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7월31일(일) |
새벽에 웬 사람이 문을 두드려서 잠결에 열었다. 자기가 더 놀라며 "쑤어리!"하고 황급히 가버린다. 잘못 안 모양이다. 창가 쪽에 머리를 두고 자니 찬 기운이 들어와 잠을 설쳐 결국 거꾸로 잤다. 공기가 건조하고 차서 코감기에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도 붓고 윗입술도 부풀었다. 미적이며 자다 보니 11시가 되었는데 어떤 역에 도착했다. 자다가 열차가 서면 깨게 된다. 밖으로 나가서 만두를 사왔다. 갓 만들어서 따듯한 만두는 감자가 든 것, 야채가 든 것 두 가지이다. 맛은 덤덤하고 괜찮다. 풍경이 어제와는 조금 달라져 있다. 몽골처럼 민둥산과 벌판이 보인다. 역시 들판은 파스텔이나 연한 수채화 물감을 사용한 듯 은은하고 아름답다. 꽃들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잔대, 투구꽃 비슷한 짙은 파랑색 꽃, 오후에는 보라색 방울 같은 솔체꽃이 보였다. 드물게도 어떤 곳에서는 이 야생화 들판을 기계로 베어서 큰 무덤처럼 보이는 건초더미를 만들고 있다(야생의 자연이 그대로 펼쳐진 곳에서는 건초더미 보는 것도 드문 일이다). 마르고 나면 한쪽으로 끌어 모아서 여러 명이 쇠스랑으로 찍어 올려주면 한 사람이 위로 올라가 맵시 있게 커다란 종 모양의 더미를 만들어 올린다.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한낱 잡초가 되는 순간이라 아쉽기는 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러시아이기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건초를 모아 둥글게 쌓는 모습이 밀레의 그림 같다. 오늘은 매우 더워서 물수건을 만들어 닦아 보기도 하고 쉽지 않게 하루를 보냈다. 방의 창문이 열리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오후 5시, 6시가 되어도 복도의 창밖은 더운 열기가 확 끼쳐온다. 바깥에는 물에 들어앉아 노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은 역마다 먹을 것을 파는 상인들이 적다. '항일무장 투쟁사'를 약간 읽었다. 우리가 모르는 역사의 부분들이 많다. 너무 더워 낮잠도 안와서 더위가 한풀 꺾인 후에 잤다. 남편은 더위 먹은 듯 지쳤으나 해안은 더위를 개의치 않고 잘 잔다. 역시 식사는 주로 라면과 빵이다. 남은 둥근 쏘시지 모양 스프레드도 역시 상해 있었다. 어제 멀쩡한 것 하나를 빵에 발라먹고 그 맛에 허걱했던 남편과 해안은 상했다고 더 좋아한다. 멀쩡한 것을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상해서 차라리 기쁜 것이다. 역시 입으로 뜯다가 어제의 일을 또 반복했다(부글거리며 삽시간에 삐져나오는 것을 입에 머금었다가 뱉기). 음식이 많이 줄어 이제는 별로 없다. 약간의 치즈와 살라미 만 남았다. 오늘은 사두었던 오이와 토마토가 있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섬유질과 과일이 없는 식사를 계속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뜨거운 물을 먹을 수 있으니 꾸준히 차는 마신다. 바깥의 풍경은 원시 자연 그대로이니 어디나 컴퓨터의 바탕화면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남편은 "어디서 그런 풍경을 찍어왔나 했더니 저것이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바탕화면이구나!"하면서 감탄한다.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도 좋다. 여행기들을 보면 지루하니 책을 준비하라고 권하지만 풍경보기에 바빠 책을 볼 틈이 없다. 밤에는 하늘에 별도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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