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그러진 일정

 

  • 우리의 원래 일정

원래는 터키만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달의 일정이러도 광대한 터키의 구석구석을 돌아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 하지만 겨울의 터키는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인해 동부고원지역은 여행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를 보고 터키 동부를 포기하고 나니 자연히 그리스에 눈이 돌아갔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를 돌고 나서 배를 이용해 터키에 입국하면 순조롭겠다는 생각.

하지만 겨울은 비수기라서 그리스 섬들 사이를 도는 페리가 무척 적거나 없어지고, 터키의 코앞에 붙어 있는 그리스의 섬들에서 터키로 국경을 넘는 비용이 만만찮다는 정보를 보고 나서 생각을 고쳤다. 아시아에 에어 아시아라는 걸출한 저가 항공사가 있으니 유럽에도 있지 않을까 하여 검색해 보니 역시나 에게해 항공(Aegean Air)이 무척 싼 값에 항공권을 내 놓고 있었다. 아테네 - 크레타간 항공 요금이 겨우 46유로! 그나마 세금이 붙어서 그렇지 세금을 제하면 19유로라는 경이적인 가격이었던 것이다. 크레타에서 터키로 가기 위해 터키 남부에 면해 있는 키프로스 섬까지는 비행기가 아테네를 경유해 가기 때문에 세금 포함하여 120유로 정도에 표가 나왔다. 이렇게나 싸다면 비행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거기에 대강의 여행 일정을 그것에 맞추었다.

계획은 이랬다.

1월2일 이스탄불 도착 - 1월 3일 밤에 그리스 테살로니키까지 기차로 이동 - 1월 4일에 아테네까지 버스로 이동 - 1월 8일에 크레타 섬까지 비행기로 이동 - 크레타 섬에서 산토리니 왕복을 배로 이동 - 1월 13일에 키프로스까지 비행기로 이동 - 1월 15일 터키입국 후 터키 서부 여행을 하다 1월 28일 이스탄불 도착. 터키에서는 미리 일정을 잡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다 쉬다를 반복할 예정이었다. 15일 정도면 터키 서부를 도는 데는 충분하지 않을까.

  • 비수기엔 다니기 힘들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한 두 가지만 빼고서는. 겨울엔 크레타에서 산토리니를 왕복하는 배가 아예 없다는 사실. (있긴 있다. 크레타 섬의 Ag.Nikolaos 항에서 일주일에 두번 수,금에 배가 있지만 왕복선이 아니고 로도스 섬에서 아테네로 왕복하는 배가 잠시 들르는 것에 불과하므로 돌아오는 편이 일정에 맞지 않아서 10여일 간을 크레타 섬에 머물지 않는다면 왕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겨울에 그리스의 섬을 오가려면 로도스-크레타-산토리니-미코노스-아테네를 연결하는 왕복선의 일정에 맞춘다면 섬을 효과적으로 돌아 볼 수 있지, 그게 아니라면 오로지 아테네에서 해당 섬까지의 왕복 수단만 존재하기 때문에 섬 사이의 이동은 불가하다는 사실.

경아씨는 섬이라도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그럴 리가 있나? 하루에 한 편 정도는 있겠지... 하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리스의 섬들은 완벽하게 관광용인 것이다. 우리 나라처럼 생활을 위해 성수기, 비수기 할 것 없이 섬간 페리가 운행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 무너진 키프로스로의 여행계획 (중요!)

산토리니가 무산되자 5일을 크레타에서 푹 쉬고 난 13일 아침.  키프로스로 가기 위해 이라클리온의 니코스 카찬차키스 공항에서 키프로스의 라르나카로 짐을 부치는데 데스크에서 비행기표를 보더니 비자가 필요한데 있냐고 묻는다. 비자? 조사해 본 바로 남 키프로스는 EU국가인데? 반문하니 그 직원은 키프로스는 EU국가도 아니랜다. 황망한 사실...

결국 키프로스까지의 항공권은 취소되고 아테네 까지만 갈 수 있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날아간 30여만원... 티켓은 취소되었지만 이미 지불한 세금은 환불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나마 환불 받으려고 에게안 에어 담당자에게로 가니 티켓을 끊었던 카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그 카드는 집에다 두고 왔는데. 담당자는 딱한 사정을 듣더니 카드가 없어도 결제 취소를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주겠다 했지만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자리를 떳다.

아테네로 이동해서 버스로 이스탄불로 이동하려고 아테네의 버스터미널에 가니 아무도 그런 버스의 존재조차 모른다. 나중에 이스탄불의 오토갈에서는 버젓이 아테네로 가는 국제 버스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스탄불의 버스회사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인 듯.  어쩔 수 없이 여행자 거리인 신타그마 광장으로 돌아와 여행사에 문의하니, 그런 버스가 있는 것은 아는데 티켓 취급은 하지 않는다 한다. 시간도 늦어 가는데 어디서 그 버스 티켓을 취급하는 여행사를 찾나. 결국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표를 알아 보니 바로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표가 있어 세금 포함 1인당 150유로에 구입하여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돌아와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서 알아보니 키프로스는 무비자 협정국은 아니지만 관광목적의 90일이내 여행에 대해서는 무사증(90일)으로 다닐 수 있는데, 에게해 항공 담당자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해서 그런일이 벌어졌으니 앞으로는 그리스 공관에 이런 사실에 대해 공지를 강화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사이프러스가 EU국가인 것은 맞다.  이래저래 심통나는 사건인건데? 하지만 내가 먼저 사증 필요유무를 알았다면 잘 대처할 수도 있었을 일인데 그렇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바로 "정보가 곧 돈이 된다" 는 명제를 증명하는 사건인 거다.

  • 너무나도 교통 수단이 편리한 터키

광대한 국토를 이곳저곳 연결하는 터키의 버스망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가격이 놀랄 만큼 싼 데다  비행기를 연상시키듯 보조승무원이 차를 따라주거나, 물을 주거나, 간단한 간식거리까지 제공하는 데엔 부러움이 앞선다. 아마 한국에 돌아오면 왜 우린 버스에서 서비스를 안하지? 하고 툴툴거릴 정도.

또한 시내의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표를 구입하면 그곳에서부터 서비스 버스를 운영하여 시 외곽의 터미널로 데려다 주고, 도착하는 도시의 터미널에 내리면 해당 버스회사에서 다시 서비스 버스를 이용하여 시내 중심지까지 무료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를 본 적이 있나? 그리고 현재의 경제발전 수준과는 너무나도 다른 완벽한 도로망, 겨울 여행이라 눈이 많은 지역을 갈 때도 도로 사정은 그다지 나빠지지 않았으니 어디선가 누군가는 신속하게 도로를 치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거점 도시와 지방의 도시를 연결하는 데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미니버스(돌무쉬라 불리기도 한다)가 수시로 운행되는 것도 이래 저래 터키에서의 교통 연결에 최대의 만족을 느끼게 만든다. 모든 것이 도시간 이동을 하기 위한 사람들을 최대한 배려한 결과가 아닌가. 이런 이유로 터키 내에서의 이동이 워낙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통에 교통 수단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교통을 걱정하여 일정을 짰는데 이번엔 좋은 측면에서 어그러지는 거다.

아무래도 이런 전통은 기마민족의 전통에서 기인한 듯 싶다. 몽골,투르크 제국 등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북방 기마민족은 영토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신속한 연결망을 구축했었고, 그런 습관이 현대에 와서 이런 멋진 도로망, 버스망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가이드 북엔 터키인들은 5분 걸을 거리도 꼭 미니버스인 돌무쉬를 이용한다고 써 있었는데 옛날 선조들이 어디를 이동하든 말을 사용했듯, 현재의 터키인의 습성 또한 과거 선조들의 습관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