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8일(월)

12. 8월 8일 우리들의 해변

아침 8시에 일어나 뒷마당에서 요가를 하다 보니 이집에도 패랭이며 에델바이스 같은 야생화가 볼 만하게 한 구석에 피어있다. 아줌마의 집은 다른 집의 세 배 정도 넓지만 대부분이 밭과 온실 및 공터로 방치되는 땅이 많다. 뒤뜰에는 아저씨의 오토바이와 망가진 트럭과 ?이 있고 앞마당에는 현재 쓰는 트럭이 하나 더 있다. 아무래도 차 매니아가 아니신지.

먼저 아침 식사를 한 램 가족이 9시에 떠났다. 이르쿠츠크에서 3일을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집인 '이제브스크'라는 공업도시로 간다. 언젠가 만나자고 했지만 그럴 수 있을지... 아쉽지만 직별을 했다. 바로 집 옆에서 버스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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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오물오믈(?)렛과 팬케익

0808.독초의피해.jpg기다리는 식구들을 두고 우리도 아침을 먹으러 들어왔다. 우리끼리 먹으니 조촐하고 좀 이상했다. 아침은 오물, 달걀 오믈렛과 팬 케잌이�? 남은 것은 싼다. 11시에 선창으로 셋이 산책을 갔다. 해안이는 처음 오는데 물이 맑고 깊어 배가 수영장에 떠있는 듯한 모습에 놀란다. 언덕위로 올라 작은 성당을 구경 갔지만 공사 중이다. 말이 유난히 바람이 불고 쌀쌀하다. 해안이는 이번에도 무성히 자란 독초에 왕창 쏘였다. 언덕을 따라 니키타의 집 쪽으로 걸으니 왼쪽은 절벽이고 그 밑이 바이칼이다. 경치가 좋다.

걷다가 아래쪽이 아름다운 해변을 발견했다. 아마 한 남자가 앉아 있지 않았다면 내려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거다. 내가 내려가 보자니까 남편은 위험하다고 말린다. 어쨌든 우겨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길은 모래가 있어 미끄러운 편이다. 조심스레 내려가니 작고 평화로운 해변이다. 지형적으로 바람도 덜 불고 아름다운 풍경, 맑은 물, 오른 쪽으로는 불칸 바위가 보인다.  작은 자갈돌 들이 많이 밀려 온 해변이다. 무엇보다 왼쪽으로는 적당히 몇 개의 바위가 가려져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는 장소가 있다. 물에 발도 담가보고 예쁜 돌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돌도 예쁘지만 신기하게도 맥주병들이 쪼개져 파도에 갈린 것들이 옥색과 가지각색의 푸른빛으로 다양하다. 무슨 보석처럼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모두들 감탄을 하며 완벽하게 자연이 갈아 놓은 유리만을 주웠다. 사람들이 깨서 버린 것을 보듬어 새로운 보석으로 만드는 자연의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결국 우리는 유리병 조각을 줍는 청소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 러시아인들의 습성과 바이칼의 위력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요즘은 유리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니 이런 유리조각은 바이칼 밖에 없을 터이라 열심히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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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과 자연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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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해변

작은 자갈 돌 위에 누워서 한가롭게 쉬기도 하니 이곳은 자잔한 재미가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거의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2시까지 놀다가 배가 고파서 집으로 돌아와 남은 음식들을 먹었다. 식탁에는 아침에 먹던 빵이 있어 따듯한 차와 함께 먹었다. 모두들 쉬거나 잠을 자다가 다시 5시에 그 해변으로 갔다. 이제 마음에 쏙 드는 이곳을  '우리 해변'이라고 부른다. 약간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과감하게 남편과 무지 차가운 물에 들어가 30분 정도 수영을 했다. 해안이는 추워서 들어가기 싫다고 한다. 구석의 바위 뒤편에서 옷을 다 갈아입으니 몸이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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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로얼굴을. 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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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로얼굴을. 아나키

몸을 더 말리고 색색의 돌을 주워서 누가 사람의 얼굴을 더 잘 만드나 내기를 했다. 나는 우리와 비슷한 브리야트인의 얼굴을 만들고 화사한 미소를 짓는 입을 푸른색 유리 갈린 것을 주워 꾸몄다. 개성 있는 얼굴이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많고 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 추워진다. 위로 올라와 절벽을 따라 더 걷다가 8시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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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저녁은 맛있는 오물 만두과 오이샐러드를 만들어 주셨다. 워낙 만두가 커서 5개나 남겨 두었다. 셋이 골목길에 나가서(골목이라기에는 소나무도 있고 너무 크지만)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긴 옷으로 더 껴입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불칸이라는 가게에서 맥주와 안주로 훈제 오물 한 마리를 샀다. 짜고 냄새가 나는 것이 램이 주었던 것과는 맛이 너무도 달라서 결국 동네 개들에게 좋은 일을 했다. 스산한 날의 바이칼과 구름, 마을을 바라보니 마음이 담담하고 평온해진다. 이곳이 집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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