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7일(일) |
새벽에 남편과 같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번개도 많이 치고 계속 조금씩 비가 온다. 후지르 마을 전체에 대형 조명이 번쩍이는 것 같다. 누워 자다가 생각해 보니 널어놓은 빨래가 걱정스러워 남편을 깨워 뒤뜰에 빨래를 걷으러 갔다. 아줌마의 빨래도 걷어 주고 싶지만 양이 무척 많았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아 다른 빨래는 무사했다. 그 이후에도 보면 이 사람들은 웬만큼 비가와도 빨래를 걷지 않는다. 뒷마당의 소나무 밑에서 요가도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 쪽에 보이는 나뭇가지들도 아름답고 정지비행하고 있는 파리들도 많이 보인다. 소나무 때문에 우리나라 시골집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풀들을 들여다보면 쇠비름, 쑥, 질경이 등이 다 있다. 물론 이들은 이것을 약용, 식용으로 이용할 줄 모른다. 시베리아의 상징인 곰이며 이들이 현재 요리에도 마늘을 쓰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 민족의 근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열차 타고 올 때 보았던 도라지의 군락을 보면 이곳은 영판 옛 우리 민족의 땅이다. 운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것이 다 보인다. 안나 아줌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재래식 화장실을 바닥까지 깔끔하게 닦는다.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의 어머니들과 너무도 같아서 친근하면서도 안쓰럽다. 아줌마는 하지정맥류로 다리도 많이 부어 있어 남편이 맛사지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싫다고 하신다. 호기심이 많고 매사에 적극적인 이 분의 집에 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줌마의 천 신발 앞부분이 많이 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사신 모습이 우리의 어머니 같은 느낌에 마음이 찡했었다. 늦은 아침은 어제 봤던 대형 물고기로 만든 파이와 곡물 죽이다. 오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고등어 같은 맛이 나는 이 무지막지한 파이가 맛이 덜했다. 반 정도 만 먹고 남겨 나중에 배고플 때 먹었는데 이때는 아주 맛이 좋았다. 고등어 맛의 파이라... 이런 것을 먹어 보리라고 우리가 생각이나 해 봤겠는가 말이다. 램이 동네 한 바퀴 돌자고 해서 두 가족이 같이 나섰는데 숙소 옆에 있는 바이칼의 생태를 설명하는 자연관 같은 곳인데 쉬는 날이라 바깥의 나무들만 구경했다. 신기한 나무는 아래 절반은 소나무, 위는 잣나무를 접붙여서 만든 거다. 집에 와서 램 가족은 내일 떠나기 위해 오물도 사고 분주히 준비를 한다. 우리는 알아서 쉬기로 했다. 해안과 나는 책을 보거나 자고 남편은 불칸 바위에 혼자 다녀왔다. 오랜만에 낮잠을 자다 보니 여행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을 꿈으로 꾸게 된다. 돌아온 남편이 오늘은 물도 깨끗하고 좋으니 같이 나가서 수영도 하고 신성한 불칸 바위 주변에서 사람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를 줍자고 한다. 쉬겠다는 해안이를 남겨두고 둘이 불칸 바위의 자갈해변에 갔다.
바위 중간 정도 오르다 역시 신성한 바위는 오르지 말자고 하고 내려왔다. 깨끗한 물에서 수영하고 사진 찍고 자갈밭에 누워 쉬었다. 날이 흐려서 물속이 더 잘 보인다. '바이칼(밝할)', '불칸(붉한)', '나의 성 박(밝)'은 모두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모두 밝고 크다는 의미이다. 몽골 말에서 태양신은 '탱그리'라고 하는 것도 '단군'과 같은 의미일 것이라 짐작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오래 전 하나였다. 이곳도 고향 같고 도무지 낯설지가 않다. 우리는 서로 정말 바이칼에 왔다는 것이 믿겨 지지 않는다고 여러 번 이 말을 반복하곤 한다.
저녁은 오물 속에 당근, 버터, 양파 등을 넣어 오븐에 구운 것과 오이 샐러드이다. 램이 훈제 오물 산 것 중에 하나를 꺼내 와서 찢어줬다. 이 식구들은 오물을 많이 사서 큰 박스로 두 개나 채웠다. 살라미처럼 짭쪼롭하니 먹을 만하다. 안나 아줌마가 아는 집에서 사야 이런 최고의 맛이 난다고 한다. 우리도 살거냐고 하길래 아무래도 한국은 3면이 바다라 생선이 흔하다고 대답했다. 이곳은 바다라고는 북극해와 블라디보스톡 쪽 태평양이니 강에서 나는 생선 말고는 이런 것을 먹기가 쉽지 않다. 바이칼의 물고기는 바다고기 맛이 나는데 깨끗한 물 탓인지 더 깔끔하고 맛있다. 두 식구가 말을 타러 이 마을 중앙(아줌마 뒷문 앞), 브리야트족 유르트(몽골의 '겔'로 후지르 마을의 몽골 음식점이다) 옆의 말 타는 곳에 갔다. 가격이 한 시간에 300R이나 해서 램과 아냐, 남편과 해안이 30분 씩 나눠 타기로 했다. 나는 몽골에서 3일 간 타고 여행한 적이 있어서 안타기로 한다. 이곳은 말이 슬슬 걸어 마을을 산책하는 수준이고 앞에서 말을 잡고 걸어 준다. 남편이 좀 시시하다고 한다. 하라쇼에서 먹을 것을 사고 돌아왔다.
마당에서 안나 아줌마 식구들과 한국의 태권도 같은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기 하는 동안 나는 1살 짜리 아기 '빠샤'를 안아 줬다. 러시아 아기는 젖비린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버터 냄새가 난다. 이 녀석이 오랜만에 저 하자는 데로 여기 저기 안고 구경시켜 주니 분주하게 움직인다. 안기가 꽤 힘들었다. 빠샤는 기분이 좋으면 폭 안기면서 큰 머리(러시아 아기답지 않게 우리처럼 '모여라 꿈동산' 파다)를 내 어깨에 기댄다. 이 식구들은 얘기에 빠져 아기는 신경을 안 쓴다. 러시아 말만 된다면 참 푸근하고 좋은 가족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특히 니꼴라이 아저씨의 환한 웃음과 운전 솜씨에 빠진 남편은 아저씨와 얘기가 안 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안나 아줌마처럼 지적인 분을 아내로 얻은 아저씨에게는 뭔가 특별하고 순수한 매력이 있을 듯하다. 아기는 넘겨주고 들어왔다. 내일은 램 가족이 없는 날의 시작이다. 이 가족 때문에 재밌고 참 즐거웠다. 신세를 진 측면이 많다. 영어가 심하게 빈약한 리아나는 러시아 인들에게 가이드냐는 오해를 받을 만큼 열심히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그래도 그 영어로 대충 통한다는 게 신기하다). 특히 아무 때나 자기 말을 번역하라면서 장황히 얘기하는 남편의 부름에는 먼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얘기를 꺼내고는 했다. 램은 늘 우리를 챙기고 남편의 형처럼 허물없이 대해 줬고, 딸 아냐는 해안이와 만화도 많이 그려주며 잘 놀아 주었다. 이들과 헤어지기가 아쉽다. 이제 졸려서 씻고 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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