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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토) 프리슈티나 (코소보)

프리슈티나 가는 길

게바라 : 아침에 잠도 안 오고 내쳐 6시에 남편을 깨워 주방에 내려간다. 방을 다 내 주어서인지 주인 부부가 의자를 펼쳐서 둘이 자고 있다. 어제 사람들 때문에 늦게 잤을 터이니 미안하다. 음식 준비는 안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그냥 준비하잔다. "쟤네들 일찍 부터 준비하네..." 뭐 대충 이런 말을 하면서 다시 자려고 한다. 사부작거려도 소리가 계속 날 수 밖에. 결국 미안하게도 일어나 버렸다. 이왕 이리 된 것 "쏘리!"를 반복하며 음식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조용히 오븐에 넣으려던 것을 웍에 볶는다. 마늘, 피망, 삼겹 햄, 향긋한 송이 모양 버섯(이곳에서 가장 저렴하다. 미니 송이 모양이고 좋은 송이향이 난다. 대박!)에 생협 해물 스프를 약간 뿌리면 끝. 일부는 덜어 내고 나머지에 밥을 볶았다. 도시락 준비 끝. 주인 오빠가 냄새가 좋다고 한다. 이국적인 맛일 거라며 한 접시 주었다. 맛있단다. 잘 먹어 주어 마음이 좀 가볍다. 이 부부가 숙소를 얼마나 청결하게 잘 관리하는지 완벽하다. 넉넉하고 정결한 침구, 큰 개인용 수건까지 맘대로 쓴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던 바로 그 모양의 벽난로에 더울 정도로 불을 피워 넣는다. 남편은 너무 맘에 들어 더 있고 싶단다. 넛트와 사탕, 차 등 먹을 것도 늘 준비되어 있고 모든 것을 집처럼 쓰게 해준다. 요리용 와인이나 기름도 제공된다. 마케도니아는 여러 모로 마음에 드는 곳이다. 7시다. 멀리서 아잔 소리가 들린다. 짐을 챙겨서 8시 넘으면 나갈 거다. 돈을 못 쓰면 재환전을 하는 수밖에.

8시에 내려오니 주인 부부는 다시 자고 있다. 터미널에서 나는 짐을 지키고 남편은 남은 돈을 환전하러 갔다. 손에 5유로를 쥐고 오더니 1이 더 되겠다며 바꾸러 갔다. 그런데 5유로가 없단다. 환전을 제대로 했는지 계산하는 사이에 옆에다 두었는데 사라졌나 보다. 어떻게 잃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옆에 있던 남자이거나 환전소의 직원일 수 있다. 떠나려고 할 때마다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더 조심해야겠다. 남은 돈은 키커를 샀다.

아나키 : 새벽에 일어나 오늘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숙소스탭들이 마루에서 자고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결국 잠을 깨워버려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우리가 만든 야채삼겹살볶음을 한접시 선사했더니 싹 비웠다. 소피아에서 먹다 남은 밥을 볶았더니 엄청 맛난 볶음밥이 만들어졌다.

프리슈티나행 9시 버스를 타려고 8시20분경 터미널에 도착했다. 300데나르 정도가 남았기에 유로로 재 환전하니 5유로다. 그런데 남은잔돈을 합하니 1유로가 더 될것 같아 환전하여 50센트 동전 두 개를 받았는데 막상 5유로 지폐가 없어진게 아닌가.  잘 생각해 보니 받은 5유로 지폐를 데나르와 섞어서 환전상에게 내민 모양인데 아무 말 않고 그가 챙긴거다. 어쩐지 내게 50센트 두개를 주고도 내가 내민 돈을 싹 가져가지 않고 바라만 보더라니. 내가 등을 돌리자 얼른 챙겼겠지. 멍청한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낸 돈 중에 5유로 없던가요"

그는 단지 몸짓으로 으쓱 했을 뿐.  일차적으로 정신 못 챙긴 나의 탓이고 이차적으로는 5유로에 팔린 그의 싸구려 양심에 의한 일이다.

게바라 : 사람을 가득 태운 작은 미니버스는 벌판을 지나 산지로 접어든다. 출국과 입국은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가파른 산지를 넘어 넓은 벌판을 계속 달려 11시 15분에 도착했다. 역시 터미널 위치는 약간 외곽 분위기다. 꼬또르 가는 표는 없다.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를 거쳐 가야 하고 차는 저녁 7시에 있다. 당일 관광을 하고 바로 뜨기로 한다. 표 끊고 짐을 맡겼다. 차표를 보여 주면 개당 1유로짜리 짐표를 끊어 준다. 화장실을 0.3이나 받는다. 비싸다. 터미널에서 아침에 싼 도시락을 먹고 시내를 향해 걷는다.

아나키 : 프리슈티나 가는 버스는 미니버스다. 두시간 거리라서 그런 모양. 코소보 국경에 도착해 먼저 마케도니아 출국 과정을 밟았다. 짐검사는 트렁크를 열어보는 것으로 끝. 여권을 버스기사가 챙겨 갔다가 출국도장 찍어온 여권을 승객중 한명이 나눠줬다. 교실 반장같이 이름을 부르며 나눠주는 훈훈한 광경. 코소보 입국 역시 형식적인 짐 검사에 빠른 입국과정. 불가리아에서 마케도니아 넘어올 때와는 사뭇 다르다.

코소보로 진입하자 눈에 띄게 눈이 많아지고 날도 흐려진다.  11시 20분에 프리슈티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코토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니 포드고리차까지 가는 차가 하루에 한대, 오후7시다. 포드고리차에서 코토로 가는 차로 갈아타야 한다. 이곳서 하루를 묵을까 하다 포기하고 오늘 차표를 끊었다. 돌아볼 곳 몇 군데를 돌기에 시간이 충분했기에.

프리슈티나를 간단히 둘러보았다

게바라 :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다. 잠깐 수퍼 구경을 한다. 대로의 이름이 '빌 클린턴로'다. 마더 테레사를 기념하여 건축 중인 테레지아 성당을 돌아가면 '조지 부시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도로에 붙인 나라가 있을까 싶다. 미국은 코소보 학살 때 이득될 것이 없어 늦게 개입했다. 심지어 오폭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고마운 나라가 되었다. 세르비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아뎀이라는 사람의 얼굴 그림이 3년 전에도 많았다고 한다. 그림 아래에 "삼촌! 이제 끝났어요!"라는 글귀가 있었단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그것을 다 지운 것 같다. 1999년 이었으니 아직도 생생한 기억일 것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중심가에 갔다. 일요일이라 상점도 다 문을 닫았다. 걷기에 추운 날씨다. 사람들은 유난히 무채색 옷을 많이 입고 있다. 생김새도 좀 다르다. 평범한 얼굴들이다. 광주에 외국인이 간다고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듯 이곳에는 총탄 자국 하나 없다. '팬엑스퍼트'라는 가게에서 딸기 케익(2.3)과 에스프레소 더블(0.5), 마끼아또 더블(0.8)을 시켰다. 3유로가 약간 넘는다. 모두 맛있다. 사람이 많아 들어 왔는데 다 남자들이다. 모여서 차 한 잔 시키고 수다를 떠는 거다. 몸을 녹이기 위해 가게에 가끔 들어가야 한다.

박물관과 풍속 박물관 모두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사실 코소보는 평범한 곳이다. 더 이상 보러 갈 곳이 없다. 작은 모스크에 들어갔다. 멀리서 볼 때는 푸른 타일을 붙인 것처럼 보였는데 릴라 사원처럼 회벽에 그림을 그린 거다. 이 지역의 방식일 것이다. 할아버지들과 젊은이 몇몇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동네 사랑방처럼 할아버지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다. 조용하고 편하다. 기도를 드리고 앉아서 이곳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평화로운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 각자 상처들이 얼마나 클까.

길 따라 내려오니 노점이 생겼다. 곶감처럼 작은 무화과를 꿰놓은 것(0.5)을 샀다. 차를 마셨던 가게를 끼고 돌아 동네로 가 본다. 작은 빵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분주하다. 대박 빵집인가 보다. 들어가서 치즈빵(0.4)을 먹었다. 깔끔한 맛이다. 지금까지 먹었던 마트의 기름진 빵과는 다르다. 다른 작은 빵도 3개 샀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와서 빵을 사 간다. 중심가를 걸어 아뎀의 사진이 크게 걸린 언덕 위에 갔다. 해방군지도자였던 아뎀은 세르비아 군인들에 저항했다. 대가로 아뎀을 비롯한 60여명 이상의 가족과 친지가 학살되었다. 그의 사진 근처에 작은 스케이트장이 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타고 논다. 아뎀이 원했던 평화가 이런 것이었겠지. 계단 아래에 'NEW BORN'이라고 쓰인 조형물이 있다.

추우니까 다시 작은 수퍼 구경을 하고 걷는다. 시간이 많은데 할 일은 없다. 식당도 패스트푸드, 피자, 케밥 밖에 없다. 빌 클린턴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케밥집에 들어간다. 패드 충전시키고 닭케밥(3)과 맥주(1)를 시켰다. 맥주 맛은 좋고 닭은 괜찮지만 짜다. 화장실도 가고 몸을 녹이고 쉰다. 식당이나 커피점에 가면 화장실을 꼭 이용해야 한다. 수퍼에 가서 맥주와 물을 샀다. 터미널에 와서 짐을 찾고 커피점에 가서 기다린다.

아나키 : 버스터미널에서 시내중심부 테레지아 거리까지는 약 1.5km다. 방향감각이 안 잡히길래 길 걷는 처자 둘에게 방향을 확인하고 무작정 걸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중심도로 이름이 빌 클린턴로와 조지 부시로다. 클린턴로를 걷다가 부시로로 접어들면 시내로 가게 되는 셈.

세르비아의 코소보 침공 때 대량학살극에도 미적거리던 미국과 나토가 결국 개입하면서 세르비아를 물러나게 하고 코소보의 독립을 이끌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세계 어디서도 환영받는다고는 볼 수없는 미국대통령이지만 이곳에서는 독립의 은인으로 대우받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MB처럼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고 개인의 사업 이익을 추구했던, 아프간과 이라크의 침략자 조지부시가 이렇게 국가적으로 환영받는 곳은 아마 이곳 코소보 뿐일걸?

코소보 국립박물관, ethnological 박물관 모두 일요일이라 휴관이다. 5시간 정도가 통짜로 남는다. 박물관 부근 모스크에 들러 잠깐 명상하고 프리슈티나 거리를 이곳저곳 방황한다.  PanExpert에서 빵과 커피(에스프레소 더블 0.5e,마끼아토 0.8e)로 잠시 휴식도 하고 손님이 끊이지 않는 동네 골목길 대박 빵집에서 빵도 사먹어 보고 일요시장도 기웃거리다 50센트 주고 달콤한 말린 무화과 한타래도 샀다. 우리나라 비해 물가가 많이 싼 편이라 돌아다니는데 비용부담이 참 적다. 에스프레소 더블이 0.5유로, 빵 하나 0.2유로 등등. 화장실비가 무려 0.3유로니까 화장실 갈 일 있으면 카페로 가라는 말일까?

전쟁피해의 상처는 일단 겉보기엔 없다. 거리 곳곳에 있었다던 해방군지도자의 간판도 보이지 않고 다른 이들의 여행기에서 보였던 황량한 느낌도 없다. 다만, 대부분 사람들의 옷차림이 무채색, 그것도 진하지 않은 쥐색, 회색일변도라는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 피해의 트라우마가 자신을 돋보이지 않게 하는 옷차림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날이 스멀스멀 추워서 돌아다니다 보니 발가락이 얼 것 같아 가끔씩 수퍼마켓에 들러 가며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한시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포드고리차 가는 길

게바라 : 7시 버스는 3시 도착이란다. 5시 반에 꼬또르 가는 차가 있다고 한다. 야간버스의 짐값은 없었다. 이슬람국가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마케도니아에서도 "비행기도 아닌데 무슨 짐값?" 이라는 반응이었다. 뒤편에 앉아 졸다가 국경. 높은 산지에 눈이 많이 쌓여 큰 침엽수들의 가지가 처진다. 크리스마스 마을 같다. 장관이다. 간단한 출국 후 달리다가 몬테네그로 입국. 남편이 잠시 사무실로 불려 갔다. 황당하게 "평양이냐, 서울이냐?"를 묻더란다. 여권을 보고도 모르는가 보다. 유고였던 시절 티토는 김일성과 비슷한 사람이었으니 이들에게는 북한이 더 익숙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관광객이 이 국경을 지날 일이 없을 거다. 자리를 두개씩 차지하고 잔다. 따뜻하게도 틀고 약간 시원하게 해줄 때도 있고 잠자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 숙소에서 자듯 편하게 잤다. 하루 종일 얼었다가 몸도 풀리고 참 좋다.

아나키 : 포드고리차 가는 버스엔 십여 명이 타고 간다. 기름 값이나 나올런지. 새벽 3시 도착이라니 8시간 걸리는 여정이다. 포드고리차에서 코토로 가는 첫차는 5시에 있댄다.

버스 안에서 자사의 홍보비디오를 보는 건 처음이다. 터키 음악의 뮤직비디오도 틀고  터키 영화도 튼다. 가끔씩 볼륨이 엄청 커져서 잠을 확 깨우기도 한다. 아마 잠을 잘 자려면 안대랑 귀마개가 필요할 듯. 두 시간 쯤 되자 버스가 설산을 오른다. 저 멀리 야경이 비행기에서 보는 듯 아련해진다. 조금 올라가다 코소보 출국 검문소에서 형식적인 짐 검사를 하고 출국도장을 받았다. 사람이 많지 않은 나이트버스는 두 자리를 차지하고 가니 열차 못지않게 편안하다. 국경을 넘는 경우 열차보다 더욱 마음이 놓인다. 열차에서는 짐검사나 여권컨트롤이나 모두 개별적으로 하게 되는데 버스는 함께 가는 사람들과 일괄취급을 받게 되니 확실히 간소해지는 부분이 있다.  

오늘 몬테네그로 들어갈 때, 국경경찰이 여권을 가져간 후 좀 있다가 우릴 부른다. 둘 중 하나만 오면 된다 한다. 산 꼭대기에 만들어진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묻는다

"쐬울, 평양?"   "서울"

"사우스, 노쓰?" "사우스"

하니 자기들끼리 유즈나(남) 뭐라뭐라 한다.

한번 더 평양? 묻길래

"평양 이즈 노스코리아 캡탈시티.낫 아우어즈." 했다. 무사통과. 코~몬 국경을 넘는 한국인이 이리도 적은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