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 :: 2013 발칸/동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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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꼬또르 -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게바라 : 1시에 자서 1시간 간격으로 잠이 깬다. 시간을 확인하고 자다가 5시에 일어나 책을 보았다. 6시에 밥 끓인 것과 피클로 아침을 먹고 하몽 야채볶음에 밥을 볶아 싼다. 옷은 잘 마른 편이다. 청바지와 솜바지가 목욕탕 바닥 덕분에 잘 말랐다. 짐을 차분히 챙기고 출발한다. 윗집의 오빠가 깨지 않아 열쇠를 두고 떠나야 한다. 짐이 무거워서 천천히 걷는다. 둘 다 감기 기운에 몸이 살짝 안 좋다. 아침에 보는 입구의 물은 바이칼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스노클링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답다. 터미널에 8시에 도착하여 표를 끊고(14) 간식거리를 먹으며 기다린다. 예쁜 고양이가 달라고 해서 고기 빵을 나누어 먹었다. 8시 반에 작은 미니버스가 출발했다. 꼬또르의 해안을 따라 차가 달린다. 이곳은 남부유럽에서 가장 깊은 피요르드 해안의 위쪽 부분이다. 병풍처럼 산에 둘러 싸여있다. 해안선이 꽃잎모양으로 펼쳐져 있어 1시간을 돌아도 멀리 온 길이 보인다. 다리를 휙휙 놓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자연의 지형을 불편해도 그대로 유지한다. 깎아지른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이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 속에서도 지하수가 솟구치는 흔적이 보인다. 때로는 폭포수처럼 엄청난 양의 물이 바다로 떨어지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굽이굽이 멋진 풍경을 끼고 돌아 간다. 두브로브니크 성곽과 구시가가 보인다. 벽이 두툼하다. 지나쳐서 더 달려 11시 반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나키 : 코토르에서 비 맞으며 산성을 오른 것 때문일까? 감기 기운이 몸을 감싸고 돌았다. 다행히 두브로브니크 가는 버스 안에서 목을 의자 깊숙이 묻고 잠을 청하면서 몸이 조금씩 나아지다가 두브로브니크 도착할 때 쯤 거의 회복되었다. 코토르에서 두브로브니크가는 길의 초입은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인 피요르드의 해안으로 되어 있고 길은 피요르드의 맨 아래쪽을 따라 나 있다. 결국 거대한 꽃잎모양처럼 길이 나 있는데 그러다 보니 한 시간을 달려도 그 전에 지나왔던 길이 건너편 해안에 보인다. 다리를 놓아 휙휙 건너가는 우리와 달리 자연의 모습을 불편해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런 태도가 이곳을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었겠지. 몬테네그로와 크로아티아 국경을 지나는 건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해 무척 간단했다. 예전에 같은 나라였기에 그런 걸까? 3시간 정도를 달려 멀리 두브로브니크 성곽이 보였다. 버스도로는 산 중턱에 있기에 일단 지나쳤다가 스플리트로 가는 다리 앞에서 크게 P턴하여 시내로 진입할 쯤 터미널이 나왔다. 터미널 위치가 미리 검색했던 것과 다르다. 실바 아주머니네 숙소 게바라 : 내려서 짐을 챙기는데 할아버지가 다가와 론리플래닛을 보여주며 뭐라고 말을 하신다. 아마 론리에 자기 숙소가 소개되었다고 하는 것 같다. 그 다음에 실바 아줌마가 와서 자기 집도 론리에 나왔다고 소개를 한다. 부엌도 있고 다 준비된 집이라며 가서 보고 결정 안 해도 된단다. 아줌마는 세련된 차림의 우아한 중년 마담이다. 썬글라스, 어그 부츠에 늘씬한 외모의 50대. 한눈에도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예상했던 터미널보다도 더 외곽에 차가 도착하여 당혹스럽던 터에 25유로라고 하니 따라가 보기로 한다. 아줌마 승용차에 짐을 싣고 간다. 어제는 천둥 번개와 비가 대단했었단다. 자기 집에서 구시가 가는 방법과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주택에 도착했다. 앞에 바다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 유고 대통령이었던 티토의 별장이 있다. 티토가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얘기하신다. 계단을 오르면 레몬, 오렌지 나무 등이 있는 정원. 1층이 숙소이다. 아줌마네는 3층에 산다. 24평 정도의 1층 숙소는 살림집이다. 방 2개와 모든 것이 구비된 부엌에 세탁기도 있다. 25에 이런 조건이라니 대단하다. 볶는 기름을 달라 해서 좀 얻었다. 도시락을 먹고 12시에 간단한 가방을 가지고 구시가에 간다. 알려 주신 대로 내려가긴 하는데 좀 희한하다. 여기가 언덕 위쪽이라서 앞에 있는 콤파스 호텔의 8층에서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아나키 : 론리를 들고 할아버지와 중년여성이 말을 걸었다. "우리 집에 묵어볼래요? 론리에도 나왔고 25유로에 모든 시설이 다 되어 있어요." 솔깃했다. 그분께 지도를 보여 주고 현재 위치를 살피니 역시 버스터미널이 원래 있던 자리보다 좀 더 외곽으로 옮겨져 있다. 숙소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관광포인트에 있구요, 리조트지역이예요" 지도를 짚어주는데 생각보다 올드타운에서 멀다. 한 4km정도? "올드타운쪽으로 찾아보려고 해요. 좀 먼데요?" "집에서 잠깐만 나가면 올드타운 가는버스가 5분마다 와요. 일단 집을 보고 결정해도 되요. 보는 것 뿐이예요. 의무감 필요없으니 일단 봐요." 괜찮겠다 싶었다. 버스로 갈 수 있으면 뭐가 문제? 게다가 올 인원 아파트가 25유로니까. 아주머니 차에 짐 싣고 출발하려는데 아까 론리들고 왔었던 할아버지가 거기 집 정말 좋다고 엄지를 들어 보인다. 차로 잠깐 달려 숙소에 도착하니 입이 딱 벌어진다. 그냥 24평 정도의 독채다. 총 3층집의 1층 전체를 쓴다. 주방시설부터 세탁기까지 완비된 완벽한 숙소. 냉큼 결정하고 짐을 풀었다. 아주머니께 구 시가 가는 법과 성곽 위쪽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에 대해 들었다. 숙소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가는 방법이 특이하다. 숙소가 있는 길의 아래쪽에 있는 호텔 Kompas의 옥상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 로비(9층)을 지나고 한 층 더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간 뒤 호텔 테라스로 나간다. 투숙객도 아닌데 이래도 되나 싶지만 아주머니가 워낙 당연한 듯이 말씀 하시길래... 역시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다. 저녁에 장 본거 두 손에 바리바리 들고 거꾸로 엘리베이터를 올라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좀 미안하긴 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게바라 : 여름철에는 분주했을 개점휴업 상태인 레스토랑들을 지나 거리로 간다. 우체국에서 환전을 하고 버스표(12크로네 - 2400원)를 끊었다. 무척 비싸다. 1시간 동안 탈 수 있는 표란다(나중에 물어 보았더니 한번 밖에 못 쓰는 표란다. 1시간 이내의 거리에서 탈 수 있다는 뜻인 듯하다). 표를 끊지 않고 타면 15. 물가가 대단하다. 동양인 여자애도 한명 버스를 기다린다. 6번 버스로 구시가 입구에 내렸다. 성벽의 높이가 25미터라고 한다. 두툼하고 대단한 성벽이다. 해자는 공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메인 게이트인 필레로 들어가면 유명한 원형 수도와 넓은 도로가 나타난다. 오른 편은 미로와 같은 작은 길들, 왼편은 작은 골목들이 언덕길로 이어진다. 이 성곽 안에 사람들이 산다. 바닷가와 성곽 밖의 풍경을 보고 케이블카가 있는 곳으로 오른다. 아나키 : 버스정류장 옆 우체국에서 환전했더니 수수료를 떼었음에도 환율이 가장 좋다. 100유로 환전했을 때 우체국은 738kn 시내는 735kn 버스터미널은 725kn이 나온다. 시내 버스는 한 번 타는데 15kn. 엄청나게 비싸다. 정류장에 있는 부스에서 표를 끊으면 12kn다. 이 역시 엄청 비싸다. 둘이서 4km정도 되는 구 시가지에만 갔다 와도 우리 돈 만원이다. 너무 비싸서 혹시 정해진 시간 내에 환승은 되는지 물었더니 원타임이란다. 이렇게 대중교통비가 비싼 곳은 영국 이후로 처음이다. 구 시가지는 엄청나게 견고한 성곽으로 둘러싸여있다. 가장 높은 벽은 25m. 성 안의 건축물 역시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중심도로의 바닥은 매끈한 돌길이고 성당과 관공서, 공동우물등이 마련되어 있다. 신기한 점은 중심에서 일정 범위의 구역까지는 평지에 거리가 만들어져 있지만 더욱 외곽으로 퍼져갈수록 건물이 언덕위로 점점 높은 위치에 지어져 있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게 되어 있으므로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콜로세움과 유사한 구조가 된다는 점이다. 콜로세움 내부의 관객 석마다 사람대신 건축물이 올라가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될런지. 그러다 보니 외 성벽의 높이가 20여미터가 넘도록 높아지게 된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외 성벽 가까이 사는 집들은 무척 작다. 한 8~9평이나 될런지. 높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노인들도 많았다. 차는 물론 카트와 같은 것도 진입할 수없이 가파른 계단 좌우로 집이 있는 곳. 분명 유명한 역사지구이긴 하지만 이런 곳에 부유한 이들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내려 오다 인부 셋이 벽돌로 쓸 돌들을 힘겹게 하나씩 들고 올라오는 모습을 봤다. 조금 내려가니 그분들이 돌을 싣고 온 외발수레 세 대가 보였다. 뭐 하나 수리할래도 저렇게 사람의 힘을 써야 할 테니 어떻게들 살고 계실까. 북쪽 성벽을 지나가다가 벽돌인 석회암이 녹아내려 석회동굴과 같은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진 걸 봤다. 빗물이 흘러내리므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광경이지만 흔치는 않은 거다. 북벽 거의 전체에 걸쳐 석회암이 녹아내려 자연 동굴 벽과 같은 신기한 모습을 만들었다. 벽돌의 이음새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녹아내렸다. 오랜 세월을 한 곳에서 버텨온 건축물에게 자연이 내린 훈장이겠지. 두브로브니크 언덕에 올라간다 아나키 : 구 시가 북쪽에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언덕이 있다. 언덕 위까지 푸니쿨라(케이블카다)가 마련되어 있지만 일전에 만났던 미숙씨와 선영씨는 케이블카를 타지 말고 올라가 보랬었다. 마침 바람이 거세어 케이블카가 운행을 중단했다네. 걸어 가 보라는 계시렸다. 푸니쿨라 출발장소에 있던 동양인 소녀 한명도 푸니쿨라를 기다리다 걸어 올라가기로 한 모양이다. 먼저 언덕의 초입에 형성된 달동네길을 오른다.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이 곳 역시 성 안의 외곽지역처럼 차나 카트가 못들어가도록 가파르다. 아드리아해가 탁 트이게 보이는 전망은 일품이지만 사는 사람들은 엄청 힘겨울 것 같다.
달동네가 끝나는 지점에 코토르~스플리트를 잇는 국도가 있다. 두브로브니크 들어올 때 버스로 지나갔던 길. 여기서 본격적인 트레일을 찾지 못해 아까의 그 동양인소녀가 망설이고 있어 이야기를 걸었다. "올라갈 거예요?" "그런데요 올라가는 길이 어딘지 모르겠네요. 이 길은 아무래도 사람이 다닐 길은 아닌 것 같은데 저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가야 할 지 모르겠어요." 맞다. 이 국도변은 사람 다니는 인도가 거의 없다. 아까 푸니쿨라 운행직원 말 대로 가 보자니 위험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직원은 왼쪽으로 가다가 버스정류장 나오는 데서 트레일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그대로 가 보기로 했다. 동양인 소녀 이름은 한. 처음 봤을 땐 이곳에 살고 있는 동양인 초 중생인줄 알았다. 150cm정도의 키, 어그 부츠에 숄더백 차림이라 여행자 같지는 않았기에. 우리가 트레일을 먼저 올라가고 한도 따라 오른다. 처음엔 가벼운 산책길이 갈짓자로 이어지다가 숲이 끝나고 돌투성이 초지가 나온다. 아래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높고 까마득하다. 한은 중간 중간 카메라로 풍경을 담아가며 많이 처지지 않도록 오른다. 날이 흐려지면서 2시 반임에도 어둑어둑해 지고 비가 흩뿌린다. 아무래도 더 올라가기 전에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한은 그 차림에 그 날씨에도 오히려 지난 날보다는 날씨가 좋다면서 꿋꿋이 올라간다. 어쩌랴. 저 작은 친구도 씩씩하게 올라간다는데. 우리만 내려간다 할 수 있나. 산 중턱 쯤 올라가자 구름이 휘감아오며 비를 뿌린다. 산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정상의 구조물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비가 점점 거세졌지만 올라온 길이 멀어 다시 내려가기도 어쭙잖다. 비바람을 맞다가 등지다가 비에 졸락 젖어 정상에 오르니 방송탑 건물이 있고 자동차 몇 대가 주차해 있다. '역시 올라 오는 찻길이 있는 것이로구나.' 케이블카 대합실은 아예 문이 잠겨 있고 내전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만 문이 열려 있다. 비가 하도 거세어 박물관 지키는 소년에게 양해를 구해 비를 피해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 방송탑에서 퇴근하시는 분들이 나오다 우릴 보고 말을 걸었다. "두유 고 투 더 타운?" "예스" "유어 쓰리?" 하면서 차에 타란 손짓을 한다. 천우신조라니. 이 날씨에 언덕을 기어올라온 외국인에 대한 측은지심에서의 배려겠지. 천사같은 분들 덕에 무사히 차를 타고 타운까지 내려왔다. 게바라 : 케이블카 앞에 아까 버스 정류장에서 본 동양인 여자애가 있다. 직원이 말하기를 15분 전에 바람이 많이 불어 운행이 중단되었단다. 직원에게 위로 올라가는 길을 물었다. 마을을 끼고 오르는 길은 일직선으로 계단이 계속된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오히려 상점이 있는 성곽 내부보다 재밌다. 수선화가 핀 작은 정원, 무화과가 남아 있는 나무, 창밖을 내다보시는 할머니. 사는 사람들은 차도 없이 걸어서 올라야 하는데 얼마나 힘들까. 할아버지 한 분이 밑에서 올라오신다. 우리보다 속도가 낫다. 중간부터는 갈 짓자 모양으로 오른다. 승용차가 위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재미있다. 뒤로 내려왔다 앞으로 가기를 반복하며 내려간다. 길이 편도인가 보다. 큰 찻길에서 앞서 가던 동양인 여자애도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 베트남에서 온 한이라는 대학생이다. 작아서 이곳에서 사는 중학생 정도의 아이인 줄 알았다. 하노이에서 산다고 한다. 같이 대로를 걸어 산으로 오르는 입구를 찾았다. 키 큰 나무들과 관목들, 공기도 좋고 바닥이 폭신하다. 계속 갈 짓자로 올라야 해서 질러 올라가는 꼼수를 부리다 남편은 손에 가시가 박혔다. 찌른 가시나무를 찾아 다행히 그 가시를 꺾어 손의 가시를 빼냈다. 결국 요령을 부린 우리보다 한이 빨랐다. 중반을 넘어서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포기하자는 생각이 든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라면 좀 아니다. 그런데 한은 개의치 않고 사진도 찍어 가며 천천히 따라 온다. 조그만 아이도 잘 가는데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 한다. 끝없는 갈 짓자 길을 오른다. 가방은 오리털 잠바 안에 매었다. 점점 몸이 젖는다. 소들이 풀을 뜯고 소치기 아저씨도 만난다. 구름 속에 들어서서 시야도 흐려진다. 그래도 성곽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게 되어 다행이다. 한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올랐고 한도 우리가 없었다면 혼자 오르기가 어려웠을 거다. 카프카의 '성'처럼 도달하지 못하는 성은 아니었다. 비 피할 곳을 찾는다. 뒤로 돌아가 보니 송전탑도 있고 내전에 관한 작은 박물관도 있었다. 우리 돈으로 6,000원 정도. 비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비를 맞으며 가 봤지만 문을 닫아 비 피할 곳이 없다. 결국 다시 박물관 계단 입구에 왔다. 사정을 얘기하고 비를 피한다. 들어와서 구경을 하라고 한다. 입구 쪽에 서 있으려니 아저씨 둘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안 그래도 밖에 차가 몇 대 서 있어서 이 분들 퇴근할 때 타고 가면 안될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먼저 타운에 갈 거냐고 묻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송전탑에서 집에 가는 직원 분들을 만난 것이다. 일행이 셋이라니까 좋다고 타란다. 어렵게 올라온 길을 참 쉽고 편하게 내려간다. 다행히 산의 뒤쪽으로 차가 다니는 길이 있었다. 필레 입구에 내려 주셨다. 은인을 만났다. 한과 헤어지고 찻집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비를 긋다가 성곽 안을 더 보기로 한다. 피자집도 마땅치 않다. 결국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가 그냥 숙소로 가기로 결정한다. 비가 계속 오고 몸이 춥다. 6번 타고 내려 수퍼에서 홍합, 오징어, 쇠고기 등을 푸짐히 산다. 이곳은 다행히 버섯이 싸서 작은 송이와 느타리, 미니 양배추도 샀다. 빠르게 걸어 호텔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와서 5시에 숙소에 도착.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도 대단한 모험을 하고 왔다. 우선 히터를 켜고 몸을 말리고 옷도 널어놓는다. 소고기는 스테이크로 구웠다. 집에서 가져온 10년 묵은 소금이 제 목을 한다. 간 같은 맛도 나고 대단히 훌륭하다. 340g에 7,000원 정도. 이곳은 전반적으로 물가가 비싸다. 오렌지는 산지라서 그런지 물이 많고 달다. 남편은 공유기가 잘 안 되어 윗집도 다녀오고 아저씨도 와서 보고 갔다. 딸이 오면 잘 될거란다. 이웃집 걸로 쓰다가 정말 딸이 오니 잘된다. 잘 챙겨 먹고 한숨 잤다. 9시에 일어나 다시 야채를 잔뜩 넣은 볶음밥을 해먹고 일기. 남편과 식탁에 앉아 앞으로의 일정을 짜려고 지도와 패드를 펼쳐 놓고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일년 전에 꿨던 꿈이라고 한다. 실바 아줌마를 만나 여기 오는 것도 예정된 거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남편은 일찍 잔다. 히터가 있어 따뜻하고 침구도 오리털 이불, 완전 가정집 분위기이다. 멀리 파도치는 소리가 세게 들린다. 지금 발칸과 동유럽 전체는 눈과 비가 내리고 있다. 어디를 가도 젖고 춥다. 가장 따뜻한 곳이 이곳이다. 내일 아줌마가 터미널에 태워 준단다. 참 친절하다. 일정을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이 숙소도 너무 좋고, 사둔 먹거리들도 많고, 아직 성곽 구경을 제대로 못해서 하루 더 있기로 한다. 스플리트를 가지 말고 그냥 모스타르로 올라갈 예정이다. 내일은 우산을 제대로 챙겨서 돌아야겠다. 1.16(수)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도시 성벽 게바라 : 밤새 빗소리가 대단했다. 어제는 몇 군데다 메일도 보내고 잤다. 남편은 오래 잘 잔다. 새벽에 일어나 책 보다가 졸다 7시 반에 일어났다. 홍합, 꼴뚜기를 야채와 볶고 밥을 했다. 어제 남긴 볶음밥과 물에 끓인 밥을 먹고 도시락을 쌌다. 부모님과 해안에게 전화도 했다. 아줌마에게 하루 더 있겠다고 말씀 드렸다. 마당에 떨어진 오렌지 하나를 먹었는데 맛이 좋다. 나무에서 딴 게 아니고 주은 거니까 먹어도 되겠지. 10시에 출발하여 50유로를 환전하고 버스로 필레 게이트. 오늘은 성곽 내 메인 도로 양쪽의 사람 사는 곳을 둘러본다. 왼편의 언덕 쪽은 좁은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다. 양쪽에 작은 집들이 있다. 성곽은 시간이 흘러 석회질이 녹아 내려 동굴에서 보는 것 같은 석순이 자라기도 한다. 완전 코팅되어 흘러 내려 벽면의 벽돌 쌓은 흔적이 사라지기도 한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비가 퍼붓는다. 오늘은 우산이 있다. 반대편의 동네를 보러 간다. 광장에는 간이 시장이 열렸다. 여기 사는 주민들이 물건을 산다. 수퍼에서 2도짜리 주스 같은 맥주와 소시지를 샀다. 언덕 위 성당 앞에서 먹고 성당에 들어갔다. 내부에 의자가 있어서 성당은 쉬기에 좋다. 코소보에서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렸으니 이번엔 성당에서 기도를 드린다.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발칸, 한반도, 팔레스타인 지역 같은 곳에 분쟁이 사라지기를, 인간이 인간에게 탐욕스런 행위를 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성곽 아래 작고 아기자기한 집들에 사람이 산다. 미니 집에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잘 사는 사람들은 실바 아줌마가 사는 곳 같은 마을에서 살겠지. 삶이 너무 불편하다. 작은 땅에서 공사를 하는데도 등짐으로 인부들이 다 지어 나른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 집에 간다. 옷차림이나 가방, 신발 등이 번듯하다. 얼굴 표정이 좋다. 골목을 걸어가다 정교 성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서서 기도를 해야 한다. 의자가 없다. 평화의 기도를 드린다. 쇼윈도에 대형 피자를 놓고 파는 괜찮아 보이는 피자집에 들어갔다. 거대한 피자를 조각으로 판다. 콤비네이션 한 조각(15 크로네 - 3,000원)을 남편과 나누어 먹는다. 맛이 나쁘지 않다. 집에 가던 꼬마가 들어와 프라이드 포테이토 칩(15)을 시킨다. 뾰족한 사각 원뿔의 용기에 케첩, 마요네즈 2가지의 앙증맞은 용기를 끼워 얹어 준다. 집에 가면서 먹는 가보다. 우리도 하나 시켜 먹었다. 맛이 좋다. 미국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유럽 스타일? 물론 매일 먹으라면 힘들겠지만 이곳 패스트푸드는 제법 괜찮다. 가족이 운영하는 집이다. 젊은 아줌마는 좀 무표정하고 심심해 보인다. 이번엔 청소년 정도의 여자 애들 여럿이 또 칩을 주문해 먹는다. 인기 있는 분식집인가 보다. 꼬맹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비옷을 벗고 주문하고 기다린다. 하나 씩 손에 들고 집으로 간다. 남편이 꼬마가 비옷 입는 걸 도와주자 아이도 젊은 아줌마도 씩 웃는다. 밖에는 천둥 번개가 가까운 데서 치면서 비가 내린다. 아주 큰 소리가 나고 전깃불도 오락가락 한다. 남편은 칩도 피자도 수준 이상 하는 집이라고 한다. 맛있게 먹고 길을 나서서 박물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고양이들도 비둘기도 들어와 있다. 결국 돌아가기로 한다. 더 이상 다닐 곳도 없고 일단 춥다. 버스 타고 버스터미널에 내려 내일 8시 모스타르행 버스표(1인 108)를 끊었다. 짐값도 대략 10쯤 될 거라고 한다. 차비가 한번에 5,000원 정도 드니까 집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바다를 끼고 돌아 언덕을 넘어 3km의 거리를 40여분 만에 온다. 아슬아슬 비를 대충 맞기도 하고 피해도 가면서 2시에 도착했다. 도시락을 먹고 아줌마에게 숙비를 드렸다. 유로가 모자라서 10유로(14,000)와 110크로네(22,000)를 드렸다. 고맙게도 내일 아침 7시 반에 아래에서 만나자고 한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신다. 좋은 숙소에서 잘 쉬고 이런 서비스까지 받다니. 우리를 참 편하게 해주셨다. 스플리트에 안 가게 된 것, 여행 일정도 이 집이 좋아서 바뀌었다. 오늘 아줌마네는 정원 나무 손질을 했다. 아침부터 정원 손질하시는 아저씨가 와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다듬었다. 거대한 야자나무가 3층까지 올라가 창가까지 드리웠엇다. 과감히 머리카락을 잘라 내어 산뜻한 모습이 되었다. 남은 돈은 내일 재 환전해야 겠다. 남편은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돌아다니면 신발이 젖어서 불편해 한다. 4시 40분에 부엌의 창밖이 환해 온다. 날이 개어서 해가 지고 있다. 남편을 깨워 밖에 나가 바다에서 해지는 모습을 찍었다. 오랜만에 찬란한 해를 본다. 해는 너무 밝고 건물이나 다른 것들은 어둡게 느껴져 비현실적인 풍경이 된다. 들어와서 자다가 6시 반에 일어나 소시지 볶음과 밥을 해서 먹었다. 소시지는 역시 좀 짜다. 물에 삶아내고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로즈마리와 남은 레몬을 쓴다. 남은 야채를 다 넣어 볶았다. 밥은 물에 끓여 먹기만 해도 구수하고 좋다. 식재료가 다 떨어졌다. 아줌마 정원에 떨어진 작은 오렌지 몇 개를 더 가져왔다. 쌀과 물을 사다가 내일 점심 준비를 할까 했는데 다시 비가 온다. 책이나 보다 자야겠다. 내일 아침은 짐 챙겨서 일찍 나가야 하는데 아줌마가 이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지 좀 걱정이다. 물받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아나키 : 비는 두브로브니크 있는 동안 아침에만 잠깐 그쳤을 뿐 낮부터 저녁까지 계속 내렸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거센비가 계속되어 누군가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했던 이곳의 자연 환경을 온전히 느껴볼 수는 없었다. 대신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길을 건너려 할 때마다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차를 멈추고 기다려 주었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아이들과 청소년의 얼굴들이 대부분 순박하고 맑았으며 언덕 위에서 우리를 도와 준 박물관 지킴이 소년과 방송탑 근무하시는 아저씨들, 친절이 몸에 밴 숙소 주인 실바 아주머니 등등. 역사나 자연보다 한층 소중한 사람들의 향기를 받고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