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터키와 그리스의 악연. 그리스 역사는 없다?

 

  •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점. 터키

서로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두 문화가 조화로이 만나는 지점. 유럽이면서 아시아인의 정취가 느껴지고, 실질적인 이슬람 국가이며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이면서도 철저한 정교분리 원칙에 의해 종교를 강제하지 않는 관대한 나라.

바이칼 유역에서 근거해 동북아시아의 피비린내 나는 칼바람을 피해 서쪽으로의 머나먼 여정을 택하고 종국엔 아나톨리아 반도에 다달아 투르크제국을 이루어 유럽 문명의 모태이자 자부심인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뿌리내린 북방 아시아 기마민족의 후예들.

유럽에 속해 있으며 이슬람을 믿는데다 얼굴은 이미 남부유럽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정서와 사고방식은 우리와 놀랄 만큼 닮아 여행 내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나라가 바로 터키. 그들의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고 있는 것 조차 우리와 같다.

  • 유럽 문명의 실질적인 기원 그리스.

그리스를 제외하고서는 유럽을 말할 수 없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황금기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역사라는 것 자체를 가질 수 없는 정도의  미개한 상태였고, 그리스 문명이 로마로 전수된 뒤 로마 제국이 그 영토를 유럽 땅으로 확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재의 유럽에 '문명'이라는 것이 전파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유럽 문명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배워 왔기에 우리 세계사의 첫머리는 항상 그리스가 놓이게 된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어린아이들까지 고조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그리스의 신화는 줄줄 꿰고 있지 않나.

나 자신도 부끄럽게도 부여나 고구려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동시대에 지구의 반대편에서 문명을 일구어 온 이들은 콜콜하게 이름 하나하나까지 꿰고 있으니 그리스라는 나라가 현재 이 지구상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가.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정복자이면서 문화 군주였던 알렉산더 대왕,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오딧세우스, 트로이 전쟁, 미케네 문명, 크레타 문명 등등. 한 번은 꼭 가봐야 하는 나라임엔 사실이었다.

  • 그리스의 역사는 없지만 그리스 민족은 있다?

그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그리스의 모든 크고작은 나라들이 북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은 불운인가? 알렉산더에 의해 통일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아우른 대 제국을 건설하지만 위대한 황제 알렉산더가 죽은 후 제국은 사분 오열되어 버리고 말며 이 후 로마의 오랜 지배를 받게 된다.

약 천사백년간의 로마 지배 후, 로마 자체가 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고 나서 4백여년간의 투르크 지배를 받다가  투르크를 견제하려는 영국,러시아등 유럽 각국의 힘을 등에 업고 19세기 말에 와서야 비로소 독자적인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운 그리스인들.

거의 2천년에 걸쳐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 왔고, 그로 인해 변변한 역사를 가지지 못한 그리스인들이지만 자신이 그리스인이라는 데 대해 다들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신비롭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2천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도 그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그리스 문자, 그리스어를 지켜 내어 2천년 전의 문자와 꼭 같은 고대 그리스 문자를 현재까지도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그리스인들의 과거는, 말글을 잃지 않으면 비록 나라를 잃어도 민족 혼은 살아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검증하는 것이겠지.

  • 그리스와 터키,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다

그리스와 터키의 지도를 보면 에게해 연안의 모든 섬이 그리스 영토로 되어 있다. 레스보스, 사모스, 코스, 로도스섬 등 바로 터키의 코앞까지 바짝 붙어 있어 이들 섬에서는 아마도 터키 본토가 아주 크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짧은 거리를 운행하는 페리의 요금은 무려 35-40유로. 우리가 섬을 통해 터키로 입국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비행기를 이용하게 된 것도 그 이유다. 가까이 있는 지역을 연결하는 페리가 이렇게 비쌀 수는 없는데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두 나라 사이에 무슨 나쁜 감정이 있어서 자주 통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원인은 역사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는 비잔틴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함에 따라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약 400여년간 받으며 혹독한 탄압을 받아 왔고, 그에 따라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전개해 왔다. 1821년, 투르크가 유럽 각국의 견제를 받아 약화된 틈을 타서 독립 선언을 한 뒤 다시 투르크와 전쟁을 하게 되고 영국, 러시아와 프랑스가 그리스를 도와 1830년 그리스의 독립이 런던 회의에서 보장되었다. 그리스의 왕 오토 1세는 수도를 아테네로 옮기고 비잔틴 제국의 복원을 목표로 한 '대 그리스주의'를 선포하였고 1912년과 1913년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과 함께 투르크와 싸워 마케도니아와 테살로니키를 획득했고 크레타 섬도 이 때 획득하였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러시아에 반발하여 독일을 돕는 바람에 패전국이 된 투르크와 영국의 입김으로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승전국이 된 그리스. 그리스는 이참에 비잔틴 제국의 영토회복을 외치며 투르크 본토 이즈미르에 상륙하여 거의 빈사 직전의 투르크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 했지만 투르크의 군 장교로 있던 아타튀르크(케말 파샤)와 투르크 민중들의 항전이 성공적으로 전개되어 결국 이즈미르에서 퇴각한다. 이 후 아타튀르크는 혁명을 통해 오스만 제국을 폐하고 공화국 터키를 수립한 뒤 신속하게 국가를 정비하여 지금까지 국가 재건의 아버지로 터키 민중들의 크나큰 존경을 받고 있다.

앙카라의 아타튀르크 기념관에 가 보면 그리스 군과 싸웠던 전쟁 기록화들이 실감나게 전시되어 있고 투르크 민중이 침략자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제 3자의 입장으로 보면 아이러니컬하다. 역사란 돌고 도는 것. 투르크의 오랜 탄압 하에서 그리스 민중들의 투쟁이 있은지 100년 만에  오히려 이번에는 그리스가 투르크 침공의 주역이 되어 투르크 민중들의 항전을 받게 되는 것이라니.

현실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바로 키프로스 섬 문제인데 1571년 부터 300여년간 투르크 지배하에 있던 키프로스 섬은 1878년 투르크의 세력이 약해 지자 영국은 키프로스 섬을 점령하고 이 섬은 사실상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다가 1960년 키프로스 주민들이 영국에 반대하는 독립운동을 벌여 독립국가 키프로스가 된다. 하지만 이 나라 국민의 80% 가량이 그리스도교를 믿는 그리스계이고, 18% 정도가 이슬람권인 터키 계통인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자연히 그리스계 국민과 터키계 국민의 마찰이 잦았고, 압도적인 이구비율에 있던 그리스계 사람들은 키프로스와 그리스의 합병을 추진한다.

이런 와중에서 그리스계는 영국의 도움을 받아 1974년 6월 터키계 주민과 전쟁을 벌이게 되고 적은 인구비율로 인해 키프로스 섬 내에서의 터키계 주민들이 위협받게 되자 터키 정부는 즉각 군대를 보내 북부 키프로스를 점령하였다. 이에 UN이 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섰고, 이리하여 키프로스는 그리스 계통의 남부 키프로스와 터키 계통의 북부 키프로스로 나누어지기에 이른다. UN은 중재를 통해 남북 키프로스 주민들의 재통일을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북 키프로스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 키프로스 주민들의 압도적인 반대로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터키 정부는 북키프로스와 남키프로스를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키프로스 공화국의 재통일을 지원하는 반면, 그리스 정부와 유럽국가들은 터키군이 진주한 지역인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통일 또한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런 분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이거 또한 터키와 그리스간의 사이를 안좋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