유하는 것은 양보할 수 있더라도, 자연 그대로인 산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소유자인 그가 노력하지 않고 생긴 자연 상태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도둑놈 심뽀다.

산본 등산로까지 연결되는 도중 예쁜 쑥부쟁이가 아름다운 빛을 만나 하늘거리는 장면을 포착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꽃인데, 이번 가을엔 제대로 찍은 기억이 없어 경아씨와 한참 동안 그 자태를 사진기에 담아내는 데 애썼다

조금 더 가다보니 미국자리공이 역시나 찬란한 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경아씨는 이런 걸 잘 찾는다. 조금 더 가다가 풀섶에 살짝 얼굴을 내민 작고 노란 꽃을 발견했는데 처음엔 양지꽃인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을 보니 일부 꽃이 진 자리에 탐스런 뱀딸기가 나오기 시작하네? 아, 뱀딸기 꽃이로구나!

조금 더 가다 보니 예전에 화제집중인가? 에 나왔던 "산 소금", 등나무 열매가 보인다. 소금이 귀한 시절, 이 등나무 열매가 요즈음 만드는 천연 염분을 모아서 소금으로 쓰고, 간수로 활용해 두부까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보고서는 신기해 했었는데, 우리 집 주변에도 있었던 거다. TV에서처럼 따서 맛을 보니 정말 짜다. 쓰기도 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산본 2-4단지쪽에서 슬기봉 올라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여기부터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등산로가 아니라 자전거도 오갈 수 있는 임도(林道)가 된다. 일요일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좀 왔다 싶지만 알고 보면 가까운도장터널 위 길일 뿐이다.

계속 길을 따라 가다가 길가에 누군가 꺾은 듯, 예쁜 꿀풀 종류가 떨어져 있어서 살펴 봤더니 영락없는 치솔 모양이라서 잠깐 치솔처럼 장난을 쳐 봤다. 사진 찍고 나서는 그냥 나무 위에 걸쳐 주었고.

정난종 묘역과 슬기봉 쪽으로 구분된 살짝 높은 언덕을 지나 슬기봉 쪽으로 움직이니 8단지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 보인다. 눈 앞으로는 집에서 멀리 보였던 공군 레이더 기지가 있는 봉우리도 가까이 잡힐 듯 들어온다.

슬기봉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길을 물으니 내려 오던 이 중 한 이가 40분쯤 걸릴 거라 말하면서 경아씨더러 올라갈 수 있겠냐는 식으로 말을 한다. 비록 경아씨가 저번 주 도봉산 등산과는 달리, 오르막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중이었고, 우리의 복장 또한 뒷산 올라가는 간편한 복장이었으니 그리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산 오르는 거라면 어디든 즐겨 하는 데다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도봉산 포대능선 등산을 가볍게 했던 경아씨에게 그런 평가라니.... 조금 어이가 없다. 후후...

슬기봉 올라가는 길엔 사실 경아씨가 많이 힘들어 하긴 했다. 일요일 도봉산, 수요일 수리산, 그리고 오늘 토요일 다시 수리산 종주라. 피곤할 만도 하지만, 오늘 경아씨는 처음 아이파크 언덕 오를 때 부터 유독 힘들어 하긴 한다. 그에 반해 난 이상할 정도로 힘에 넘치고 있는 중. 사실 이런 내 몸의 반응은 나도 왜 그런지 모를 지경이다.

슬기봉 올라간답시고 올라간 게 내가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레이더 기지 옆 봉우리다. 올라가는 길목에 풍광이 멋진 곳이 있길래 사진도 찍었지만, 막상 정상은 일반인이 갈 수 없는 기지 숙소. 침임자를 탐지하는 듯 멍멍 짖는 개를 뒤로 하고 슬기봉 쪽으로 열심히 올랐다. 사실 이곳은 올라갈 필요 없이 그냥 옆길로 새면 되는 건데, 우린 길을 찾을 수 없었기에 그냥 갔던 거다.

슬기봉 정상에서 본 산본과 주변 지역. 유명한 슬기봉 외로운 소나무도 같이.

조금 가니 슬기봉 정상이 나온다. 산본과 안산, 멀리 의왕과 수원까지 전망되는 트인 곳이다. 이렇게 높이서 도시를 보니 영락없는 레고 세상이 아닌가. 산 자락 사이사이마다 들어선 네모의 아파트. 마치 레고블럭을 놓아둔 듯. 산 자락의 풍광과 이리도 부조화스러울 수가 있을까.

슬기봉에서 태을봉은 참으로 가까이 보인다. 하지만 표지판에는 1.6km 라는 먼 거리가 씌여져 있다. 이 길이 수리산에서 가장 재미있는 길인데, 능선이 부드러운 수리산에서 그나마 암릉길이 나오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본의 반대, 안양쪽은 제법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서 풍광이 좋고, 외곽순환고속도로 때문에 찌푸려지긴 하지만 굽이치는 수리산의 자락들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계속 태을봉으로 진행하니 수리산 최대의 난코스(^^;;) 칼바위능선이 나온다. 비록 최대 높이 485m의 야트막한 수리산이지만 이 곳은 제대로 등산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곳. 아주 위험한 곳이라면 와이어나 밧줄이 있을 것인데, 여기는 어정쩡한지 그런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알아서 가라는 이야기.

예전에 4학년 아이들 데리고 이곳을 지난 적이 있어서 그때의 기억을 살려 길을 잡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니까 말인데, 아이들 60여명 데리고 이런 길을 어떻게 지나갔나 싶다.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조금 험한 길이 있었다. 위 사진 중 아래 오른쪽 사진이 험한 길을 우회해서 왔던 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표지판이 전혀 없어서 그냥 감으로 길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니 곧 태을봉이 나온다. 수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태을"이라 함은 민족종교인 증산도에서 으뜸으로 여기는 낱말인데,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태을봉 정상에서는 멀리 서해바다까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경아씨의 한마디. "우리지역이 이리도 바다와 가까운 곳이었어?"

정상에 도착하니 이미 5시 30분. 해가 저물녘이다. 2시20분에 시작한 산행이 벌써 3시간이나 지났네? 좀 있으면 해가 질텐데, 빨리 내려가야겠다 하고 길을 재촉했다. 태을봉 정상에 있는 분께 물어 길을 확인하고 태을초등학교로 내려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상에서 능선따라 바로 내려오는 길도 있었지만 우린 관모봉 쪽으로 잠깐 가다가 우회해서 내려오는 일반적인 등산로로 내려 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듯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더욱 빨리 내려올 수 있었는데, 태을초등학교에서 태을봉 구간은 아무래도 산책로 처럼 쓰이는 가 싶다.

내려 오다 노랑바위를 만났는데 너무 어두워 사진은 찍지 못했다.

내려 오는 길에 이정표가 수리약수터를 향하고 있어서 혹시나 수리초등학교로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수리 약수터는 태을초등학교 옆의 약수터다. 간만에 올바로 산을 내려온 거다.

태을초등학교 바로 앞의 벤치에서 잠깐 쉬다가 내려와서 숨두부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역시나 산 타고 난 뒤의 밥맛은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