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21일(일) |
출발시간이 늦으니 느긋하게 일어나서 마지막 돈을 쓰러 수퍼에도 다녀왔다. 역시 몸이 안 좋으니 치즈는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우리나라 보다 너무 싸고 질 좋은 치즈들인데 아마 건강했다면 몇 가지를 샀을 것이다. 쉬다가 10시 반에 나섰다. 이제 정말 마지막 날이다. 언제 하바에 다시 오겠는가. 전차로 11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1시간이 늦어진다니까 1시 40분 정도에 출발할 거다. 차에서 내리며 다운이를 만났다. 한국인들을 인솔하고 있다.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다. 공항 안은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일단 정말 공항이용료가 850이나 하는지 확인을 해 보았는데 진짜다! 어떻게 이렇게 비쌀 수가 있느냐 말이다. 결국 좀 투덜대면서 카드로 돈을 뽑았다. 십 단위까지 인출이 되므로 9R 잔돈이 남았다. 이 돈을 쓰기 위하여 해안이는 짐을 보고 국내선 공항까지 가서 가게를 찾았다. 공항 앞에 생맥주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 보니 그 돈으로는 살게 없는 거다. 게다가 우리가 말을 잘 못하니 아가씨가 툴툴댄다. 포기하고 해안이에게 기념품으로나 주자고 하면서 돌아왔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국제선 건물 안에도 가게가 있었다. 가격이 그리 많이 비싸지 않다. 살 것이 없어서 여러 가지를 살피다가 결국 9R 짜리 붉은 색 담배 한 갑을 샀다. 잔돈을 다 쓴 것이 흡족하다. 남편이 짐을 맡고 있는 해안에게 가서 담배를 보여주며' 9루블을 썼다'고 말했다. 갑자기 해안이가 아빠가 그 말을 하면서 붉은 담배 값을 흔드는 모습은 자기가 몇 년 전에 꿨던 꿈이라는 거다. 이런 능력도 유전인가보다. 어쩌면 아빠랑 그렇게 똑같은 말을 하는지... 해안이의 이런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나보다. 9루블을 쓰자니 말자거니 하면서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인가... 공항 안은 너무나 복잡하고 이상하게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티켓 발권을 하는 곳이 시작되지 않았다. 다운이가 와서 들어가서 안에서 한다고 알려준다. 이런 곳도 처음이다.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도 한참 기다려야 한다. 다운이가 다시 와서 거주지 등록 확인은 받았냐고 한다. 이게 또 뭐냐.... 그걸 확인 도장 받아야 들어가는 거란다. 다운이는 재빠르게 우리 것을 가져다가 해줬다. 막판까지 도움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갈 때 아저씨가 했냐고 물어 본다. 이 분은 우리말도 몇 마디 해가면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그 입구를 통과하면 몇 줄이 대충 섞여서 또 끝없이 기다리고 검색대를 다시 지난다. 짐을 들고 아주 조금씩 움직이려니 쉽지가 않다. 출발하는 비행기는 두 대 밖에 없다. 나고야와 인천. 그런데 겨우 이 사람들을 빨리 못 처리하는 거다. 진즉 떠나야 할 나고야행도 계속 지연된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안내방송 하나 없다는 거다. 러시아 말로라도 말이다. 지치는 것이 공항 한번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다. 공항 이용료 라도 싸면 러시아는 원래 시스템이 이런가보다 하고 말텐데 황당한 가격이라 더 화가 난다. 무슨 서비스가 있다는 말인지. 완전히 사람 진을 다 빼놓고 러시아의 마지막 이미지를 이상하게 만든다. 어쨌든 발권 후 세 번째(!) 검색대를 통과해서 출국 수속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면세점에서 보드카와 게 통조림, 담배를 샀다. 사람들이 많아서 작은 내부는 자리가 복잡했다. 우리 짐을 놔둔 자리의 비닐 봉투에 이젠 필요 없는 다 쓴 비행기 표를 집어넣으며 봉투를 만지는데 갑자기 일본인이 나타났다. 막 화를 내며 자기 물건을 만진다고 투덜대는 거다. 알고 보니 우리 봉투와 비슷해서 일어난 실수. 나는 얼른 그 표를 빼내고 남편은 실수해서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근데 이 사람이 더 투덜대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영어로 이런 것이 한국식이냐고 하는 거다. 자기 봉투를 집어 들고 휙 가버린다. 한국인에게 악감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무례한 태도다. 남편에게 얼른 가서 한마디 좀 하라고 했다. ?아가서 여러 번 영어로 미안하다고 하는데 손을 휘저으며 계속 피해버려서 결국은 참 무례하다고 한마디 했단다. 남편도 화가 났다. 나 같으면 '당신같이 무례하게 구는 것이 일본식이냐'고 쏘아주고 싶을 만큼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진정하며 추정해 보기를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일본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 공항에서 지치고 오래 기다리는 상황을 맞다보니 화가 많이 난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고야 행도 방송도 없이 마구 지체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몇 줄 앞에 앉은 그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계속 고개도 좌우로 정신없이 돌리고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런 식으로 살면 삶이 행복할까 싶다. 이런 사람 때문에 일본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싶지는 않다. 어디에나 괴짜는 있으니까. 어쨌든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별것도 아닌 비닐 봉투 하나 가지고 그렇게 민감하게 구는 사람을 만나다니 말이다. 나고야 비행가가 떠난 후 결국 정해진 시간보다 2시간도 넘게 지체를 하고 겨우 비행기까지 가는 버스가 왔다. '이 버스가 이용료 3만 4천원 짜린가?' 하면서 서로 웃었다. 비행기는 올 때보다는 새것이었지만 기내식은 별로였다. 무사히 우리나라에 오게 되어 다행이다. 생각보다 선선한 날씨였다. 우리 차가 있는 엄마 집에 가서 준비하신 우리나라 음식을 반갑게 많이 먹었다. 러시아는 여행시스템이 편리하게 갖춰지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많고 무엇보다 숙박료가 비쌌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따듯해서 인상적인 나라였다. 쌀 문화권의 우리에게는 먹는 음식이 서양음식이라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25일이 다 지났는지 모르겠다. 말이 안 통하는 문제는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그들의 느긋함은 참 좋았다. 시간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풀리고 편안한 여행을 해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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