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 :: 2013 발칸/동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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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목) 베를린 - 이스탄불 아침 8시 쯤 일어나 딸기케익을 먹고 남편을 깨웠다. 굴라쉬를 데웠다. 파프리카를 넣어 푹 끓였는데 남편은 하이라이스 맛이라고 한다. 짐을 챙겨 놓고 정부청사인 전철로 한 정거장인 분데스탁에 갔다. 못 들어가게 하고 설명을 해준다. 개인적인 방문은 쉽지 않은 듯하다. 미리 신청하고 기다려야 들어간다. 역수퍼에서 잔돈을 해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작은 애플파이와 요구르트를 샀다. 짐을 챙겨 10시에 쇤필드가는 빠른 열차인 공항 급행을 탔다. 30분 간격으로 있다. 쇤필드공항에서 아나키 : 중앙역에서 11:16분 공항급행을 탔더니 11:45분 쇤필드역에 도착했다. 역 건물이 많이 낡아보인다. 동 베를린시절 건물인것 같다. 역을 빠져나와 공항터미널까지 긴 회랑로가 이어진다. 뭐, 무빙워크같은 건 없다. 비바람이 치면 그를 온전히 맞을 것 같은 회랑이다. 쇤필드 공항터미널은 무척 작다. 중소도시버스터미널같은데 1층 출국장부터 과 출국카운터가 있는 2층까지 의자하나 없어서 튼튼해 뵈는 라디에이터에 앉았다. "두한엉열이야~ 엉덩이가 따끈따끈해" 2층 항공사 카운터로 들어가기 위해 일차 짐 검사를 하고 기내로 보낼 짐에 노란 태그를 붙인다. 이스탄불 사비하공항 간다는 세 군데 카운터에 늘어선 긴 줄. 대부분 짐들이 거대하여 추가 요금을 내느라 진행이 무척 더디다. 카드로 지불하려 하는데 카드가 안된다거나, 카운터 보는 청년이 조금 익숙치 않아 옆 언니에게 계속 물어보는 등등 우리 앞 사람이 겨우 5명이었는데도 시간은 30분 넘게 걸렸다. 우리는 물론 수속이 무척 빠르다. 둘이 합쳐 짐이 15kg뿐이니. 티켓을 받고 출국 보안검사를 금방 통과하니 중형규모의 면세점이있다. 이곳에서는 0.5리터들이 위스키나 보드카,꼬냑을 플라스틱병으로 파는 게 특이했다. 선물할 것이 아니라면 플라스틱 병이 여행 중에 훨씬 유용할테지. 출국검사가 없는게 특이했는데 알고 보니 이스탄불행 페가수스항공기가 떠나는 61번 게이트 앞에서 출국검사를 한다. EU국가와 아닌 곳을 게이트로 분리해 출국검사를 따로 하는 건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게이트까지 가는 중 바와 식당 내부를 지나게 하는 것도 특이하다. 물론 공항바깥보다 훨훨 비싸서 먹을 생각은 안들었지만. 게바라 : 공항은 무척 작고 앉을 장소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라디에이터에 앉아 있어서 우리도 같이 앉아 요구르트를 다 먹었다. 어이없다. 독일에서 이토록 낡고 초라한 공항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시골 마을 공항 같다. 심지어 밖으로 걸어 나가서 비행기에 올랐다. 페가수스 에어
터키 저가 항공인 페가수스는 아예 물 한잔도 없다. 모든 걸 분식집에서 주문하듯 사먹어야 한다. 꾹 참고 2시간 반을 있었다. 저녁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카드를 충전하여 7시에 시내버스를 탔다. 사람이 꽉 찼다.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나키 : 베를린에서 이스탄불 가는 터키국적 페가수스 항공료는 고작 80파운드. 버스 값보다 쌀 정도라서 비행기 가득 사람들을 태우고 간다. 항공기안 식사도 구입해 먹는 방식인데(에어 아시아가 이랬다) 저가를 유지하려면 이렇게 해야 할 거다. 이륙 전 스튜어디스의 기내안내 화면엔 어린이들이 스튜어디스,기장,승객역할을 맡아 안내한다. 정말 귀엽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는 항공사라니. 유쾌한 사람들인걸!
출발 두 시간 쯤 되니 비행기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20여일에 걸쳐 베를린까지 왔다가 이렇게 순식간에 원점으로 돌아가다니. 인생은 여행이다. 우여곡절을 모두 겪는 게 경험이고 인생이다. 베를린에서 이스탄불을 두 시간 반에 오듯 정해진 경로를 빨리 가기만 한다면 그것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건가. 인생은 배낭여행이다. 가이드가 동반된 여행은 여행의 엑기스를 곧바로 짚어내며 시간 낭비가 없지만 그 뿐.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한 과정의 기억이 없으니 온전히 경험이 되기 힘들다. 여행하면서 틀린 길로 벗어나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며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경험이고 그래야 내 삶이 되는 거다. 어린이들에게 삶의 길을 너무 많이 일러 주려는 어른들이 생각해 봐야 할 일. 어린이들에게 삶의 맛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이스탄불 사비하공항 생각보다 공항주변도 붐비고 공항도 붐비고 공항에서 시내가는 길도 많이 막힌다. 공항을 나서니 탁심과 카드쾨이로 가는 버스들이 줄지어 있다. 모두 공항버스다. 우린 이스탄불카드를 충전하는 곳을 물었더니 공항 바깥 길 건너편이란다. 길 건너편 충전기가 있는 옆 창구에서 카드쾨이 가는 차비를 물어보니 잠깐 헷갈리는 듯 했다. 그렇지만 카드를 내미니 알았다는 듯 묻는다. "얼마 충전할건데?" "20이요" 100리라권을 내밀었다. "E10버스야" "어디?" "바로 앞에" 늘어서 있는 버스 중 하나인지 몰라서 버스를 기웃거렸지만 다 아니다. 좀 있다 시내버스 모양의 E10버스가 들어온다. 우리 두명 분으로 카드를 두번 찍고 버스에 올랐다. 콩나물버스다. 자리가 곧 차고 서서 가는 이들도 많다. 길이 엄청 막혀서 차가 기어간다. 사비하공항에서 카디쾨이까지 오는 내내 차들이 많고 붐빈다. 관광객이 오지 않는 이스탄불 아시아지구, 이곳이 도시 이스탄불의 진짜 사람 사는 곳일테지. 버스는 한시간 이십분 정도 지나 종점인 카드쾨이에 도착했다. 혹시 에미뇨뉴 가는 선착장을 찾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 버스를 세운 곳 바로 맞은편이 카라쾨이-에미뇨뉴가는 선착장 바로 앞이다. 성공적으로 배에 타고 나니 한숨 놓인다. 정말 오랜만의 이스탄불페리. 6년 만이다. 여행의 말미다.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이유 없이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스탄불 동쪽 아시아 지구 깊숙이 있는 사비하공항에서 보스포러스 해협 시버스 터미널인 카디쾨이로 가는 시내버스를 탈 때 부터 그랬다. 한시간 20여분 계속 막히는 길. 버스 뒷 좌석에서 졸면서 이곳이 한국인지 터키인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어디든 도착하면 사람들의 도움이 있을 것이니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 여행자 지구인 술타나멧까지 가는 데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속으로 생각했다. 버스에서 몇 번 카디쾨이에 대해 물어봤을 때 세세한 말은 하나도 안 통하지만 카디쾨이에서 에미뇨뉴(술타나멧과 연결된 선착장)로 간다고 대강 알아듣고 나서 별 걱정스럽지 않게 대한다. 버스 정류장 안내판(버스 중간에 화면으로 나온다) 에 카디쾨이가 종점으로 나오고, 막상 곧바로 에미뇨뉴 가는 배 선착장 코앞에 버스가 대었을 때, 역시! 그랬다. 이번 여행 시작 때 소피아 가느라 잠깐 지나친 것 말고는 6년만의 이스탄불 여행이다. 보스포러스해협을 건너는 시버스 출렁거리는 객실 안에서, 멀리 술타나메트 지구의 뾰족한 첨탑들이 보일 때 드디어 이스탄불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게바라 : 이스탄불은 비가 많이 내린다. 버스는 1시간 반을 달려 카드쾨이 종점에 도착했다. 퇴근 무렵이라 그런지 교통체증이 심했다. 배를 타고 에미뇨뉴에 내려 다시 트램을 탔다. 술탄 아흐멧 다음에 내린다는 것이 정거장 하나가 사라져 한참 간다. 내려서 작은 고등어가 들어있는 케밥(3.5)과 오징어링(5)이 든 케밥을 샀다. 수퍼에 들러 물과 오렌지, 햄을 사고 10시에 튤립하우스를 찾아 갔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온다면서 강남스타일 얘기를 또 한다. 우리는 싼 숙비를 냈는데(38달러) 바다 전망의 방을 주겠다니 참 고맙다. 전망도 좋고 고풍스러운 숙소가 마음에 든다. 물론 고맙게도 아침 포함이다. 숙소는 창가에 작은 침대가 따로 있는 3인실이다. 어제 오리털 파카를 입지 않고 얇게 입고 돌아 다녀서 목감기에 걸렸다. 몸 상태도 별로 안 좋고 너무 피곤해서 이빨도 닦지 않고 잤다. 아나키 : 트램을 타고 숙소에 가까운 역에 내릴려고 했더니 역이 폐쇄되어 그랜드 바자르로 통하는 다음 역까지 그냥 지나간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지만 별 멀지 않으니 부담은 없다. 길가에 맛나 보이는 해산물 케밥집이 보여서 새끼전갱이 케밥과 오징어 튀김 케밥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야채와 소스를 에크멕(빵)에 듬뿍 넣어 만든 생선 케밥. 빵은 무척 크지만 부드럽기 짝이 없고 전갱이는 고소하기 한이 없다. 게다가 야채가 듬뿍이라 혓바닥에도 착착 감긴다. 동유럽음식에서 귀하게 샐러드 정도로 나오던 야채를 듬뿍 넣어 주니 고마울 밖에. 생선이 지천이라 고기에 비해 값도 싸다. (3.5리라) 오히려 오징어링 튀김 케밥은 소스가 상큼했지만 야채도 별로 없고 상대적으로 비쌌다(5리라). 2.1(금) 이스탄불 게바라 : 아침에 동이 튼 후의 바다 전망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기막히게 좋은 날씨다. 멀리 보이는 풍경들이 파노라마의 화면처럼 멋지다. 이런 곳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며칠 쉬어도 좋겠다. 샤워를 하고 짐을 대충 챙겨두고 아침을 먹으러 간다. 오빠가 숙소 식당이 공사 중이라며 미안해한다. 이웃 호텔인 블루 이스탄불에 가서 먹든지 아침 식사비를 돌려주겠다고 한다.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인데 아침을 먹기로 했다. 걸어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침 식사는 빵, 치즈, 과일, 말린 과일도 여러 종류가 준비되어 있고 스위츠도 있다. 특히 치즈 춘권 튀긴 것이 맛있었다.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 근사한 식사다. 그러나 감기 때문에 입맛이 없다. 숙소에 와서 왜 이 동네에 튤립 그림이 많냐고 물었다. 16C에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튤립을 선물 받은 후 왕실이 튤립을 키우면서 터키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짐을 다 싸서 맡기고 10시 15분에 나섰다.
아나키 : 2월 1일 아침 일정은 코취사의 회장인 라흐미 M 코취 박물관으로 정했다. 터키 최초 교통수단에 대한 박물관으로 어른들의 놀이터라는 평이 있었기에. 짐을 정리해 숙소 창고에 맡겨 두고 숙소 스탭에게 물었다. "코취 박물관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하죠?" "에미뇨뉴 버스정류장 (갈라타 다리 앞)에 가셔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여행자에게 길 알려주는 걸 다들 좋아하니까요." 숙소가 있는 술타나멧에서 트램으로 세 정거장이라 지도를 보고 걸어가 보기로 했다. 트램은 둥글게 돌아가니까. 바로 질러가면 빠를 것 같았다. 아야 소피아 앞에서 지도를 보고 에미뇨뉴 버스정류장을 직선으로 놓고 걸었다. 날이 따뜻하고 맑다. 25일 동안 줄곧 비 오거나 흐리거나 춥거나 해서 여행인지 노동인지 모를 날들만 지내다 정말 오랜만의 맑고 따뜻한 날. 목적지는 정했지만 꼭 가야한다는 건 아니기에 조금은 정처 없는 길. 전에 가보지 않은 길들을 한가로이 걷고 있으니 이제서야 진짜 여행 같은 느낌이 난다. [술탄아흐멧 모스크의 닳은 문턱] 쭉 걷다 보니 복잡한 시장통이 나온다. 아마 이집션 바자르와 연결되는 것일테지. 의류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엄청 많고 터키 공예품을 취급하는 곳도 많다. 정확히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분위기가 90%이상 같다. 옷 걸린 모습, 간판 이 있는 위치, 사람들의 움직임 등등. 이스탄불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한국의 모습을 발견한다. 6년전에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들. EU가입이 아직 안된 상태이기에 변화도 적은 것일테지. 아마 EU가입이 되고 나면 이 모습들이 많이 변하지 않을까. 바자르에서 터키커피 기구를 보고 하나 사갈까? 했다. 작은 포트인데 양은으로 만든 게 꽤 멋스럽다. 어차피 여행 말미인데 배낭에 꾸겨 넣으면 되지. 버스정류장에 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처자에게 지도를 보여 주며 몇 번 버스가 가는지 물었다. "나도 거기 가는데, 남자친구가 오면 같이 갈 거예요. 기다리실래요?" "그냥 버스 번호만 알면 되요." 처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몇 번 물어봤지만 아무도 모른다. 좀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러 간 사이 웬 남자 한 명이 우리 자리로 와서 전화를 건다. '저 사람이 남자친구가 아닐까?' 생각했다. 맞다. 커플은 우리를 데리고 47번 버스가 서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옷을 가벼운 것으로 갈아 입는 와중에 이스탄불카드를 옷 속에 넣고 배낭을 쌌다! 그냥 제톤을 사서 가려고 했는데 제톤 값이 무려 3리라. 이거 왜 이렇게 비싼 거지? 카드를 쓰면 한 번 타는데 1.95리란데. 쇼핑할 겸 이집션 바자르를 거쳐 숙소로 가 보기로 했다. 아까 봤던 커피 기구는 아무래도 손잡이가 똑 떨어져 나갈 것 같기도 하고, 양은이라 그리 몸에 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포기했다. 스텐레스 제품은 60리라 이상으로 많이 비싸다. 다시 되돌아 가는 길은 마눌님에겐 무척 피곤한 길인가보다. 나는 여행 말미로 갈 수록 힘이 점점 더 나는데, 마눌님은 다리 쪽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다. 걷는데 엄청 힘든 눈치다. 게바라 : 힘이 없고 몸이 불편해서 슬슬 걷는다. 술탄 아흐멧 너머의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 갔다. 온갖 생활물품들이 모인 곳이다. 커피 끓이는 그릇을 살까 하다가 예쁘기는 한데 품질이 별로다. 남편이 교통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해서 에미뇨뉴에서 버스를 타기로 한다. 어떤 언니에게 물었더니 남자 친구와 거기에 갈 건데 따라 오라고 한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다가 남편이 옷을 바꿔 입고 와서 교통카드를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시장 쪽으로 걸어올라 가다가 호두 까는 도구(7)를 샀다. 그런데 가격표가 붙어있는 다른 집은 5에 팔고 있었다. 경나에게 사갈 것이 없는지 전화로 물었더니 타진 남비 말고는 없단다. 도자기는 사가기 어려운데 파는 곳도 없었다. 열심히 걸어서 숙소에서 카드를 챙겼다. [술탄아흐멧 트램역] 아나키 : 숙소에서 카드를 찾아 술타나멧 역으로 나왔다. 벌써 12시 40분. 두 시간 이상을 줄곧 걸은 셈이다. 코취 박물관은 포기하고 돌마바흐체 궁점을 관람하기로 계획을 바꾼다. 마눌님은 트램을 타자 바로 존다. 트램에서 내린 곳은 카바타쉬. 종점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카바타쉬에서 내려 좀 걸어야 한다. 좀 졸다 깬 마눌님은 조금은 힘이 난 것 같다. 돌마바흐체 궁전 게바라 : 교통박물관은 건너뛰고 트램타고 돌마 바흐체 궁전으로 간다. 내려서 약간 걸었다. 궁과 하렘을 보는 가격이 터키인은 20, 우리는 40(28,000원)이다. 엄청난 가격이지만 이번에는 보기로 했다. 들어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궁은 레이스 조각을 붙여 놓은 것처럼 외형이 예쁘고 바다 전망이 너무나 아름답다. 날씨가 맑아서 더 좋다. 궁으로 들어가는 줄이 길다. 15분 정도 기다리니 영어가이드 투어를 들여보낸다. 이곳은 단독으로 관람할 수 없다. 자국어와 영어 두 팀의 가이드가 안내하면 따라다녀야 한다. 신발 위에 덧비닐도 씌워야 한다. 뭐기에 이리도 유난을 떠나 했더니만 실내의 모든 것이 진짜란다. 들어가는 순간 다 납득이 된다.
우리는 가이드 바로 뒤를 따라 갔다. 화려하다는 베르사이유, 살림집 스타일의 검소한 합스부르크 왕가도 보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사치스러운 궁은 처음이다. 마지막 6명의 왕들이 살았던 곳이고 1800년대 중반부터 겨우 몇 십 년을 산 궁전이다. 전에 터키에 왔을 때 보았던 톱카프 궁전은 그 이전의 왕들이 생활하던 곳이었단다. 그 궁전은 소박했는데 이곳은 돈으로 만든 궁이었다. 올라가는 계단 난간의 작은 기둥도 모두 영국산 크리스탈로 주문 제작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호화 대리석 실내 홀의 기둥, 엄청난 크기의 크리스탈 샹들리에, 천장의 그림, 레이스 문양을 재현한 장식들, 모든 것이 놀랍다. 유럽의 극치일 뿐 이슬람의 흔적은 거의 없다. 이런 궁을 요란하게 광고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말년에 호화로운 궁을 짓고 오스트리아와 함께 1차 대전을 치르고 패전국이 되었으니 아무리 부자라도 왕실이 좀 한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왕족들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외국으로 가고 70년대에 돌아와도 된다는 허락을 했지만 외국에서 자리 잡고 살다보니 오지 않는단다. 돈은 또 얼마나 많이 챙겨서 떠났을 것인가. 열심히 모방하려고 했던 바로 그 유럽에서 호화판으로 산다면 올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이후 아타튀르크가 터키를 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된다. 호화로운 왕궁에 비해 아타튀르크의 방은 호텔 같은 느낌이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궁을 보고 나서 다시 하렘에 들어가는 곳에 줄을 선다. 운이 좋게도 바로 연결되는 영어가이드 투어가 있었다. 여성과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하렘은 외형부터 궁보다 소박하다. 내부도 궁보다는 화려함이 덜 하고 좀 더 살림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렘이라는 용어가 뭔가 화려하고 비밀스럽다는 선입견을 주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평범했다. 그냥 궁만 봐도 될 뻔 했다. 정원에서 오렌지와 고리깨빵(1)과 햄을 먹었다. 아나키 : 궁전 입장료는 무려 40리라. 궁전과 하렘을 포함한 가격이다. 궁전 앞엔 장사진이 쳐져 있다. 게시판에 쓰인 걸 보니, [개인적 방문은 안됩니다. 사진 금지. 영어 투어 시간은 13:20분] 일정한 그룹을 만들어 가이드와 같이 가야만 하는 거다. 비싼 가격에 가이드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군. 궁전 들어가기 전에 비닐 덧신도 신어야 한다. 10여분 기다리다 덧신 신는 곳 까지 와서 또 10여분 기다린다. "ㅋㅋㅋ 덧신 신는 권리를 획득했군~" 어느새 사람들의 줄은 더욱 길어졌다. "영어 투어 하는 사람들 앞으로 나오세요~" 몇몇이 앞으로 나간다. 우리도 같이 앞으로 나섰다. 오호,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은 터키인들이구나. 영어 투어하는 사람들은 이십여명. 특이하게도 계단 난간 기둥이 유리다. 가이드가 말했다. "이 유리과 샹들리에는 모두 잉글랜드 크리스탈(수정)입니다." "모든 집기들은 오리지널이며 관리만 현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물었다. "샹들리에에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이것도 오리지널인가요?" "원래는 가스를 썼는데 1920년대부터 전기로 바꿨고, 그것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헉. 모든 게 오리지널? 그리고 유리로 보이는 모든 게 다 수정이라고? 이 궁전은 1856년에 31대 술탄에 의해 만들어져 6명의 술탄이 썼던 궁전인데 이슬람의 모습은 간데 없고 유럽식의 양식이 많이 도입되어 있다. 기둥과 샹들리에는 대부분 튤립 모양이며 바닥은 3가지 서로 다른 색의 나무 조각을 정교하게 잘라 붙여 무늬를 냈다. 메인 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는 램프만 780개, 무게는 무려 4.5톤에 달한다. 두 번째로 크다는 샹들리에도 이곳 궁전 안에 있다. 궁전 전체가 이슬람스럽지 않게 엄청 사치스럽다. 이 정도 라면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사치는 베르사이유보다 더한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사치스러운 건물이 지어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전 술탄들은 톱카프 궁전을 썼다는데 망해 가는 오토만 제국 입장에서 이런 궁전을 짓다니. 게다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왕가와 손잡고 1차세계대전의 주역이 되어 동반 멸망하지 않았나. 오스만 제국 멸망 후 술탄 일가는 해외로 도피, 1차 대전의 연합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하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독립 전쟁, 그리스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공화국을 선포하며 나라를 추스렸고, 1975년까지 술탄 일가의 입국을 금지했다가 이 후 금지를 해제했다고 가이드가 전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술탄 일가는 터키로 귀국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금력이 있으니 외국에서의 삶도 안정되어 있었겠지. 40여분에 걸친 공식 궁전 투어가 끝나고 하렘으로 가니 다시금 줄을 쭉 서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영어 투어가 먼저였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미리 볼 수 있었다. 하렘은 술탄 일가들의 사적인 장소다. 프랑스 디자이너가 프렌치 양식으로 지은 곳이다. 술탄 일가의 공간과, 손님 공간, 하인들의 공간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렘이란 말엔 뭔가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이 들지만 막상 본 내부는 화려하긴 해도 궁전과는 대비되는 소박한 가정집 분위기가 났다. 하렘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성의가 없는 듯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설명도 적다. 꼭 안 봐도 될 만한 투어인것 같다. 하렘 포함해서 40리란데, 하렘을 빼면 30리라다. 40리라(2만6천원 정도)는 입장료로는 큰 돈이지만 다시는 못 볼 화려한 건축물이라 그리 아깝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궁전 구경을 마치니 3시경이다. 마눌님의 다리도 좀 쉴 겸 해시계가 놓인 궁전 뜰에서 깨 고리빵과 햄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리 김치나 매운 것들이 당기지 않아 신기하다. 이스탄불 사람들이 엄청 먹는 깨 고리 빵을 6년 만에 다시먹는 건데, 이게 너무나도 맛있다. 빵이지만 깨가 듬뿍 들어 있어 서양음식으로의 위화감이 거의 없다. 고소하고 부드러운데 수퍼에서 산 햄과도 무척 잘 어울린다. 몰래 스웨퍼 병에 담아 온 꼬냑을 홀짝 홀짝 마시며 식사를 하는 기분이 짱이다. 게바라 : 교통박물관을 갈까 고민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모던 아트 미술관에 간다. 별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가격이 15나 되서 포기하고 탁심광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람이 꽉 차고 앉을 자리도 없는데 길이 막혀서 가까운 거리를 한참 간다. 오늘 저녁 터키 베식타스의 경기가 있다. 운동장은 주변은 관련 도구들을 파느라 분주하다. 탁심광장과 중심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궁전에도 사람이 많았었다. 오늘이 국가 공휴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광장에서 쭉 아래로 걸어 내려간다. 예전에 비해 물가가 많이 올랐다. 사 먹을 것도 없고 앉을 곳도 없다. 아나키 : 다음 일정은 이스탄불 근대 미술관. 돌마바흐체를 나와 트램 종점인 카바타쉬에서 두세 정거장만 가면 나온다. 건물을 못 찾아 조금 헤메다 찾아 가긴 했는데, 입장료가 무려 15리라. 두 명이 30리라. 어이고, 꼭 봐야 할 것도 없어서 그냥 나와 버스를 타고 탁심 광장으로 향했다. 그냥. 버스는 베식타스 축구경기장을 지나 탁심 광장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베식타스의 경기가 있는지 벌써부터 축구팬들이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막상 경기는 저녁에야 시작되었는데. 탁심광장에 내려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거리 구경. 저녁 먹기 전에 살짝 간식을 먹어 볼까 했는데, 간단한 피자 같은 것도 9~10리라다. 많이 비싼 편이다. 탁심광장을 따라 걸어 내려오다 몇명이 민요로 느껴지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장면을 봤고, 많은 사람들이 들썩 거리며 듣고 있었다. 아주머니 한 두 명은 춤을 추기까지 한다. 노래 하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보아 이런 느낌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웃으며 살아 보세~" 푸니쿨라를 타고 갈라타 다리 앞으로 내려 왔다. 나는 푸니쿨라 역을 못 찾았는데 마눌님이 놀랍게도 6년 전 기억을 되짚어 푸니쿨라 역을 찾았다. 갈라타 다리 앞에 카라쾨이 선착장이 있다. 여기서 배를 타고 아시아 지구의 카디쾨이로 향했다. 가는 동안 노을이 내렸다. 붉게 탄다는 표현이 맞다. 정확히 불타오르는 노을 아래 아야 소피아와 술타나멧 자미의 뾰족 기둥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이라니. 이렇게 비현실적일 수가 있나.
게바라 :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카드쾨이에 간다. 날씨가 맑아 해질 무렵의 하늘이 멋지다. 바다에서 보는 도시의 아름다움은 이스탄불이 최고다. 모스크의 둥근 지붕과 첨탑 미나렛의 실루엣, 붉게 번지는 하늘과 바다, 하루 종일 틈틈이 들었던 아잔 소리와 더불어 잊지 못할 멋진 광경이 될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마지막 날을 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배에서 음료와 차를 배달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선상에서 노을을 보며 차 한 잔 마셔도 멋질 것이다. 아나키 : 카디쾨이는 사람들로 붐빈다. 기억은 못했지만 여행기를 읽어 보니 6년 전 이곳으로 몇 번이나 놀러 왔었다. 그래선지 베를린에서 돌아왔을 때 사비하 공항에서 카디쾨이로 연결되는 버스를 타는 게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건가? 선착장에 내려 왼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붐빌 만한 곳이 보인다. 길을 건너 인파가 몰리는 곳으로 갔더니 그곳이 지난 여행에서 우리가 갔던 시장으로 연결된다. 지난 여행에서 뭘 했는지 이렇게 까맣게 기억이 없다니. 난 뭐하고 다녔던 것일까? 시장 구경을 하다 방금 만든 따끈한 홍합밥 5개를 3리라에 사서 호호 불며 먹었다. 해산물이 지천이고 케밥 재료로 쓰는 등푸른 생선류와 연어 종류가 많다. 지난 여행에서는 케밥의 재료가 주로 닭(Tavuk)이나 쇠고기였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생선(Balik)케밥집이 많아진 것 같다. Balik Kebap이라고 쓰인 식당에 들어가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전갱이 튀김(12.5리라)과 홍합 튀김(7리라)을 시켰다. 새끼 전갱이를 통째 튀긴 건데 뼈 째로 먹어도 아삭하다. 빵인 에크멕은 역시나 무료. 마눌님이 속이 안 좋아 서너 마리 밖에 못 먹어서 내가 대부분을 먹었는데 고소함이 지나쳐 나중엔 느끼해진다. 홍합은 굴 맛이 진하게 날 정도로 우리나라와 다르다. 이것도 역시 느끼느끼. 밤참으로 맛난 전갱이 케밥을 싸 가서 공항에서 먹으려 했는데 전갱이 맛을 너무 봐서 포기다. 하지만 먹고 난 뒤에 속은 생각보다 편했다. 마침 인기가 많은 식당인지 사람들이 금세 찼고 봉지에 가득가득 싸 가는 사람도 많다. 나오며 맛있다고 칭찬했더니, 가게 홍보 냉장고 자석을 준다. 어디에 쓰려나...
게바라 : 카드쾨이에서 6년 전 우리가 갔던 길을 되짚어 보려고 한다. 그냥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따라간다.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진 거리가 나온다. 가격도 많이 오르고 사람도 많아졌지만 시장통의 모습은 대충 비슷하게 느껴진다. 수퍼에 물과 오렌지를 사려고 들어갔는데 할머니 한분이 남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단다.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단다. 무척 반가워하시며 손도 잡으며 얘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수퍼에서 일하는 오빠의 짧은 영어로는 대화가 어렵다. 할머니가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하셔서 찍고 헤어졌다. 홍합 껍데기에 담겨진 홍합밥 5개(3)를 사서 길에서 먹는다. 고소하고 맛있다. 해물 레스토랑에서 튀긴 홍합과 작은 고등어(총 19.5) 튀김을 먹었다. 오늘은 몸이 불편해서 나는 잘 먹지 못한다. 남편은 많이 먹어 느끼하고 속이 안 좋다고 한다. 나중에 남편의 다리와 팔에 두드러기가 났다. 홍합알러지인지 뭔지 알 수 없다. 선물로 나누어 줄 말린 살구를 사고 (1.5KG 10) 커피가 2밖에 하지 않는 피자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전통 피자 피데집이 사라지고 피자집이나 서양풍의 음식점이 늘었다. 이젠 쌀푸딩을 어디서 파는 지도 모르겠다. 아나키 : 거리를 거닐다 커피값이 2리라에 불과한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하고 쉴 겸 들어갔다. 다른 곳은 5리라씩 하는데 이 집만 싸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시키니 커피를 갈아 재댜로 만들어서 내려 준다. 크레마가 듬뿍 진한 커피향이 일품인데 겨우 2리라(1300원)라니. 메뉴를 보니 피자 한판에 9리라, 닭튀김과 피자한쪽, 콜라를 합쳐 8.5리라다. 예전의 그 많던 케밥집과 전통 피자인 피데 하우스는 줄고 눈에 띄게 피자집이 많아졌다. 이게 유럽화인가? 피자가 비싸기도 비싼데 가게 안엔 젊은이들이 가득가득이다. 대중교통 요금도 비싸지고 시장의 물건의 기본값도 10리라. 대부분 5개에 10리라, 세개에 10리라 등등. 물가가 많이 비싸졌다는 느낌이다. 맥주 값도 자국 맥주가 외국에서 팔리는 값의 두배 정도 한다. 에페스 맥주가 유럽에선 1유로 정돈데 막상 터키에선 4리라니까. 문구점 같은 곳도 구경하고 Tchibo 라는 잡화점도 구경했다. Tchibo는 커피점을 겸해 잡화를 팔고 있어 특이했다. 원래 커피 전문점이었는데 잡화점으로 사업이 확장된 거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은 가격대가 좀 센 편이고 디자인이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구태여 쇼핑을 해 오거나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정도의 디자인이니까. 8시 10분쯤 되어 선착장으로 갔더니 배가 없네? 관리인으로 보이는 분께 물었다. "웨얼 이즈 보트 투 에미뇨뉴?" "댓 보다폰 사인 니얼." 멀리 보다폰의 붉은 광고판 옆이라는 말이렸다. 그 쪽으로 가 보니 어쩜, 공항에서 내렸던 버스 정류장 옆이 아닌가. 마눌님이 역시 눈썰미 있게 한마디. "어제 여기 불 켜진 곳 보면서 밥 먹고 갈까 그랬잖아~" 맞다. 아까 내린 선착장이 카디쾨이 종점이고, 이곳이 에미뇨뉴 가는 정식 선착장이로구나. 이곳에서 에미뇨뉴, 카바타쉬, 위스크다라 등등으로 배가 가고 각각 행선지 별로 대합실이 나뉘어 있다. 각기 행선지의 배가 들어 오면 그 쪽 대합실의 문만 열려 사람들이 혼동하지 않게 배려한 거다. 8시; 20분쯤 되니 에미뇨뉴 가는 배가 들어 오고 우리 쪽 대합실 출구가 열렸다. 사람들이 우루루 들어가고 우리도 배 안에서 자리 잡았다. 배 타는 시간만 3~40분 되니 푹 쉬기에도 딱이다. 값도 싸다. 트램 두 정거장 가도 1.95리라, 이렇게 길게 배 타고 가도 1.95리라. 시민의 발 구실을 하기에 배삯이 싼 거겠지. 아시아 지구와 유럽 지구를 연결하는 대교가 두 개 뿐이고 다리를 거쳐 가려면 엄청난 거리를 돌아 가야 하니 배는 항상 사람들로 꽉꽉 찬다. 제법 큰 파도가 넘실거리는 보스포러스 해협 위에 흔들거리며 바닷바람을 맞는다. 멀리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가 네온에 번쩍거리고 여러 자미(모스크)들, 궁전들이 조명을 받아 로맨틱한 풍경을 만든다. 사진을 찍고자 하지만 사진으로는 당최 그 느낌을 살려 낼 수가 없다. 게바라 : 에미뇨뉴에 도착했다. 몹시 힘들지만 걸어서 하피즈에 갔다. 여행을 시작하며 소피아 가기 전에 여기서 쉬면서 돌아오면 산딸기 쌀푸딩을 먹으려 했었다. 남편은 쵸코가 덮인 쌀푸딩을 먹었다. 산딸기에서 클로브향이 나서 좀 이상하다. 전에는 한 개를 나눠 먹던 것을 두개나 시켜서 부담되는 양이었다. 가격도 개당 5,000원 인데 말이다. 결국 거의 다 먹기는 했다. 하피즈 무스타파 아나키 : 9시, 트램 타고 술타나멧 역 앞 하피즈에서 푸딩 두 개를 시켜 놓고 앉아 있다. 여행 시작 때 이곳에서 푸딩을 먹으며 소피아 행 밤 열차를 기다렸는데, 여행 끝에 다시 이곳에 앉아 있다니. 자리만 다르고. "우리 사실은 여행 간 게 아니라, 여기에 앉아 있기만 한 거 같지?" "그러게. 토탈 리콜 처럼. 이 푸딩을 먹은 순간 기억이 심어진 거야. 자리도 저 안쪽 자리로 바뀌었고." 실내는 고풍스러운 오스만 제국 스타일. 사람들이 푸딩이나 커피를 마시는 풍경이 매트릭스나 엑시스턴즈, 13층 같은 판타지 SF영화에 자주 나오는 아시아 지구의 찻집 같은 느낌. [여행 시작전에 시간을 보냈던 하피즈. 다시 왔다.] 게바라 :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찾으며 나중에 교통카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 환불이 된다고 한다. 트램타고 중간에 내려 공항 가는 전철로 갈아타는 곳에서 5를 더 충전했다. 동전으로는 충전이 안 되어 지폐 5를 넣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남편이 전철 창구에 카드를 보여 주니 다 끝났다고 고개를 젓는다. 늦어서 안해준다는 건지 우리가 환불이 된다는 걸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카드를 주었다. 웃으며 얼른 받는다. 저렇게 띵겨 먹는가 싶다. 카드비 7에 남은 돈 2가 들어있다. 누군가에게 카드 값을 받고 다시 팔 것이다. 게다가 공항 환전소는 재환전 해줄 작은 단위의 유로 지폐가 없단다. 10유로는 되는 돈이다. 유로 국이 아니라 그러는 걸까. 이 돈에 맞춰 물건을 고르기도 힘들다. 먹거리도 너무 비싸다. 결국 록시땅 립밤 9.5유로 짜리를 골랐다. 남은 2로는 물도 살 수 없었다. 그래도 1400원 정도는 하는 돈인데 작은 물이 3이다. 남편은 목이 마르다고 한다. 물도 못 사먹을 돈이라서 그냥 모금함에 넣고 왔다. 그런데 탑승구 앞의 자판기에는 물이 1.5이다. 물론 돈이 없으니 살 수 없었다. 오렌지를 먹으며 갈증을 잊어야 했다. 어쨌든 남은 돈 쓰느라 머리를 굴린 것도 마지막이다. 비행기는 새벽 1시 15분에 뜬다. 아나키 : 9시 40여분 쯤 되어 숙소에서 짐을 찾아 나왔다. 숙소 매니저의 형은 우리 말을 잘한다. 한국 친구들이 많다는데 한국에 와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꽤 잘 알아듣는 건 대단한 일. 공항 가는 트램은 제이턴 부루누에서 메트로로 갈아타야 한다. 카드에 4리라 밖에 없어서 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술타나멧 역에는 충전기가 없고 제이턴부루누 역에서 충전을 했다. 이상하게도 동전을 넣는 구멍은 있는데 동전을 받지 않는다. 괘씸한 기계. 3리라만 넣으면 되는데 5리라를 넣게 만드네. 10시 20분에 트램을 탔는데 제이턴부루누에서 메트로로 갈아타고도 10시 50분 쯤 아타튀르크 공항역에 도착했다. 메트로 티켓 창구엔 직원이 퇴근했기에 카드 보증금 환불도 안되고 들어 있는 2리라도 그냥 버려야 한다. 역에서 공항으로 들어가는 부분부터 보안 검색을 시작한다. 이런. 황급히 노트북,탭, 전화기를 챙겨 빼내야 했다. 주섬주섬 챙겨서 공항에 들어 갔다. 남은 터키돈은 25리라. 10유로 정돈데, 환전소 어디서나 작은 유로는 없다면서 안해준다. 이런 젠장. 티켓 발급 받고 출국 심사 받고 들어가니 면세점과 가게들은 열려 있지만 모조리 비싸다. 물만 해도 무려 3리라. 시중 가격의 6배를 받는다. 그나마 가격이 싼 건 화장품. 면세점에서 9유로짜리 립밤을 하나 사니 23리라다. 2리라 남았는데, 물도 못산다. 어쩌랴. 남은 동전을 돈통에 넣어 두고 남방항공 비행기 출발하는 대합실에 갔더니 거기 있는 자판기 물은 1.5리라네? 어쩌나, 아까 돈통에 동전을 다 넣었는데. 출발시간은 새벽 1시. 하지만 1시 10분이 되도록 부르지 않다가 10분 넘어서야 개찰 시작한다. 탐승 후에 조금 더 기다리다가 비행기가 움직이더니 한참 동안 빠른 속도로 공항을 가로지른다. '땅을 달려서 가려나 ^^' 잠깐 눈을 붙였다.졸았다 깼다. 그런데, 비행기가 아직 땅에 있다. 또 졸다 깼는데 아직도 땅이다. 무려 30여분을 땅에서 기다리고서야 우루무치로 출발했다. 2.2(토) 이스탄불 - 우루무치 - 북경 - 인천 게바라 : 비행기가 뜨자 노곤함이 몰려온다. 잘 시간이 훨씬 지난 데다 몸도 안 좋은데 돌아다녀서 힘들다. 기내식 먹을 때만 일어나고 또 잔다. 내리 자다가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역시 매캐한 매연 냄새와 눈 쌓인 들판이 여전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베이징가는 사람들이 표시를 보고 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러나 역시 입국도장을 찍으려고 줄을 세운다. 이번에는 한국인들이 꽤 있어서 지난 번 같은 수모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신원 확인을 하고 상사가 여권을 다 가져가 도장을 찍어 준다. 트랜짓 손님이라는 걸 알 텐데도 좀 댁댁거리는 듯 느껴지는 것은 중국식의 말투가 그런 이미지를 주는 건지 원래 그런 태도가 습관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짐 검색을 하고 바로 비행기 타는 곳에 줄을 세운다. 우루무치에서 타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에 태우고도 30분 이상을 그대로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온 짐을 분류해서 싣는데 시간이 걸리는 걸까. 출발이 늦으니 북경 도착 후가 문제이다. 2시간도 안 남는 시간인데 늦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올 때도 우루무치에서 엄혹하고 불친절한 과정을 경험했기에 제대로 연결을 시켜줄 지가 걱정이다. 출국 절차를 또 밟고 검색대를 여러 개 통과하는 그 엄청난 과정 말이다. 중국의 이러한 정책이 괘씸하다. 그냥 트랜짓 시키는 게 아니라 입국, 출국이라니. 국제선, 국내선, 국제선으로 연결시키는 이 번잡한 시스템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편리를 위하여 승객을 우롱하는 행위다. 우리가 언제 중국에 입국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는가. 저가항공이라 샀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우루무치에서 잠깐 들러 기름을 넣고 간다는 식으로 설명했었지 그 이상은 없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 표를 주며 설명 해주던 업무 대행 직원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남편은 중국이 관광객 수를 늘리려는 수작인 것 같다고 했다. 뭐가 이유이든 불쾌했다. 비행가가 출발한 후에 승무원에게 인천 가는 국제선의 연결편 시간이 빠듯한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알아보겠다더니 내릴 때까지 아무 말이 없다. 정말 예의 없다. 내리면서 승무원에게 또 물으니까 결국 더 나이든 승무원에게 물으라고 한다. 그 승무원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직원을 가리켰다. 다음 비행기 출발로 부터 겨우 45분 남았다. 다행히 북경공항에서는 인천으로 바로 가는 사람들의 명단 팻말을 든 남녀 직원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활주로에 내렸기 때문에 바로 다른 버스에 태워 공항으로 갔다. 버스 안에서 언니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우리의 여권 신상 내용을 찍어 전송한다. 내려서 부터 땀이 뻘뻘 나는 달음박질의 연속이었다. 인도하는 남직원이 검색대 직원에게 그냥 통과하면 안 되는지 묻는 것 같은데 턱도 없다. 할 거 다 한다. 달려서 출국카드에 기록하고 도장받고 또 검색대. 그래도 나름 직원이 재촉하는 탓인지 할 걸 다해도 질질 끌지는 않는다. 다 통과하고 안에 들어가서도 비행기 타는 곳까지 열나게 뛰었다. 정말 열심히 달려서 겨우 15분 전에 도착했다. 같이 땀 흘리고 초조해한 남직원도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역시 비행기에 타고도 30분 정도 지체하는 것이 짐을 옮기는데 시간이 걸리는가 싶다. 비행시간이 짧아 밥 먹으면 바로 인천이다. 여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큰 무리 없이 돌아온 것이 다행이다. 10시 반에 내려 엄마 집에 오니 1시. 딸 데리고 2시에 집에 왔다. 식물들도 잘 버텨주고 먼지도 없다. 대단히 훌륭한 집이다. 게다가 벽난로도 있다. 대충 집을 치우고 완전히 뻗었다. 비행기에서 내리 잔 것을 포함하면 거의 2일 분량을 잤다. 감기가 갖은 증세를 다 보인다. 나이 들어 여행하는 것도 참 고생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몸이 마음 같지 않게 힘들다. 여행은 비싼 돈 들여가며 우리나라와 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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