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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7 흡수골 투어 3일. 차강노르  [Photo's Here]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숫가에 내려가 보았다. 물은 꽤 맑은 편이다. 우리 옆의 숙소는 출발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호수에서 걸어오는데 웬 서양 청년 하나가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 한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쥔 채로. 사정을 물었더니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에 자기 짐까지 다 실은 차가 눈앞에서 떠나 버렸단다. 소리를 질러도 못 듣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예전에 교사 연수 갔을 때 강원도 영월서 화장실에서 늦게 왔다가 눈앞에서 버스가 떠났었다. 그 때의 나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다.

주인 게르의 버터 만드는 할머니에게 몸짓으로 설명을 드려도 난감해 하기만 하신다. 애를 데리고 자고 있는 바타에게 갔다. 다행히 이 독일 애 프리드만은 바타와 같은 대학교의 교환학생으로 2주간 와서 학술연구 여행 중이었다. 몽골의 식생과 자연, 그리고 앞으로 개발되면 어떤 환경적 문제가 생기는 지를 공부하는 중이란다. 이른 아침이어서 다들 어리버리하고 급했던지 친구가 자기에게 휴지를 건네주고도 확인 안하고 떠나버린 것이 영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다. 모두들 차에 타고 바로 잠들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아직 아침 7시도 안된 시간이라 바타가 자기 교수에게 전화도 하고 애를 써 보지만 연락이 잘 안 된다. 우리 숙소에 데려와 같이 앉혀 놓고 얘기를 나눠 주는 수 밖에. 자다가 일어나 의아해한다. 홍콩부부, 독일 애와 함께 앉아 애가 연구하는 이야기도 듣고 환경문제에 대해 얘기도 나눈다.

원래 오전에 말 타고 화산 분화구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어제 이미 다녀오는 바람에 말이 오후에 와야 탄다고 한다. 각자 자거나 쉰다. 프리드리만은 차 소리 비슷한 것만 나면 후다닥 뛰어나가 본다. 결국 애가 간 것은 4시간이나 지난 11시 후 이다. 작은 지프 한 대가 데리러 왔다. 폭풍처럼 검은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지는 것도 보고 나름대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빵을 먹을 때는 주인 할머니에게 갓 만든 버터를 얻어 왔다. 아침에 여쭐 때 우유를 저어 가며 만드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약간 양 냄새가 나는데 소젖으로 만든 거라고 한다.

옷도 빨고 샤워도 할 겸 이런 날씨에 호수에 들어가자고 했다. 두 샘들과 남편, 나는 빨 옷들을 바리바리 껴입었다. 홍콩부부도 시도해 본다고 따라온다. 가을 날씨에 호수에 들어가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전에 훕수굴 호수 물에 들어가서 느꼈던 알싸하고 상쾌한 느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감각이란 참 무서운 거다. 춥고 변덕스런 날씨라서 잠깐 해가 나올 때 들어가야 한다.

얕은 곳부터 슬슬 들어가 서로 물을 튀기며 놀다가 앉아 버렸다. 홍콩부부는 크레이지!’라고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병날 것 같아 도저히 못 들어오겠단다. 우리는 비누질 없이 입은 옷도 두드려 빨고 머리도 담가 비벼가며 친환경적인 물놀이와 수영을 했다. 20여 분 있다가 나왔다. 추워서 이가 딱딱 부딪친다. 얼른 잠바를 걸치고 숙소에 와서 남자들이 먼저 들어가 갈아입고 나는 나중에 갈아입었다. 게르를 묶은 끈 사이에 옷들을 나란히 널어 말린다. 바람이 불어 마르는 속도는 빠르다.

점심은 작은 분량의 국수다. 아침에는 빵과 라면을 먹었는데 점심을 먹고도 소시지 야채볶음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주신 버터를 이용해 맛이 더 좋았다. 단박에 1kg 분량의 소시지를 거의 다 먹는다. 한숨 자는 동안 말이 왔다고 한다. 따뜻하게 껴입고 타러 간다. 말은 매우 느리게 걷는다. 내 말은 꽤 늙었고 순한 편이다.

호숫가의 두꺼비처럼 생긴 큰 바위를 지나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에 들어가 둥글게 감돌아 나온다. 꽃들이 무척 아름답고 멋지게 무리지어 여기저기에 피어 있다. 향긋한 향기도 많이 난다. 달리기 시작한다. 엉덩이도 아프지만 오른발 등자가 살짝 뒤틀려 꼬여 있어 불편하고 무릎이 아프다. 막판에 남편의 말이 집에 돌아온다고 신나서 그랬는지 마구 달려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다.

말을 주인에게 넘기고 모두 함께 아까 보았던 두꺼비 바위로 산책을 간다. 물 사이의 모래톱이 만들어진 곳에 보라색 구절초와 패랭이가 만발해 꽃밭을 이룬다. 앉아서 사진도 찍고 꽃밭에서라는 노래도 부른다. 참 아름다운 곳이다. 외국 애들이 낚시한다고 서 있는데 통에는 맥주가 들어 있고 잡은 고기는 없다.

1시간 산책하고 와서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었다. 잠시 후 저녁으로 밥과 야채볶음이 나와 모두 밥을 덜어 놓고 먹었다. 사과와 오징어를 먹으며 다시 보드카 파티. 오늘은 침대 없는 바타가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한다. 홍콩부부가 함께 자겠다며 바타에게 침대 하나를 내주었다. 바타는 구운 오징어를 처음 먹어 본다. 바다 냄새가 난다고 한다. 내륙에 사는 애가 바다는 가 봤을까... 굽는 냄새가 좋지 않다고 하더니만 맛있다고 잘 먹었다.

오늘은 우연히 귀신에 대해 말하다가 각 나라의 귀신 얘기를 시작한다. 바타는 몽골의 하얀 델을 입고 나타나는 처녀귀신 얘기를 해 주었다.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우리는 웃으며 왜 전통의상이어야 하는지 신기해했다. 이어서 홍콩의 귀신, 말과 소 형상의 저승사자와 우리의 것을 비교하다가 가위 눌리는 얘기로 넘어 간다. 사후세계에 대한 무섭고 신기한 얘기까지 무척 재미있게 이어졌다. 놀다가 1시에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